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알코올' 코리아]
[한국만 있을 '주취해소센터']
[취객 깨우기]
'노 알코올' 코리아

회사 다니는 아들이 입사 초 가족 단톡방에 ‘오늘 회식’이라고 쓰면 걱정스러운 마음에 “과음하지 말라”는 댓글을 남기곤 했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이내 알게 됐다. 회식 후 귀가하는 아들 얼굴에 취기가 전혀 없는 걸 여러 번 보고 나서다. “술을 안 마신다”고 하면 아무도 권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의 2030 젊은이는 어른 세대보다 술을 훨씬 덜 마신다. 특히 20대는 술 마시지 않는 게 대세가 된 첫 ‘비주(非酒)류’ 세대라는 말도 듣는다. 실제로 질병관리청이 2024년 19~29세 음주 실태를 조사했더니 ‘전혀 마시지 않거나 월 1회 이하’라는 응답이 56%로 절반을 넘었다. 대학가도 비슷하다. 대학가 술집의 3월과 9월 새 학기 대목은 옛 일이 됐다. 대접에 술을 부어 마시는 ‘사발식’도 거의 자취를 감췄다.
▶술을 덜 마시는 현상이 청년 세대를 넘어 중장년층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통계청 조사결과가 나왔다. 올해 1분기(1~3월) 가구당 주류 소비 지출이 지난해 동기 대비 9% 줄어들며 2019년 집계를 시작한 이래 가장 큰 감소 폭을 보였다. 모든 연령대에서 술 소비가 줄었지만 그 중에도 50대의 주류비 지출 감소폭이 10.2%로 가장 컸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중장년 사이에 ‘술자리는 오후 9시까지, 1차만’이 자리잡은 결과라고 한다.
▶폭음 악습도 퇴출되고 있다. 같은 술자리에서 남자는 7잔(맥주 5캔), 여자는 5잔(맥주 3캔) 이상 마시는 것을 폭음으로 보는데 2024년부터 감소 추세라고 한다. 술집들은 아우성이다. “각 1병은 옛 얘기고 요즘은 4명 한 테이블에 소주 한 병 시키고 그마저도 남긴다”며 한숨을 쉰다. 국세청이 조사했더니 지난해 전국 간이주점과 호프집 약 3000곳이 문을 닫았다. 주류 업계도 무알코올 맥주나 낮은 도수의 소주를 내놓는 것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매출 감소를 피하지 못하고 있다.
▶술이 사라진 자리는 운동과 다양한 여가가 채우고 있다. 청년들은 술자리 사교 모임보다 ‘러닝 크루’에 참여해 함께 달리는 것을 ‘힙(hip)’하다고 여긴다. 헬스장 ‘몸짱’ 만들기에서 즐거움을 찾는 헬시 플레저(healthy pleasure)가 20대부터 70대 이후까지 모든 세대로 확산하며 한때 세계 10대 주류 소비국이었던 한국이 ‘노 알코올 코리아’로 바뀌고 있다. 서구 사회에서 무절제한 음주는 자기 관리의 실패를 넘어 잠재적 범죄로 취급당한다. 술 마시고 행패 부린다는 뜻의 주폭(酒暴)이 사라질 날도 곧 왔으면 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6-06-04)-
______________
한국만 있을 '주취해소센터'

퇴계 이황에게 술은 덕을 잃지 않는 호연지기의 통로였고, 다산 정약용에게 술은 기분 좋은 취기에서 멈출 줄 아는 절제의 미학이었다. 술기운에 진심을 싣는다는 취중진담이 풍류로 대접받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술은 낭만과 폭력의 두 얼굴을 갖고 있다. 특이하게도 우리 사회에선 만취 폭력도 “술 때문”이라면 봐주는 분위기가 뿌리내렸다. 우리나라에서 살인 등 각종 강력 범죄 현장엔 거의 예외없이 술병이 나뒹굴고 있다.
▶2012년 조선일보의 ‘술에 너그러운 문화, 범죄 키우는 한국’ 연중 기획은 만취 폭력에 관대한 비정상 사회의 현장을 매일 보도했다. 당시 취재팀이 서울 어느 파출소에서 목격한 50대 대기업 부장의 모습은 주폭(酒暴)을 세상에 보여준 장면이었다. 러닝 셔츠가 드러난 차림에 한쪽 발엔 슬리퍼, 다른 발은 새까만 맨발인 채 환갑의 경찰관에게 “너는 뭐냐?”고 고함을 쳤다. 평소엔 존경받는 가장이자 유능한 직장인이었을 그가 술만 취하면 주폭으로 돌변했다. 그런 사람들로 전국의 파출소들이 매일 밤 몸살을 앓는다. 주폭은 경찰관을 향해 소변을 보기도 한다.
▶2012년 부산시는 전국 최초로 만취자 대상 ‘병원 내 응급의료센터’를 만들었다. 10여 년 시행착오 끝에 진화된 모델인 부산 주취해소센터가 지난 4일로 개소 1000일을 맞았다. 경찰과 소방, 의료 기관이 함께 하는 이곳은 그동안 1500명이 넘는 취객을 관리했다. 의학적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그 현장은 아름다울 수 없다. 주취해소센터는 폭언과 발길질, 오물의 전장(戰場)이 되곤 한다. 하지만 밤마다 주폭 주정꾼에 시달리던 경찰관들이 민생 치안 현장으로 출동할 수 있게 됐다. 부산을 성공 모델로 서울 6곳을 비롯, 대구·인천·광주 등 전국 20여 곳으로 확산됐다.
▶대부분 선진국들은 주취를 범죄예비자로 간주한다. 미국의 많은 주는 공공장소에서 술병을 들고 다니기만 해도 체포한다. 취해서 비틀거리거나 심지어 술집에서 언성을 높여도 체포한다. 독일과 영국은 술 깬 취객에게 다음 날 거액의 보호료를 물린다. 술로 낭비된 국가 행정력의 비용을 내라는 것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음주 전과자는 채용에서 배제하기도 한다. 선진국 청년들에겐 자기소개서에 ‘술을 마신다’라고 쓰는 것은 금기에 가깝다.
▶술은 인생에 즐거움을 주는 윤활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 여야 한다. 그 선을 넘어가면 알코올 폭력배일 뿐이다. 이 경우 형량을 더 높일 필요가 있다. 주취해소센터가 필요 없게 되는 사회가 정상이다.
-이인열 논설위원, 조선일보(26-01-10)-
______________
취객 깨우기
‘오늘도 참 힘든 하루였다’는 제목으로 서울의 한 시내버스 기사가 온라인에 올린 글을 봤다. “자고 있던 취객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웩~ 오늘 먹은 걸 다 토합니다. 신속하고 빠른 동작으로 퍼서 밖으로 버립니다. 조금 남은 찌꺼기는 블랙커피를 부어 손걸레로 닦고 다시 출발 준비를 합니다.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취객이 안 일어납니다.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요지부동. 할 수 없이 경찰에 신고합니다.” 취객 치다꺼리한 걸 담담하게 써 내려갔는데 그 장면이 짠하게 머리에 그려졌다.

▶매일 밤 지하철 ‘막차 정리’팀에게 가장 힘든 업무는 곯아떨어진 취객들을 깨워 귀가시키는 일이라고 한다. “막차입니다. 내리세요.” “가방 챙기세요.” 흔들어 깨웠는데 군말 없이 일어나 가는 취객은 양반 중 양반이다. “네가 뭔데 나를 깨우느냐”며 소리치고 욕설 퍼붓기는 다반사다. 술 취하면 나이, 지위 고하도 없다. “막차 안내 방송 똑바로 해라. 고소하겠다”고 생트집을 잡으며 난동 부리거나 지하철 안에서 차상(車上) 방뇨를 하는 취객도 종종 있다.
▶'술을 먹어야지, 술에 먹혀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다. 술은 정상적 뇌 기능을 방해한다. 알코올은 이성과 판단을 담당하는 부위에 먼저 영향을 줘 자제력이 떨어지고, 감정을 담당하는 기능은 상대적으로 강화해 충동적으로 변하게 한다. 그러니 잠든 취객을 깨우는 건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뽑는 것처럼 충동적인 상대를 다루는 위험한 일이다.
▶좁은 공간에서 승객을 1대1로 만나는 택시 기사에게는 취객이 특히나 공포의 대상이다. 술 취한 30대 남성이 목적지를 묻는 70대 택시 기사를 마구 폭행해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다. 20대 취객이 60대 택시 기사를 때려 의식불명에 빠뜨린 적도 있다. 운행 중인 택시나 버스 기사를 폭행하면 가중 처벌하도록 2007년부터 특가법 개정안을 시행했지만 취객의 폭언 폭행은 끊이질 않는다. 일본이나 미국처럼 택시 운전석 주변 격벽 설치를 의무화하자는 논의도 있지만 아직 제도화하지는 못했다.
▶이용구 법무차관의 택시 기사 폭행 사건을 두고 여당 최고위원이 “술 마시고 자는 걸 깨우면 화낼 수도 있지 않느냐”고 감싸기에 나섰다. 주취 폭행을 했으면 다른 시민들처럼 철저히 조사받고 처벌받으면 된다. 검사나 공직자는 형사처벌만 받는 게 아니고 공무원 품위 손상에 대한 징계도 받고 당연히 승진도 제약받는다.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하면 될 잣대가 왜 이 정권 사람들한테만 가면 엿가락처럼 이상하게 구부러지는지 모르겠다.
-강경희 논설위원, 조서일보(20-12-26)-
=========================
'[세상돌아가는 이야기.. ] > [國內-이런저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타벅스가 문을 닫으면, 대한민국은 더 좋은 나라가 될까] .... (0) | 2026.06.07 |
|---|---|
| [AI 시대, 자소서보다 면접] (0) | 2026.06.06 |
| [얼음 녹지 않는 보온병의 비밀, '진공 상태'에 있다] (0) | 2026.06.03 |
| [미술시장과 東道西器] [남원 예향론(藝鄕論)] (0) | 2026.06.01 |
| [진짜 굉장한 일] [그놈의 오빠 타령.. ] [한·영은 왜 폭군에 집착하나] (0) | 2026.05.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