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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의 ‘아름다운 복수’를 기대한다] ....

뚝섬 2023. 12. 20. 11:26

[한동훈의 ‘아름다운 복수’를 기대한다]

[‘아름다운 복수’는 없었다]

[文 대통령을 잘못 봤던 건가 사람이 변했나]

 

 

 

한동훈의 ‘아름다운 복수’를 기대한다

 

정치 입문 임박한 한 장관
그를 좌천시키고 못살게 군 사람들과 다시 부딪칠 운명
그들과 다르다는 것 보여줘야 성공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9일 오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기 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한동훈 장관은 엘리트 검사로 꽃길만 걸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지만은 않다. 문재인 정부에서 검사장으로 승진해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을 맡았지만 조국 일가 비리를 수사하자 2020년 1월 부산고검으로 좌천됐다. 5개월 만에 다시 ‘채널A 사건’을 이유로 법무연수원 용인분원으로 발령 났다. 수사 일선에서 배제된 것이다. 당시 함께 근무했던 인사는 “한 장관은 출퇴근 시간을 매일 체크당했다. 그를 감시하기 위해 평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연수원에 보안 점검이 내려왔다”고 했다. 후배 검사가 그를 압수수색하고 휴대전화를 뺏으려고 몸싸움을 시도해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거기서 다시 4개월 만에 충북 진천의 법무연수원 본원으로 옮겼다. 문 정권 입장에서는 서울에서 보다 먼 곳으로 보내고 싶었을 것이다. 법무부 감찰관이 한동훈을 왜 빨리 진천으로 보내지 않느냐며 자신보다 한참 선배인 법무연수원장에게 경위서 제출까지 요구했다고 한다. 이듬해 6월 한 장관은 사법연수원 부원장으로 갔다. 법무연수원은 법무부 소속이지만 사법연수원은 사법부 산하다. 아예 행정부 밖으로 밀려난 것이다. 이때 한 장관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소화 장애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를 지켜본 인사는 “한 달 동안 죽만 간신히 먹었다. 식사를 못 하니 약속을 잡기도 어려웠다”고 했다.

 

시련을 견디고 한 장관은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자신을 못살게 굴던 법무부의 수장이 됐다. 참신한 이미지에 법과 원칙에 충실한 강직함, 반듯한 언행이 더해져 대중적 지지까지 얻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버금가는 차기 주자로 성장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도 거론된다. 꼭 그 자리가 아니라도 정치 입문은 멀지 않은 듯하다. 원하든 원치 않든 정치권이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본인도 관심이 있는 것 같다.

 

한 장관이 정치를 시작하면 자신을 핍박했던 사람들과 다시 부딪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지금 ‘복수 혈전’을 준비 중이다. 옛 법무부의 조국·추미애 전 장관이 모두 총선 출마 태세다. 한 장관과 채널A 기자의 허위 녹취록을 KBS에 넘긴 혐의로 기소된 신성식 검사장도 “민주당 후보로 전남 순천 출마를 검토 중”이라고 했다. 조국 수사를 방해하고 울산 선거 개입 수사를 뭉갠 의혹을 받는 이성윤 전 서울지검장도 고향 전북 출마를 준비 중이다. 지난달 출판기념회까지 열었다. 문 전 대통령은 그의 책을 소개하며 “우리 사회의 진정한 복수(福壽·오래 살며 복을 누림)를 꿈꾼다”고 썼다. 쓰면서 또 다른 의미의 복수도 머릿속에 떠올렸을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은 정치 입문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몬 사람들과 우리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복수’를 하겠다”고 했지만, 그의 복수가 얼마나 추하고 적나라했는지 온 국민이 안다.

 

한 장관이 정치권에 들어오면 검사 출신에 윤석열 대통령 직계라는 점 때문에 많은 공격을 받을 것이다. 한 장관도 시비에 밝고 싸움을 피하지 않는 성격이다. 하지만 그들과 똑같이 싸우면 수많은 정치인 중 하나가 될 뿐이다. 국민은 한 장관이 앞선 이들과 다른 점을 보여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정치는 복수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문 정권이 실패한 원인이 거기에 있다. 의견이 다르고 심지어 원한이 있는 상대라도 어떻게든 설득하고 타협하는 게 정치다. 윤 대통령도 잘 해내지 못한 일이다. 한 장관은 자신이 겪은 시련에 대해 “저같이 사회에서 혜택받고 살아온 사람이 억울하다고 징징대면 구차하다”고 했다. 대통령들도 이루지 못한 ‘아름다운 복수’를 한 장관은 해낼 수 있을까.

 

-황대진 논설위원, 조선일보(23-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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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복수’는 없었다

 

與, 4년 내내 집요하게 前 정권 보복해 민심 이반
이젠 야당이 ‘복수' 외쳐.. 여야 모두 용서·화해해야

 

노 前 대통령 영결식장서 MB에게 사과했던 文대통령-지난 2009년 5월 29일 서울 경복궁에서 진행된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영결식에서 장례집행위원장을 맡았던 문재인 대통령이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 당시 백원우 민주당 의원이 이 전 대통령을 향해 “정치 보복 사죄하라”며 고함을 치자, 문 대통령이 이 전 대통령에게 다가가 사과했다. 문 대통령 왼쪽은 한명숙 전 총리.

 

문재인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서를 가슴에 품고 다짐한 아름다운 복수’는 실패했다그것은 집요하고 파괴적이었으며, 결과적으로 너절했다. 이 정부 4년을 돌이켜보면 마치 복수하려고 정권 잡은 사람들 같았다. ‘선출된 권력’을 내세워 복수 면허증’이라도 딴 것처럼 행동했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각각 징역 17년, 22년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도 후배들에게 재판을 받고 있다. ‘복수 리스트’ 상단에 한명숙 전 총리 사건도 있다. 문 대통령은 “무죄임을 확신한다”고 했고, 법무부는 개인적 확신을 사실로 만들기 위해 집요하게 움직였다. 검찰 조직은 형해화됐다. 수사권을 공수처에, 경찰에 뺏기고 간신히 숨만 쉬었다. 마지막 숨통을 끊기 위해 두 명의 법무장관이 수사 지휘권을 4번 발동하고 검찰총장을 정직·징계 처분했다.

 

현 정부 최대 실정(失政)으로 꼽히는 부동산 정책은 문 대통령이 ‘교체’를 외쳤던 ‘주류 기득권’을 겨냥했다. 강남을 표적 삼았지만 24번의 대책에도 집값은 50% 이상 올랐다. ‘임대차 3법’으로 전셋값도 뛰었다. 강남 부자 잡으려다 온 국민 잡았다는 말이 나온다.

 

복수를 위해 자신들이 강조하던 가치도 훼손했다. ‘검찰 힘 빼기’에 나선 조국을 위해 입시의 공정성을, ‘강남 잡기’에 앞장선 김상조를 위해 그의 ‘꼼수 전셋값 인상’을 모른 체했다.

 

복수는 분노에서 시작됐다. 2017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안희정 후보는 “이명박 대통령도 잘해보고 싶지 않았겠느냐. 그 사람의 의지를 선한 의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문 대통령은 “불의에 대한 뜨거운 분노 없이 어떻게 정의를 바로 세우겠느냐”고 맞받았다정의를 세우려면, 불의·분노·복수·정의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이 수사를 받다 “노 전 대통령 죽음에 대한 보복”이라고 하자, 문 대통령은 즉각 “분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누구나 분노할 권리는 있다. 하지만 누구나 다 분노하지는 않는다. 문 대통령은 자주 분노했고, 그때마다 교도소에 가는 사람이 늘었다.

 

‘복수 정치’ 4년의 결과는 민심 이반이다. ‘문재인의 분노’는 조국 사태, 부동산 정책 실패, LH 사태 등을 거치며 국민의 분노’로 치환됐다. 민주당은 6일 앞으로 다가온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MB 사람들’에게 고전 중이다. 20대가 야당 유세차에 올라타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를 외친 문 대통령에게 표를 던진 손이 후회스럽다” “박영선 후보의 말처럼 역사적 경험치가 낮아서 투표를 잘못했다”고 한다.

 

복수는 복수를 부른다. 이젠 야당이 “정권 심판을 위해 복수(復讐) 투표를 하자”고 한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도 사면 대상이 될지 모른다”고 했다. 복수는 기본적으로 같은 방식으로 앙갚음하는 것이다. 애당초 아름다울 수가 없다. 형용 모순이다. ‘마차가 말을 끈다’는 소득 주도 성장과 비슷하다.

 

정치의 목적이 복수일 수는 없다. 의견이 달라도 같이 살길을 찾는 게 정치다민주당이 혹시 막판 역전에 성공한다면 이번엔 복수하지 않길 바란다. 박원순 전 시장의 성추행 피해자에게 보복하지 말아야 한다. 야당도 오세훈 후보가 이겼다고 서울시청 ‘박원순 사람들’에게 앙갚음하면 안 된다. 대한민국이 지속 가능하려면 복수에 앞서 용서와 화해가 필요한 시점이다. 나라가 있어야 대통령도 있고, 시장도 있다. 집도, 땅도, 표를 줄 국민도 있다. 그래야 정치도 계속할 수 있다.

 

-황대진 기자, 조선일보(21-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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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대통령을 잘못 봤던 건가 사람이 변했나

 

2012 대선 땐 지지 여부 떠나서 '사람은 괜찮아 보인다' 공감대
"그들 했던 대로 되갚지 않겠다" '아름다운 복수' 다짐도 하더니
되레 몇 곱절 더한 적폐 청산 2년… 첫인상에 배반당한 충격만 남아
 

 

2012년 말 대학 동창 열 명가량이 모인 송년회가 대선 전날이었다. 신변잡사로 웃고 떠들다 헤어질 무렵 선거가 화제로 올랐다. 각자의 얘기 속에 다음 날 표심이 드러났는데 '누구를 찍으려는 이유'보다 '상대 후보를 찍을 수 없는 핑계'를 내놓는 식이었다. 문재인 후보를 못 찍겠다는 쪽은 이유가 한결같았다. 문재인 개인은 괜찮아 보이는데 그 주변이 못 미덥고 걱정스럽다는 것이었다.

우연한 소모임에서만 이런 공감대가 이뤄진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대선 이틀 후 조선일보에 '반듯하고 맑은 남자 문재인… 그 성품을 가린 문 후보의 주변'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문 후보 진영을 담당했던 본지 기자는 캠프 해단식을 소개하면서 "이번 선거운동 기간 문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조차 문 후보 이야기가 나오면 '반듯하고 괜찮은 남자'라고 했다. '맑고 선한 느낌을 준다'는 말도 이어졌다"고 썼다.

필자도 그런 인상을 공유했던 축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나보내는 과정에서 '상주 문재인'이 보여준 의연함이 인상적으로 머리에 남았다. 2009년 5월 23일 오전 9시 30분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알린 그의 1분짜리 발표는 "대단히 충격적이고 슬픈 일입니다"라고 시작해서 "대통령님께서는 가족들 앞으로 짧은 유서를 남기셨습니다"로 마무리됐다. 감정을 일절 배제하고 확인된 사실만 담았다. 노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봉변당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다가가 사과하는 모습 역시 담담한 품위를 느끼게 했다.

문 대통령은 저서 '운명'에서 노 전 대통령의 유서를 아직도 수첩에 갖고 다닌다고 썼다. 문 대통령은 그 유서를 보면서 주변에 '아름다운 복수'를 다짐했다고 했다. '그들이 했던 대로 되갚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다른 정치인의 말이었다면 코웃음을 쳤겠지만 "문재인이라면 어쩌면"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한때 그런 기대를 품었다는 사실이 어처구니없게 느껴지는 지난 2년이었다. 노 전 대통령을 '극단적 선택'으로 몬 사람들과 다르다는 걸 보여주겠다고 했는데 2년 새 똑같은 선택을 한 사람이 벌써 네 명이다. 자신과 아들이 겪은 수모에 충격받고 제 명을 채우지 못한 경우도 각각 있었다. '적폐 수사'로 감옥에 간 사람과 그 형량의 합은 역대 모든 정권의 기록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들이 했던 대로 되갚지 않겠다'는 말은 그 몇 곱절로 돌려준다는 뜻이었나 보다.

단순 수치 비교보다 더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문 대통령의 인식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검찰 수사를 '정치 보복'이라고 했을 때 문 대통령은 "모욕"이라고 분노했다MB에 대한 수사는 국정원 댓글 수사가 여의치 않자 다스 비자금에 국정원 특수활동비까지 새끼를 치면서 걸릴 때까지 별건(別件)을 뒤지는 식이었다. 이런 게 보복 수사가 아니면 무엇이 보복이겠나.

문 대통령은 "국정원은 40명 정도 구속과 실형을 받을 정도로 적폐를 씻어냈다"면서 "정말 잘해주셨다. 감사드린다"고 했다. 한 조직의 40명이 사법처리됐다면 수백 명이 검찰 조사에 시달렸을 것이다. 먼지 떨기식 무리한 수사였겠구나 하는 생각이 당연히 든다. 그런데 인권 변호사 출신 문 대통령 눈엔 모범적 청산 모델로 비쳤다는 얘기다.

지난주 사회 원로들을 만난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적폐 청산 그만하라는 말씀들을 하시지만 살아 움직이는 수사는 통제가 안 된다"면서 "청산을 마친 뒤에 상생과 협치도 가능하다"고 했다. 잔혹 영화에 등장하는 보스는 험상궂은 표정을 짓거나 고함을 지르는 법이 없다. 어두컴컴한 지하실에서 피투성이가 되도록 린치를 당한 사람에게 다가가 위로하듯 말한다. "나도 그만했으면 싶은데 어쩔 도리가 없구나. 죗값은 치러야 한다고 하니. 맞을 거 조금만 더 맞자."

적폐 청산으로 곤욕을 치른 전 정권 인사는 대통령 비서실장 시절 접했던 문 대통령은 "참 괜찮은 사람으로 보였다"며 알쏭달쏭한 미소를 지었다.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도 연초 인터뷰 때 문 대통령의 첫인상을 "정직하고 솔직해 보였다"고 했다. "그런데 요즘은 앞뒤 말이 달라지고 자기 말을 남의 말같이 한다"면서 "내가 문 대통령을 잘못 봤던 것인지, 사람이 달라진 것인지 그건 모르겠다"고 했다. '반듯하고 맑아 보였던 첫인상'에 배반당한 충격담들이다. 다들 뭔가에 홀려 헛것을 봤던 걸까, 아니면 권력을 좇고 누린 세월이 사람을 변하게 만든 걸까.


-김창균 논설주간, 조선일보(19-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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