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배지] [수령’ 칭호에 ‘주석’ 직함… 김일성급 셀프 등극한.. ]
[김정은 배지]
[수령’ 칭호에 ‘주석’ 직함… 김일성급 셀프 등극한 김정은]
[펑솨이-마윈-판빙빙… 실종후 나타난 그들, ‘그날’엔 입을 닫았다]
김정은 배지
북한에 처음 등장한 배지는 ‘레닌 배지’였다. 김일성 일극 체제가 완성되기 전인 1950년대 말 북한 간부들은 소련 공산 혁명에 성공한 레닌의 옆 얼굴이 새겨진 배지를 달고 다녔다. 1966년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몰아치자 홍위병을 중심으로 마오쩌둥 배지의 인기가 폭발했다. 한 달 생산량이 5000만개를 넘었다는 기록도 있다. 신(神)과 종교를 부정하는 공산당 추종자들이 레닌과 마오쩌둥 얼굴이 들어간 배지를 십자가나 염주처럼 모시고 다녔다.
▶김일성은 정적 숙청을 완료한 뒤인 1970년 ‘김일성 배지’를 공개했다. 처음엔 레닌 배지처럼 옆 얼굴이 들어간 도안이었다고 한다. 우상화에 속도가 붙으면서 다양한 얼굴 사진과 형태의 배지가 나왔다. 전 주민이 달도록 했다. 배지를 ‘초상(肖像) 휘장’으로 부르게 했고 집집이 김일성 초상화도 걸게 했다. 배지나 초상화엔 반드시 “모신다”는 표현을 써야 했다. 숭배하라는 것이다. 배지를 안 달아도 되는 사람은 김일성뿐이었다. 자신이 자신을 숭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김정일도 1992년 ‘김정일 배지’를 만들었다. 노동당 깃발 안에 얼굴이 새겨진 당원용 배지가 귀한 대접을 받았다. 김일성·김정일 얼굴이 같이 새겨진 ‘쌍상(雙像) 배지’는 비싸게 거래되기도 했다. 비당원 등이 사서 으스대려고 했다. 외국인이나 한국 사람이 배지를 구할 수 있느냐고 물으면 “어버이 얼굴을 파는 X도 있냐”며 화를 냈다.
▶북한의 당·정·군 간부들이 전부 ‘김정은 배지’를 단 사진이 지난 30일 처음 공개됐다. 지난 5월엔 각 가정에 김정은 초상화도 배포했다. 김일성에게만 써왔던 ‘태양’과 ‘어버이’ 호칭을 김정은에게 붙이고 있다. 김정은 우상화가 완성 단계라는 뜻이다. 김정은과 부인 리설주는 김일성·김정일 배지를 달지 않고 등장하곤 한다. 김정은 옆에서 의전을 하던 여성도 배지 자리에 은색 브로치를 달았다. 대다수 북 주민이 한국 드라마를 보는 시대다. 김정은 자신부터 배지의 우상화 효과를 믿지 않을 것이다. 이제 김씨 정권에 남은 건 공포 통치와 핵 정도다. 사람을 고사총으로 부수고 소각하는 처형을 목격한 주민들은 트라우마로 옴짝달싹 못 하게 된다고 한다.
▶최악의 경제난이 이어지며 김씨들 배지 가치도 폭락했다고 한다. 북·중 국경 지역에선 김일성 얼굴이 들어간 배지와 화폐가 싸구려 기념품으로 팔린다. 세계 각국 공항에서 남루한 차림에 붉은 배지를 달고 있으면 북한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현지인들에게 멸시당한다. 김씨들 배지가 노예 마크와 다를 게 없다.
-안용현 논설위원, 조선일보(24-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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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령’ 칭호에 ‘주석’ 직함… 김일성급 셀프 등극한 김정은
[위클리 리포트]
김정은 집권 10년… 우상화 작업 본격화
金, 빠르게 당-정-군 장악
김일성-김정일 벗어나 ‘김정은 시대’
다음 달 17일이면 2011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지 10년이 된다. 27세의 젊은 후계자였던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집권 10년을 맞는다.
2011년 12월 김 위원장이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 김정일의 운구차를 뒤따르던 모습이 공개되자 일각에선 경험이 부족한 20대 지도자가 정권을 지킬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퍼졌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집권 이후 빠르게 당·정·군을 장악해 나갔다. 국가정보원은 지난달 28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최근 북한에서 ‘김정은주의’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고 보고했다. 집권 10년 만에 자신을 우상화하는 독자적인 사상과 이념체계를 확립해 김일성-김정일 시대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김정은 시대’를 선언한 것이다.
○ 집권 10년 만에 ‘수령’ 칭호
김 위원장의 지위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호칭이다. 북한 관영매체는 최근 김 위원장을 ‘수령’으로 지칭하고 있다.
노동신문은 11일 ‘위대한 수령을 높이 모신 인민의 강용한 기상을 만천하에 떨치자’ 기사에서 김 위원장을 ‘인민적 수령’ ‘혁명의 수령’으로 불렀다. 이날 논설에서는 “김정은 동지는 인민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열화 같은 사랑을 지니시고 희생적 헌신으로 사회주의 위업을 빛나는 승리로 이끄시는 위대한 수령”이라고 강조했다. 신문은 전날 논설을 통해서도 “김정은 동지를 수령으로 높이 모신 것은 우리 인민이 받아 안은 최상 최대의 특전이며 대행운”이라며 치켜세웠다.
북한에서 ‘영원한 수령’은 김 위원장의 할아버지 김일성, ‘영원한 총비서’는 김정일을 가리키는 고유 호칭이다. 김 위원장은 1월 노동당 제8차 당 대회 때 ‘노동당 총비서’로 추대됐다. 김정일 자리라며 비워놓았던 총비서 자리에 오른 데 이어 이제는 김일성과 같은 반열에 올랐음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확고한 정치적 위상을 확보했음을 보여준다. 북한은 올해 1월부터 김 위원장의 대외 직함 영문 표기도 ‘체어맨(chairman·위원장)’ 대신 김일성 때처럼 ‘프레지던트(president·주석)’로 바꿨다.
2013년 고모부이자 당시 권력 실세였던 장성택을 숙청하는 등 권력 장악을 본격화한 김 위원장은 5년 전인 2016년 36년 만에 노동당 대회(7차)를 열고 헌법을 개정해 국방위원회를 폐지했다. 이어 국무위원회를 신설한 뒤 국무위원장에 올랐다. 김정일 시대의 구호였던 ‘선군(先軍)정치’의 그늘을 지워 가며 당 중심의 권력 장악을 본격화한 것. 평양 주요 건물에서도 ‘선군정치’ 간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김 위원장이 권력 안정화를 위해 당·정·군 주요 간부에 대한 숙청을 이어가자 두려움을 느낀 권력 엘리트들이 잇따라 탈북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김 위원장이 통치에 더욱 자신감을 표출하기 시작한 것은 2017년 11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시험발사 성공 이후부터다.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김정은은 대북 제재를 풀고 경제난을 탈피하려는 목적으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 협상을 시도한다. 이 시기 김 위원장의 대형 초상화가 평양공항에 걸리는 등 김 위원장 1인 우상화가 본격화됐다.
○ ‘김정은주의’로 선대 흔적 지우기
국정원은 “북한에서 김 위원장 집권 10년을 맞아 ‘김정은주의’를 북한의 새로운 독자 사상체계로 정립하는 시도가 있다”고 보고했다.
김정은주의의 탄생은 김 위원장이 선대 그늘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 위원장은 김정일 사망 이후 100일간의 추모 기간이 끝나자 2012년 4월 4차 당 대표자회를 열고 “노동당의 지도사상은 김일성-김정일주의”라고 강조하며 선대의 후광에 기대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2015년 김 위원장의 신년사부터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표현이 줄어들며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올해 1월 변경한 새 노동당 규약에서는 이례적으로 김일성과 김정일 이름을 주어로 한 문장이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았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김 위원장이 무력 완성과 북-미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자신의 성과만으로도 통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정원은 또 “김 위원장이 일부 당 회의장에서 김일성, 김정일 사진을 없앤 것을 확인했다”고 보고했다. 선대의 사상체계와 그늘에서 독립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김정은주의의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우리 국가 제일주의’와 ‘인민 대중 제일주의’가 핵심 토대를 이룰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우리 국가 제일주의는 군과 강한 국방력을 중시하던 선군정치에서 벗어나 나라의 전반적 국력을 강조하는 것이다. 인민 대중 제일주의는 북한 주민들의 이익과 편의를 최우선시하며 실질적 생활 수준을 향상한다는 사상이다.
○ 경제난 속 주민 앞에서 눈물도
북한 매체들은 김 위원장이 인민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지난달 12일 조선중앙TV가 방영한 국방발전전람회 영상에서 애국가를 지휘하는 지휘자가 김 위원장 얼굴이 그려진 흰색 티셔츠를 입은 모습이 포착됐다. ‘최고 존엄’ 얼굴을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도록 강요해온 북한 사회에서 파격적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김 위원장이 당 간부들과 맥주를 마시거나 맞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공개한 것도 김 위원장이 은둔형이었던 아버지 김정일과 달리 인민에게 친숙하다는 이미지를 선전하기 위한 것이다. 지난해 노동당 창건 75주년 심야 열병식에서는 주민들과 군 장병들에게 “고맙다” “미안하다” “면목 없다”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전재우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북한 사회가 더 이상 과거의 비현실적 신비화 방식을 고수해서는 효과가 나지 않고 북한 주민들의 인식 수준에 맞는 지도자의 이미지를 연출해야 하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정은주의가 등장하며 북한이 우상화에 속도를 내는 데는 극심한 경제난을 고려한 측면이 있다는 시각도 있다. 대북 제재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봉쇄, 수해까지 삼중고를 겪으며 경제난이 심해지자 주민들의 불만 확산과 동요를 막기 위한 조치라는 것. 켄 고스 미 해군분석센터(CNA) 적성국분석국장은 미국의소리(VOA)에 “북한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김 위원장은 우상화 작업을 통해 자신의 정통성을 인위적으로 강화하는 전체주의 체제의 방법을 쓸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지선 기자, 동아일보(21-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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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솨이-마윈-판빙빙… 실종후 나타난 그들, ‘그날’엔 입을 닫았다
[글로벌 포커스]
“中당국에 찍히면 사라진다”… 공포의 ‘지정장소 주거 감시’
시진핑, 반체제 인사 통제 위해 도입
“매년 1만… 1만5000명 실종” 추산
《중국에서 사라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짧게는 1주일, 길게는 3∼5년 동안 실종된다. 끝내 나타나지않거나 죽어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시진핑(習近平) 집권 이후 이런 일이 더 많아지면서 ‘실종인민공화국’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중국은 지금 실종인민공화국
중국에서 갑자기 사라져 행방이 묘연해지는 유명인들이 많다. 스포츠 스타, 관료, 연예인, 기업가, 변호사, 출판인 등 분야도 다양하다. 폐쇄회로(CC)TV와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이 낱낱이 공개되는 21세기 현대사회에서 이례적인 일인데도 중국에서는 이런 일이 제대로 보도되지 않는다. 유명인의 실종마저도 존재하지 않는 일로 만드는 중국식 권위주의 통치의 단면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라진 유명인들은 대부분 중국 특유의 재판 없는 구금 제도, 즉 ‘지정 장소 주거 감시(RSDL·Residential Surveillance at a Designated Location)’에 처해진다. ‘세이프가드 디펜더스’ 등 국제 인권단체는 이를 ‘국가 차원의 납치’라고 비판하고 있다.
미국 인권운동가 마이클 캐스터는 2012년 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집권 후 RSDL이 본격화했다고 진단했다. 시 주석 집권기의 유명인 실종 사례와 중국의 국호 ‘중화인민공화국’을 합한 저서 ‘실종인민공화국(The People’s Republic of the Disappeared)’을 2017년 출간한 그는 당시 영국 BBC 인터뷰에서 RSDL 같은 ‘강압적 실종(enforced disappearances)’이 중국의 전형적인 통치 방식이 됐다고 비판했다. RSDL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이 거세도 중국이 시 주석과 중국공산당에 도전하는 사람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란 의미다.
○ 마윈·판빙빙·덩샤오핑 외손녀사위도 예외 없어
시 주석 집권 1기에 부총리를 지낸 장가오리(張高麗·75)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2일 폭로한 후 19일간 자취를 감췄다 21일 등장한 테니스 스타 펑솨이(彭帥·35), 지난해 10월 당국의 낙후된 금융 규제를 ‘전당포 영업’이란 표현으로 비판했다 7개월이 흐른 올해 5월에야 공식석상에 나타난 마윈(馬雲·57) 알리바바 창업자, 2018년 탈세 의혹으로 8개월간 자취를 감췄고 아직까지 활동을 재개하지 않고 있는 톱스타 판빙빙(范빙빙·40) 등 중국 유명인의 실종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당국에 반기를 든 인물의 실종은 더욱 빈번하다. 소수민족 인권 보호 활동으로 잘 알려진 왕취안장(王全璋·45) 변호사를 포함한 인권운동가 250여 명이 2015년 7월 무더기로 실종됐다. 당국은 2016년 1월에야 왕을 구금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실종 3년 만인 2018년 7월 변호사를 처음 접견했다. 실종 약 5년 만인 지난해 4월 풀려났다.
2015년 12월에는 홍콩에서 반(反)중국 서적을 펴낸 출판업자 5명이 태국에서 실종됐다. 이 중 스웨덴 국적자인 구이민하이(桂民海·57)는 다음 해 1월 중국중앙(CC)TV에 나와 “과거의 잘못을 뉘우친다”고 했다.
기업인 실종도 잇따랐다. 투자회사 밍톈그룹의 샤오젠화(肖建華·49) 회장은 2017년 1월 숙소인 홍콩 포시즌스호텔에서 실종됐다. 중국 공안으로 추정되는 건장한 남성들에게 둘러싸여 사라졌고 아직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는 실종 전 시 주석 누나 부부의 재산 증식에 관여했다는 설에 휩싸였다.
덩샤오핑(鄧小平)의 외손녀사위인 우샤오후이(吳小暉·55) 안방보험 회장 또한 2017년 6월 실종됐다. 안방보험은 본업인 금융업 외에도 미국 뉴욕 맨해튼의 최고급 호텔 월도프 애스토리아 등 세계 유명 부동산을 속속 사들여 해외에서도 유명했다. 당국은 2018년 2월에야 그를 사기,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고 공개했다. 이후 우샤오후이는 징역 18년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다. 안방보험 또한 해체됐다. 최고권력자의 친인척조차 당국의 눈 밖에 나면 가차 없는 처분이 내려진다는 걸 보여준다. 그의 몰락이 덩의 잔재를 지우려는 작업의 일환이라는 설도 끊이지 않고 있다.
2018년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수장이던 멍훙웨이(孟宏偉·68) 공안부 부부장(차관급)이 인터폴 본부가 있는 프랑스 파리에서 사라졌다. 당국은 11일 후 그를 뇌물수수 혐의로 억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멍훙웨이를 프랑스에서 중국으로 어떻게 데려왔는지 공개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초 13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1월 후베이성 우한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규모 발병 실태를 고발했던 인권변호사 출신 시민기자 천추스(陳秋實·36)도 보도 직후 실종됐다. 올해 9월에야 유튜브에 등장한 그는 “그간 많은 경험을 했다”며 “어떤 것은 말할 수 있지만 어떤 것은 말할 수 없다. 여러분이 이해할 것이라고 믿는다”며 말을 아꼈다.
드라마 ‘황제의 딸’, 영화 ‘적벽대전’ 등에 출연한 톱 여배우 자오웨이(趙薇·45) 역시 탈세 의혹에 직면했고 8월부터 행방이 묘연하다. 자오웨이와 남편은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와 가까운 사이다. 이 부부는 알리바바의 영상사업 자회사 알리바바픽처스에 투자해 큰돈도 벌었다. 쯔유시보 등 대만 언론은 그가 프랑스로 도피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 RSDL로 재판 없는 감옥살이
국제 인권단체들은 이렇게 사라진 유명인이 ‘RSDL’을 통해 사실상 감옥살이를 한다고 보고 있다. 중국은 2012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 정기회의 때 RSDL을 골자로 한 형사소송법 개정안 73조를 통과시켰다. 이를 통해 국가안보 위협, 테러 활동, 심각한 뇌물 범죄 등으로 의심받는 자가 RSDL의 대상이라고 명문화했다. 규정에 따르면 RSDL을 통한 감금 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2년 이상 감금되는 사례가 허다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해 12월 시 주석의 집권 후 RSDL은 본격적으로 반체제 인사 탄압 도구가 됐다. 대상자들은 감옥이 아닌 특정 비밀 장소의 독방에 감금된 후 반복적인 신문 및 고문을 당한다. 변호인 및 가족 접견조차 허용되지 않으며 용변을 볼 때도 공안 혹은 국가안전부 담당자가 지켜본다. 샤워도 거의 할 수 없다. 감금 장소의 창문이 커튼으로 가려져 이들은 외부를 볼 수 없고 일부는 알 수 없는 약을 먹도록 강요받는 등 24시간 감시 체제에 놓인다.
캐스터의 책에는 RSDL을 겪은 사람들의 증언이 생생히 실려 있다. 이들이 “가족에게 생사라도 알려달라”고 요청하면 담당자가 “우선 TV에 나가서 공개적으로 당신의 과오를 고백하라”고 답한다는 것이다. 인권변호사 텅뱌오(등彪·48)는 RSDL을 ‘합법의 바깥 테두리에서 이뤄지는 장기 구속 체계이며 일반적인 구금보다 훨씬 끔찍하고 강압적인 조치’라고 비판했다. 그는 “모든 수감자는 독방에 감금된다. 장시간 잠을 잘 수 없고 구타, 전기 고문, 수갑 및 쇠고랑, 지속적인 신문과 가족에 대한 협박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세이프가드 디펜더스’ 또한 10월 유엔에 보낸 서한에서 중국이 RSDL을 통해 점점 인권 탄압을 강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단체에 따르면 2013년 325명이었던 RSDL 대상자는 지난해 5800명 이상으로 급증했다. 기록조차 없이 대상자가 된 사람을 포함하면 RSDL 체제의 피해자가 매년 1만∼1만5000명일 것으로 추산했다. 대부분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며 펑솨이, 마윈, 판빙빙처럼 해외 언론에서 거론이라도 되는 사람은 십수 명에 불과하다.
페리 링크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동아시아학) 또한 홍콩 프리프레스 등과의 인터뷰에서 RSDL을 거세게 비판했다. 겉으로는 투옥이나 구금이 아니라 단순 감시, 가택 연금 등과 비슷해 보이지만 고문과 가혹 행위가 일상인 중국 특유의 인권 탄압 체계라는 것이다. 그는 “중국의 빛나는 경제 성장 뒤에는 시 주석을 정점으로 한 중국공산당의 각종 탄압이 도사리고 있다”며 RSDL을 ‘샹들리에 속의 아나콘다’로 비유했다. 세이프가드 디펜더스 또한 “RSDL이 광범위하고 조직적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서 “국제사회가 중국에 RSDL의 책임을 묻지 않으면 국제사회 전체의 인권 기준이 중국에 의해 크게 훼손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캐스터는 미국 외교전문지 ‘더디플로맷’ 인터뷰에서 중국이 의도적으로 연례 최대 정치 행사 전국인대에서 RSDL을 법제화했다고 지적했다. 국제사회의 비판을 ‘내정 간섭’ ‘주권 침해’ 등으로 반박하기 위해 일부러 공개적으로 법제화했다는 것이다.
○ 習 3연임의 걸림돌 치우기 용도
중국의 인터넷 감시·검열 체계인 ‘만리방화벽’, 당국에 도전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시민사회와 지식인 집단의 태도 또한 유명인의 실종 증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만리방화벽 때문에 중국인은 트위터,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해외 소셜미디어에 접속할 수 없다. 펑솨이가 웨이보에 올린 폭로글은 20분 만에 삭제됐고 ‘펑솨이’, ‘장가오리’ 같은 단어도 순식간에 위챗 등 주요 소셜미디어와 포털에서 금지어로 지정됐다. 금지어가 포함된 글은 검색이 안 될뿐더러 다른 곳으로 퍼 나를 수도 없다. 해외에서도 중국인에게 위챗으로 “펑솨이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란 글을 보낼 수 없는 것이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연구센터장은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 시절에도 권력 투쟁에서 패한 거물 정치인, 반체제 지식인의 실종이 적지 않았지만 시 주석 집권 후 그 대상이 연예인, 운동선수, 기업가 등으로 대폭 확대됐다”고 지적했다. 내년 하반기 공산당 제20차 당 대회에서 3연임을 확정지으려는 시 주석이 자신의 장기 집권에 걸림돌이 될 만한 요인은 좌시하지 않으려다 보니 정치인이 아닌 사람의 실종 또한 빈번해졌다는 의미다.
시 주석이나 공산당을 직접 비판한 것도 아닌 운동선수 펑솨이의 실종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뤄진 것으로 풀이된다. 이정남 고려대 아세안문제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은 시 주석이 집권 후 ‘종엄치당(從嚴治黨·엄격한 당 관리)’을 강조하며 대대적인 부패 척결 운동을 벌였는데 부총리까지 지낸 장가오리의 성추문으로 지도층의 부패와 타락이 심각함을 만천하에 공개한 꼴이 됐다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이번 폭로를 계기로 서방 주요국이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을 선언하려고 한다는 점이 당국으로서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부분일 것”이라며 “미국이라는 경쟁자에 대항하려면 ‘당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는 생각이 통제, 억압, 강제 구금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센터장은 “중국 내 지식인 및 시민사회가 제대로 반응하지 않았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국내 여론을 통제한다 해도 중국 밖에 거주하는 많은 유학생과 지식인들이 펑솨이 사태를 알 텐데도 모두가 함구했다는 것이다. 여론의 지지를 얻지 못한 펑솨이 또한 ‘성폭행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공개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뒤집을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다. 그는 “이번 사태는 나중에라도 당국에 맞서고 대응하려는 중국인에게 맞서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준 것이나 다름없다”고 진단했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김수현 기자, 동아일보(21-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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