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대한 제안이 ‘MB 2.0’ 넘어서려면
北이 아쉬우면 손 벌릴 것이란 생각은 곤란
대화 못 이끄는 생색내기는 관리실패 부른다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 주민에게 코로나19 백신을 비롯한 의약품을 지원할 방침입니다. 구체적인 지원 방안은 북한 측과 협의해 나갈 예정입니다.’
윤 대통령 취임 사흘 만인 5월 13일 나온 대통령실 대변인의 서면 브리핑은 느닷없었다. 전날 북한은 코로나19 발병 사실을 공개하고 단거리미사일 무력시위도 벌였다. 그런 북한에 백신을 지원하겠다는 발표는 남북 간에 뭔가 긴박한 물밑 움직임이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나아가 긴장 국면에 뜻밖의 반전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기대를 낳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런 상상의 시간은 잠시였다. 뒤이어 나온 설명은 아직 북한에서 어떤 연락이 온 것도, 우리가 어떤 제안을 한 것도 아닌 원론적인 입장을 정리한 수준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새 정부의 코로나 지원 제안은 실무접촉을 갖자는 우리 측 통지문에 대해 북한이 끝내 접수 여부조차 밝히지 않으면서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담대한 계획’이 조만간 그 윤곽을 드러낼 것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세부 내용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그 기조나 방향을 정립해 가는 마지막 단계에 있다고 대통령실은 전했다. 지난주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조치에 상응해 단계별로 제공할 수 있는 대북 경제협력 및 안전보장 방안을 마련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보도자료에선 ‘경제 지원뿐 아니라 북한의 안보 우려까지 고려’ ‘선(先)비핵화 또는 빅딜식 해결이 아닌 단계적 동시적 이행’이 주요 특징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비핵화 정책의 진화와 발전을 도모’한다고도 했다.
그렇다고 그것이 새 정부 대북 기조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정부 내에선 어떤 대단한 아이디어가 논의되는지 모르지만 공개된 내용만으로는 새로운 것은 없다. 이미 미국도 그간 대북 협상 과정에서 밝혀온 해결 방식들이다. 그러니 새 정부가 이제 공부를 좀 해보니 특별한 길은 없음을 깨달았다고 실토한 것으로 읽힐 뿐이다.
권 장관은 “북한이 핵을 더는 개발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수준의 담대한 내용을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그 내용은 둘째 치고 ‘담대한 계획’이란 용어 자체에 북한이 아쉬워지면 손을 벌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은 아닌가. 권 장관은 그제 국회 답변에서 이런 말도 했다. “북한이 얘기하는 ‘안보 우려’가 허구의 것이라고 보지만, 그래도 북한이 주장하는 부분을 다뤄줄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해서….”
새 정부 대북정책이 이명박(MB) 정부 시절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실 MB는 누구 못지않게 대북 제안에 열심이었다. 8·15 광복절 등 때마다 ‘비핵 개방 3000’ 구상을 가다듬은 제안을 내놓았다. 북핵 폐기와 안전보장, 경제지원을 일괄 타결하자는 ‘그랜드 바겐’도 천명했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나. 몇 차례 북한과의 비밀접촉이 이뤄졌음에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지 못했고, 천안함과 연평도로 대표되는 북한 도발과 대북 관리 실패로 기억될 뿐이다.
아무리 담대한 계획도 북한이 외면하는 한 생색내기용 제안이 될 수밖에 없다. 거창한 이름 아래 일단 던져놓고 보자는 식의 이벤트성 제안은 또 다른 관리의 실패를 낳을 수도 있다. 북한이 대형 핵 도발을 위협하는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북한을 어떻게 상대하면서 충동을 제어할 것이냐는 현실적 전략과 접근법이다.
-이철희 논설위원, 동아일보(22-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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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할 수 없는 지옥이 펼쳐지나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

중국이 코로나 발생 이후 미얀마와의 국경에 새로 설치한 국경 철조망. CCTV와 감지센서가 설치된 이런 철조망을 무사히 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사진 출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올해 상반기 입국한 탈북민은 19명에 불과했다. 지난해 상반기엔 36명, 2021년 전체로 63명밖에 입국하지 않았는데, 올해는 그보다도 더 줄어들 것이다. 지난해 입국자 중 북한을 떠나 한국으로 입국하는 통상 경로인 중국과 동남아를 거쳐 온 탈북민은 한 명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입국자 대다수는 유럽이나 아프리카에서 근로자로 일하다가 온 사람들이라고 한다. 올해 역시 사정은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을 거쳐 탈북민이 오지 않는 이유는 우선 탈북이 막혔기 때문이다. 북한은 코로나가 시작되자 국경 1∼2km 구간을 접근금지 구간으로 정하고 밤에 접근하면 사살하도록 국경경비대에 지시했다. 철조망도 새로 세웠고 지뢰까지 매설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걸 넘어 중국 땅에 도착해도 이번에는 더 넘기 어려운 철조망이 기다린다. 땅을 파지 못하게 콘크리트로 기초를 만들고 굵은 철사로 촘촘히 엮은 높은 울타리를 세운 뒤 그 위에 다시 원형 철조망을 쳤다. 차로 일산 자유로를 따라 달리다가 한강 옆에서 보게 되는 군 경계용 철조망과 똑같다. 폐쇄회로(CC)TV도 1∼2km 간격으로 달아 철조망 앞에서 조금만 시간을 지체하면 바로 중국 변방대가 출동한다. 그렇게 잡혀 끌려가면, 코로나 기간에 탈북했다는 죄로 살아남기 어렵다. 목숨을 여분으로 몇 개 가지고 있지 않는 한 탈북할 엄두도 못 내는 것이다.
북중 국경이 봉쇄되면 코로나 이전에 탈북해 중국에 숨어 살고 있던 탈북민이라도 한국에 와야 하는데 이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우선 지금까지도 한국에 오는 길이 없어 중국에 사는 탈북민 수가 많지 않다. 고작해야 수천 명 정도로 추산된다. 또한 코로나 통제로 지역 간 이동이 철저히 차단됐거나 검문이 엄격해져 신분증이 없는 탈북민은 이동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걸 뚫고 기존의 탈북 통로인 동남아 국경까지 와도 또다시 높은 장벽이 막아선다. 외신들에 따르면 중국은 코로나 방역을 이유로 남부와 동남아 국경 사이에 길이가 4800km에 이르는 철조망을 쳤다고 한다. 사실상 남부의 ‘만리장성’이 된 이 철조망 역시 북중 국경의 철조망과 비슷하게 최대 3.6m의 높이로 설치됐고, 감시카메라와 센서로 주야간 감시된다. 2000년대 초반 탈북민들이 사용하던 몽골행 루트에도 철조망이 대거 보강됐다.
결국 탈북해 한국까지 오려면 북중 국경을 넘을 때 목숨을 두 번 걸면서 철조망을 넘고, 검문을 피해 그 넓은 중국을 가로질러야 하며, 다시 남부에서 목숨 걸고 또 철조망을 넘어야 한다. 지난해엔 이 어려운 미션에 성공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알려졌다. 올해에도 있을 것 같지 않다. 사실상 북한이 탈출이 불가능한 감옥으로 알려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앨커트래즈처럼 변하고 있는 셈이다.
그토록 원하던 탈북 제로를 달성했다고 기뻐할진 모르겠지만, 이러한 상황의 변화는 사실 최근 20일째 자취를 감춘 김정은에게도 좋은 일은 아니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이 닥쳐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을 때, 북중 국경 지역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중국으로 탈북했다. 당시엔 국경에 철조망도 없었고, 경비대 숫자도 훨씬 적었다. 김정일 시대엔 중국에서 체포돼 북송돼도 정말 굶어 죽을 형편에서 탈북한 것이라는 것이 인정되면 이를 감안해 강제노동 몇 달 시키고 풀어주었다. 지금처럼 탈북을 곧 반역이라고 간주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결과 약 20만 명이 중국으로 탈북한 것으로 추산되며, 이들이 보내준 돈으로 북한에 남은 많은 가족들도 살았다.
그러나 이젠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이 다시 시작돼도 도망 갈 길조차 없어 앉아서 굶어 죽어야 한다. 쌓여가는 그 수많은 시체와 원망을 김정은이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지금 북한 내부 경제 상황은 매우 좋지 않다. 코로나 봉쇄로 2년 반 동안 수출입이 차단된 데다 비상용 창고도 다 바닥이 난 지 오래다. 이렇게 버틸 여력이 사라진 상태에서 올해 들어 연이어 닥친 극심한 가뭄과 홍수로 흉작이 오면 대량 아사는 현실이 된다. 벌써 황해도에선 전염병과 굶주림으로 사람이 죽어 간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얼마 전 수해로 떠내려 온 북한 주민으로 추정되는 시신 4구가 임진강 하구에서 발견됐다. 슬픈 비극의 전조처럼 느껴졌다. 이제는 죽어서라도 그 땅을 벗어나면 다행인 걸까.
-주성하 기자, 동아일보(22-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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