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전자레인지'가 된 요즘 식당] .... [맛집 방송]
['거대한 전자레인지'가 된 요즘 식당]
[추천사]
[‘알몸 절임 배추’ 뺨친 ‘발 닦은 수세미 무’]
[맛집 방송]
'거대한 전자레인지'가 된 요즘 식당
늦은 저녁 식당에 들어가 메뉴판에 적힌 ‘알탕 2만9000원’을 주문했을 때, 이내 나올 음식이 6900원짜리 밀키트를 데워 담아준 것이라곤 예상 못 할 것이다. 유행에 올라타 10호점, 100호점 가맹점만 늘리는 식당이 늘고 있다. 오래 한 자리를 지키며 맛과 손님을 연구하는 개인 식당은 사라지는데, 이런 장삿속 식당들은 번화가 어귀는 물론 동네의 먹자골목까지 점령했다. 거리에 식당은 넘쳐나는데 맛집 찾기는 갈수록 어렵다.
요리가 아니라 간단하게 조리만 해서 내주는 요즘 식당을 두고 ‘거대한 전자레인지’라는 말도 나온다. 빠른 회전율과 업주 편의를 위해 가맹 본부나 식자재 마트를 통해 거의 완성된 음식을 받아오기 때문이다. 이런 가게들은 외관이나 메뉴가 판에 박힌 듯 비슷해서 나중에 어느 식당에서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기억나지도 않는다. 이자카야(일식 주점)는 대부분 히라가나로 된 상호에 하이볼·닭꼬치·대창전골을 팔고, 간판에 굵은 획으로 ‘○○ 포차’라 써 붙인 저렴한 생맥주 가게들은 감자튀김·치킨·짬뽕탕 등을 판다.
저렴한 값에 쉽게 요리를 내주는 곳도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런 식당이 저렴한 것도 아니다. 가게를 운영하는 초보 점주들은 간편하게 인건비 덜 들이며 음식을 만들어야 하고, 개업 초기에 들어간 홍보비·인테리어비·임차료를 메워야 한다. 프랜차이즈 본부는 점주에게 밀키트나 식재료를 팔아 마진을 더 남긴다.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가격이 내려가지 못한다. 결국 억울한 건 손님들이다. 언제 어디서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냉동 음식을 데워주는 식당에서 비싼 돈을 지불하고 먹는다.
맛보다 화제에 기대려는 식당들이 공식처럼 따르는 마케팅 방법이 있다. 첫째는 음식을 클로즈업하면 연예인들이 탄성을 지르고, 가게 상호를 보일락 말락 노출하는 몇 분의 방송에 수천만 원을 투자하는 것이다. 유명한 방송의 경우 최소 3000만원부터다. 또래 친구들은 방송에 출연한 식당은 거르고 본다는 분위기다. 또 포털사이트 지도에서 가게를 검색했을 때 먹음직스러운 메뉴 사진이 상단에 나올 수 있도록 전문 사진가를 고용해 촬영하는 방법이나, SNS 홍보 대행업체에 의뢰해 식당 관련 게시글을 올리는 방법도 있다.
결국 이런 식당들은 개업한 지 몇 년도 안 돼 ‘임대’ 종이가 붙는다. 혹은 다른 프랜차이즈로 간판이 바뀌어 있는 경우도 있다. 재작년 요식업에 종사하는 자영업자 중 15만8000명이 폐업 신고를 했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전체 외식업체의 폐업률은 32.3%였다. 지난 5년 동안 외식업체 10곳 중 3곳이 문을 닫은 셈이다. 이렇게 식당들이 유행처럼 생겨났다 없어졌다 하는 사이 자영업자들은 빚더미를 안게 된다.
은퇴한 직장인의 마지막 희망이라는 요식업 창업이 빚으로 끝나는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한다. 식당이 맛보다 분위기나 유행에만 의존하면 손님은 두 번 방문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많은 손님을 한 번에 혹하게 하는 비법보다는 손님을 여러 번 방문하게 만드는 식당이 오래 살아 남을 수 있다.
-신지인 기자, 조선일보(25-01-10)-
________________
추천사
책을 쓰면 추천사를 부탁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추천사를 청탁받을 때가 종종 있다. 대개 책 홍보에 필요한 추천사지만 아주 가끔 난감한 일이 생기기도 한다. 책을 읽다가 추천사를 쓸 자신이 없어질 때인데 결국 완곡하게 고사한다. 추천에는 여러 분야가 있다. 문화 예술계에선 책과 영화, 전시, 공연, 여행지 등이 대상이다. 나는 쏟아지는 영화와 책, 공연을 전부 찾아볼 수는 없어서 안목이 뛰어난 지인들에게 추천받을 때도 많다.
새로운 지역으로 여행을 가면 주로 맛집 추천을 받는다. 긴 줄은 사람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오랜 시간을 기다린 ‘매몰 비용’은 미각을 돋우는 향신료 역할을 한다. 특히 맛집이라는 식당에서는 유명 연예인의 사인과 추천 문구가 많이 보인다. 언제가 방송인 신동엽이 맛집 추천에 대해 하는 말을 들었다. 연예인 입장에서 식당 주인이 간절히 원하면 사인을 안 해줄 수가 없는데, 특히 맛이 별로면 정말 난감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사람마다 입맛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어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진짜 맛있는 집이면 “제 입맛에는 진짜로 맛있네요!”라고 쓴다고 고백했다. 그의 말처럼 입맛은 취향 문제라 정답이 없다. 그러므로 그가 쓴 추천의 말은 옳다.
추천의 어려움을 생각할 때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출 소감이 떠오른다. 자신을 추대한 사람들에게 “저같이 모자라는 사람을 교황으로 뽑아준 분들을 주님께서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고백한 그가 아닌가. 얼마 전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소개를 주선한 커플이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고마움을 표한 것이다. 오히려 내가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모든 추천은 어렵지만 특히 사람 추천이 가장 힘들다. 사람은 변하기 때문이다. 변해서 좋은 것과 변하지 않아서 좋은 것 중, 어느 쪽이 더 좋을까. 내 경우, 사람이라면 시간에 마모되듯 부드럽게 변해가는 사람에게 끌린다. 맛집이라면 변하지 않는 한결같음이 훨씬 더 미덥다. 역시 추천에는 정답이 없다.
-백영옥 소설가, 조선일보(22-10-22)-
______________
‘알몸 절임 배추’ 뺨친 ‘발 닦은 수세미 무’
어느 식당 화장실에서 요리사가 용변 후 손도 안 씻고 주방에 들어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저 손으로 만든 요리를 먹었다고 생각하니 속이 울렁거렸다. 유명 곰탕집 단골 한 분이 우연히 주방을 보게 됐다고 한다. 큰 대야에 담긴 구정물에 먹고 나온 그릇을 한 번 담갔다 꺼내는 게 설거지의 전부였다. 종업원은 그 그릇들에 곰탕을 담아 손님 테이블로 내갔다.
▶인터넷에 ‘식당 불결’이라고 치면 더러운 음식점에 대한 고발이 넘친다. 이쑤시개가 들어 있는 김치는 남이 먹던 것을 다시 내놨다는 뜻이다. 그릇을 닦고 나서 테이블과 의자까지 닦는 건 행주냐 걸레냐는 하소연도 있다. 사람이 말할 때마다 침방울 360개가 쏟아져나오고 재채기 한 번 하면 4만개 침방울이 8m 밖까지 튄다고 한다. 그래도 종업원들이 입가리개를 하는 식당은 희소하다. 코로나로 마스크를 쓰게 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무를 담아 씻는 대야에 자기 발을 담그고 무 씻던 수세미로 발까지 닦은 어느 식당 종업원 영상이 엊그제 인터넷 공간을 달궜다. 함께 있던 여성은 그걸 보고도 아무 제지도 하지 않았다. 그 식당에서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 지난 3월 중국 알몸 절임 배추 영상이 공개된 후 사람들은 식당만 가면 “여기 중국 김치 쓰느냐”며 찜찜해했다. 이젠 “발 닦은 수세미로 씻은 무 쓰느냐”고도 물어야 하는 지경이 됐다.
▶불결한 식당 위생은 미국에서도 문제가 됐다. 어느 햄버거 가게 종업원은 코딱지를 식재료에 던졌다가 몰카에 찍혔다. 뉴욕에서 식당 100곳 위생 상태를 점검했더니 87곳에서 바퀴벌레와 쥐가 나온 적도 있다. 미국 시민사회는 단호하게 대응하는 것으로 문제를 풀었다. 뉴욕주 상원의원이 팔 걷고 나서서 더러운 식당들 이름을 공개했다. 우리도 이래야 한다.
▶세계 최고 권위의 맛집 안내서로 꼽히는 미쉐린 가이드는 맛만 좋다고 실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청결까지 평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맛집 목록인 미쉐린 빕 구르망 리스트에 오른 서울의 한 해장국집에 가봤더니 테이블에 기름때 하나 없고 그릇과 수저도 깨끗했다. 주방을 개방해 내부가 훤히 보여 마음이 놓였다. 맛만 좋으면 더러운 것을 눈감아주던 시절은 끝나야 한다. 국물 담긴 그릇에 엄지 손가락을 넣어 들고 오는 꼴만은 그만 봤으면 한다. 그것 고치는 게 어려운 일인가. ‘맛은 최고가 아니지만 위생은 자신 있다’는 식당 있다면 당장 단골로 정하고 싶은 심정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1-07-30)-
______________
맛집 방송
"TV 소개땐 값 오르고 맛 잃어" 동네주민 등 불만 글 쏟아져
서울 관악구에 사는 이재훈(27)씨는 지난 18일 평소 즐겨 찾던 서울대입구역 근처 수제(手製) 버거 가게를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최대 11명이 들어갈 수 있는 16㎡(약 4.8평) 남짓한 작은 가게 앞에 40여명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가게는 원래 동네 단골들한테만 알려진 '숨은 맛집'이었다. 그런데 지난 17일 한 공중파 프로그램에 소개된 뒤 손님들이 구름처럼 몰려든 것이다. 이씨는 "방송 보고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오래된 단골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며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는 말이 딱 이럴 때 쓰는 표현 같다"고 말했다.
요리와 맛집을 주제로 한 TV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끌면서 '맛집 프로그램 공포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한번 방송을 탄 음식점은 붐비는 것은 물론 특유의 맛과 분위기까지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정모(29)씨는 동네 단골 초밥집이 케이블 방송에 나온 뒤 발길을 끊었다. 정씨는 "예전에는 매일 좋은 재료를 구해온 티가 났었는데, 방송에 나온 뒤에 가봤더니 가격이 올라 있고 재료 상태도 영 아니었다"며 "맛집 프로그램이 오히려 맛집을 망치는 것 같다"고 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즐겨 찾던 식당이 TV에 소개됐다'는 이유로 불만을 토로하면서 '제발 동네 맛집은 그냥 그대로 둬 달라'고 요구하는 글이 많이 올라온다.
유명세를 피해 방송 출연을 거절하는 식당들도 있다. 경기 가평군에서 닭갈비집을 운영하는 박모씨는 공중파 3사의 방송 출연 제의를 모두 거절했다. 박씨는 "지금도 손님들로 북새통인데 손님이 더 늘어나면 가게가 시끄러워지고 감당할 수도 없다"며 "단골손님들도 우리 식당이 알려지는 걸 원치 않는다"고 했다. 충북 제천시 한 국숫집은 "하루 2시간 영업할 만큼만 준비하다 보니 단골손님들 드리기에도 음식이 부족하다"고 했다.
맛집 스트레스는 해외 유명 식당도 마찬가지로 겪는 현상이다. 지난 1월에는 세계적인 레스토랑 평가서인 미쉐린이 2012년 최고 등급인 별 3개로 평가한 스위스 레스토랑 '오텔 드 빌'의 셰프 브누아 비올리에(44)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외신들은 "완벽주의자였던 셰프가 계속되는 식당 평가에 대한 압박감을 견디지 못한 것 같다"고 전했다.
-김경필 기자/원동근 기자, 조선닷컴(16-1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