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미’ 이재명 외교안보팀의 달라진 과제] .... [한미연합사의.. ] ....
[‘찐미’ 이재명 외교안보팀의 달라진 과제]
[500만달러짜리 '트럼프 카드']
[한미연합사의 '파이트 투나잇']
['인권 변호사' 李 대통령, 우크라 北 포로부터 데려오길]
[전투 드론과 살상의 자동화]
‘찐미’ 이재명 외교안보팀의 달라진 과제
김민석 총리 후보자가 지난주 기자간담회에서 ‘반미(反美)주의자’ 질문을 받았을 때 내놓은 답변은 핵심을 비껴 간 부분이 있다고 본다. 하버드대를 다녔고 미국 변호사 자격증을 딴 것이 곧바로 반박 논거가 되지는 않는다. 한미동맹을 폄훼하거나 미국을 자극하는 발언을 반복했던 인사 중에 미국에서 공부했거나 자식을 미국으로 유학 보낸 사례도 적잖다. 김 후보자가 과거 경력을 설명하는 대신 ‘우리 안보의 근간인 한미동맹은 중요하다’고 힘을 싣는 발언을 했으면 어땠을까.
동맹파에 힘 실은 국가안보실 인선
반미와 친미를 나누는 과거의 단순한 이분법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더 이상 미국대사관을 점거하거나 관저를 향해 짱돌을 던지지 않는다. 강대국을 향해 치기 어린 분노를 표출하는 대신 서로 주고받을 것을 가진 중견 동맹국으로서 한국의 외교적 역량이 그만큼 올라왔다. 이재명 대통령의 외교안보 참모들도 “반미 여론을 갖고 장사할 때는 지났다”고 말한다.
이 대통령은 한미, 한미일 협력의 필요성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외교안보 사령탑에 동맹파인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을 임명한 데 이어 주미대사관 정무공사를 지낸 ‘워싱턴 스쿨’ 외교관을 국가안보실 2차장에 앉힌 것에서도 일관된 방향성이 확인된다. 후속 인선이 지연되면서 20여 년 전 이른바 ‘자주파 대 동맹파’ 충돌의 기억이 소환되던 타이밍에 스멀스멀 올라오던 우려를 일단락시키는 효과도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위 실장을 ‘찐미(진짜 미국)’로 평가하며 “한미 관계를 잘할 것”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에 대해 “DJ(김대중 전 대통령)보다도 찐미”라고도 했다. 다만 박 의원이 이 자리에서 언급한 자주파 6인회의 영향력 또한 아직도 건재하다. 6인회 멤버인 이종석 국가정보원장 후보자가 20대 대선 당시 이재명 캠프에서 실용외교위원장을 맡고 있던 위 실장과 충돌했던 게 불과 3년 전이다.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을 작성하면서 이 후보자가 위 실장을 패싱했다는 논란이 벌어지는 등 강한 견제가 지속됐다. 캠프에서 공약을 놓고 벌어졌던 양측 갈등이 실제 국가 정책을 두고 표면화한다면 재앙이다.
달라진 美 상대하는 외교 집중할 때
‘찐미’ 외교안보팀이라도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를 상대하는 일은 점점 험난해질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5개월 만에 전국적 비판 시위에 직면했다. 지지율이 계속 떨어진다면 내년 중간선거에서 의회 과반을 놓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의 중재가 난항인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중동에서는 이스라엘-이란 전쟁까지 터졌다. 시한이 임박한 주요국들과의 관세 협상 또한 기대했던 속도와 성과를 내지 못하는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이 초조해질수록 대외정책은 더 예측하기 힘든 방향으로 튈 가능성이 높다. 한국을 상대로 한 방위비 분담금 증액이나 주한미군 재배치, 북-미 대화 재개 등을 놓고 무리수를 두게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 관리도 숙제이지만 시급성과 난이도에 있어선 달라진 미국을 상대하는 게 상위에 놓여 있다. 더구나 대중, 대러 외교는 모두 미국과 교차방정식으로 엮여 있는 게 한반도 외교 판의 현실이다.
이 대통령은 캐나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통해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이 돌아왔다”는 메시지를 발신했다. 지금부터는 첩첩이 쌓인 외교안보 과제들을 풀어내는 일에 정신없이 속도를 내야 한다. 불안하게 흔들릴 조짐을 보이는 한미동맹을 다잡고 이를 바탕으로 이재명표 실용외교가 뭔지 보여줘야 할 것이다. ‘제2의 자주파 대 동맹파’ 갈등으로 초기 동력을 놓칠 여유는 없다.
-이정은 부국장, 동아일보(25-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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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만달러짜리 '트럼프 카드'
올 초 예고한 대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인에게 미국 시민권을 500만달러(약 70억원)에 팔겠다고 나섰다. 이름은 ‘트럼프 카드’.
지난주 공식 웹사이트 ‘trumpcard.gov’를 열고 사전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트럼프 본인에 따르면 오픈 하루 만에 1만5000여 명이 등록했다. 그중 상당수는 그저 호기심에 이름을 써봤겠지만 그래도 많다. 독자 중에도 있을지 모르겠다.
엄밀히 말해 트럼프가 트럼프 카드 구매자에게 시민권 취득을 100퍼센트 보장한 적은 없다. 그건 미국 헌법 위반이라는 말도 있다. 그래서 일단은 일반 영주권처럼 미국 내 무기한 거주와 경제활동 권리를 주고, 이후 신속한 시민권 취득을 돕겠다는 것이 그의 세일 공약이다. 그 시민권 취득 절차가 종전 투자 이민 제도에 비해 구체적으로 얼마나 빠르고 간편해질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사이트 맨 위에 “미국 정부의 공식 사이트입니다”라는 문구가 올라온 걸 보면 완전 허풍은 아닌 듯하다.
한 나라의 국민임을 증명하는 시민권을 이렇게 돈 받고 팔아도 되나? 그런 나라는 이미 여럿 있다. 대표적으로 터키. 외국인이 40만달러 이상 부동산을 사서 3년 이상 보유하거나 50만달러 이상을 터키 은행에 예치하면 1년 안에 시민권과 여권을 발급해 준다. 그 밖에 카리브해 여러 섬나라도 국적을 판매한다.
500만달러라는 가격이 정당화되는지는 몰라도 확실히 미국 시민권은 부자들에게 인기가 있다. 미국은 경제적 기회도 크고, 세계 최강국이자 민주주의 종주국의 시민이 된다는 자부심도 줄 수 있다. 자녀 교육 환경도 매력 포인트다. 또 법치국가라서 아무나 함부로 잡아가지 않으며 해외에서도 자국민 보호에 전력을 다하니 이중국적으로도 인기다.
2023년 갤럽 조사의 추정으로는 전 세계에서 약 1억7000만명이 미국 이민을 원한다. 인종차별이 있다 해도 다른 나라보다 덜한 편이다. 시민권의 가치는 그 나라가 얼마나 살기 좋은지에 귀결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시민권은 가치가 얼마나 있을까. 또 우리는 우리나라 시민권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바로 위에서 언급한 요건을 갖추면 되지 않을까. 남들이 살고 싶어 하는 나라가 우리가 살기에도 좋은 나라일 것이다.
-조진서 외신 뉴스레터 '오호츠크 리포트' 에디터, 조선일보(25-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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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연합사의 '파이트 투나잇'
지난 2024년 1월 30일 경기도 평택시 주한미공군 오산기지에서 열린 미7공군사령관 이취임식에서 폴 러캐머라 주한미군사령관이 훈시하고 있다./연합뉴스
“‘같이 갑시다(Katchi Kapsida)’와 ‘파이트 투나잇(fight tonight)’이 그저 공허한 말이 되지 않도록 합시다.” 지난해 12월 열린 한미연합사령관 이·취임식에서 폴 러캐머라 사령관이 이임사에서 한 말이다. 새뮤얼 파파로 미 인도태평양사령관도 “더욱 공격적인 북한의 행동, 중국·러시아·북한의 거래적 공생 관계 상황에서 ‘파이트 투나잇’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 오늘 밤 적과 싸울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뜻의 ‘파이트 투나잇’은 ‘같이 갑시다’와 함께 한미 동맹을 상징하는 구호다. 6·25 전쟁부터 다져온 혈맹의 가치를 상징하는 ‘같이 갑시다’에 더해, 점증하는 위협에 맞선 굳건한 대비 태세의 중요성을 담고 있다. 단순 구호가 아닌 한미 동맹을 떠받치는 축이다.
그 축이 어쩌면 흔들릴 수도 있다는 불안함이 감지된 것은 이재명 대통령의 전방 부대 방문 소식을 듣고서였다. 취임 열흘째이던 지난 13일 대통령이 최전방 수색대대를 방문해 장병들을 격려하는 모습은 믿음직스러웠다. 그런데 대통령은 “그런 얘기가 있다. 싸워서 이기는 건 중요하지만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더 중요하다. 그건 여러분 몫”이라고 했다. 이어 “그보다 가장 중요한 게 있다. 싸울 필요가 없는 상태, 평화를 만드는 일이다. 그건 우리 같은 사람들이 할 일”이라고 말했다.
평화 안보 환경 조성이 국가 지도자의 책무인 것은 맞는다. 하지만 그런 환경은 적에 맞선 안보 태세가 굳건할 때 가능하다. 더구나 언제 적과 일촉즉발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곳에서 복무하는 최전방 장병들 앞에서 군 통수권자가 “싸워서 이기는 것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발언하는 것이 과연 시의적절할까.
당장 싸워 이길 준비가 돼 있는 것이 가장 확실한 평화 유지책임을 알려주는 사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20년 동안 미군 지원을 받으며 이슬람 무장 단체 탈레반과 대적한 아프가니스탄군은 분열과 부패를 떨쳐내지 못했고, 2021년 미군 철수와 함께 전투 한 번 없이 백기를 들었다. ‘평화적 패망’의 고통은 전근대적 폭정 치하에서 신음하는 국민 몫이 됐다. 미군의 압도적 지원을 받다 반세기 전 패망한 남베트남 역시 비슷한 길을 걸었고, 수많은 국민이 보트피플이 돼 고통스럽게 살아야 했다.
미군이 이 나라들에서 철수한 데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지만 싸울 준비는커녕 분열하고 부패한 동맹에 대한 회의감도 하나의 요인이 됐음을 역사가 말해준다. 이 사례들과 견주기에 한국 국력은 전례 없이 부강하고 한미 동맹은 최고 성공 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비공식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받는 북핵,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실전 경험을 쌓은 지상군 등 우리가 마주하는 위협 또한 전례가 없다. 새 정부가 ‘같이 갑시다’ 구호의 함의를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하는 까닭이다. 평화는 힘에서 나온다.
-정지섭 기자, 조선일보(25-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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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연구소 “北, 추가 핵탄두 40개 만들 물질 확보.” 어느새 가물가물해진 한때의 유행어 ‘핵 없는 세상’.
-팔면봉, 조선일보(25-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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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변호사' 李 대통령, 우크라 北 포로부터 데려오길
2월 "대한민국 가고 싶다" 밝힌
우크라 北 포로 송환 아직 요원
국정 마비로 4개월 그냥 흘러
새 정부 외교 성과 '1호'로 어떤가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에 파병됐다가 우크라이나군에 생포된 북한군 포로 백모(왼쪽)씨와 리모씨가 최근 우크라이나의 한 포로수용소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정철환 특파원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외교 무대인 G7 정상회의 참가를 위해 캐나다로 출국했다. 지난해 말 계엄 사태 이후 멈출 수밖에 없었던 정상 외교가 재개된다. 주요국 정상들만큼 한국 국민도 이 대통령을 주목하고 있다. 안보·무역·신기술 등 한국의 미래에 큰 영향을 끼칠 현안 중 외교로 풀 일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과거 인권 변호사로 활동했던 이 대통령이기에 특히 기대하는 사안이 있다. 우크라이나군에 붙잡힌 북한군 포로 문제다. 지난 2월 본지 특파원은 러시아 편에서 싸우다 다친 어린 북한군 포로 두 명을 우크라이나에서 어렵게 인터뷰했다. 인터뷰 중 한 명은 확실히 한국행(行)을 원한다는 의사를 표시(“난민 신청을 해서 대한민국에 갈 생각입니다”)했고, 다른 한 명도 선택지 중 하나로 한국을 생각하고 있다는 뜻을 밝혔다.
북한군 포로들은 “잡히는 즉시 자폭하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그러지 못했다고 말했다. 생존했다는 사실 자체가 ‘변절’로 여겨지는 나라, 그곳으로 돌아가면 처형되거나 평생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살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탈북민들은 말한다. 인터뷰가 공개된 직후부터 북한 포로를 한국에 데려와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고, 그 방법에 대해 해외 언론과 한국의 전문가들도 의견을 냈다. 당시만 해도 러시아가 북한군의 파병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 병사의 신분이 전쟁 포로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그 때문에 탈북민에 준하는 절차를 거쳐 한국으로 송환하는 방법이 가장 현실적인 해법으로 거론됐다. 문제는 한국 정부였다. 그즈음 한국은 계엄 사태 이후 이어진 큰 혼란에 빠져 있었고 이 때문에 정부가 제대로 작동할 수가 없었다. 넉 달이 흐른 끝에 이 대통령이 선출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1990년대 중후반 인권 변호사 시절 토론을 하고 있는 모습. /조선일보 DB
그사이 큰 변화가 있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4월 “한국(북한)의 영웅들이 러시아 형제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웠다”며 북한군의 참전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양국에 종전을 압박하는 가운데 공고한 북·러 동맹을 과시하기 위한 의도였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북한군 참전이 확인됨으로써 붙잡힌 북한 병사들은 ‘전쟁 포로’임이 확실해졌고, 이들의 신병 처리 문제 역시 전쟁 포로에 관한 국제법인 ‘제네바 협약’의 적용을 받게 됐다.
우크라이나·북한이 모두 가입된 ‘제네바 협약’은 종전 후 포로를 본국으로 송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포로는 전쟁이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문제는 우크라이나의 북한군 포로처럼, 신변을 우려해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 하는 경우다. 이 경우 제네바 협약상 ‘본국 송환’이란 원칙이 다른 인권 관련 국제법상 원칙과 충돌하게 된다. 이에 대한 가장 치열한 논쟁은 공교롭게도 6·25 전쟁 당시 다수의 북한군·중공군 포로가 공산주의 정권의 보복을 두려워해 본국행을 거부하면서 불거졌다. 당시 유엔은 인권 문제를 들어 제네바 협약의 원칙을 지키되 “포로에게 자유로운 선택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결의함으로써 ‘본국 송환’보다는 ‘인권 보호’가 앞선다고 못 박았다. 이후 국제 사회도 이 원칙을 따라 왔다. 북한군 포로가 한국행을 원하고 우크라이나·한국 정부가 결심이 섰다면 절차적 문제는 사실상 없다는 의미다.
이번 G7 정상회의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참석할 계획이라고 한다. 우크라이나 정부 당국자는 본지에 이미 “북한군 포로의 한국행이 가능할지는 한국 정부에 달렸다”라고 했다. 집단의 이익보다는 개인의 인권, 국가의 권위보단 개인의 결정권을 앞에 두는 것이 진보의 신념 아니었던가. 이 대통령이 젤렌스키와 만난다면 북한군 포로의 한국 송환 문제를 우선순위 최상단에 올리고 이들을 속히 한국으로 데려왔으면 한다. 자유민주주의 정부라면 반드시, 인권 변호사 경력을 내세워온 대통령이라면 특히 더 해야 할 일이다.
-김신영 국제부장, 조선일보(25-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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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드론과 살상의 자동화
[홍성욱의 과학 오디세이]
전쟁에도 윤리나 도덕이 있을까? 전쟁이 일상적 평화와 질적으로 다른 예외 상태라면 도덕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렇지만 ‘전쟁론’의 저자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처럼 전쟁을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으로 보면, 전쟁에도 정치처럼 윤리가 있다. 실제로 국제법상 전쟁에서 할 수 있는 행위와 해서는 안 되는 행위에 대한 구분은 명확하다. 국제조약은 생물무기나 화학무기를 금지하고 있으며, 민간인이나 포로 살상, 병원이나 학교에 대한 무차별 공격 역시 금지되어 있다.
근대 유럽 정치철학과 법철학의 기초를 놓은 네덜란드 법학자 흐로티위스는 전쟁에서 독(毒)을 사용하는 작전에 반대했다. 독이 적의 반격 역량을 무력화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18세기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도 비슷한 취지에서 전쟁 때의 독 사용, 고문, 무차별 학살에 반대했다. 클라우제비츠도 “전쟁에서 우리 임무는 죽이고 죽는 것”이라고 했다. 적군을 죽인다면 아군도 죽어야 한다는 것이 지금까지 전쟁 윤리의 암묵적 패러다임이었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 ‘드론 이론’을 저술한 프랑스 철학자 그레구아르 샤마유는 전투용 드론이 ‘적의 피해를 최대화하면서 아군에게는 어떤 작은 피해도 주지 않는 무기’라고 특징짓는다. 테러리스트의 수뇌부를 섬멸하면서도 아군의 사상자는 한 명도 없다. 이런 의미에서 전투용 드론은 암묵적으로 공유된 전쟁 윤리의 패러다임을 뒤흔들고 있다. 전통적 전쟁론에서 보면 드론은 비윤리적 무기다. 하지만 드론은 정밀 타격을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무기라고 선전하고 있다.
드론 등장 이후에 전쟁을 시작하는 정치적 결정의 장벽이 확 낮아졌다. 무엇보다 드론은 수백~수천㎞ 떨어진 조종실에서 명령한다. 살상에 대한 윤리적 중압감도 덜어냈다. 이제 AI가 자율적으로 적을 살상하는 AI 드론까지 실전에 응용되고 있다. 이처럼 전투 드론은 전쟁과 살상의 자동화라는 신세계를 열었다. 드론이 열어 젖힌 ‘살상의 자동화’라는 무대에 등장할 다음 무기는 ‘킬러 로봇(killer robot)’일 것이다.
-홍성욱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조선일보(25-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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