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년 만의 민간 국방장관.. ] [기업인 장관을 가로막는 장벽들]
[64년 만의 민간 국방장관에 대한 기대와 우려]
[기업인 장관을 가로막는 장벽들]
64년 만의 민간 국방장관에 대한 기대와 우려
국방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이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취재진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남강호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국방장관 후보자로 민주당 5선인 안규백 의원을 지명했다. 비군인 출신인 안 후보자가 임명되면 5·16 이후 64년 만에 첫 문민 국방장관이 된다. 안 후보자는 2008년 의원 당선 이후 5선 내내 국회 국방위에 몸담았으며 국방위원장도 지냈다. 군과 국방부를 잘 아는 정치인으로 여야의 평판이 모두 좋은 합리적 인사다.
이 대통령은 대선 유세 때 “이제는 국방장관도 민간인으로 보임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라고 했다. 군 관련 공약에서도 ‘국방장관 문민화’를 가장 먼저 제시했다. 12·3 비상 계엄 당시 군 출신들이 군 후배들의 부대를 동원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군에 대한 문민 통제가 성공적이라는 미국에선 전역한 지 7년이 돼야 국방장관을 맡을 수 있다. 그런데 한국에선 예편 1시간 만에 장관이 된 경우도 있었다. 민간인의 군 통제 경험이 사실상 없는 셈이다.
5·16 이후 국방장관 39명 전원이 장군 출신이다. 이 중 33명이 육군이다. 안보실장·국방장관·합참의장이 같은 사관학교 선후배인 적도 있었다. 학교별, 군종별, 근무지별 인연이 얽혀 군맥을 형성하고 요직을 차지하면 군 조직은 경직되고 혁신이 일어나기 어렵다. 제 식구끼리 챙기며 변화 요구에 둔감해지기 때문이다. 문민 국방장관이 틀에 박힌 군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어 혁신을 일으키고, 계엄으로 추락한 사기를 끌어올리기를 기대하는 국민이 많을 것이다.
그동안 군 출신이 국방장관을 맡은 것은 분단 상황과 무관치 않다. 국방장관은 군 인사·행정권뿐 아니라 작전 지휘권도 갖고 있다. 유사시 합참의장과 육·해·공 참모총장을 지휘해야 한다. 안 후보자가 국회 국방위를 오래 경험해 군 내부를 잘 안다고 해도 군 작전을 잘 알 수는 없다. 부대를 직접 지휘·통솔한 경험도 없다. 지금 국군은 핵으로 무장한 북한군 110만명과 대치하고 있다.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공격 등 북 도발도 끊임없다. 일반 국민으로선 군 경험이 없는 국방장관 후보자에 대한 걱정도 할 수밖에 없다.
문민 국방장관이 임명되면 군 작전에 대해선 합참의장의 권한을 보장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군사적 위기 때 작전을 잘 모르는 국방장관이 고집을 부리거나 정치적 영향을 받아 지휘권을 휘두르면 재앙이 될 수도 있다. 미국처럼 문민 국방장관과 합참의장 간 균형이 이뤄져야 한다. 안 장관 후보자가 우리 군을 막강한 전문 집단으로 탈바꿈시켜 군의 문민 통제가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게 되기를 바란다.
-조선일보(25-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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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인 장관을 가로막는 장벽들
[조형래 칼럼]
국회의원 중 법조인 출신 61명인데
기업인 출신은 2명 남짓
장관은 20년간 4명
망신 주기 청문회, 백지 신탁이 원인
미래 예측 힘든 대혼돈 시대에
민간의 역량을 死藏해야 하나
이재명 정부가 한성숙 전 네이버 대표를 중기부 장관에,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을 과기정통부 장관에 발탁했지만 한국은 여전히 기업인에게 공직(公職)의 문턱이 높다. 한 법률 전문지 조사에 따르면 22대 국회의원 중 법조인이 61명으로 역대 최고다. 전체 국민에서 법조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0.07%에 불과하지만 국회에서는 20.3%나 된다. 분야별로 세분화해서 보면 변호사 31명, 검사 19명, 판사 9명의 순서인데, 민주당 당선자 37명 중 14명(37.8%)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다. 검사와 민변 출신 의원들이 서로 상대방을 ‘범죄자’라고 욕하며 싸우기 딱 좋은 구성이다. 민변이 권력으로 가는 출세 등용문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반면 기업인은 고동진(삼성전자 출신)·최은석(CJ제일제당) 의원을 비롯해 한때 젊은 시절 기업에서 근무했던 의원까지 포함해도 5명이 안 된다. 이 기업인 출신 의원들을 누구도 실세라고 부르진 않는다.
정부 부처도 마찬가지다. 본지 2024년 조사에 따르면 노무현 정부 이후 임명된 239명의 국무위원 가운데 기업인 출신은 4명으로 1.7%에 불과하다. 노무현 정부의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박근혜 정부의 강은희 여성가족부 장관, 문재인 정부의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 윤석열 정부의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전부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어김없이 참신한 인재 영입을 내세웠지만 대부분이 교수 출신(58명)이었고,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등 폴리페서(polifessor·정치인+교수)들은 정권의 대변인 노릇 외에는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다.
성공한 기업인들이 공직을 꺼리는 이유는 후보자의 가족까지 털어내는 망신 주기 청문회와 주식 백지 신탁이라는 시대에 뒤떨어진 규제 탓이다. 한국의 백지 신탁은 고위 공직자와 배우자가 직무 연관성 있는 주식을 3000만원 이상 보유할 경우 주식을 사실상 강제 매각하도록 하는 규제다. 미국에서 처음 도입된 제도가 ‘성리학의 나라’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10배는 세졌다. 국내 주식 투자자 수가 1410만명에 이르고 서울의 웬만한 아파트 가격이 20억원을 넘어선 상황에서 시대착오적이기도 하다. 한 전직 장관은 “성공한 기업인들 중에서 전문 지식과 조직 관리 능력 등 당장 장관직을 수행해도 될 만한 사람이 많지만 3일간의 인신공격 청문회와 전 재산 백지 신탁까지 감수할 사람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실제 2013년 국내 대표적인 반도체 장비 업체 주성엔지니어링의 황철주 대표는 박근혜 정부의 첫 중소기업청장에 지명됐지만, 사흘 만에 “회사와 주주를 버릴 수 없다”며 사퇴했다. 문재인 시절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선임 때까지 100일 넘게 걸렸다. 문 정부는 기업인 출신을 첫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선임하고자 했지만 제안을 받은 기업인들이 줄줄이 거절을 하는 바람에 결국 교수 출신을 선택했다. 당시 제안을 받았던 스타급 벤처기업인은 “투자자들은 회사를 운영하는 기업인을 믿고 큰돈을 맡기는 것”이라며 “공직에 나간다고 회사를 매각하는 것은 오랫동안 자신을 믿어준 투자자들을 배신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미국에도 백지 신탁(Blind Trust) 제도가 있지만 재계의 거물급 인사들이 공직과 기업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현재 미국 상하원 의원(총 535명) 중 기업인 출신은 150여 명으로 전체의 30%에 육박한다. 트럼프 정부에서도 최근 사퇴한 일론 머스크 외에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등 많은 요직에서 기업인과 민간 전문가들이 뛰고 있다.
자수성가한 기업인들을 만나보면 아무리 작은 기업일지언정 맨땅에서 일가(一家)를 이룬 감동의 스토리가 있다. 네이버 모바일 시대를 연 한성숙 전 대표와 한국 AI 연구의 선구자 격인 배경훈 LG연구원장은 학벌 장벽을 깨고 성공한 인물들이다. 또 한국 대기업 경영자들의 글로벌 네트워크는 유대인 네트워크 못지않은 국가 자산이다.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대혼돈의 시대에 경제 전쟁의 최전선에서 싸워온 기업인의 역량을 왜 사장(死藏)시키는가. 돈이 많다는 이유로 기업인들을 죄인시하는 케케묵은 정서법과 규제부터 철폐해야 한다.
-조형래 부국장, 조선일보(25-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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