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과 '차이나 머니'의 두 얼굴] ....
[K팝과 '차이나 머니'의 두 얼굴]
[‘차이나머니’ 앞세워 중동에 영향력 확대하는 中]
K팝과 '차이나 머니'의 두 얼굴
최근 하이브·SM·JYP·YG엔터, CJ ENM과 같은 K팝 관계사들을 주식시장 기대주로 만든 화두는 ‘차이나 머니의 귀환’이다. 오는 11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나타난다면 확실한 한한령(한류 금지령) 해제 선언이 나올 거라는 전망이 이어진다. 지난 5월 중국 텐센트가 하이브가 보유하던 SM엔터테인먼트 지분 221만2237주(9.38%)를 사들이면서 SM의 2대 주주가 됐다는 소식도 기대감에 불을 지폈다. 돈의 흐름을 중시하는 시장에서는 이 소식들을 큰 투자 기회로 해석하는 모양새다.
정작 현장에서 K팝을 만드는 사람들의 속내는 복잡하다. 차이나머니가 가진 두 얼굴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2014년 차이나머니의 K팝 투자가 뜨겁던 시절에는 중국 자본이 대주주 지위를 획득하거나 직접 인수한 기획사 출신 연습생들이 프로듀스101 시리즈와 같은 유명 오디션 프로를 누볐다. 하지만 2년 만에 한한령이 엄습했고 중국 자본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중국 투자를 받은 K팝 회사의 그룹 멤버나 연습생, 제작진이 중국으로 이탈하는 사례도 잦았다. 한 대형 기획사 관계자는 “시장 기대감에도 대형 엔터사들이 아직은 중국 연습생 선발이나 중국 내 K팝 공연 추진에 소극적인 것도 그런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텐센트가 SM을 좌우하면 중국 자본의 K팝 콘텐츠 잠식이 시작될 거란 우려도 나온다. 텐센트가 SM 1대 주주인 카카오엔터의 지분(4.61%)도 갖고 있는 데다, 올 초부터 카카오의 SM 매각설이 돌았다.
K팝이 한한령 해제에 목을 멜 필요도 줄었다. 중국 말고도 넓고 다양한 시장이 생겼다. 관세청 K팝 음반 수출국 통계에서 중국 구매량은 지난해 3위에 오를 만큼 아직도 높지만, 일본과 미국이 그 숫자를 추월 중이다. 반면 차이나머니들에는 K팝으로 돌아올 유인이 커졌다. 지난해 중국 현지에선 K팝 가수의 진출은 막는 가운데 중국 가수가 K팝을 부르는 가짜 K팝 공연과 불법 판매되는 가짜 K팝 포토카드가 횡행했다. 한 중소 기획사 관계자는 “중국인 투자자들 사이에 ‘K팝 노하우를 습득해 미국 못지않게 아시아 음악 시장 자체를 키우면 중국에도 이득’이란 인식이 퍼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관 주도의 한한령 해제가 한중 관계 개선의 마중물과 동일시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빗장이 열렸을 때 정말 장밋빛 미래만 찾아올지는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K팝은 겉으로는 빠른 유행을 좇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음 세대의 BTS나 블랙핑크를 계속 배출하기 위해선 장기간 안정적 투자가 필수다. 인지도는 커도 자본력은 약한 기획사가 많다는 점도 K팝 산업의 취약점이다. 갑작스러운 정치적 유인이 생기거나 K팝 노하우를 충분히 습득했다고 여겼을 때도 과연 차이나머니가 지속적 투자를 이어갈까? 2016년 중국 시장에 과하게 의존했다가 자초한 보릿고개를 떠올리며 고민해 볼 질문이다.
-윤수정 기자, 조선일보(25-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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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시’의 나라 中에 초유의 공직자 접대 금지령. 보통 체제 불안할 때 사람 모이는 거 싫어하던데.
-팔면봉, 조선일보(25-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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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머니’ 앞세워 중동에 영향력 확대하는 中
이집트 사우디 등지에 공격적 투자
경제종속 우려 “대안 없다” 현실론
中과 군사·방역 협력 국가도 늘어… 중동에서 발 빼는 美 대신 패권 강화
1일(현지 시간) 이집트 홍해 인근 도시 아인수크나에 위치한 테다중국산업구역 입구에 중국과 이집트 국기가 나란히 걸려 있다. 2013년 중국과 이집트가 합작해서 세운 경제무역협력지구로 중국이 현재까지 10억 달러(약 1조2000억 원) 이상을 투자했다. 아인수크나=임현석 특파원
1일(현지 시간)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동쪽으로 약 120km 떨어진 공업단지를 찾았다. 황톳빛 사막지대에 펄럭이는 중국 오성홍기가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안내판에도 한자가 가득해 마치 중국 영토에 온 듯했다.
이곳은 이집트와 중국 톈진(天津)경제기술개발구(TEDA)가 공동으로 조성한 ‘테다중국산업구역’이다. 이집트 정부는 수에즈 운하와 가까워 물류 이점이 많은 이곳을 수출 전진기지로 만들겠다는 목표하에 2013년부터 중국의 투자를 받았다.
약 725만 m² 크기의 공업단지 안으로 들어서자 중국 주요 도시 이름을 딴 상하이(上海)길, 충칭(重慶)길 등의 이름이 보였다. 공단 중심부를 관통하는 톈진길을 따라 올라가자 어린이 놀이공원 ‘테다 펀밸리’가 나타났다. 이곳에서 만난 이집트인은 “곧 대형 쇼핑몰과 음식점 거리도 들어선다. 단순한 공업단지가 아니라 일종의 신도시가 될 것”이라며 기대를 표시했다.
현재 이곳에는 쥐스(巨石), 무양(牧羊) 등 약 90개의 중국 기업이 입주했다. 특히 세계적인 유리생산업체 쥐스가 입주한 뒤 이집트의 유리 제품 생산량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이집트 정부는 중국 자본을 더 많이 유치해 테다중국산업구역의 규모를 지금보다 4배 늘린다는 계획을 밝혔다.
○ 이집트를 포위한 ‘차이나머니’
이집트는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를 잇는 수에즈 운하 일대 160km²를 개발하는 작업에 한창이다. 2013년 쿠데타로 집권한 군인 출신의 압둘팟타흐 시시 대통령은 집권 직후부터 “제2 수에즈 운하를 건설하고 이 지역을 세계적 공장지대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시시 대통령은 2014년 중국을 직접 찾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에게 투자를 요청했고 2년 후 시 주석이 이집트를 찾았다. 중국은 수에즈 운하 일대 개발에만 최소 10억 달러(약 1조2000억 원)를 투자했다. 중국 역시 북아프리카 맹주인 이집트와의 협력이 필요하다. 지정학적 요충지인 수에즈 운하가 ‘일대일로(一帶一路)’의 완성을 위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내년부터 본격 가동되는 카이로 인근의 신행정수도(New Administrative Capital·NAC) 건설도 마찬가지다. 현지 언론은 사업비 450억 달러(약 54조 원)의 상당 부분이 중국 자본일 것으로 보고 있다.
돈에는 대가가 따른다. 중국이 미국 등 서방의 거센 반대에도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을 강행한 올해 6월 29일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사미흐 슈크리 이집트 외교장관과 통화했다. ‘외부 세력이 중국 내정에 간섭하면 안 된다’는 왕 부장의 발언에 슈크리 장관은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화답했다. 이집트를 포함해 중동 13개국이 홍콩 보안법에 찬성 의사를 표시했다. 보안법에 찬성한 세계 53개국 중 4분의 1에 해당한다. 보안법에 반대한 중동 국가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중동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다.
중국은 이집트에 최첨단 군사용 무인기(드론)를 제공하는 등 최근 군사 협력도 부쩍 강화하고 있다. 카이로에 진출한 한 글로벌 기업 관계자는 “이집트 공무원 중 특정 인사가 ‘친중파 공무원’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돈다. 정부가 발주한 공사에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중국 기업이 수주하는 사례도 심심찮게 나온다”고 전했다.
○ 친미 국가들도 중국과 협력 강화
중동에서 위력을 떨치는 차이나머니 앞에는 ‘친미(親美)’와 ‘반미(反美)’의 구분이 없다. 대표적 친미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 역시 최근 중국과의 스킨십을 부쩍 강화하고 있다.
지난달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우디가 우라늄 광석에서 우라늄염을 추출하는 시설을 중국과 함께 건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우디 측은 ‘경제 다각화 전략의 일부’라고 주장했지만 이란을 겨냥해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시도가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 사우디가 이 시설을 일반인에게 공개하지 않는 데다 장소 또한 북서부의 외딴 사막지대에 위치해 의구심은 증폭되고 있다. 미국은 사우디의 핵 보유 시도에 매우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 역시 2015년 중국 상하이국제항만그룹으로부터 20억 달러를 투자받아 하이파 항구를 개발하는 계약을 맺었다. 특히 중국에 항구 운영권을 25년간 넘기기로 하면서 미국과 이 문제를 두고 대립하고 있다. 중국은 또 다른 항구 아슈도드항 개발은 물론이고 스타트업, 담수화 시설, 통신장비 등 이스라엘이 강점을 지닌 분야에서도 속속 이스라엘과 손잡고 있다. 지난해 초 존 볼턴 당시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중국 통신장비 사용을 우려한다”며 노골적으로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 제품을 쓰지 말라고 압박했다.
반미라는 공통점을 지닌 중국과 이란은 더 가까워졌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7월 중국이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강력한 대이란 제재에도 향후 25년간 이란의 금융, 통신, 항만, 철도 등각 분야에 걸쳐 4000억 달러(약 480조 원)의 천문학적 투자를 단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그 대가로 중국은 세계 4위 원유 보유국인 이란산 원유를 대폭 낮은 가격에 공급받기로 했다. 양 국은 서북부 마쿠, 페르시아만 인근 아바단과 케슘 등에 자유무역지대를 건설하고 이란의 5세대(5G) 통신 사업에서도 협력하기로 했다.
계속된 서방의 제재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경제 근간이 흔들리는 이란은 중국의 투자가 절실하다. 특히 낙후된 원유시설의 개·보수가 절실해 이 부분의 현대화에만 1500억 달러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이 아니면 현실적으로 이 돈을 마련할 길이 없다. 중국 역시 이란과 손잡고 미국 및 인도를 견제할 수 있다. 일부 전문가는 장기적으로 중국이 투자시설 보호를 이유로 이란에 중국군을 주둔시키는 일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예측한다.
이 외 중국 국영기업 중국전망공사는 지난해 오만에서 전력망을 관리하는 나마홀딩스의 지분 49%를 취득했다. 이와 별도로 수조 원 규모의 인프라 개선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쿠웨이트 역시 중국과 100억 달러의 공동 펀드를 조성해 북부 신도시 건설에 나선다. 두 나라는 모두 석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제 구조를 바꾸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중국 자본은 물론 인프라 구축 노하우도 절실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이집트 등 중동 각국은 코로나19 대응에 관해 중국에 방역 노하우를 제공해 달라고도 앞다퉈 요청하고 있다.
○ “경제식민지” vs “대안 없어”
중국과의 밀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단기적으로는 중국 자본이 들어와서 좋을지 모르나 결과적으로는 중국의 경제식민지가 되어 종속만 심해질 것이라는 점을 경고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대표적 예가 파키스탄이다.
파키스탄은 중국과 손잡고 무리하게 경전철·송유관·공단 건설, 서남부 과다르항 개발 등을 추진하다가 나라 전체가 빚더미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3년간 60억 달러의 자금을 지원받기로 했지만 경제난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무상 공여가 대부분인 서구 선진국의 개발도상국 원조와 달리 중국은 원금과 이자를 함께 돌려받는 차관 형식으로 투자금을 빌려준다. 특히 해당 인프라 공사는 반드시 중국 업체가 수주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 투자라는 명목하에 돈을 빌려주지만 사실상 그 돈을 고스란히 중국 기업이 회수하는 셈이다. 대규모 공사를 진행해봤자 자국 경제에 돌아가는 몫보다 훨씬 많은 돈을 중국에 돌려주는데, 그렇다고 공사를 접자니 이미 중국에서 빌린 원금과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새로운 자금을 또 수혈받아야 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그런데도 중국 돈을 거절할 수 없는 이유는 민주화, 인권, 노동권, 부패 방지 등 개혁 요구가 많은 선진국 돈과 달리 중국은 이런 부분에 크게 개의치 않아 권위주의 통치자들이 선호하는 탓이다. 당장 중국 말고는 이 정도의 ‘돈줄’을 잡기 어렵다는 현실론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취임 후 내내 중동 미군 철수 등을 언급하며 중동에서 발을 빼왔다. 미국의 셰일 혁명 등으로 중동이 미국에서 가지는 지정학적, 경제적 가치가 예전만 못하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중동을 활보하는 중국의 여지가 앞으로도 더 커질 소지가 다분한 셈이다.
중동 전문가인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특훈교수는 “자국 내 시아파 탄압으로 서구의 비판을 받고 있는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는 중국의 위구르족 및 티베트족 탄압 논란에서 사실상 중국 편을 들고 있다”며 “홍콩 보안법, 중국의 소수민족 탄압 등의 사안에서 중동 친미 국가들조차 미국 편이 아닌 중국 편을 들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동 전체에 미치는 중국의 영향력이 더 강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임현석 카이로 특파원, 동아일보(20-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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