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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금니로 사는 나라’ ‘송곳니로 사는 나라’] ....

뚝섬 2023. 12. 23. 08:26

[‘어금니로 사는 나라’ ‘송곳니로 사는 나라’]

[자유주의 위기의 해, 1923년과 2023년] 

[‘중국몽’이 인권·자유보다 더 큰 꿈인가]

 

 

 

‘어금니로 사는 나라’ ‘송곳니로 사는 나라’

 

[강천석 칼럼]

사회 인프라 개혁은 경부고속도로 건설보다 더디고 힘든 과제
한국은 지각생, 2024년 ‘舊정치’ 退出시켜야 나라가 거듭난다
 

 

송곳니를 주로 쓰는 나라와 어금니로 부지런히 씹어서 사는 나라가 있다. 송곳니가 군사력이라면 어금니는 경제 파워다. 핵무기·미사일 등 송곳니만 돌출(突出)한 나라 대표가 북한이다. 국가 자원을 송곳니 가는 데만 사용하는 나라는 단명(短命)할 수밖에 없다. 그 반대편에 중세 베네치아, 현대의 싱가포르·네덜란드·벨기에처럼 경제력 배양에 치중하는 첨단 산업 중심의 통상(通商) 국가가 있다.

 

정상(正常) 국가들은 송곳니와 어금니의 균형을 추구한다. 역사가 송곳니에만 의존한 나라는 가난을 벗기 힘들고 어금니 하나로 이룬 번영은 외부 침략을 부른다는 사실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1600년대 중반에서 1700년 후반까지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던 자본주의 경제 대국은 네덜란드였다. ‘주식회사’ ‘주식시장’이 그곳에서 탄생했다. 해적(海賊)을 활용해 해군을 강화한 당시 영국은 100년 동안 4차례 전쟁을 벌여 네덜란드를 밀어냈다. 두 나라 해군 식단표(食單表)를 보면 네덜란드 졸병 메뉴가 영국 함장보다 호사스러웠다. 선군(先軍) 노선으로 경쟁 국가를 밀어낸 영국은 그 후 국가 전략을 바꿨다. 전성기 영국은 GDP 대비 국방 예산 비율이 가장 낮았던 패권 국가였다. 폭 35.4km 도버해협이 유럽 대륙에서 튀는 전쟁 불똥을 막아줬기 때문에 가능한 전략이기도 했다.

 

1991년 소련 붕괴 때 미국과 소련 군사력은 비슷했다. 그러나 소련 종합 국력(國力)은 높이 쳐도 미국의 60% 수준이었다. 이런 국력으로 미국과 대등한 송곳니를 유지하려 하다 경제가 왜곡되고 몰락을 앞당겼다. 중국은 과거 소련보다 까다로운 상대다. 형태야 어떻든 중국엔 시장(市場)이 존재하고, 시장은 경제의 과도한 왜곡을 막는 경고등(警告燈)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對)중국 정책이 냉전 시기 대소련 전략 정책과 다른 이유다.

 

한국은 75년 전 정부 수립 때 송곳니도 어금니도 없던 나라였다. 이제 한국은 세계 10위권 경제와 그에 버금가는 군사력을 가진 나라로 변했다. 한국은 어금니로 경제력을 기르고 송곳니론 그 체제를 지키온 나라다. 경제 통상 국가에 가까운 나라다. 통상 국가에는 그에 맞는 번영의 전략이 있다.

 

어느 중동 전문가도 2023년 새해 하마스 선공(先攻)으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터지리라고 예고하지 못했다. 2021년이 저물 무렵 내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侵攻)하리라고 내다본 전문가도 없었다. 1990년 새해 벽두 미국 신문 월스트리트저널은 ‘도쿄(東京) 주식시장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돈 벌 기회를 놓칠 것’이라고 호언장담(豪言壯談)했다. 두 달 후 도쿄 주식시장은 빠지기 시작해 2013년까지 23년 동안 폭락을 거듭했다.

 

이렇게 모든 예측이 빗나갈 때, 우리는 역사라는 숫돌에 벼려 상황 판단력을 날카롭게 다듬어야 한다. 역사는 다가올 위기를 미리 귀띔해 주진 못해도 위기 극복에 필요한 자세와 역량(力量)이 무엇인지 일러주기 때문이다.

 

1851년 세계는 제1회 런던 만국박람회가 영국 번영의 절정기(絶頂期)라며 감탄했다. 쇠락(衰落)의 씨앗은 이 절정에서 싹텄다. 훗날 영국은 이 순간부터 가라앉기 시작한 것으로 판명됐다. 강철과 화학의 시대 개막을 코앞에 두고 두 분야 선두를 독일에 빼앗긴 것이다. 거듭된 경고에 정치권과 대중은 귀를 닫았다.

 

1948년 이후 한국이 지금처럼 부강(富强) 부유했던 시대는 없었다. 여러 면에서 초일류 국가와 아직 격차가 크다 해도 이 사실은 부인하지 못한다. 지금이 절정이라면 영국 역사에서 보듯 대한민국 바닥 여러 곳에서 이미 대형 누수(漏水)가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선진국은 후진국보다 문제가 적은 나라가 아니다. 선진국 문제는 후진국 문제보다 몇 배 풀기 어렵다. 1968년 416km의 경부고속도로를 착공해 완공하는 데까지 2년 5개월이 걸렸다. 그러나 지속 불가능하고 비효율적 사회보장제도 개혁, 최적(最適) 인재를 길러내 최적의 자리에 배치하는 교육 제도와 성과(成果)·보수 시스템 혁신, 고용의 유연성 확보, 인구 감소나 노령화 대비 같은 사회 인프라 레일을 새로 깔고 정비하는 일은 고속도로 건설보다 훨씬 더디고 어렵다. 한국은 이미 지각생이다. 역사는 지각생을 벌(罰)하는 법이다.

 

한국 정치는 지난 20년 부스럼만 건드리고 속병(病)은 외면해왔다. 로마는 당대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던 정치 시스템이 차례로 무너지고 새로운 정치 시스템이 등장했기에 천 년 번영이 가능했다고 한다. 무너져야 할 것이 제때 무너지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거듭나지 못한다. 2024년은 구(舊)정치 몰락의 원년(元年)이 돼야 한다.

 

-강천석 고문, 조선일보(23-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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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위기의 해, 1923년과 2023년

 

지금부터 100년 전인 1923년은 국제적 위기의 해였다. 겉으로 보면 세계 열강 간 파멸적 총력전이었던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평화의 시대였다. 하지만 그 전해 러시아에서는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킨 볼셰비키가 내전을 수습하고 소련을 건국했다. 패전국의 대표이자, 승전국에 가장 가혹하게 응징당한 독일 뮌헨에서는 지역 극우 인사가 폭동을 일으켜 전국적 유명 인물로 부상했다. 그의 이름은 아돌프 히틀러였다. 일본에서는 관동대지진이 일어나며 호황이 끝나고 불황에 진입하게 되었다. 일본의 경제적 혼란은 영국과 미국에 반발하는 극우파가 성장할 토양이 되었다. 세계대전에서 세계 최강국임을 입증한 미국은 국제연맹 가입을 거부하면서 유럽과 아시아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눈을 감았다.

 

1923년의 사건들은 서로가 서로에 영향을 끼치며 국제적 위기를 통제 불능 수준으로 심화시켰다. 이후 15년은 세계대전 전후의 국제 질서인 베르사유 체제가 파탄에 이르는 여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소련에서는 스탈린 체제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사회를 실험한다고 주장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다. 독일에서는 10년 만에 실패한 폭동의 주동자가 카리스마적 총통 자리에 올랐고 군사적 팽창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8년 뒤에 만주를 침략하여 제국을 확장했고, 영미와 협조하자는 세력 대신에 대동아공영권을 건설하자는 급진적 군부가 정국을 주도했다. 이 위기는 마침내 앞선 전쟁보다 훨씬 참혹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1923년 당시부터 100년이 지난 2023년이 저물어간다. 2023년은 역사에 어떤 해로 기록될 것인가? 현재로서는 1923년과 마찬가지로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위기가 심화된 해로 기억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푸틴이 시작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2년을 향하고 있고, 초기의 위기를 넘긴 러시아는 놀라운 회복력을 보이며 우크라이나와 서구의 의지를 계속해서 시험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은 인도적 위기를 심화시킴은 물론이고, 아랍 및 이슬람 세계와 서구 사이에 ‘문명 충돌’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올해 있었던 주요 선거에서도 서구 자유주의의 반대자들이 승리를 거두곤 했다. 태국에서는 군부 정권에 대한 반발로 정권 교체 바람이 크게 일었으나, 현 여당이 주도하는 선거 제도의 한계로 민주주의 요구 세력인 전진당의 집권은 좌절되었다. 튀르키예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신오스만주의’를 내세우며 튀르키예의 영광스러운 과거를 복원하겠다는 에르도안이 대통령으로 재선됐다. 주요 자유주의 강대국인 독일에서는 극우로 평가받는 ‘독일을 위한 대안당’이 지방 선거에서 약진했다..

 

한 해를 돌아보면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주의 국제 질서에 대한 도전이 세계 각지에서, 심지어 서구 세계 내부에서도 거세지고 있음이 더욱 명백해진다. 2023년이 1923년의 데자뷔처럼 보이는 이유다. 그렇다면 2023년은 위기가 파국으로 이어진 1923년이 될까? 어쩌면 석유 파동과 월남전 패배라는 위기를 극복하고 미국이 IT 혁신과 사회 통합을 새로 이루어낸 1973년을 재현할 수도 있다. 위기가 더욱 심화될지, 아니면 재정비의 발판을 마련해줄지, 현재로서 알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내년은 그 단서들이 더욱 명확히 보이는 해다. 다가오는 1월에는 대만에서, 11월에는 미국에서 대통령 선거가 있다. 이 두 선거 결과가 지금의 국제 질서와 한국의 미래를 결정지을 것이 분명하다. 공교롭게도 내년에는 한국에도 중요한 선거가 있다. 하지만 한국은 세계의 향방이 결정될 2024년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을까? 한국의 선택 또한 2024년에 윤곽이 드러날 국제 질서의 향방에 중요한 영향을 끼칠 것을 고려하면, 작금의 천하 대세에 대해서 여야가 자신들의 입장을 밝힐 이유는 충분하다. 다가올 위기의 해와 위기의 10년, 대만, 미국, 그리고 한국의 선택은 무엇이 될 것인가. 2024년이 긴장되는 이유다.

 

-임명묵 대학원생·'K를 생각한다' 저자, 조선일보(2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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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몽’이 인권·자유보다 더 큰 꿈인가

 

中대사 “천하대세 따라야” 발언, 대세 잘못 짚은 나라는 중국
세계는 인권·자유·민주로 가는데 중국은 ‘중화민족’ 부흥 내걸고
거꾸로 가며 세계 상대로 싸움… 中이야말로 대세 따라야 성공

 

얼마 전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가 한국을 향해 “천하대세를 따르면 창성한다는 말이 있다”고 했다. “높은 산맥의 나라” 중국의 대사가 “중국몽에 동참하겠다”는 “작은 나라”를 향해 “시진핑 주석의 영도 아래” 욱일승천하는 중국의 질서에 순응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주권국가 간 외교의 프로토콜을 어기는 비례(非禮)의 언어지만 놀라거나 분노할 필요는 없다. 현재 중국 공산당은 이 세상의 “천하대세”를 잘못 짚고 있고, 천하대세에 거역한 결과 절체절명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중국 자금성 /Pixabay

 

20세기 초 공화 혁명의 아버지 쑨원(孫文)은 청나라 황제를 보위하는 보황파(保皇派)를 향해 일갈했다. 천하대세는 크고도 세차니 순응하는 자는 창성하고 거역하는 자는 멸망한다(天下大勢 浩浩蕩蕩 順之者昌 逆之者亡).” 2000년간 중화 제국을 유지해온 ‘황제 지배 체제’는 세계사의 큰 흐름에 어긋난다는 발언이었다. 그의 예언대로 1911년 제국(帝國·황제의 나라)이 해체되고 민국(民國·국민의 나라)이 들어섰다.

 

당시 쑨원은 널리 알려진 사마천(司馬遷)의 문장을 압축해서 공화 혁명의 당위를 설파하는 16자의 비결(祕訣)로 삼았다. 사마천의 원문을 보면, 천하대세 대신 “음양사시(陰陽四時), 팔위(八位), 십이도(十二度), 이십사절(二十四節)에 각각 교령(敎令)이 있으니”란 표현이 나온다. 여기서 교령이란 시간과 공간에 엄격하게 작동하는 자연의 교시와 명령을 말한다. 자연 질서를 따르면 창성하고, 어기면 망한다는 통찰이다. 결코 어려운 얘기가 아니다. 생존 본능상 인간은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게 마련이다.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천하대세를 어렵잖게 파악할 수 있다. 개인적 인권 신장, 민주주의 확산, 법치 확립, 권력 분립, 경제적 통합, 문화적 혼융, 범인류적 연대다. 돌려 말하면 집단주의의 퇴조, 전체주의의 몰락, 독재 권력의 파멸, 고립 노선 폐기, 국수주의 퇴출이다. 바로 이러한 인류사의 도도한 흐름을 쑨원은 천하대세라 불렀다. 사마천의 표현을 빌리면 범우주적 교령이다. 인류 역사를 살펴 인간의 관점에서 냉철하게 따져보자. 중국 공산당은 과연 천하대세에 순응하고 있나. 범우주적 교령에 복종하고 있나.

 

1949년 건국 이래 중국 공산당은 천하대세를 거슬러 숱한 위기를 자초했다. 대약진 운동(1958~1962)은 경제적 현실을 무시한 과도한 집산화로 인류사 최악의 대기근을 초래했다. 당시의 천하대세는 좌우 전체주의 정권 타도, 유엔 세계 인권 선언 구현, 자유무역 확대, 빈곤 퇴출이었지만, 중국 공산당은 거꾸로 갔다. 이어진 문화 대혁명(1966~1976) 기간에 중국 인민은 ‘조반유리(造反有理)’의 광열 속에서 인권 유린, 집단 폭력, 대량 학살, 무장 투쟁, 대민 테러로 점철된 ’10년의 대동란(大動亂)’을 겪어야만 했다. 1981년 6월 27일 중국 공산당이 직접 나서 “마오쩌둥 동지가 일으키고 이끈 문화 대혁명은 당과 국가와 인민에게 건국 이래 가장 엄중한 좌절과 손실을 끼쳤다”고 인정했을 정도다.

 

중국은 1978년 이래 비로소 ‘개혁 개방’의 기치 아래 고립과 자폐의 동굴에서 벗어났다. 개개인의 이윤 동기를 인정한 후 자유무역의 천하대세를 따랐기에 30~40년 만에 1인당 GNP 1만달러의 샤오캉(小康) 사회를 달성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현재 중국 공산당은 ‘중화 민족’의 부흥을 외치며 천하대세를 거슬러 전 세계를 상대로 무모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국제사회에 약속한 홍콩의 자치를 허물고, 중국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며, 개개인의 일상을 옥죄는 디지털 독재를 강화하고 있다. 오죽하면 수백만 홍콩 시민이 “천멸중공(天滅中共·하늘이 중국 공산당을 멸망시킬 것이다)” 구호를 외치며 거리에 쏟아져 나왔겠나. 지금 세계 각국의 반중 감정은 인구의 70~80%를 넘어서고 있다. 대체 중국몽이 무엇인가. 개인의 인권, 자유, 반독재, 법치, 민주주의보다 더 큰 꿈인가? 바로 홍콩에서 공화 혁명을 시작한 쑨원의 말 그대로 천하대세에 역행하는 자는 멸망한다. 사마천의 통찰대로 범우주적 교령에 복종할 때 비로소 중국은 인류와 더불어 창성할 수 있다.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 역사학, 조선일보(21-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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