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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생존 용사 이제 3만명] [화살머리고지의 청춘들.. ]

뚝섬 2025. 6. 26. 07:16

[6·25 생존 용사 이제 3만명]

[화살머리고지의 청춘들을 기억합니다]

 

 

 

6·25 생존 용사 이제 3만명

 

올해 6·25 전쟁 75년 행사는 대전에서 열렸다. 정부 차원의 공식 기념식이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열린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생존 참전 용사들이 고령이어서 거동이 어려운 탓에 작년 대구를 시작으로 지방에서 기념식을 열기로 했다. 대전은 6·25 전쟁 당시 국군과 미군이 인민군을 맞아 ‘금강 방어선 전투’를 치렀던 곳이다.

 

▶기념식에서는 참전 용사 고(故) 이득주 중령의 후손인 육군 김찬솔 대위가 참전 용사들을 위해 편지를 낭독했다. 그의 고모할아버지인 이 중령은 6·25 당시 국군이 최초로 승전한 충북 충주의 동락 전투에 참전했다. 고모할머니가 교사로 재임 중이던 학교에서 휴식을 취하던 북한군 동태를 국군에 알렸고, 기습 공격에 성공했다. 이 이야기는 1966년 ‘전쟁과 여교사’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김 대위는 “위대한 역사를 만드신 당신들의 삶보다 아름다운 인생은 없다”고 했다.

 

▶6·25 전쟁 기념식은 전쟁이 일어난 날에 열리지만, 영국은 1차 세계대전 종전일인 11월 11일, 프랑스는 2차 세계대전 종전일인 5월 8일을 국경일로 기리고 있다. 우리나라가 종전일인 7월 27일보다 6월 25일에 더 비중을 두는 건 6·25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3년 체결된 정전협정문에 서명하지 않았다. 수많은 국민이 죽고 국토가 결딴난 결과가 통일이 아니라 분단 고착화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르며 생존 참전 용사도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6·25 당시 국군 참전 용사의 수는 90만명이었지만, 6·25 70년이었던 2020년엔 7만5200여 명으로 줄었다. 지난 5월 국가보훈부가 집계한 생존 참전 용사는 3만200여 명으로 올해 안으로 그 수가 2만명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평균연령은 93세다. 6·25 참전 용사의 수는 근래 1년에 1만명씩 줄어들었는데, 이대로라면 6·25 80년이 되는 2030년엔 생존 용사가 거의 남지 않게 된다.

 

▶6·25 전쟁은 한때 미국에서조차 ‘잊힌 전쟁’ 취급을 받아왔다. 하지만 우리 국력이 커지고 꾸준히 참전 용사 보은 행사를 하면서 국제사회에서 6·25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6·25 전쟁 75년을 맞아 방한한 에티오피아 참전 용사 테세마 가메(100)씨는 “한국이 눈부시게 발전한 모습에 감사한다”며 “한국을 위해 평생 기도할 것”이라고 했다. 번영하는 한국의 모습이 참전 용사들에 대한 최고의 보답일 것이다.

 

-양승식 논설위원, 조선일보(25-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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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머리고지의 청춘들을 기억합니다

 

기억에 남는 유물들이 있다. 접할 당시의 경외감에 생각이 난다. 6월 이맘 때가 되면 국립문화유산연구원에서 살펴본 6.25 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 유품이 떠오른다. 총탄 자국이 선명한 철모와 총기류, 개인 유품들은 전사자의 처절했던 마지막 순간을 그대로 담고 있다.

 

그중 화살머리고지에서 수습된 수통과 숟가락이 눈길을 잡는다. 생명줄처럼 지녔을 유품 옆에는 간단한 인적 사항이 나란히 있다. ‘故 임병호 일등중사(1930년생)’ 1953년 7월 13일 화살머리고지 전투 중 전사. ‘故 송해경 이등중사(1930년생)’ 1953년 7월 11일 화살머리고지 전투 중 전사. 스물셋 그들이 스러진 신록의 산과 들보다 더 빛난 청춘이었다. 휴전일(7월 27일)이 얼마 안 남은 시점에 전사해 더욱 애달프다. 치열한 교전이 벌어진 화살머리고지는 백마고지와 더불어 중부 전선의 군사적 요충지였다. 화살촉 모양으로 돌출된 형태를 띠고 있어 불린 이름이다. 수많은 목숨을 바치고 지켜낸 곳이다. 

 

고 임병호 일등중사와 유품

 

6·25전쟁으로 희생된 국군 전사자 중 미수습 유해가 13만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전쟁이 멈춘 지 72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수습되지 못한 전사자들의 유해가 화살머리고지를 비롯한 여러 격전지에 묻혀 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노력을 기울이며 찾고는 있지만 어려움이 많다. 유해가 발굴되더라도 신원 확인이 쉽지는 않다.

 

화살머리고지의 전사자 임병호 일등중사와 송해경 이등중사는 유가족의 DNA 시료로 신원이 확인된 사례다. 유품 일부는 보물급 국가 유산을 보수하는 전문가들의 손길로 보존 처리를 받았다. 과학적인 보존 처리 과정에서 신원을 유추할 수 있는 단서도 확인됐다.

 

총탄으로 9곳이나 구멍 뚫린 수통과 자신의 것임을 표시해 놓은 숟가락이 있었다. 갈증을 해소하고 음식을 먹을 때 사용했을 수통과 숟가락은 총기류와는 다른 애잔함이 묻어있다. 전사자 유해를 끝까지 찾아 가족 품으로 보내고자 하는 손길에 감사한 마음을 보낸다. 화살머리고지에서 전사한 호국 영웅의 미소를 찾아드리고 싶다. 

 

AI로 구현한 故 임병호 일등중사의 웃는 모습.

 

-윤주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자연유산위원, 조선일보(25-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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