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隨想錄]

[싯다르타] [난 괜찮다. 이대로가 편하다.. ]

뚝섬 2025. 6. 20. 05:20

[싯다르타] 

[난 괜찮다. 이대로가 편하다.. ] 

 

 

 

싯다르타

 

누군가를 내 뜻대로 바꾸려는 마음… 사랑일까요? 아니면 집착일까요?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지음|박병덕 옮김|민음사

 

제목부터 낯익은 이 작품은 부처의 전기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부처와는 다른 길을 걸은 한 청년, ‘싯다르타’의 이야기입니다. 인도에서 가장 높은 계급인 브라만 계층으로 태어난 그는 부족함 없이 자랐지만, 어느 날부터 알 수 없는 갈증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예배를 드리고 브라만교 경전을 공부할수록 오히려 진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공허함은 깊어져만 가지요. 결국 싯다르타는 절친한 친구 고빈다와 함께 수행을 떠나게 됩니다.

 

두 사람은 깨달음을 얻었다는 성자 고타마의 명성을 듣고 그를 찾아갑니다. 고빈다는 그의 가르침에 감명받아 고타마의 제자가 되지만, 싯다르타는 다른 길을 택합니다. 그 역시 고타마의 설법에 감동했지만, 그 가르침은 어디까지나 고타마가 자신의 삶을 통해 얻은 진리였지요. 싯다르타는 생각합니다. 남이 깨달은 진리는 남의 것일 뿐, 나는 나만의 삶을 통해 진리를 찾아야 한다고요.

 

이후 그는 자신만의 길을 가기로 결심합니다. 세속적인 삶으로 돌아간 그는 아름다운 여인 카말라를 만나 사랑을 배우고, 장사를 하며 돈 버는 법도 익히죠. 처음엔 새로운 삶이 재밌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는 도박과 술, 향락에 빠지며 자신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절망하게 됩니다. 그는 강가로 가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지요.

 

그곳에서 싯다르타는 뱃사공 바수데바를 만나게 됩니다. 강물이 흐르는 것을 묵묵히 바라보며 살아가는 바수데바는 싯다르타에게 또 하나의 삶의 지혜를 가르쳐줍니다. 강물은 끊임없이 흐르지만, 강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싯다르타는 과거나 미래가 아닌,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죠.

 

이후 싯다르타는 우연히 카말라와 재회하고, 그녀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을 돌보게 됩니다. 하지만 아들은 끝내 아버지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집을 떠나버립니다. 싯다르타는 아들을 붙잡기 위해 애써 보지만 소용이 없었지요. 그는 이를 통해 아무리 진심을 다해도 타인의 마음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는 이 경험을 통해 ‘집착’이 무엇인지 깊이 성찰합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바꾸려 했던 마음. 애정이자 책임이라 여겼던 것이 사실은 상대를 소유하려는 욕망이었음을 깨닫지요. 집착을 놓는다는 건 감정을 없앤다는 뜻이 아닙니다. 마음을 다하되, 얽매이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싯다르타는 마침내 고빈다와 다시 만납니다. 고빈다는 여전히 진리를 찾아 방황하고 있었고, 싯다르타는 자신이 얻은 깨달음을 전하려 하지요. 하지만 싯다르타는 곧 그 깨달음을 말로는 다 담아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저 조용히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미소 속에서, 고빈다는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진리를 마주하게 됩니다.

 

삶에서 겪는 고통과 방황, 실패와 깨달음은 결국 모두 나만의 길 위에서 얻은 소중한 경험이라는 사실. 이 단순하지만 깊은 메시지는 시간이 흘러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위로하고 다잡아줍니다.

 

-이진혁 출판 편집자, 조선일보(25-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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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괜찮다. 이대로가 편하다.. 

 

난 괜찮다. 이대로가 편하다. 네 일이나 잘하거라.

돌이켜보니 부모님께 가장 자주 듣는 말입니다. 물론 그 말을 다 믿는 건 아니지만 때로는 곧이듣는 척하며 내 한 몸 편한 쪽을 택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손사래를 치며 마다하는 어머니를 두고 우리가 발길을 돌릴 때, 등 뒤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한마디 말씀이 오늘은 문득 아프게 떠오릅니다. "말이라도 고맙구나, 얘야. 빈말이라도…."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부쩍 잦아지는 요즘입니다. 단순한 그리움이 아니라 뒤늦은 깨달음과 죄책감으로 어머니의 말년을 돌아보곤 합니다. , 우리 엄마가 그때 이런 심정이셨겠구나. 그때 그 말씀은 이런 속뜻을 감추고 있었던 것이로구나. 제가 그 나이에 이르고서야 알게 되네요.

우리 어머니는 마지막 20년을 혼자 지내다 가셨습니다. 시골집에서 아버지와 의좋게 사시다가 육십대 중반에 황망하게 혼자되셨죠. 45년을 한 몸처럼 지내던 짝을 떠나보내고 얼마나 막막하셨을까요? 하지만 저는 그때 막 시집을 간 터라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드릴 겨를이 없었습니다. 오빠들이, 특히 큰오빠가 어머니를 모셔가려고 했죠. 그러나 어머니는 싫다 하셨습니다. 나는 혼자가 편하다고 하시면서요. 그 뒤로도 여러 차례 아들딸이 상경을 권했지만 그때마다 어머니는 한결같은 대답을 하셨어요. 늙어서 서울살이 감옥 생활은 싫다!

저는 그때 그 말을 곧이들었습니다. 어머니는 암만해도 서울이 싫으신가 보다. 아버지와 추억이 있는 집이 좋으신가 보다. 그런 어머니에게 잊을만 하면 한 번씩 상경을 권하는 언니 오빠들이 오히려 지나치다 생각되었습니다. 의연하고 건강하게 잘 계시는 엄마의 일상을 왜 한 번씩 들썩일까?

그런데 지금 보니 그때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겁니다. 혼자된 노인의 삶이 얼마나 외롭고 고단한지요. 그저 늙었다는 하나만으로도 외롭고 고단한데, 더구나 혼자 눈 뜨고 밥 먹고 스스로를 돌보는 삶이라니요. 정든 집이 최고라는 어머니 말도 거짓은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어머니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부르면 대답하고, 말 섞어가며 마주 앉아 숟가락질할 수 있는 식구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렇게 평생 함께하던 남편의 빈자리가 어머니 가슴에 얼마나 큰 바람구멍을 만들었을지도요.

그 깨달음이 저절로 온 것은 아닙니다. 제 가슴에도 그런 바람구멍이 하나 뚫리고서야 알게 되었지요. 작년에 제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떴거든요. 감기인 줄 알았는데 폐렴이 되었고, 건강하던 남편을 그렇게 한 달 만에 보내고 말았습니다. 긴 간병에 고생하는 사람들이 부러울 정도로 급작스러운 이별이었지요. 아무런 마음의 준비 없이 혼자가 되고 보니 막막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떠나간 사람을 위해 흘리는 눈물보다 혼자 남은 나 자신의 삶 때문에 흘러나오는 한숨이 더 깊었습니다. 우리가 남달리 금슬 좋은 부부도 아니었는데 어쩌면 이다지도 그립고 아쉬울까요. 자꾸만 등 뒤에서 어이 하고 부를 것 같고 이제라도 저 문을 열고 들어설 것 같은 기분. 먹어도 맛을 모르겠고 잠을 자도 자꾸 옆자리에 헛손질이 가서 잔 것 같지가 않고…. TV를 봐도 남편이 즐겨보던 프로는 차마 못 보고 건너뛰던 내가 어느 날은 또 그 프로를 틀어 놓고 멍하니 앉아 있더군요.

물론 세월 따라 적응이 되어갑니다. 해가 바뀌었다고 벌써 입맛이 돌아오니 말입니다. 하지만 어디로도 가지 않고 집안에 머무는 적막함은 날이 갈수록 더 싫어집니다. 누구라도 좋으니 정답게 말 붙여줄 사람이 그립네요. 그렇다고 밖에 나가 사람들을 만날 의욕은 안 생기니 한심한 노릇이지요.

이런 제가 자식에게도 부담인 모양입니다. 아들이 저한테 가끔 그런 소리를 합니다. 합가를 해서 같이 살자고요. 그 말이 저는 고맙더군요. 얼마만큼의 진심이 깃든 소리인지 모르지만 말이라도 그렇게 해주니 고마웠습니다. 그래도 자식이 있으니 내 마음을 헤아려주는구나. 내가 저만한 때에는 그런 철이 없었는데…. 하지만 저는 아들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습니다. 싫다고 했습니다. 혼자가 편하다고 했습니다. 우스개 삼아 며느리 시집살이 사양한다고도 했습니다. 아들은 말하더군요. 엄마가 애들을 챙겨주면 며느리한테도 도움이 된다고요. 하지만 저는 그것도 귀찮다 했습니다. 이젠 친구들과 자유롭게 여행이나 다니고, 취미 생활이나 하려는데 왜 자꾸 귀찮게 하느냐고 했습니다. 아들이 껄껄 웃더군요. 걱정을 덜었는지 표정이 한결 밝았습니다.

아들도 쉽게 꺼낸 얘기는 아니겠지요. 안사람에게 미안한 마음도 클 겁니다. 저도 한때 며느리였는데 시어른 어려운 며느리 마음을 왜 모를까요? 더구나 요즘 아이들은 우리 때와 달리 개인주의로 자유롭게 큰 아이들입니다. 세대가 다르니 말이 안 통할 때도 많습니다. 제가 뜻 없이 하는 말에 며느리가 상처받거나 피곤해할까 봐 무척 신경이 쓰입니다. 이런 게 바로 '며느리 시집살이'일 테고, 같이 살다간 의만 상할 게 뻔합니다. 그러니 내 외로움과 고단함은 내가 잘 갈무리해서 자식들이 엄마를 좋게만 기억하도록 해주는 것이 제 마지막 부모 노릇이라 생각합니다. 저의 어머니를 포함해서 이 세상 많은 어머니가 그런 마음이셨겠지요?

그저께는 혼자 사는 둘째 언니를 불러 밥을 먹었습니다. 언니가 그러더군요. 아들하고 같이 살아라, 짠해서 못 보겠다. 그래서 제가 되받아쳤습니다. 그러는 언니는 왜 아들딸 마다하고 십 년째 혼자 살우? 그러자 언니가 버럭 소리를 지릅니다. 난 성질머리가 이래서 사흘이면 쌈 난다. 아무리 나 죽었소, 벙어리, 장님 흉내를 내려고 해도 안 되더라. 난 그냥 이러고 혼자 살다 가야 돼.

우린 어릴 때처럼 깔깔 웃으며 같이 밥을 비벼 먹었습니다. 차라리 이 언니랑 같이 살까 싶은 생각이 울컥 들었는데 다음 순간 고개를 젓게 되더군요. 끝없는 잔소리에 괄괄한 성격을 내가 어떻게 맞추나 싶어서요. 혼자는 외로운데 어디 가서 맞춰 살기도 어려운 우리 늙은이들. 나는 혼자가 좋다는 말로 버티는 부모님이 계신다면 자식들이 그 마음 알아드리면 좋겠습니다. 전화라도 자주 드리고요.

 

-조선일보(17-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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