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중간계선' 선언, NLL 무력화 신호탄인가] [NLL 논란] ....
[김정은의 '중간계선' 선언, NLL 무력화 신호탄인가]
[NLL 논란]
[NLL 후퇴로 와해된 3軍 전력… 섬에 고립된 해병]
김정은의 '중간계선' 선언, NLL 무력화 신호탄인가
[남성욱의 한반도 워치]
北, 서해 NLL 훨씬 남쪽으로 일방적으로 그은 경비계선 제시
"핵 추진 잠수함도"… 핵 포함 땐 南北 전력 비교 자체가 무의미
지난 12일 구축함 ‘강건호’ 진수식에 참석한 김정은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만주 산속에서 은거했던 김일성은 6·25 남침 전쟁에서 해군의 중요성을 체감했다. 1950년 9월 인천 상륙작전으로 서울을 수복한 유엔군과 한국 해군은 육상과 달리 저항을 받지 않고 동해와 서해로 북상했다. 국군 해병대가 주둔했던 황해도 초도섬은 물론 최북단 평안북도 압록강 하구에 있는 신도섬까지 점령했으나 정전협정 이후 자진 철수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은 해군력이 약했던 북한이 안도하는 해상 군사분계선이었으며 우리 해군의 북상을 차단하는 안전판이었다.
1970년대 들어 북한 해군력이 증강되면서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1949년 8월 창설된 북한 해군은 제대로 된 함정 자체가 없어 전쟁 중에도 해안 경비에만 주력했다. 휴전 이후 김일성과 김정일은 해군력 강화에 주력했고 잠수함 건조까지 추진했다. 현재 70여 척의 북한 잠수함은 대부분 로미오와 상어급과 같은 구형 잠수함이기는 하나 숫자는 우리의 22척보다 많다. 최근 들어 러시아의 첨단 기술을 받아 핵 추진 잠수함 건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금년 들어 바다의 중요성을 강조한 선대의 유훈을 받은 3대 지도자 김정은이 신속하게 바다로 나가고 있다. 그는 2023년 말 당 전원회의에서 “앞으로 육·해·공이 아니라 ‘해·육·공이라 불러야 한다”고 했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두 가지다. 김정은이 지난 4월 5000t급 신형 구축함 진수식에 참석해 구축함의 작전 범위를 설명하면서 ‘중간계선해역’이라는 요상한 용어를 사용했다. 그는 구축함과 순양함, 호위함 등으로 구성되는 원양 함대 창설 계획을 밝히고 “함선들을 연안 방어 수역과 중간계선해역에서 평시작전 운용”을 선언했다. 이어 원양 함대가 동해는 물론 태평양 먼바다로까지 나아가 작전을 수행하는 우리의 대양해군(大洋海軍) 전략을 벤치마킹했다.
김정은은 중간계선해역이라는 용어로 북방한계선(NLL)의 무력화를 시도했다. 북한이 해군 작전과 관련해 중간계선이란 용어를 사용한 것은 처음이다. 북한 관영 매체에 중간계선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어 그 의미는 불확실하다. 북한은 과거 NLL 남쪽에 ‘경비계선’이라는 일방적인 선을 그어 남북한 간 새로운 해상 경계라고 주장했다.
중간계선은 김정은이 주장한 ‘적대적 두 국가론’에 근거해 새롭게 설정한 해상 경계선으로 추정된다. 김정은의 바다에 관한 선언을 방관할 수 없는 이유는 그간 주기적으로 자행된 해상 경계선의 침범 때문이다.
2세대 지도자 김정일은 1990년대 들어 증강된 해군력을 바탕으로 서해 NLL를 불법 월선하여 공격하기 시작했다. 1999년 제1연평해전을 시작으로, 2002년 제2연평해전, 2009년 대청해전과 2010년 천안함 폭침 등을 감행했다.
김정은은 작년 2월 신형 대함미사일 검수사격 시험을 지도하는 자리에선 연평도와 백령도 북쪽에 ‘새로운 국경선’을 그어 군사적 대비 태세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그는 “한국 괴뢰들이 국제법적 근거나 합법적 명분도 없는 유령선(線)인 북방한계선이라는 선을 고수해보려고 발악하고 있다”고 했다.
북한은 1차 연평해전 직후인 1999년 9월에 ‘조선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과 2007년 11월 남북 국방장관회담에서는 ‘해상경비계선’을 각각 주장했다. 유사한 자의적인 해상 경계선을 지속적으로 내놓았으며 모두 현행 NLL보다 남쪽에 그어 놓은 선이다.
중간계선에 대한 북한의 의도는 NLL을 대체하는 새로운 해상 분계선 획정이다. 북한은 백령도 등 서해 5도보다도 훨씬 남쪽으로 일방적으로 그은 경비계선을 제시한다. 유엔해양법협약에 따르면 국가 간 12해리 영해가 중첩될 때 중간에 긋는 선이 중간계선이다. 이 방식으로 서해 5도 쪽에 선을 그으면 NLL 남쪽에 경계선이 생긴다. 국제법상 국가 간 영해가 중첩될 때 해상 경계를 정하는 중간계선을 내세워 그럴듯한 현상 타파를 시도한다.
2018년 9·19 평양 군사 합의에서 남북이 합의한 ‘서해 평화 수역’의 조성은 평화라는 용어와 달리 북한의 기습에 대한 우리 해군력의 대응 약화를 의미한다. NLL이 남하하면 유사시 강화도 인근 해상은 수도권을 공략하는 출입구가 될 것이다.
유엔해양법협약은 1982년에 만들어진 일종의 관습법이고, NLL은 그보다 훨씬 앞서 6·25전쟁 정전 직후 그어져 굳어졌기 때문에 NLL이 실질적인 남북 해상 경계선이라는 우리 입장은 확고하다.
다음은 핵 추진 잠수함 등 신형 함정의 건조 관련 러시아의 첨단 기술 지원 문제다. 김정은은 지난 4월 역대 최대인 5000t급 신형 구축함 최현호의 첫 무장 시험 사격을 참관하고 ‘해군의 핵무장화’에 속도를 내라고 지시했다. 최현호는 위성배열 레이더를 탑재한 ‘북한판 이지스 구축함’으로 평가되며, 순항미사일과 탄도미사일 등 다양한 미사일 발사대를 장착했다.
북한은 청진조선소에서 진수식 도중 좌초한 5000t급 강건함을 러시아의 지원으로 23일 만에 바로 세우고 다시 진수했다. 남측에서는 진수식에서 좌초한 북한 선박 기술의 낙후성을 폄하했지만 초고속으로 밀어붙이는 평양의 군사 총력주의를 외부에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김정은은 미국에 맞서기 위해 자위권 차원에서 매년 2척씩의 구축함 건조 계획까지 밝혔다.
북한은 신형 구축함에 이어 순항함과 호위함에 이어 핵 추진 잠수함도 건조하고 있다고 공개했다. 핵무기까지 포함하면 남북한 군사력 비교는 무의미한 수준이다. 그나마 한미 동맹으로 균형을 맞추지만 트럼프 국제 질서 재편 과정에서 미래 불확실성은 심화될 것이다. 매년 남한은 재래식 무기 세계 5위, 북한은 35위라는 미국 민간단체(Global Firepower)의 허황한 발표만 믿고 북한의 군사력을 경시하는 행태는 지양해야 한다.
최근 서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중국의 ‘회색지대 도발’이 강화되고 있다. 서해잠정수역에 인공 구조물을 무단 설치했다. 감시 장비를 탑재한 중국 군함이 군산 주한 미군 공군 기지에서 불과 100여㎞ 떨어진 해역까지 수백 차례 출몰했다.
군사력의 불균형이 도발로 이어지는 동서고금의 역사는 비일비재하다. 해군력에 기반한 인천상륙작전으로 6·25전쟁의 전세를 역전시킨 사실을 기억하자. 6·25전쟁 75주년에 드는 무거운 단상이다.
-남성욱 숙명여대 석좌교수·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조선일보(25-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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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 논란
65년전 유엔군 양보로 그어진 NLL... 다시 양보하라는 北
평양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였던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의 후폭풍이 거세다. 논란은 정부가 자초했다. 청와대와 국방부는 지난 19일 군사분야 합의서와 관련해 이른바 ‘서해 완충 수역’을 발표하면서 수역의 길이가 80㎞이며 남·북 양측의 길이가 같음을 수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 취재 결과 이 수역의 길이가 실제로는 135㎞이며 서해북방한계선(NLL)을 기준으로 북측은 50㎞인데 반해 남측이 85㎞인 사실이 드러났다. 이후 군은 "거리가 중요한 게 아니다"라며 말을 바꿨다. 여기에 군 당국자가 "청와대가 추석 때 NLL 포기 논란이 번질까 우려했던 것 같다"고 석연찮은 설명을 하면서 ‘NLL 포기 논란’이 불거졌다.
군 안팎에서는 NLL을 둘러싼 정부의 이번 대응이 안일했다는 게 중론이다. 한 전직 장성은 "NLL과 이로 인해 지켜온 백령도·연평도 등 서북도서는 수도권 방위의 최전선이었고 북한에는 목의 가시 같은 곳"이라고 했다. NLL이 무력화되면 북한군은 바로 인천 앞바다에 드나들 수 있다. 이 때문에 최근 퇴임한 송영무 전 국방장관도 "연평도는 적 목구멍의 비수이고, 백령도는 적 옆구리의 비수"라고 강조해왔다.
송영무(왼쪽)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북한 인민무력상이 19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군사분야 합의식에서 서명을 마친 합의서를 들어보이고 있다./평양사진공동취재단
◇북한을 배려했던 65년 전 NLL
NLL은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 체결 한 달 뒤 설정됐다. 당시 공산군은 전쟁 전 상태인 ‘38 도선’을, 유엔군은 쌍방이 점령한 ‘현 접촉선’을 휴전선으로 제안했다. 격렬하게 대립하던 양측은 ‘현 접촉선’에 합의하고 이 선을 기준으로 남북 각각 2㎞씩 비무장지대(DMZ)를 설치했다.
문제는 NLL이 당시 이 기준을 따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쟁 내내 제해·제공권을 장악했던 유엔군은 동·서해의 거의 모든 부속섬을 점령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유엔군 측 대표는 원활한 협상 진행을 위해 다른 곳은 양보하고 서해 5도(백령·대청·소청·연평·우도)만을 유엔군 통제하에 두기로 정전협정에 명시했다. 이때 서해 5도와 북한 사이의 해상경계선이 명시되지 않아 정전협정 한 달 뒤인 1953년 8월 유엔군사령관이 양 지역의 중간에 NLL을 설정했다.
군 관계자는 "당시 해군력이 궤멸해 전무(全無)했던 북한은 오히려 NLL을 울타리로 유엔군의 해상봉쇄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했다. 당시 NLL은 북한의 해상봉쇄를 풀어준 선이었다. NLL 설정으로 인해 NLL 이북의 섬과 해역을 얻은 북한은 해군 함정과 민간 선박의 자유로운 항해·어로 활동을 보장받았다.
◇北, 20년 동안 NLL 이의 제기 없었다
북한은 NLL이 설정된 뒤 20년 동안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다가 1973년부터 NLL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국장은 "북한은 이때부터 NLL을 분쟁화, 무력화하기 위한 명분을 쌓고 있었다"라며 "그때그때 나오는 내부의 불안을 도발로 국면 전환하려는 의도도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북한은 도발 와중에도 스스로 수차례 NLL을 인정해왔다. 1959년 북한 조선통신사가 공식 발간한 ‘조선중앙연감’은 NLL을 ‘군사분계선’으로 표기했다. 1963년 5월 개최된 군사정전위 회담 당시 북한 간첩선 서해 침투 논란이 벌어졌을 때도 북측은 "북한 함정이 북방한계선을 넘어간 적이 없다"고 했다. 1984년 우리 측의 홍수 피해에 대해 북측이 수해 복구 물자를 지원했을 때도 양측 호송단이 백령도·연평도 인근 NLL 선상에서 만나 수송 선박을 인계·인수 했다. 1992년 체결된 남북 기본합의서에서도 ‘남과 북의 해상 불가침 구역은 해상 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관활해온 구역으로 한다’고 규정해 NLL이 사실상 해상 불가침 경계선임을 확인했었다.
하지만 북한은 1973년 10~11월 43차례에 걸쳐 NLL을 의도적으로 침범한 ‘서해사태’를 일으킨 뒤 NLL 무력화 공세를 계속해왔다. 지난 1999년 제1연평해전 직후에는 일방적으로 ‘조선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 이른바 ‘경비계선’을 발표했다. 한 군 관계자는 "시작부터 북한을 배려해 양보했던 게 NLL"이라며 "한번 양보받았던 NLL을 다시 한 번 더 양보받지 못할 게 뭐가 있느냐는 게 북한의 심리일 것"이라고 했다.
◇노무현 정권 때 본격화된 국내 NLL 논쟁
북한의 잇따른 도발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NLL 개념이 국내에서 논란이 된 것은 지난 2007년 노무현 정부 때부터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과의 10·4 선언에서 이번에 논란이 된 ‘서해 완충 수역’의 전신 격인 ‘평화협력특별지대’를 추진했고, 동시에 논쟁적 발언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NLL은 쌍방이 합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그은 선"이라며 NLL이 영토의 개념이 아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고, 이 발언은 이후 정치권 공방으로 이어졌다. 이후 NLL 논쟁은 진영 차원의 논쟁으로 정치화됐다. 2007년과 2012년 대선 때는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NLL 포기 공방’이 계속됐다. 최근에는 여권에서 평양 합의를 앞두고 NLL과 관련된 ‘사전정지작업’성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친문 핵심인 최재성 의원은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가 진전되면 평화 수역과 뱃길, 해주 개발과 북측 서남부의 관문을 이뤄내기 위해 반드시 변화를 시켜야 하는 게 NLL"이라며 "손대지 말라는 말은 무책임과 무지의 극치"라고 했다.
-양승식 기자, 조선닷컴(18-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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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 후퇴로 와해된 3軍 전력… 섬에 고립된 해병
정부는 ‘서해 완충 수역’ 설정 논란이 서해북방한계선(NLL) 포기 논쟁으로 번지자 수차례 해명하는 과정에서 논란을 키웠다. 처음에는 서해 완충 수역의 길이가 남북 각각 40㎞라고 했다가 남측 85㎞, 북측 50㎞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특정선(NLL)을 기준으로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했다. 서해 완충 수역과 NLL은 별개의 문제라는 식의 반응을 보인 것이다.
그러나 논란이 계속되자 정부는 추가 설명을 통해 "NLL 최남단에서 우리 덕적도를 잇는 직전거리가 32㎞, NLL 최북단에서 북쪽 초도를 잇는 거리가 50㎞"라며 "둘을 합하면 80㎞가 된다는 의미였으며, 덕적도에서 초도까지 거리가 135㎞라는 건 알고 있었다"고 했다. 폭 53㎞의 NLL 수역은 아예 계산에서 제외하고 수역을 설정했다는 의미다. 국방부는 더 나아가 "서해 해상 적대행위 중단 구역 내 북한 해안포는 우리보다 6배, 포병은 8배나 많다"며 "합의를 준수하면 그 지역에서 (북한군은) 사격을 할 수 없다"고 했다. NLL과 관련돼 논쟁의 여지는 있으나 실질적으로 우리 군이 얻어낸 이득이 더 많다는 설명이었다.
◇무너진 3군(軍) 합동 전력… 해병대, 섬에 고립됐다
하지만 군 안팎에서는 실질적 이득을 얻었다는 말은 ‘허상’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신원식 전 합참차장은 본지 통화에서 "서해 완충 수역 일대 북한의 영토는 육지이고, 우리는 서해 5도 등 대부분이 섬이니 당연히 북측 해안선이 길다"며 "문제는 서해 5도 NLL 일대의 방대한 서해 수역을 내줌으로써 우리 군이 그동안 이 지역 방어 유지의 메커니즘으로 삼았던 해병대와 해군, 공군의 복합 군사 작전이 무력화됐다는 것"이라고 했다.
신 전 차장은 "서해 일대의 북한 해군전력은 우리에 비해 열세이지만, 황해도 일대에 배치된 수백문의 장사정포와 연안 미사일이 그 뒤를 받치고 있다"며 "이에 맞서고자 백령도·연평도 일대의 해병대와 해군 함정, 그리고 공군 3군 합동으로 전력 열세를 극복해왔는데, 이번 조치로 3축의 하나인 함정 전력이 무력화됐고, 해병대 전력은 더욱 약해졌다"고 했다.
반면, 이번 조치로 인한 북한군의 실질적 손해는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NLL 일대 북한군 전력의 핵심은 구식(舊式) 해안포가 아닌 장사정포와 연안미사일"이라며 "북한의 해안포는 대부분 6·25 당시 쓰던 사거리 20㎞ 이내의 구식포이며 이 구식 포병 전력과 우리 군 전력을 맞바꾸는 건 1만원짜리를 1000만원에 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북한군은 황해도 장산곶과 웅진반도 일대에 76㎜와 130㎜ 구형 방사포 등을 주축으로 1000여문을 동굴 속에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가 이번 서해 완충 수역의 최대 성과로 꼽는 게 바로 이 구식 해안포를 북한이 쓸 수 없다는 것인데 군 전문가들은 "사실상 폐기 직전의 해안포의 진지 문을 닫았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했다.
이번 조치로 서북도서의 K9 자주포와 스파이크 ER 미사일은 실질적 운용이 제한됐지만, 북한의 장사정포와 연안미사일 전력은 건재하다. 신원식 전 차장은 "해병대를 섬에 고립시킨 꼴"이라며 "서북도서에서 덕적도까지 모든 섬이 고립되면서 인천·평택 앞바다까지 방어선이 없어진 셈"이라고 했다.
백령도에 배치된 K-9 자주포의 모습. 남북 군사합의로 11월1일부터는 백령도에서 K-9 자주포 실사격 훈련을 할 수 없게 됐다. /조인원 기자
◇K9 실사격 훈련 못 하는 해병대… 北 훈련은 그대로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훈련 측면에서도 우리 군의 전력은 급격히 약화될 전망이다. 현재 서북도서 해병대는 NLL 남측을 향해 자주포와 다연장로켓, 스파이크 미사일 등을 쏘는 훈련을 하고 있다. 황해도에 주둔 중인 북한 4군단은 내륙으로 포를 옮겨 사격 훈련을 한다. 11월 1일 완충 수역이 선포되면 해병대는 해상 실사격 훈련을 못 하고 빈 포로 사격 절차만을 익히지만, 북한 4군단은 예전과 변함없이 내륙으로 포를 잠시 옮겨 사격하면 된다. 북측은 평소대로 훈련할 수 있지만, 남측만 훈련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신종우 국방안보포럼 사무국장은 "차라리 서해 5도와 황해도 북한군 포병 전력을 모두 물리는 합의를 했다면 ‘평화 수역’이라는 구색은 맞출 수 있었을 것"이라며 "훈련에 숙달된 북한의 해안포가 닫아놓은 진지 문을 언제든 열고 서해 5도를 공격할 수 있는 상황에서 우리 군이 기댈 건 오로지 북한의 선의뿐"이라고 했다.
◇"北, 자신들의 ‘경비계선’ 교묘하게 적용한 것"
문제는 현 정부가 NLL을 여전히 ‘분쟁을 부추기는 선’으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정부 관계자는 "평화 해역을 조성했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지 NLL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며 "NLL 일대에서 얼마나 많은 분쟁이 일어났는가. NLL을 논쟁거리로 삼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 전직 장성은 "그동안 NLL 일대에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난 것은 북한이 NLL을 준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북한이 NLL만 준수하면 서해는 아무런 문제 없는 평화의 바다가 됐을 것"이라고 했다.
신원식 전 차장 "이번 합의를 명확하게 NLL 기준으로 했다면 북한은 NLL을 인정해 버린다는 부담감이 있었을 것"이라며 "그래서 이번 협상을 진행하면서 자신들이 주장해왔던 ‘경비계선’을 적절히 섞어 완충 수역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번 해역 설정을 북측이 주장하는 이른바 ‘경비계선’을 중심으로 분석하면 북측은 60㎞, 남측은 75㎞의 수역을 내준 것으로 나타난다. 신 전 차장은 "북한은 수역을 정할 때 마치 기준선이 없는 것처럼 보이게 했고, 우리 정부는 이런 북한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줬다"며 "하지만 NLL 무력화가 전제된 협상이었음이 하나 둘 드러나자, 정부는 꼬인 스텝을 풀기 위해 엉뚱하게 북한식 논리를 들이대고 있다"고 했다.
김희상 한국안보문제연구소 이사장은 "북한은 항상 NLL을 없애려고 해왔고 서해 앞바다 쪽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려 했다"며 "특히 공동어로구역을 만들어 남·북한 선박 간 분쟁이 일어나면 경비선이 개입하고 NLL 일대는 사실상 상시 분쟁지역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양승식 기자, 조선닷컴(18-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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