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살기 좋은데 한국인은 왜 "죽겠다" "힘들다" 할까]
이렇게 살기 좋은데 한국인은 왜 "죽겠다" "힘들다" 할까
'코리안 드림' 꿈꾸며 온
미얀마 학생들 만나 보니
1학기 ‘방송 스피치’ 수업에서 A+ 학점을 받은 미얀마 출신 스웨트라피(왼쪽), 낭솜자잉 학생. /강성곤 제공
한 학기가 끝났다. 수도권 모 대학에서 방송 스피치를 가르치고 있다. 외국인 학생이 부쩍 늘었음을 실감한다. 중국·베트남·몽골이 다수인 가운데 미얀마 학생 둘이 있었다. 너무나 우수해 깜짝 놀랐다. 발음과 표현력, 문장력까지 나무랄 데가 없는 수준. 나는 둘에게 기쁜 마음으로 A+를 선사했다.
미얀마 하면 떠오르는 단상(斷想)이 있다. 우선 아웅산 묘역 테러 사건이다. 1983년 북한 공작원에 의해 30여 명의 사상자를 냈던 참사다. 다음은 축구다. 근래에는 이란·일본·호주 등이 우리의 라이벌이지만 1960~1970년대에는 결정적인 국면에서 발목을 잡는 팀이 당시 이름 버마, 지금의 미얀마였다. 몽에몽·몽몽틴·몽예뉜 등의 스트라이커를 앞세운 강호로, 1966년과 1970년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빛난다. 우 탄트 박사도 있다. 첫 아시아계 유엔 사무총장으로 1961년부터 무려 10년간 재임했던 거물이었다.
학교 카페에서 A+의 주인공 낭솜자잉(26)과 스웨트라피(27)를 만났다(이하 ‘낭’과 ‘스웨’). 낭은 미얀마 명문 다곤대학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에 왔다. 고향은 타칠레크. 어려서부터 말과 글에 관심이 많아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싶었는데 한국어가 특히 좋았단다. 이유는 한자(漢字)가 필요 없고 한글 글자꼴이 예뻐서다. 중국어는 어렵고 복잡하고, 일본어는 귀여우나(?) 너무 평범했단다. 한국 와서 제일 좋은 건 깨끗한 거리와 편리한 교통. 힘든 점은 첫째가 추운 날씨. 연평균 기온이 23~27도 정도인 아열대에서 왔으니 당연하다 싶지만 예상보다 훨씬 춥다고. 둘째가 인종차별이다. 전혀 뜻밖이었다고 한다. 같은 아시아 사람인 한국인이 조금 어두운 피부색이나 경제적으로 못사는 나라라고 동남아인을 차별하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그런데 수차례 겪어 서글펐다. 낭은 고깃집에서 알바를 한다. 식당 몇 군데를 거치는 동안 수당이나 퇴직금을 못 받은 적도 있다. 물론 다정하고 배려심 많은 주인도 만났다. 명절 때 보너스를 챙겨주고 시험 기간에 편의를 봐주기도 했다. 손님들에게 ‘느리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 타박을 들으면 서럽지만 그래도 좋은 게 훨씬 많다. 무엇보다 한국은 열심히 일하고 교육을 중시하는 나라이기에 흡족하다고. 낭은 아빠가 몇 년째 병석에 누워 있어 실업 상태. 국가의 보조금은 역시나 없다. 살림살이는 오롯이 작은 옷 가게를 꾸려가는 어머니의 몫이라며 눈시울을 붉힌다. 낭은 틈틈이 저축해 모은 돈을 엄마에게도 부친다. 한국서 꼭 성공해 돈을 많이 벌고 싶단다.
스웨는 서울대에 해당하는 양곤국립대학 출신. 전공은 철학이다. 엄마는 국어, 아빠는 물리 교사다. 교육자 집안. 한국이 좋은 점은 능력만 있으면 사회적 진출이 보장되는 공정함이라고 말한다. 미얀마는 수십 년째 정정(政情) 불안에다 경제적으로도 피폐해 취업 활동 자체를 상상하기 힘들 정도라고.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아웅산 수지 여사가 실질적 국가 수반이었던 2016년부터 5~6년간 반짝 안정기일 때를 제외하곤 여전히 군부독재가 진행형이다. 수지 여사는 어느덧 80세. 지금도 가택 연금 상태로 정치 활동을 일절 못 하고 있다. 아웅산 수지는 어떤 존재인가 물었다. 미얀마 국민이면 누구나 그녀를 국모(國母)로 여긴단다. 우리로 치면 유관순 열사와 육영수 여사를 합친 인물쯤 되려나.
스웨는 횟집 알바를 한다. 한국인이 미얀마인과 가장 다른 건 모든 걸 말로 표현한다는 점이라고.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같은 인사를 수시로 주고받는 모습이 적응하기 전까진 무척 당황스러웠다. 미얀마는 웬만한 경우는 말을 하지 않고 그저 눈으로 미소 짓거나 두 손을 조용히 모은다. 또 이상한 점은, 테이블 서빙을 하며 자주 듣게 되는 손님들의 ‘힘들다’ ‘죽겠다’라는 말이다. 주로 아저씨들 대화에서 나오는데 스웨는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이렇게 살기 좋고 풍요로운 나라에서 왜 사람들은 불평과 짜증을 자꾸만 토로하는지.
낭과 스웨는 공통의 꿈을 꾸고 있다. 한국에서 광고 기획자가 되는 것. 미얀마에서 여기 올 때도 궁궐과 한옥을 소개한 영상에 반한 게 컸다. K팝, K드라마도 매력적이지만 둘에겐 K애드(광고)만 못하다. 디지털 미디어 강국 코리아의 이미지는 우리의 상상 이상이다. 미얀마에서 광고란 곧 정권 홍보나 체제 찬양의 다른 말이다. 우리의 40~50년 전 모습일 터. 코바코(KOBACO·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의 존재를 얘기하니 이미 알고 있었다. 공익광고를 만드는 곳이라는 것도. 누리집을 들어가 보니 방송 광고의 판매 대행이라는 주 사업 외에도 여러 일을 많이 한다. 이참에 외국인 전문 인력을 위한 교육·연수 사업을 강화하면 어떨까. 채용 문호도 개방하고 말이다. 이 젊고 똑똑한 두 미얀마 여성에게 기회의 문이 열리기를. 아울러 미얀마의 평화와 번영을 소망한다.
-강성곤 전 KBS 아나운서, 조선일보(25-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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