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력 저하 방치는 치매로 이어지는 소리없는 도미노]
[산부인과]
청력 저하 방치는 치매로 이어지는 소리없는 도미노
잘 들리지 않는다는 건 뇌 퇴화 촉진 신호, 치매 위험 5배까지 상승
무리하게 코 푸는 습관 최악… 이어폰 사용 주의하고 보청기 착용을

진료실에서 만나는 어르신 중에는 설명하는 동안 줄곧 고개를 끄덕이며 다 이해하는 척하는 분이 많다. 며칠 뒤 다시 뵙고 여쭤보면 대화 내용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것이 기억력만의 문제일까? 임상 현장에서 보면 본인조차 인지하지 못한 청력 장애가 원인인 경우가 훨씬 흔하다.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으니 대화의 맥락을 놓치고, 결과적으로 뇌에 정보가 입력되지 않는 것이다.
노년기 청력 저하는 단순히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뇌의 퇴화를 가속화하는 결정적인 위험 요인이다. 그럼에도 청력 상태를 여쭤보면 대개 “크게 말하면 다 알아듣는다”며 쉽게 넘기곤 한다. 시력이 떨어지면 곧장 안경점을 찾는 분들도 귀가 어두워지는 문제에는 둔감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보청기를 나이 듦의 상징처럼 여겨 거부하는 경우도 많다. 혹은 대화가 조금 피곤해지는 정도의 불편으로 치부하며 방치한다. 그러나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청력을 방치하는 것은 전신 건강에 경고등이 켜졌다는 뜻과 같다.
◇소리의 부재가 가져오는 뇌의 변화
우리 뇌는 오감을 통해 들어오는 자극을 처리하며 그 구조와 기능을 유지한다. 그중 청각은 깨어 있는 시간 내내 뇌에 정보를 공급하는 핵심 통로다. 청력이 떨어져 소리 자극이 줄어들면 뇌는 심각한 변화를 겪는다. 외부 자극이 결핍된 청각 피질은 서서히 위축되기 시작하며, 이는 주변에 인지 기능을 담당하는 영역까지 연쇄적 퇴행을 유발한다.
실제로 청력 저하와 치매의 상관관계를 밝힌 대규모 연구들은 이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세계적 학술지 란셋(Lancet)의 보고서에 따르면, 중년기 청력 저하는 예방 가능한 치매 위험 요인 중 그 비율이 가장 크다. 일정 기간 동안 같은 조건이나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추적한 미국의 코호트 연구 결과, 경도 청력 저하만으로도 치매 발생 위험은 정상인보다 2배 높아졌으며 고도 청력 저하의 경우 5배까지 치솟았다.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에서도 알츠하이머 발병 위험과의 뚜렷한 연관성을 보여준다. 즉,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필수적인 자극이 차단되어 뇌의 노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인지 부하와 사회적 고립의 이중고
청력이 나빠지면 뇌는 들리지 않는 소리를 해석하려고 과도한 에너지를 쓰게 된다. 대화의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 평소보다 많은 집중력을 소모하는데, 이를 ‘인지 부하 현상’이라 한다. 정작 사고와 기억에 쓰여야 할 뇌 자원이 소리 분석에 소진되는 것이다.
심리적·사회적 변화는 더 큰 문제다. 대화가 힘들어지면 사람들과의 만남이 피곤해지고 자연스럽게 모임도 피하게 된다. 정보 유입이 제한되면 자기중심적 사고에 갇히기 쉽다. 소통의 단절은 외골수 성향을 키워 사회적 고립을 더 심화한다. 이러한 고립은 우울감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뇌 기능을 보호하는 가장 강력한 방어막인 사회적 상호작용을 스스로 놓아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공간 지각력 상실로 낙상 위험
청력은 균형 감각과도 밀접하다. 귀 안쪽 전정기관은 청각 신경과 연결되어 몸의 평형을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하면 주변 환경에 대한 공간 지각력이 떨어진다.
뒤에서 오는 차 소리나 주변 소음을 감지하지 못하면 돌발 상황에 대처하기 어렵다. 보행 시 필요한 청각적 피드백 부족은 낙상 사고 위험을 유의미하게 높인다. 노년기 낙상은 치명적인 사고인 만큼, 청력 관리는 신체 안전을 지키는 기본이다.
◇보청기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청력 저하를 해결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보청기 착용이다. 하지만 보청기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여전히 차갑다. 보청기를 끼면 ‘장애가 있는 노인’으로 보일까 봐 망설이는 분도 많다. 그러나 보청기는 안경과 같은 보조 도구일 뿐이다. 오히려 잘 들리지 않는데도 고집을 부리며 대화를 단절하는 것이 노화를 촉진하는 길이다.
최근의 보청기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본인의 청력 상태에 맞춰 전문가의 처방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보청기를 처음 착용하면 기계음이 어색할 수 있지만, 뇌가 새로운 자극에 적응할 시간을 충분히 주어야 한다. 안경을 처음 쓰면 어지러운 것과 같은 이치다. 국내 연구에서도 보청기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에 비해 치매 발생률이 낮게 나타났다.
◇중년부터 시작하는 귀 건강 관리
청력 보호는 중년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의외로 일상적인 습관이 귀 건강을 해치는 경우가 많다.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무리하게 코를 푸는 습관’이다. 코와 귀는 이관으로 연결되어 있어, 코를 너무 세게 풀면 귀 내부 압력이 급격히 상승해 고막이나 중이에 손상을 줄 수 있다. 비염을 잘 관리하는 것은 곧 귀를 보호하는 기초가 되기에 더 신경 써야 한다.
장시간 이어폰 사용이나 소음 노출도 피해야 한다. 한 번 손상된 청각 세포는 현대 의학으로도 되살리기 어렵다. 웅얼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리거나 식당처럼 시끄러운 곳에서 대화가 어렵다면 서둘러 이비인후과를 방문해 청력 검사를 받는 게 좋다.
나이가 들어 귀가 어두워지는 것을 세월 탓으로만 돌리지 말자. 잘 듣는다는 것은 뇌에 활력을 지속적으로 불어넣는 일이다. 타인과 연결되는 가장 따뜻한 통로를 유지하는 일이기도 하다. 귀를 밝히는 것이 곧 노년의 삶을 밝히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장일영 노년내과 의사, 조선일보(26-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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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
초기 산부인과의 산모 사망률이 산파가 도울 때보다 높았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올해 1월에 태어난 아기의 수가 작년 같은 달보다 2817명 늘어났습니다. 최근 7년 간 1월 출생아 수 중 가장 많아요. 혼인이 늘고 30대 여성들의 출산이 큰 폭으로 늘면서, 한국의 출산율이 다시 높아지고 있습니다. 덕분에 산부인과를 찾는 임산부들도 늘었다고 해요. 오늘은 산부인과의 기원을 알아봅시다.
인간은 다른 포유류와는 달리 혼자서 아기를 낳기가 어렵습니다. 두 발로 걷는 인간은 네 발로 걷는 동물보다 골반이 좁아, 아기가 빠져나오는 길인 ‘산도’도 좁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 인간은 다른 동물보다 두뇌가 커서 엄마의 산도에 비해 아기가 큰 두개골을 갖고 태어나죠. 아기를 낳는 과정에서 엄마의 골반에 아기의 머리가 끼거나 어깨가 걸리면 아기와 엄마 둘 다 위험해지죠. 그래서 출산 과정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이 필요해요.

성모 마리아의 탄생 장면을 담은 그림입니다.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가 산파에게 아기를 건네고 있고, 나머지 두 여성은 아기를 씻길 준비를 하고 있어요. /영국 내셔널 갤러리
역사적으로 꽤 오랫동안 출산은 여성들끼리 이뤄졌답니다. 출산을 돕는 ‘산파’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성이 맡았어요. 우리나라는 가족 중 출산 경험이 있는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가 출산을 도왔죠. 마을에 산파 경험이 많은 어른이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유럽에서도 산파는 여성이 담당했어요. 이들은 경험과 실습을 통해 일을 배웠기 때문에 관련 자격 등은 없었습니다.
유럽에서는 17세기에 의사 면허가 생기면서 출산도 의학 영역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이때부터 유명한 의사들이 왕실이나 귀족의 출산을 담당하기 시작했습니다. 의사가 출산을 봐주는 일은 중산층으로 점차 확산했습니다. 그러면서 의료의 한 분야로 산부인과가 개설됐지만, 놀랍게도 초기 병원 산부인과에서 출산한 산모의 사망률은 산파 출산의 약 10~20배였다고 해요. 19세기 헝가리 출신 산부인과 의사인 이그나스 제멜바이스는 이 점에 의문을 갖고 연구를 시작했어요. 당시 의과 수련생이 있는 병동에서는 산모 사망률이 10%였는데, 산파들이 출산을 돕는 경우에는 사망률이 4%에 불과했거든요.
산모들이 사망한 이유는 대부분 ‘산욕열’ 때문이었답니다. 산욕열이란 분만 과정에서 생긴 상처에 세균 감염이 일어나 고열이 나는 질환인데, 심할 경우 패혈증을 일으켜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제멜바이스는 의대생들이 해부 실습을 하지 않는 방학 기간에 산부인과 병동에서 산모 사망률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부패한 시신을 다루다가 산부인과에서 분만을 도운 의사들이 산욕열의 주범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그 후 제멜바이스는 시신 해부에 참여한 의사들이 산부인과 병동에 출입하려면 손을 소독하도록 했어요. 그 결과 1846년 18%였던 산모 사망률이 1년 만에 1~2%로 감소했죠.
-황은하 상경중 역사 교사, 조선일보(26-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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