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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치유의 시간] [숙면모드]

뚝섬 2026. 5. 9. 06:56

[잃어버린 치유의 시간]

[숙면모드]

 

 

 

잃어버린 치유의 시간 

 

2일 서울 영등포구 한강공원 멀티플라자에서 열린 ‘2026 한강 잠퍼자기 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낮잠을 자고 있다. /뉴스1

 

현대인을 괴롭히는 우울증의 원인은 곳곳에 널려 있습니다. 치열한 경쟁, 사회적 고립, 신체 활동 부족…. 그중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게 무엇일까요. 연구마다 차이가 날 수 있겠습니다만, 질병관리청이 최근 발표한 분석 결과에서는 ‘잠’이 지목됐습니다.

 

질병관리청은 지난해 전국 19세 이상 약 23만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지역사회건강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우울 증상 유병률 등을 심층 분석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루 7~8시간 적정 수면을 취하지 않는 그룹은 적정 수면군보다 우울 증상 발생 위험이 2.1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수면은 사회적 관계(친구와의 교류 빈도, 이웃 간 신뢰), 건강 행태(흡연·음주 등) 같은 다른 요인들보다 우울 증상 발생에 더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수면 장애가 알츠하이머성 치매와 파킨슨병 같은 다양한 신경퇴행성질환 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습니다. 세브란스병원 공동연구팀은 영국의 대규모 건강 데이터베이스 UK 바이오뱅크 데이터를 토대로 수면 장애 환자 3만여명과 수면 장애가 없는 14만여명을 추적 관찰하며 신경퇴행성질환 발생 양상을 비교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수면 장애가 있는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신경퇴행성질환 발생 위험이 30%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파킨슨병(1.31배), 알츠하이머성 치매(1.33배), 혈관성 신경퇴행성질환(1.38배) 등의 발생 위험이 유의미하게 증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합니다.

 

잠은 뇌의 야간 정비 시간입니다. 셰익스피어 ‘맥베스’에는 잠을 일컬어 “뒤엉킨 근심의 실타래를 풀어주는 것”이자 “상처받은 마음에 바르는 연고”라고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수면 중 뇌는 낮 동안 쌓인 감정적 찌꺼기를 걸러내고 스트레스 호르몬을 조절하며 정서적 방어선을 구축합니다. 적절한 수면을 취하지 못하면 뇌의 청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내면에 감정의 노폐물을 쌓아두게 됩니다.

 

하지만 오늘날 현대인들은 잠을 ‘사치재’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현대인의 밤은 너무나 밝고 시끄럽습니다. 특히 스마트폰은 수면의 질을 떨어뜨리는 주범입니다. 밤늦게까지 스마트폰을 사용하다 보면 뇌는 오랫동안 각성 상태에 머물게 됩니다. 마음속 소동을 가라앉히는 그 치유의 시간을 우리는 밤의 소란 속에서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요.

 

-김승범 기자, 조선일보(26-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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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면모드

 

부부간 자는 모습은 금실 척도… 밤잠은 낮 생활 반영하는 지표
200만년 빛으로 작동 생체시계 환한 밤 되면서 송두리째 깨져
칠흑같이 어두운 동굴서 잤던 인류 습관이 건강·장수 이끈다

 

결혼한 사람에게 잠은 부부 금실의 척도다. 잠자리가 아니라 수면 자세를 말한다. 1000명의 부부를 대상으로 영국 연구진이 잠 안 자고 한 연구를 보면 침대에서 부부가 얼마나 떨어져 자느냐에 따라 부부 사이 만족도가 달랐다. 취침 간격이 가까우면 부부 심리 검사에서 관계가 좋았고, 멀면 좋지 않았다. 열 쌍 중 네 쌍 정도는 서로 등을 돌리고 자는데 마주 보고 자는 부부보다 행복도가 낮았다. 닭이 먼저인지 계란이 먼저인지와 비슷한 질문이지만 잠은 여러모로 부부생활의 거울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잠에는 또 질병의 흔적이 묻어난다. 한겨울에도 팬티만 입고 자거나 이불을 계속 걷어차는 사람은 끈적거림과 가려움을 못 참는 아토피 피부다. 알레르기 비염이 있으면 코막힘으로 입을 벌리고 잔다. 우울감이나 불안증이 있을 때는 평소에 안 하던 잠꼬대가 심해진다. 누워서 잠들려고 하면 기침이 심해지는 사람이 있는데 이때는 심장병을 의심해 봐야 한다. 심장 기능이 떨어진 사람은 누운 상태에서 폐 혈액순환이 느려져 기침이 나온다. 나이가 들수록 꿈꾸는 횟수는 줄기 마련인데, 안 꾸던 꿈을 많이 꿀 때도 우울증·불안증 징후다. 매일 이른 새벽에 깨는 수면은 알코올 의존형 수면의 특징이다. 이처럼 밤잠은 낮 생활을 반영하는 지표다.

잠은 깨어 있는 삶을 결정한다. 자는 동안 전날 입력된 정보를 정리하여 버릴 건 버리고 남길 건 남긴다. 방전된 신체의 활력이 재충전된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할 경우 치매·당뇨병·심장병·비만·학습 지체 등 수많은 질병의 위험이 커진다. 잠이 보약이고, 숙면(熟眠)이 건강 근원이다.

우리 몸의 유전자는 수백만 년 동안 지구에서 생존한 조상의 유산이다. 구석기 시대의 호모 사피엔스에서 시작했더라도 200만 년이 넘는다. 그들은 지구의 자전(自轉)으로 해가 뜨면 잠에서 깼고,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들었다. 우리의 생체 시계는 그렇게 200만 년 동안 작동된 결과물이다. 칠흑 같은 어둠의 동굴 속에서 숙면하여 자손을 남긴 조상의 몸을 우리가 받았다. 그 결과 지구 공전에도 언제나 어둠이 가장 짙은 밤 12시~3시경에 수면 유지 호르몬 멜라토닌과 성장 호르몬 분비가 최대에 이르게 됐다. 이 호르몬은 아침 시간의 햇빛을 신호로 생산을 준비하고, 낮의 환한 햇볕으로 가동되어, 가장 어두울 때 쏟아낸다.

그러다 전기가 나오면서 빛으로 작동되는 수면 형태가 송두리째 바뀌었다. 낮과 같은 수준의 밤 빛을 가진 기간은 불과 100여 년이다. 인류가 살아온 기간의 0.0001%도 안 된다.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야 했고, 밤늦게까지 빛에 노출돼 잠을 미뤄야 했다. 이로 인해 수면 장애로 병원 치료를 받는 이가 40만 명에 이르렀다. 출퇴근 시간이 긴 직장인은 이직률과 실직률이 높은 것으로 조사되는데, 이것도 수면 부족에 따른 생산성 저하가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이제 잠만큼은 석기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 우선 아침에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야 한다. 여름에는 일출(日出) 시각에 맞춰 조금 이르게, 겨울에는 조금 늦게 말이다. 많은 은퇴자가 직장을 그만두고 수면 장애에 시달리는데, 대개 기상 시각이 일정치 않아 일어나는 현상이다. 잠도 야만적인 알람 소리에 의해 소스라치며 깰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빛으로 자연스럽게 깨어나야 좋다. 요즘에는 원하는 시간에 실내등 조도가 밝아지는 장치도 나와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집 안을 환하게 하고, 오전에 야외에서 햇볕을 쬐어야 한다. 낮 햇살을 받으며 산책하면 더욱 좋다. 실내 근무 환경도 최대한 밝게 해야 한다. 사무실에 창문이 없는 근로자들이 창문 있는 근로자보다 수면 장애 발생률이 훨씬 높다. 낮에 받은 빛의 양이 적기 때문이다. 석양에 빛을 많이 쬔 사람들에게 야간 불면증이 흔하다. 노을이 지면 주변 빛을 서서히 줄여야 한다. 우리 몸은 밤이 가까울수록 빛 자극이 줄고 체온이 낮아지면서 수면으로 들어간다. 그것이 석기 시대의 동굴 숙면 모드다.

잠자리에는 일체의 소음과 빛을 차단해야 한다. TV를 보다가 소파에서 잠들거나 침대에서 스마트폰을 쳐다보는 행위는 숙면을 해친다. 깜깜한 밤에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나 새 지저귐이 아련히 들린다면 최고의 잠자리다. 스마트폰 앱으로 연출이 가능하다. 그렇게 해서 7시간 꿀잠을 자보라. 내일이 달라진다. 잠자는 시간은 개인마다 다르지만 수만 명을 대상으로 수면 시간과 수명과의 관계를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하루 평균 7시간 수면인(人)이 그 이하 또는 이상 수면인보다 오래 살았다.

수백만 년 된 태양의 생체 시계와 전기빛 생활 방식의 엇박자가 우리 삶을 피곤하게 만든다. 거룩한 밤에는 잠을 포근하게 자야 한다. 문명사회에서 원시적 숙면을 위한 투자야말로 효과가 가장 큰 건강 증진 행동이다.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조선일보(15-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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