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나온 모든 길의 교차점… 미련도, 후회도 없이 운명 긍정해야]
[가지 않은 길]
[나이 50을 넘어 인생의 문을 열고 나서다]
나는 지나온 모든 길의 교차점… 미련도, 후회도 없이 운명 긍정해야
인생 여정은 선택과 포기의 연속… 회한과 미련에 사로잡히기 쉬워
과거 되돌릴 수 없어 고통받지만, 인생 새로 시작하면 고통 없을까
내 의지로 과거에 의미 부여하면, 실패조차 나를 만든 필연적 과정
영국 웨스트요크셔주 웨이크필드의 한 오솔길. 프로스트는 시 ‘가지 않은 길’을 통해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하지만 니체는 사람마다 각자 가야 할 다양한 길이 있다고 봤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해 미련을 갖기보다는 과거의 수많은 길이 만나 지금의 내가 존재하게 됐다고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가지 않은 길’을 대하는 태도
인생의 여정을 흔히 길에 비유한다. 산다는 건 누군가 만들어 놓은 흔적을 따라가는 쉬운 일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길을 내야 하는 힘든 과제이기도 하다. 매 순간 새로운 상황에 맞닥뜨리며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가 나중에 성취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나 아쉬움, 미련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39세의 로버트 프로스트.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1874∼1963)의 시 ‘가지 않은 길’은 우리가 포기해야만 했던 인생길에 대한 회고를 담고 있다. 시인은 두 갈래로 난 숲길 앞에서 어느 방향으로 갈지 고민하다가 풀이 우거지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은 길을 가기로 결정한다. 다른 길은 언젠가 되돌아와서 가겠다고 생각하고 남겨두지만, 현실은 그러지 못했다. 나중에 시인은 긴 한숨을 쉬며 그 길을 선택한 순간부터 자신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아쉬워한다.
누구나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남는다. 그리고 시인처럼 남과 다른 길을 고집할수록 회한이 더 깊어질 수 있다. 시인이 걸어간 길은 남들이 가지 않았기 때문에 더 험난하고 평탄하지 않은 길이다. 따라서 자신만의 가치를 드러내는 일을 선택해 남과 차이가 큰 길을 간 사람일수록 평범한 삶에 대한 열망이 더 크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프로스트의 명판. 하단에는 ‘프로스트의 캘리포니아 친구들이 그의 100번째 생일을 기념해 이곳에 설치했다’고 쓰여 있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우리의 인생은 끊임없는 선택과 결정의 연속이다. 선택하는 순간에는 우연처럼 보이는 일도, 시간이 흐르면 번복할 수 없는 운명이 된다. 지금 무엇을 할지 정하는 것은 쉽고 자유로워 보이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이미 일어난 일은 던져진 주사위처럼 되돌릴 수 없다.
프로스트의 시를 우리의 현실에 적용해 보자. 만약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결정을 할 것인가? 예를 들어, 다시 선택한다고 해도 지금의 일을 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직업을 선택할 것인가? 만약 현재 벌이가 부족하다거나 직업 안정성이 떨어진다면 바꾸는 게 더 나아 보인다. 고수익과 성공이 보장되는 직업을 가지려면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할 테니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과거의 나태함 때문에 지금의 인생이 망가졌다는 후회와 자책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학업과 직업의 선택보다 훨씬 중요하고 어려운 것은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일이다. 친구든, 연인이든, 배우자든, 가족이든 우리는 만나서 애정과 신뢰를 쌓으며 인연을 맺는다. 그러나 감정은 변하기 마련이라, 다툼과 이별을 겪게 되면 과거에 이 사람을 만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선택했더라면 더 행복했을 것이라는 후회가 밀려온다.
니체는 이처럼 과거를 되돌릴 수 없어 생기는 마음의 고통을 해결하는 방법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보여준다. 차라투스트라는 눈먼 자를 만나지만 세상을 볼 수 있게 해달라는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다. 눈먼 자는 세상을 볼 수 있기를 원하지만, 만약 ‘눈을 뜨게 해준다고 해도 결국 볼 수 없는 것 혹은 보고 싶지 않은 것까지 너무 많이 보게 될 테니, 오히려 눈을 고쳐준 자를 저주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마찬가지로 과거로 되돌아가 인생을 새로 시작하고 싶다는 소원을 들어준다고 해도, 우리는 다른 선택으로 더 큰 고통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후천적 장애인들이 다시는 신체적 장애가 없던 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에 고통 받듯,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과거에 한 번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이다.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기 때문에 그 흐름에 거역할 수 없는 우리는 쓸쓸함과 슬픔을 느낀다. 우리가 화를 내든 절망하든 옛일은 굴릴 수 없는 돌덩이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다. 과거를 바꿀 수 없다는 사실에 분노하면 할수록 죄책감과 고통만 커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퍼즐을 맞추듯, 무의미한 우연처럼 보이는 과거의 조각들을 다시 짜 맞춰 현재와 미래의 의미를 새롭게 만들면 된다. 다시 말해 자신을 고통에서 스스로 구제하는 방법은 ‘과거의 조각돌과 수수께끼, 끔찍한 우연, 이것들을 하나로 압축해 모으는 일’을 통해 지난날 모든 것이 ‘그랬었지’에서 ‘나는 그러하기를 원했다’로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과거는 한낱 흩어진 조각돌이고 수수께끼이며 끔찍한 우연에 불과해 보이지만, ‘나는 그러하기를 원했다’며 의지를 가지면 그 과거는 필연성을 갖게 된다.
예를 들어, 지난날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 현재 불행해졌다고 자책하는 것보다 ‘나는 공부하지 않고 놀고 싶었다’란 적극적인 긍정으로 생각을 바꿔야 한다. 인생에서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과거의 순간순간 이뤄진 수많은 선택과 결단을 통해 수많은 우연이 모여 현재의 나를 만들었기 때문에 인생에서 버려야 할 건 아무것도 없다.
니체는 ‘수천 가지의 길’이 있다고 했다. 각자 가야 할 다양한 길이 있다는 것이다. 매 순간의 선택과 만남, 인연이 우리 각자의 인생길을 이어 나간다. 인생에는 좋고 평탄한 길만 있는 게 아니다. 가끔 비탈길에 넘어지고 샛길로 빠지더라도, 모든 시행착오와 실패는 나의 인생길을 내는 데 도움이 된다. 과거의 수많은 길이 만나 지금의 나를 존재하게 한다는 인식이 중요하다. 니체의 ‘운명애(Amor Fati·아모르 파티)’란 가지 않은 다른 길에 대한 미련이 아니다. 그보다는 지금까지 자신이 걸어온 모든 길에 대한 절대적인 긍정을 의미한다.
-강용수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 동아일보(25-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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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은 길
길은 찾는 게 아니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누구도 두 길을 동시에 걸을 순 없다
중국 근대문학의 아버지 루쉰(魯迅)은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다”라고 썼다. 길에는 프랭크 시내트라의 ‘마이 웨이(My Way)’도 있고, 오래된 흑백영화 ‘길’도 있다. 특히 삶의 벼랑 끝에 몰린 프로스트에게 퓰리처상을 안겨준 시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의 종장은 늘 서늘한 위로를 준다.
길이란 결국 자신이 선택한 대로 만들어진다. 대로가 있으면 막다른 골목도 있다. 돌이켜보면 순조롭고 무난한 인생보다 치열하고도 파란만장한 삶이 훨씬 더 아름답고 보람 있는 과정이었음을 느낀다. 시인들은 말한다. 새는 날면서 뒤돌아보지 않으며, 바다는 고향이 없다고….
-이동규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 조선일보(2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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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50을 넘어 인생의 문을 열고 나서다
‘금인명배(金人銘背)’ ‘공부자성적도(孔夫子聖蹟圖)’, 1905년, 목판, 29×37㎝, 국학진흥원
로버트 프로스트(1874~1963)의 시 ‘가지 않은 길’은 이렇게 시작된다. ‘노란 숲속에 두 갈래로 길이 나 있었습니다./ 두 길을 다 가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오랫동안 서서 한쪽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곳으로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이 시를 읽던 고등학교 때만 해도 ‘가지 않은 길’은 설렘과 기대의 대상이었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다른 길을 가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가겠다는 다짐을 남겨둔 길이었다.
그런데 나이 50을 넘긴 지금은 정반대다. ‘가지 않은 길’은 미지의 대상이 아니라 두려움의 대상이다. 낯선 길을 가다 무슨 일이 생기면 낭패를 볼 수 있으니 ‘가지 않은 길’은 더 이상 ‘갈 수 없고’, 솔직히 ‘가고 싶지 않은 길’이다. 자신의 앞에 놓인 길을 스스로 차단하고 아는 길만 다니는 나이, 익숙한 길이 아니면 설령 조금 멀게 돌아가더라도 다니던 길을 찾아가는 게 편한 나이, 그 나이가 50이다. 그런데 어쩌랴. 50 앞에 남은 생은 50 이전의 생만큼 길고 멀기만 한 것을. 젊었을 때처럼 뛰어다닐 수도 없으니 더 멀고 지루할 수도 있는 길이 50 앞에 놓여 있다. 남은 생을 포기할 수 없으니 원하든 원하지 않든 대장정을 시작해야 한다. 두렵지만 나아가야 하고, 내키지 않지만 발을 내밀어야 하는 앞으로의 길. 나만 이렇게 두려울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문득 궁금해져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된다. 요즘 들어 부쩍 노후에 관련된 기사를 찾아보게 되고, 인생 후반기에 대한 책을 들여다본다. 그런데 보이느니 암담한 현실이요, 들리느니 우울한 미래다. 나의 노년은 과연 어떻게 펼쳐질까.
요즘 어디를 가든 노인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지하철 안에서, 거리에서, 도서관에서, 병원에서. 방송에서는 연일 ‘노년층 증가와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청장년층의 사회적 부담이 증가되어…’로 시작하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저출산으로 인해 유소년 인구가 줄어들어 ‘단군 이래 최대의 노인 비율을 경신’했다는 경고도 잊지 않는다. 이런 뉴스를 들을 때마다 왠지 마음이 심란해지고 복잡해진다. 얼마 있으면 들이닥칠 노년도 두려운데, 노년에 진입하는 것 자체가 벌써 이 사회에 짐이 된다고 압력을 넣는 것 아닌가. 죄인 아닌 죄인이 된 기분이고, 나이 들어가는 것이 부끄러워진다. 50을 전후한 우리 세대, 즉 베이비붐 세대는 소위 ‘낀 세대’다. 없는 살림에 부모 공양하면서 자식한테 부양받는 것을 포기한 세대다.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얹혀사는 ‘캥거루족’ 자식까지 책임져야 할 수도 있다. 한없이 퍼주고 받지는 못하는 세대이다.
물론 우리 이전 세대에 비하면 행복하다 할 수 있다. 윗세대는 넘치는 것이 시간밖에 없다. 하루 종일 서울에서 충남 천안까지 무료 지하철을 타고 갔다 오는 사람도 있다. 얼마 전에 전남 여수로 부임한 판사에게 들은 얘기다. 그는 재판을 하러 들어가서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했다. 매번 다른 재판인데, 재판과는 상관없는 사람들이 항상 방청석에 앉아 있었다. 알고 보니 그 동네 어르신들이었다. 할 일도 없고 심심한데 재판이나 보러 가자고 해서 시작된 일이란다. 어느 동네에서는 집집마다 판례집이 없는 집이 없을 정도로 재판에 관심을 쏟는 곳도 있다고 한다. 그곳의 어르신들은 얼마나 많은 재판을 지켜봤는지, 처음 부임한 판사의 재판에 한 번만 들어가도 그 판사의 등급을 매길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때로는 서울에서 여수까지 재판을 보러 온 사람도 있을 정도다. TV에 나온 판사의 얼굴을 보고 재판이 궁금해서 왔다는 것이었다. 모두들 넘치는 시간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런데 가지 않은 길을 가보겠다고 용기를 낸 사람들이 있다. ‘50+인생학교’에 들어온 사람들이다. ‘50+인생학교’는 전북 전주시 소속의 전주시평생학습관에서 주최하는 프로그램이다. ‘인생 후반기 50+플랫폼’이라는 부제를 단 이 프로그램은 1년에 두 번, 모두 10주에 걸쳐 진행한다. 프로그램은 ‘도마 만들기’ 등 체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신체표현’ ‘영화를 통한 자아탐색’ ‘내 삶을 스토리텔링하다’ 등의 워크숍, 그리고 ‘돈의 주인으로 사는 방법’ ‘건강한 삶을 위한 몸의 정치학’ 등의 특강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프로그램 중반인 6주 차에 수학여행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졸업식 이전 주인 9주 차에는 이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로 ‘50+인생학교’에 다니면서 느끼고 생각한 바를 바탕으로 ‘인생 후반기 로드맵’을 발표하게 된다.
지금 시작하라 50+인생학교
50대에서 60대 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이런 프로그램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을 비롯해 부산, 광주, 전주, 제주, 부천 등 여러 곳에서 진행하고 있다. 대부분 시의 지원을 받거나 그 지역의 평생학습센터에서 진행한다. 중장년층에 대해 인생 재설계 교육을 실시하고 사회공헌과 커뮤니티 활성화 등을 지원하자는 취지로 운영된다. 필자도 지난 10월 전주의 ‘50+인생학교’에 등록했다. 경기 용인에 사는 필자가 굳이 가까운 서울을 두고 전주를 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그곳을 다녀온 사람들의 만족도가 아주 높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참여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 재수생이 생길 정도로 인기가 있다는 소문이 흘러나왔다. 역시 사람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었다. 좀 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려는 실무자들의 노력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매주 월요일 저녁마다 전주로 향하고 있다.
‘50+인생학교’에 지원하게 된 동기는 무엇일까. 무척 궁금했다. 이번 프로그램에 참석한 사람은 총 35명으로 첫날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1972년생(46·여)부터 1955년생(63·남)까지 나이 편차는 그리 크지 않았다. 참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대략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었다. 그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 내용은 역시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한 고민이었다. 1963년생 채미란(가명·여)씨는 “50이 되기 전에 인생 2라운드를 시작하기 위해 사업도 해보고 보험도 해보고 열심히 살았지만 허둥대다가 지쳐버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 문을 두드려봤지만 대부분은 나이에서 제쳐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역시 1963년생 조성애(가명·여)씨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무언가를 도전하기에 늦지 않았을까 망설여진다”고 하면서 이번 기회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새로운 자신감을 발견하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이번 모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1955년생 강경수(가명·남)씨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의 공감을 샀다. 35년 동안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집에 있는데 어느날 손주가 학교에 가면서 자기 친구 ‘생파’에 가야 하니까 ‘생선’을 준비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강경수씨는 그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생파’는 ‘생일파티’, ‘생선’은 ‘생일선물’을 뜻했다. 세대 간에 언어가 다르다 보니 손주와도 친해질 수가 없고, 건강 때문에 술을 끊으니 술친구도 떨어져나가게 되었다. 그래서 인생에 대한 새로운 설계가 필요해 참여하게 되었다고 했다.
1960년생 박제천(가명·남)씨는 소통을 강조했다. “인생의 전환기에 내 이웃들은 어떤 자세로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지 알고 싶고 그들과 소통하면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미래를 설계하는 계기를 갖고 싶다”고 했다. 건강이나 이별이 지원동기가 된 경우도 있었다. 1965년생 김정임(가명·여)씨는 “아버님과의 갑작스러운 이별의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오십견의 고통을 겪었다”면서 “몸이 불편하니 인생을 뒤돌아보고 준비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아서 신청했다”고 했다.
1963년생 나수연(가명·여)씨는 “암치료를 받은 후 효율성만을 찾던 삶에서 벗어나, 자신과 이웃 그리고 자연까지도 아끼는 삶을 살고 싶고 또 삶에 대한 가치와 고민을 또래와 공유하고 싶어서 지원했다”고 했다. 참석자 대부분은 1963년생 박수미(가명·여)씨처럼 “딱 50이 되고 보니, 내 삶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또한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 만들어갈 시간에 쉼표와 마침표를 만드는 방법을 찾고자” 신청했고, “중년 이후의 삶은 헛되지 않고 뜻 깊고 보람 있게 보내고 싶은 마음”에 지원했다고 했다. 앞으로의 삶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 수 있도록 현재의 시간을 정리하고 계획을 세우겠다는 마음들이 컸다.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앞으로의 삶에서는 욕심, 화, 원망, 아집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내려놓고 싶다고 말했다.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후회나 체면, 물질적 욕심 등도 내려놓고, 가능하면 자신을 발견하고 봉사활동도 하면서 남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인생 후반을 준비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모두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고 한다. 그럴 때 ‘50+인생학교’에서 내세운 ‘뭔가 할 수 있다면 지금 시작하라!’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보고 큰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원래 이 글은 괴테가 한 말이다. ‘꿈을 품고 할 수 있다면 그것을 시작하라.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용기 속에 당신의 천재성과 능력과 기적이 모두 숨어 있다’라는 문장에서 따온 글귀다. 참석자들이 비록 괴테의 말처럼 새로운 일을 시작하여 자신 안에 숨어 있는 ‘천재성과 능력과 기적’을 발견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지금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발견하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참석자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모두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았다. 해답을 찾으려는 시도만으로도 50 이후의 인생은 이전과는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젊은 공자가 늙은 후배에게 가라사대
이런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협화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자신의 색깔이 분명한 어른들이 만나다 보니 의견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사소한 다툼이 발생하는 것이다. 50대는 의식 밑바닥에 가부장적인 사고방식과 민주적인 유연성을 동시에 품고 사는 세대다.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모르게 타인의 삶의 방식을 부정하고,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는 경우가 생겨난다. 아주 사소하지만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지는 데는 자신을 떠나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소통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문득 공자(孔子·BC 551~BC 479)가 떠올랐다. 공자는 가부장제의 낡은 유산을 확립한 ‘적폐’의 원흉으로 손가락질받기도 하지만 그건 잘 몰라서 하는 소리다. 알고 보면 그는 굉장히 ‘쿨(cool)’하고 ‘나이스(nice)’한 사람이다. ‘논어’ ‘자한’ 편에는 그가 아주 멋진 ‘캐릭터’임을 확인할 수 있는 문장이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자절사(子絶四), 무의무필무고무아(毋意毋必毋固毋我).’ 뜻은 이렇다. ‘공자는 네 가지를 단절하였다. 선입견이 없고, 반드시 함이 없고, 고집이 없고, 아집이 없었다.’ 자(子)는 공자다. 절(絶)은 완전히 없앰이고, 무(毋)는 무(無)다. 의(意)는 선입견이고, 필(必)은 기필함, 고(固)는 고루함이고, 아(我)는 아집이다. 공자에게는 나이 든 사람의 필수항목 같은 선입견과, 기필함과, 고루함과 아집이 없었다는 뜻이다. ‘절사(絶四)’는 고준한 경지에 오른 현자(賢者)가 아니고서는 갖추기가 쉽지 않다. 보통 사람은 ‘절사’하는 대신 ‘필사(必四)’를 고집한다. 그래서 ‘유의유필유고유아(有意有必有固有我)’한 사람이 된다. 공자는 이 네 가지를 단절했기 때문에 2500년 동안 부동의 현자 1위에 ‘캐스팅’될 수 있었다. 2500년 전의 젊은 공자가 늙은 후배에게 한 수 가르쳐준다.
이런 현자가 어느 날 제자들과 함께 주(周)나라의 태조인 후직(后稷)의 묘당(廟堂)에 들어가게 되었다. 묘당의 우측 계단 앞에는 쇠로 만든 사람이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얼굴이 이상하다. 그 입은 세 겹으로 봉해져 있었고, 그 등에 다음과 같이 글이 새겨져 있었다. ‘옛날에 말을 삼가한 사람(愼言人)이다. 경계하라. 말을 많이 하지 말라. 말을 많이 하면 낭패가 많으리라. 진실로 삼가할 수 있다면 이는 복의 근원이니라. 그렇게 하면 어찌 입이 화를 입는 문이 되겠는가?’ 이 글을 본 공자가 제자들을 돌아보며 “이 말은 실로 옳다. 사정에 맞는 것이 틀림없다. 몸가짐을 이와 같이 하면 어찌 입으로 화를 당하겠느냐?”라고 말하였다. 이 상황을 그린 것이 ‘금인명배(金人銘背)’다. 공자의 일생을 그림으로 엮은 ‘공자성적도(孔子聖蹟圖)’에 나온다. 공자가 살았던 시대에도 신언, 즉 입조심해야 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했던 모양이다. 어찌 공자 시대뿐이겠는가. 이이(李珥·1537~1584)도 ‘신언구언(愼言懼言·말을 삼가고 두려워하라)’이라는 말을 당부했다. 김홍도(金弘道·1745~1810 이후)는 ‘신언인’을 그림으로 남겼다. 세 치 혀끝에서 당쟁과 동서분당이 발생했고, 그 결과 삼족(三族)이 멸하거나 온 집안이 쑥대밭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니 인간관계에서 입조심은 예나 지금이나 꼭 필요한 덕목이다.
‘신언’의 교훈을 요즘 말로 해석하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라’가 될 것이다. 지갑은 굳게 닫고 입만 주야장천 열어대는 사람은 어디서든 환영받지 못한다. 특히 젊은 사람들을 만났을 때 ‘신언’은 필수조건이다. 젊은 사람들이 나이 든 사람들을 기피하는 이유도 알고 보면 ‘지갑은 닫고 입만 열기 때문’이다. 단지 오래 살았다는 ‘짬밥’만으로 바쁜 사람 앉혀놓고 지갑 대신 ‘입 털기’를 융단폭격하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어른들을 피해 다닌다. 그런 사정은 무시한 채 어른들 말을 귀담아듣지 않으면 당장에 ‘싹수’ 없는 인간으로 낙인찍어버리는 행위를 어른들은 얼마나 자주 하고 있는가. 어른들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서, 나와 정치적인 성향이 다르다 해서,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해서 입만 열었다 하면 ‘저주진언’을 퍼붓는 어른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모임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 역시 ‘신언’이다. 어떤 커뮤니티에 간 목적은 배우기 위해서지 남을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와 다른 타인의 행동이나 말투, 제스처를 비난하거나 수정하는 대신 인정해주고 받아주기 위해서 간 것이다. 우리 모두 ‘갈 수 없고’ ‘가고 싶지 않은 길’을 가겠다고 용기를 내어 나선 사람들이 아닌가. 50이라는 나이에 말이다.
-조정육 미술평론가, 주간조선(18-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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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은 길
"나이 쉰 이전의 나는 한 마리 개에 불과했다. 앞에 있는 개가 자기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같이 따라 짖었다." 명나라 말기, 공맹유가(孔孟儒家) 사상을 거부했던 괴짜 철학자 이탁오(李卓吾)는 공자의 그늘을 벗어나 자신만의 사유(思惟)를 펼친 때가 쉰을 넘어서였다고 했다. 가족을 부양하느라 하급 관직을 전전하다 53세에 벼슬길에서 물러난 뒤에야 독자적 사상을 담은 '분서(焚書)'와 '장서(藏書)'를 쓰기 시작했다.
▶처칠은 노년을 그림 그리기에 빠져 보냈다. "하늘나라에 가서 내 첫번째 100만년은 그림 그리는 데 다 써버리고 싶다"고 할 정도였다. 집은 물론 프랑스, 북아프리카, 멀리 미국 로키산에도 이젤을 세워둔 스튜디오를 마련했다. 그는 "캔버스는 시간의 시샘, 서서히 밀려오는 쇠락으로부터 지켜주는 보호막이다. 그림을 그리면 빛과 색, 평화와 희망이 마지막 날까지 함께한다"고 했다. 그의 그림은 6억원대에 거래될 만큼 인정받는다.
▶나이 들어 생활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게 되면 사람들은 비로소 자신을 위해 하고 싶은 일에 눈을 돌린다. 오래 묻어뒀던 꿈을 되살린다. 김준성은 63세에 경제부총리를 끝으로 관직을 떠난 뒤 소설 쓰기에 몰두해 장·단편 수십 편을 발표했다. 그는 38세 때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지만 잇따라 은행 요직을 맡게 되면서 문학의 열망을 접어뒀었다. 그는 재작년 87세로 타계하기 두 달 전 인터뷰에서 "소설가 김준성으로 오래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서울지법원장을 지낸 강봉수 변호사가 물리학을 공부하고 싶었던 소년 시절 꿈을 이루려고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는 얘기가 어제 조선일보에 실렸다. 수억대 연봉을 받는 대형 로펌 고문변호사 자리를 던지고 나이 66세에 선택한 길이다. 그는 고교시절 노벨 물리학상을 꿈꾸던 이과반 수재였지만 아버지가 법관이 되기를 원해 서울대 법대로 진학했다고 한다.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봤습니다….' 프로스트의 시처럼 누구나 가슴에 '가지 않은 길' 하나쯤 품고 살아간다. 그러나 대개는 그 길을 평생 바라보기만 하다 떠나고 만다. 여건이 안 된다고들 하겠지만 용기가 없기 때문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물리학도의 꿈을 찾아 떠나는 노(老)변호사의 용기가 부럽다.
-오태진 수석논설위원, 조선일보(09-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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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은 길
노란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 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들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걷다 보면,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나는 어디에선가
한숨을 지으면서 이야기 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The Road Not Taken
-Robert Frost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And be one traveler, long I stood
And looked down one as far as I could
To where it bent in the undergrowth;
Then took the other, as just as fair,
And having perhaps the better claim
Because it was grassy and wanted wear,
Though as for that the passing there
Had worn them really about the same,
And both that morning equally lay
In leaves no step had trodden black.
Oh, I kept the first for another day!
Yet knowing how way leads on to way
I doubted if I should ever come back.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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