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罪 '징역 1년 벌금 5000만원'] [“올 수능 n수생이 34%”… ]
[학부모罪 '징역 1년 벌금 5000만원']
[“올 수능 n수생이 34%”… 28년 만에 최고 찍나]
[취업난에, 주거난에 빚더미 위에서 사회 첫발 딛는 20대들]
[새 정부가 다시 새겨야 할 교육의 가치]
[문과의 위기 그 자체인 이재명과 윤석열]
학부모罪 '징역 1년 벌금 5000만원'
10년 전엔 서울에서 재수 학원 다니려면 월 150만~200만원씩 들었다. 그 비용도 만만치 않았는데 올해 재수하게 된 조카는 월 300만원 넘게 든다고 한다. 기숙 학원도 생각했지만 수강료가 월 350만원이고 급식비까지 포함하면 400만원이 넘는다는 말에 포기했다. 학원비 대느라 부모는 씀씀이를 줄여야 한다. 재수하는 자식 눈치에 TV도 맘대로 못 본다. 자녀가 재수하면 부모는 ‘징역 1년에 벌금 5000만원’형을 받는 것이란 푸념까지 돈다.
▶서울의 유명 재수 학원이 이달 말 경기도에 월 500만원이 드는 기숙 학원을 연다고 한다. 아무리 수강료·교재비·모의고사비 등을 합했다지만, 연 6000만원이 드니 어지간한 공대 4년 치 등록금보다 많다. 해마다 학생은 줄어드는데도 주요 재수 학원은 원생 증가로 매출이 늘고 있다. 재수생이 가장 많이 몰린다는 어느 학원은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이 7100억원을 넘었다. 집계가 나오지 않은 4분기까지 합하면 지난해 처음으로 매출 1조원을 돌파했을 거라고 한다.
▶많은 가정이 자녀 학원비를 대느라 등골이 휜다. 하지만 재수를 하면 수능 성적이 오르니 외면하기도 어렵다. 자식을 적게 낳아 아이의 미래에 아낌없이 돈을 쓰는 부모 심리도 작용한다. 실제로 지난해 서울대 정시 입학생 중에 고교 재학생 출신은 열 중 넷에 불과했다. 재수 선택도 증가한다. 2023년 기준, 서울 강남의 고교생 재수 비율은 평균 47%로 전국 평균 20%의 두 배가 넘는다. 재수는 필수, 삼수는 선택이란 말이 나온 지 오래다.
▶최근엔 의대 정원 확대 이후 불어닥친 ‘의대 입시 광풍’도 한몫한다. 의대에 가려고 수능을 다시 보는 수험생이 크게 늘어 지난해 주요 대학 공대조차 적게는 20%, 많게는 절반이 반수를 택했다. 그 여파로 많은 대학이 학사 관리에 파행을 겪고 있다. 올해 수능을 두 번 이상 보는 N수생 수가 2001년 이후 최다인 20만명에 이를 거란 전망도 있다. 지난해엔 16만명이었다.
▶의대는 어느 나라에서나 선망하는 학과다. 그러나 우리는 도가 너무 지나치다. 요즘 의대 합격생은 80%가 N수생이라고 한다. 전교 1등조차 의대 가려고 재수를 택한다고 한다. “의대만 갈 수 있다면 7수도 하겠다”는 학생도 있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가기만 하면 남는 장사여서”라고 했단다. 한 세대 전 교육열은 나라를 일으켰는데 지금의 N수 열풍은 거꾸로 나라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것 같아 걱정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5-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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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수능 n수생이 34%”… 28년 만에 최고 찍나
요즘 대입 수험생들에게 재수는 필수다. 고교를 ‘4년제’라 하고 사수, 오수생도 많아 삼수생부터는 ‘장수생’으로 묶어 부른다. 대학 1학기만 다니고 수능을 준비하는 ‘반수생’, 군대에서 수능 공부하는 ‘군수생’도 있다. 수능 지원자 중 20%대를 차지하던 n수생 비중이 올해는 34.1%로 28년 만에 최고치를 찍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종로학원 추산에 따르면 11월 16일 치러지는 수능 지원자 49만1700명 중 재학생은 역대 최저인 32만4200명이고, 졸업생은 16만7500명으로 1996학년도(37.3%) 이후 최고 비율이다. 지난해 n수생보다 2만5000명 늘었다. 의대 쏠림 현상에 첨단 학과 신설 및 증원, 킬러 문항 빠진 ‘물수능’ 기대감 때문이다. 통합 수능으로 대학 간판 보고 문과에 갔다 실망한 이과생들, 이과생들에게 밀려난 문과생들도 대거 n수 대열에 합류했다.
▷수능 성적만 보는 정시는 n수생 합격자 비중이 더 높다. 최근 4년간 SKY 3개 대학 정시 합격자 중 n수생이 61.2%였다. 이과생들은 ‘의치한약수’에 들어가려고, 문과생들은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건동홍숙, 국숭세단, 광명상가…’의 앞자리를 차지하려고 n수를 감수한다. 의대는 더 심하다. 최근 4년간 의대 정시 합격자 가운데 78%가 n수생이다. 합격자의 92%가 n수생인 의대도 있다. 요즘 의대 가려면 고교 3년은 내신에만 매달리고, 재수로 수능 성적 끌어올려 수시 최저기준을 맞추거나 아예 수능으로 진학하는 게 공식이 됐다.
▷일타강사들의 인강으로 재수의 문턱이 낮아졌다지만 대부분 ‘재종’(재수종합학원)을 다니고 드물게는 ‘독재’(독학재수학원)를 찾는다. 통학형 재종은 월 200만 원, 기숙형 재종은 월 400만 원이다. 9개월간 1800만∼3600만 원이 드는 셈이다. 급식비, 교재비, 모의고사비, 특강비는 별도다. 자녀가 재수하겠다고 하면 부모들은 “징역 9개월에 벌금 4000만 원 선고받는 심정”이 된다고 한다. 올해 n수생 16만7500명이 1인당 1800만 원씩 들였다면 총 3조 원이 넘는다. 사회 진출이 늦어지는 점까지 감안하면 n수의 사회경제적 비용은 훨씬 늘어나게 된다.
▷n수생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학생들은 “외환위기가 오든 코로나가 오든 흔들림 없는 안정된 삶”을 위해 n수를 한다. 의사면 제일 좋고, 비정규직 아닌 정규직, 중소기업 아닌 대기업이라야 한다. 이를 위해 2년이고 3년이고 책상에 붙어 앉아 똑같은 문제를 풀면서 허리와 목 디스크, 섭식장애와 만성소화불량에 시달린다. 실력이 느는 공부가 아니라 학벌을 위한 공부다. 개인으로도 사회 전체로도 긍정적 가치를 찾기 힘든 사회적 병리 현상이 n수 열풍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동아일보(23-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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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난에, 주거난에 빚더미 위에서 사회 첫발 딛는 20대들
급전이 필요해 소액생계비대출을 받은 20대 청년 5명 가운데 1명은 한 달 6000원가량의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대의 주택담보대출 연체율도 사상 최고 수준에 달했다. 여러 곳에서 돈을 빌린 탓에 빚을 갚기 위해 돌려막기를 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지 못해 소득이 불안정한 데다 전·월세 주거비 부담이 늘어나면서 청년들이 빚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서민금융진흥원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으로 소액생계비대출 50만 원을 받은 20대 이하 청년층의 이자 미납률은 21.7%로, 전체 연령대 평균의 두 배에 가깝다. 6월 말 기준 20대 이하의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은 0.44%로, 2년 새 4배 가까이로 늘었다. 특히 막 성인이 된 만 19세의 연체율은 20%에 달해 심각한 수준이다. 학생이나 비정규직 청년들이 급등한 원룸 전·월세 등 주거비와 생활비를 충당하려 대출을 받았다가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적절한 일자리와 고정 수입이 있으면 빚이 있더라도 차근차근 갚아 나갈 수 있다. 하지만 청년들에게 취업의 벽은 여전히 높다. 6월 청년층(15∼29세) 취업자는 1년 전보다 11만7000명 줄어 8개월 연속 내림세다. 여기에 일부 청년들의 경우 제대로 된 금융교육을 받지 못해 마땅한 상환 계획 없이 일단 빌리는 ‘무계획 대출’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이를 적절히 관리하지 못하면 한계에 몰린 청년들이 불법 사금융에 발을 들이거나 한탕주의에 빠져 주식·코인 사기 등에 휘말리게 된다.
청년들이 과도한 빚을 지면 소비 위축은 물론 경제 전체의 미래에 부담이 될 수 있다. 적절한 관리 대책이 필요하지만 대출 탕감 등의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스스로 빚을 갚아 나갈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부동산 시장 안정으로 주거비 부담을 줄여주고, 소득에 맞춰 지출을 합리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금융 교육도 병행해야 한다. 꿈을 펼쳐야 할 청년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빚에 짓눌리는 현실을 무겁게 인식하고 더는 방치해서는 안 된다.
-동아일보(23-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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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가 다시 새겨야 할 교육의 가치
[김도연 칼럼]
새 대통령은 먼 미래 조망해야.. 교육이 30년 뒤 대한민국 결정할 것
개인 특성과 다양성이 절대 가치인 시대.. 지금 수능으론 창의력 배양 어려워
2021년이 저문다. 코로나19로 작년에 이어 계속 고통받은 한 해였다. 세모(歲暮)에 아쉬움이 남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그러나 과거보다 훨씬 더 의미가 있는 것은 미래임에 틀림없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는 것은 좀 더 밝은 미래를 가꾸기 위함이다. 새해에는 무엇보다도 바이러스를 제압하고 아울러 서로를 보듬는 따뜻한 사회를 이루면 좋겠다.
3월에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가름할 대통령 선거가 있다.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인 선거에 관심을 갖고 이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쉬운 점은 이 중차대한 행사가 국가 미래에 대한 토론의 장(場)이 아니라 한판의 커다란 편싸움 같다는 사실이다. 부동산, 특검 그리고 후보 및 주변 사람들의 지난날 행적이 주요 이슈다. 선거 뉴스는 아예 보고 싶지 않다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정부 일에 관심 갖지 않으면, 결국 멍텅구리들이 지배하는 고통스러운 세상에 살게 된다”는 이야기를 되새겨야 한다. 그리스 고대 철학자 플라톤의 가르침이다.
새해에 선출될 대통령은 항상 비평을 받아들이고 칭송을 경계하면 좋겠다. 그리고 대통령직은 5년으로 끝나는 일이며 영원한 권력은 없다는 사실을 항상 가슴에 새기면 더욱 좋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먼 미래를 조망하며 나라를 이끌어야 할 것이다. 1년 준비는 곡식을 심는 일이고, 10년 준비는 나무를 심는 일이지만 100년 준비는 사람을 기르는 일이라 했다. 특히 대한민국은 인재가 국가 경쟁력의 모든 것이다. 지금의 교육이 30년 후 그리고 100년 후의 대한민국을 결정할 것이다.
우리 정치가 이미 벗어났어야 할 이념 투쟁의 틀 속에서 구태를 답습하고 있는 것처럼, 실은 교육도 마찬가지다. 오늘의 인류는 지난 200∼300년의 산업문명 시대를 넘어 디지털문명 시대로 진입하는 대전환의 시기를 살고 있다. 산업 시대의 최고 가치는 같은 품질의 제품을 효율적으로 대량 생산하는 것이었으며 이는 인재 양성, 즉 교육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획일적인 교육과 기계적 평가로 규격화된 인재를 양산했다. 대학은 전공별로 잘게 나뉘어 각 산업 분야에 유용한 부품을 생산하듯 사람을 키웠다.
그러나 이제는 개인의 능력과 특성이 중요하며 다양성이 절대적 가치를 지니는 시대다. 스마트폰으로 모든 지식과 정보를 찾을 수 있고, 또 이를 통해 지구촌 모두가 서로 연결되는 디지털 세상이다. 우리 청소년들이 살아갈 21세기는 지난 산업 시대와 전혀 다를 것이다. 특히 교육 분야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이런 전환을 급작스럽게 맞았는데, 이에 대한 우리의 대처는 매우 미흡하다. 대면 교육을 비대면으로 바꾸는 단순 전환이 아니라 총체적 혁신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급한 것은 전국의 수험생들을 객관식 평가로 한 줄 세우기 하는 수능 제도의 개편이다. 21세기 인재 교육의 핵심은 창의력 배양인데, 이는 다섯 개 주어진 보기에서 정답을 찾는 것과는 너무 거리가 멀다. 창의력은 정답이 아니라 해결할 문제를 찾는 힘이다. 소위 변별력을 위해 배배 꼬인 문제들로 가득한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는 반복학습을 거듭하는 사교육이 효율적이다. 학생들이 학원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최근 영국 BBC 방송은 한국의 수능을 “세계에서 가장 고달픈 시험 중 하나”라고 소개했는데, 거기에 올라온 한 여학생의 다음과 같은 인터뷰에 가슴이 아팠다. “우리는 하루 종일 학원에 있는 것 같다. 내일도 똑같은 하루를 보내고, 주말에는 더 열심히 해야 한다. 너무 힘들고 지친다. 울고 싶을 때도 많고 다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다.” 학생들의 이런 절규가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나. 이는 꽃 같은 우리 학생들이 처해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수능은 우리 젊은이들의 창의력은 깎아 내리지만 역설적으로 인내력 함양에는 기여하는 듯싶다.
그런데 2년 전, 정부는 느닷없이 ‘대입 공정성 강화’를 발표하면서 수능의 비중을 더 높였다. 법무부 장관 후보 청문회에서 부각된 범죄 행위를 엉뚱하게도 대입 제도 자체의 문제로 치부하며 여론을 돌린 것이다. 우리 대학입시 제도는 이렇게 정부가 정치적 어려움에 처한 경우, 그 돌파구 마련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면서 문제에 문제가 더해졌다. 새 정부는 교육 그 자체에 진실한 관심과 비전을 지녀야 한다. 교육은 정치를 위한 도구가 아니다.
-김도연 객원논설위원·서울대 명예교수, 동아일보(21-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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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의 위기 그 자체인 이재명과 윤석열
[송평인 칼럼]
문과의 위기는 단지 취업난 아냐… 대학 교육의 근본 결함에서 비롯
浮薄한 정치 면하지 못하는 건 문과의 위기와도 무관하지 않아
우리나라에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이 없을 때 많은 문과생들이 사법시험을 준비하느라 전공 공부를 등한시했다. 로스쿨이 생기자 그런 현상은 어느 정도 사라졌다. 인문사회계열 학생도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한 후 원하면 로스쿨에 갈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문과가 과거 법학 천하였다면 지금은 경영학 천하가 됐다. 요새 문과생의 상당수는 경영학을 부전공으로 택한다. 취업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 그렇게 하지만 성격이 완전히 다른 두 가지를 함께 공부하다 보니 둘 다 제대로 공부하지 못하고 졸업한다.
미국 대학의 특징은 순수학문과 직업 교육을 분리한다는 점이다. 낮은 단계의 직업 교육은 칼리지(college)에서, 높은 단계의 직업 교육은 전문대학원(professional school)에서 한다. 법학과 경영학은 전문대학원에서만 가르친다. 학부에서 순수학문을 한 후에야 계속해서 석·박사 과정을 하든, 아니면 로스쿨이나 MBA 과정에 들어갈 수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델라웨어대에서 역사와 정치학을 공부하고 시러큐스대 로스쿨을 나왔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컬럼비아대에서 정치학과 영문학을 공부한 뒤 나중에 하버드대 로스쿨을 다녔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예일대 로스쿨을 다니기 전에 영국 옥스퍼드대로 유학해 철학 정치학 경제학을 공부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1982년 중위권 대학 법대에 학비에 더해 생활지원금까지 받는 장학생으로 들어가 그 대학의 사법시험 합격자 수를 늘려주기 위해 죽어라고 사법시험 공부만 한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악착같은 생존 본능에 법 지식만 갖춘 괴물이 됐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다닌 서울대 법대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윤 후보는 9수를 했다고 하니 20대 청춘을 온전히 사법시험에 갖다 바쳤다는 얘기다. 9수가 가능했던 경제적 여유에서 오는 한량 특유의 다방면에 대한 관심은 보이지만 깊이는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문과의 위기는 단지 ‘문송합니다(문과여서 죄송합니다)’로 표현된 그 분야 교수와 학생만의 위기가 아니다. 젊은 시절 인문사회과학적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이 정계 관계 재계로 진출해 지도층이 됨으로써 발생하는 사회 전반의 위기다.
우리나라 중산층은 그렇지 않아도 교육비로 허리가 휘고 있는데 고등교육을 4년이 아니라 6, 7년을 해야 한다면 어떻게 감당하겠느냐고 물을 수 있겠다. 물론 대학의 개혁은 공교육의 강화, 장학제도의 확대 등이 동반돼야 한다. 다만 미국만이 아니라 유럽에서도 사회 지도층의 평균 학력 수준이 우리의 석사 수준이라는 현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파리 10대학에서 철학으로 DEA(후에 master로 통합), 파리정치대(Sciences Po)에서 공공정책으로 마스터(master)를 받은 뒤 고위직 공무원이 되기 위한 직업학교(그랑제콜)인 국립행정학교(ENA)를 다녔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6년 과정의 함부르크대 법대를 나왔다.
프랑스 대학에서는 리상스(licence)에 3년, 마스터(master)에 2년이 소요된다. 독일 대학은 학위 구분도 없이 기초과정(Grundstudium)과 본과정(Hauptstudium)으로 나누고 합쳐서 평균 6년이 걸리는 본과정까지를 마쳐야 마기스터(Magister) 같은 최초의 학위를 준다.
중요한 점은 리상스나 기초과정에서 입학생의 절반 정도가 탈락한다는 사실이다. 리상스를 통과하면 대개 마스터 단계까지 간다. 프랑스나 독일에서 ‘대학을 다녔다’ 함은 마스터나 본과정을 마쳤음을 의미한다. 이 나라들에서 대졸은 우리의 석사 수준인 셈이다.
문(文)·사(史)·철(哲)은 단순히 지식을 배우는 학문이 아니다. 인간사의 다양한 측면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함께 진실 추구의 정신을 배우는 학문이다. 그 점이 직업 교육과 다르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에 어울리지 않은 우리 정치의 부박(浮薄)함은 그런 교육의 부재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누구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누구는 거짓 서류를 밥 먹듯이 꾸민 집안과 연을 맺는다. 문과의 위기는 취업난 정도로 봐서는 해결할 수 없으며 선진국 문턱에 올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한 대학 제도의 결함으로 봐야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동아일보(21-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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