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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얻는 행복… 16도 소주 遺憾] [빨간 소주] ....

뚝섬 2024. 2. 25. 05:38

[쉽게 얻는 행복… 16도 소주 遺憾]

[빨간 소주] 

[소주병 뚜껑이 우리 뚜껑 열리게 할 줄이야.. ] 

[酒, 예술가의 뮤즈이자 어두운 유혹]

 

 

 

쉽게 얻는 행복… 16도 소주 遺憾

 

올 게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주파라면 공감할 것이다. 새로에 이어, 최근 참이슬 후레쉬마저 알코올 도수가 16도로 낮아졌다. 이 소식을 듣자마자 참이슬 라벨을 확인했다. 16.5도. 다행히 재고였다. 누군가는 0.5도가 대수냐고 묻겠지만, 소주파로선 위기다. 술자리를 지배하는 소맥(소주+맥주)파 사이에서 소주를 고집할 수 있던 건 쓴맛 덕분이었다. 함께 취할 수 있을 정도론 써야 하는데, 소주는 꾸준히 도수가 낮아지고 가격은 상승해 왔다. 지금 추세라면 소주파는 머지않아 고집쟁이라고 여겨질지도 모른다.

 

이해는 된다. 낮은 도수의 술을 찾는 소비자 선호를 반영한 결정이었다. 16.5도는 2006년 출시된 참이슬 후레쉬의 도수(19.8도)에 비하면 낮지만, 하이볼 등 지금 인기를 끄는 술보다는 높다. 소주와 어울리는 음식에 가볍게 한잔하고, 소셜미디어에 사진을 올릴 목적으로 16.5도는 적당하지 않았던 셈이다.

 

소주만 그럴까. 많은 결정이 타인을 기준으로 이뤄지는 요즘, 남들과 다른 삶을 고집하기가 쉽지 않다. 젊은 세대에선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이나 ‘갓생’(God+生)을 인증하지 않는 삶은 뒤떨어졌다고 여겨지곤 한다.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할 때 행복한 사람도, 취미를 물어보면 적당히 둘러대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그 ‘적당히’에 익숙해지고 있다. 서점 소설 매대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사진관, 세탁소 등 비슷한 장소가 제목에 포함된 소설 여럿이 수년째 상위권에 있다. 우연히 찾은 장소에서 마음의 위안을 얻는 내용. 행복이 사고파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처럼 쉽게 얻은 행복은 불행을 덮으려는 기만에 가깝다. 많은 이가 여가 시간을 보내고 독서 인증을 하기에 적당한 책을 선호한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운 이유다.

 

최근 한 문장에 목이 막혔다. “우리의 삶과 정체성을 증명할 수 있는 단서들이란 어쩌면 생각보다 지나치게 허술하거나 혹은 실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곧 넷플릭스 영화로 개봉하는 조해진의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의 일부다. 화자는 탈북인 로기완의 사연에 끌림을 느껴 벨기에로 향한다. 허술한 기록으로 남은 그의 흔적을 쫓는 소설은, 삶의 이유를 온몸으로 찾는 과정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비록 실패할지라도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 후에야 자신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알코올 도수 역시 생각보다 허술한 기록은 아닐까 위안해 본다. 며칠 전 밤 10시, 술집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건배를 한 적이 있다. 가게 주인이 정체 불명의 칵테일을 만들어 모든 손님에게 나눠줬다. 일행과 대화의 흐름이 끊겨 심기가 불편한 상황, ‘가게 홍보를 이런 식으로…’라고 생각했다. 가게 주인은 고집스럽게 모두의 주의를 끌곤, 건배를 제안하며 말했다. “코로나 땐 밤 10시에 가게 문을 닫아서, 가시는 손님들께 드리던 술이에요. 오늘은 더 머무르며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요.” 도수는 모르지만, 시큼했던 술맛이 기억난다. 가게 주인의 사연, 미소와 함께. 술에 그런 미소를 담을 수 있다면 좋겠다.

 

-이영관 기자, 조선일보(24-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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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소주

 

한 병에 2000원이면 불콰해지던 시절이 있었다. 식당에서 소주 값은 21세기 들어 한동안 3000원을 유지하다 4000원, 5000원으로 뛰더니 이제 6000원 시대가 열리고 있다. 강남 어느 술집에서는 1만원을 받는다. 한 병 추가하기 무섭다고들 한다. “이슬 주세요!” “처음요!” 외치려다 목구멍으로 삼키는 것이다.

 

이슬이 이렇게 비싼가?

처음처럼이라며 값은 올려 받나?

반주권(飯酒權) 침해 아닌가?

 

소주는 점점 묽어지고 있다. 1973년부터 25년 동안 소주는 25도였다. 요즘 ‘참이슬 후레쉬’는 16.5도, ‘처음처럼 새로’는 16도다. “도수(度數)가 너무 낮아져 마셔도 ~’ 소리가 나온다”며 애주가들은 뿔이 났다. 주류 회사들도 할 말이 있다. “소비자들이 예전만큼 독주를 마시진 않고, 술자리에서 여성이 주류 선택권을 쥐는 경우가 많아졌다. 모두 즐길 있는 방향으로 음주 문화가 민주화된 것이다.”

 

수요가 있으니 순하게 만든다고?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알 수 없다. 소비자는 광고와 마케팅에 휘둘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수요를 자신의 수요로 착각하며 사는 시대니까. 소주의 재료는 주정(酒精)과 물, 감미료다. 도수가 내려간다면 다량의 물을 더 타고 주정은 덜 들어간다는 뜻이다. ‘순하게 더 순하게’가 이윤을 높이는 꼼수라는 의심을 받는 이유다.

 

근본(?)이 있는 술꾼들은 그래서 ‘빨간 소주(참이슬 오리지널)’를 주문한다. 소주 도수가 일관되게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지만 ‘빨간 소주 2006 이후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선비처럼 20.1도다. 점점 묽어지는 세상에서 독야청청이다. ‘빨간 뚜껑’을 찾는 이들은 대체로 50~60대 이상이고 늘 그것만 마시는 편이라고 한다.

 

각설하고, ‘빨간 소주’는 배우 이호재의 팬클럽 이름이기도 하다. 그는 워낙에 빨간 뚜껑의 소주를 좋아하고 회원들 술 실력도 대단하다. 딩동! 모월 모일에 그 모임이 있다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빠꾸(후진)’는 없는 호쾌한 자리. 이호재는 으레 그렇듯 콜라잔에 콜라가 아닌 액체를 가득 따르며 말할 것이다. “술자리나 어정대는 사람이 어떻게 무대에서 60년을 버텼는지, 참 신기하다. 오늘은 대단한 날인데 빨간 소주 일병씩 까자!”

 

-박돈규 주말뉴스부장, 조선일보(23-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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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병 뚜껑이 우리 뚜껑 열리게 할 줄이야.. 

 

소주 가격이 또 오를 예정이다(be expected to rise again). 하이트진로가 23일부터 참이슬과 진로 등 소주 출고가(factory price)를 7.9% 인상한다. 과거 전례에 따르면(in accordance with past precedents) 한쪽에서 먼저 치고 나가고, 다른 업체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줄줄이 따라 값을 올리는(jump at the markup one after another) 행태를 보여왔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한 병당 4000원을 받던 식당이나 주점들마저 5000원으로 올릴 것으로 예상되고, 이미 5000원을 받던 업소 중에선 6000원을 내거는 곳도 나올 전망이다.

 

인상 요인(causes of the price increase)으로는 주정(酒精) 가격, 빈 병 취급 수수료, 제조 경비 등 생산원가 상승을 내세운다. 그런데 “이건 뭐지?” 하는 것이 있다. 병뚜껑 가격이 소주 값 인상 이유 중 하나라는 사실이다. 주류 업계에 따르면(according to the alcohol beverage industry), 소주 병뚜껑 가격은 지난 1일 자로 평균 17% 뛰어올랐다. 12만개짜리 상자 기준 한 개당 14.50원, 4500개 상자 기준 15.36원이던 것이 개당 2.5원씩 인상됐다. 문제는 소주 병뚜껑(bottle cap)은 주류 회사가 아니라 별도 업체에서 납품하기 때문에 인상 요인으로 핑계를 댈(make an excuse) 명분으로 이용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불편하게 소주 따로, 병뚜껑 따로 생산·공급을 하고 있는 걸까. 대한민국 모든 소주의 병뚜껑은 ‘삼화왕관’과 ‘세왕금속공업’이라는 두 회사에서만 생산된다. 국세청이 탈세 방지를 위해(in order to prevent tax evasion) 주류 생산 업체들에 공급되는 뚜껑 숫자를 관리하려고 두 회사를 소주병 알루미늄 뚜껑(aluminum stopper) 생산 업체로 지정했다. 두 회사에서만 연간 약 110억개를 만든다.

 

국세청이 ‘병마개 납세증명제도’를 도입한(introduce the ‘bottle cap tax payment certificate system’) 것은 1972년이다. 주류 업체(liquor company)에 공급되는 병뚜껑 숫자로 세금을 매겨 탈세를 하지(evade taxes) 못하도록 제도화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어느 소주병이든 가까이 들여다보면(look closely) 뚜껑 위 양쪽에 새겨진(be engraved on both sides of the top of the cap) 국세청 인증 표시를 볼 수 있다.

 

뚜껑 안쪽에는 각각의 숫자가 적혀있다. 어느 공장에서 어떤 공정을 거쳤는지 나타내는 ‘생산 라인’을 뜻한다. 혹여 문제가 발생할 경우, 생산 과정을 추적해 원인을 규명할(clear up the cause) 수 있게 한 것이다. 2020년 12월부터는 뚜껑을 돌려 딸 때 끝부분이 양쪽으로 갈라지게(split in two) 만들고 있다. 그 이전에는 뚜껑의 한쪽 끝부분만 따지면서 나머지 한쪽 고리는 병목에 남겨(leave the other ring hung around the bottleneck) 재활용이 어려웠었다.

 

그나저나 소주 병 뚜껑 따는 촉감과 소리로 그나마 시름을 달래왔던(drown their cares in it) 서민들은 이제 안주 가격보다 더 비싸진 소주 값에 그야말로 뚜껑 열리게(blow their tops) 생겼다.

 

[영문 참고자료 사이트]

☞ https://www.hapskorea.com/heres-an-interesting-fact-about-korean-soju-you-may-not-know/

☞ https://korea.stripes.com/food-drink/interesting-fact-about-koreas-soju-you-may-not-know

 

-윤희영 에디터, 조선일보(22-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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酒, 예술가의 뮤즈이자 어두운 유혹

 

[유(윤종)튜브]

 

작곡가 시벨리우스의 친구이자 화가인 악셀리 갈렌칼렐라의 그림 ‘심포지엄’. 오른쪽에 만취한 시벨리우스가 보인다. 동아일보DB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4번(1877년) 3악장은 여러모로 기묘하다. ‘스케르초’로 표기되어 있지만 통상의 스케르초에서 들을 수 있는 빠른 3박자 대신 2박자로 되어 있다. 게다가 현악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활을 쓰지 않고 손가락으로 퉁기는 피치카토 주법으로 연주한다.

차이콥스키는 이 악장을 ‘술에 취하기 시작할 때 머리에 떠오르는 자유롭고 괴상한 상상들’이라고 설명했다. 중간에는 ‘취한 농부들과 거리에서 들리는 노랫가락’ ‘멀리서 들리는 군악대의 행진’도 표현된다.

이 교향곡에는 제목이 없다. 차이콥스키가 청중을 위해 자신이 표현하고자 한 것을 밝힌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1악장부터 마지막 4악장까지 그가 나타내려 했던 것을 꽤 소상히 알 수 있다. 차이콥스키가 이 곡에 묘사한 내용들을 후원자인 나데즈다 폰 메크 부인에게 악보와 함께 적어 보냈기 때문이다.

 

편지에 따르면 1악장은 ‘행복의 추구를 방해하는 운명’, 2악장은 ‘일에 지쳐 홀로 앉았을 때의 우울한 상념’, 4악장은 ‘민중의 축제’를 그렸다. 차이콥스키가 폰 메크 부인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 훗날 공개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 내용들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 편지 덕분에 우리는 취한 차이콥스키의 머릿속까지 들여다보게 되었다.

어느 시대, 어느 문화권에서나 술은 예술가들의 친구이자 영감을 자극하는 뮤즈(예술의 여신)였다. 그러나 뜻밖에 ‘술 취한 사람’을 표현한 음악 작품은 겨우 손에 꼽을 정도다.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집 ‘사계’에는 계절마다 각각의 곡을 표현한 소네트(짧은 정형시)가 붙어 있다. ‘가을’ 1악장은 다음과 같다. “마을 사람들은 춤과 노래로 수확을 축하하고 바커스의 술로 열기를 더한다. 연회는 잠으로 끝난다.”

 

두 세기 뒤인 20세기 이탈리아 작곡가 레스피기가 ‘로마의 축제’ 4부 ‘주현절(La befana)’에서 그려낸 이탈리아인의 축제도 비슷하다. 예수의 신성(神性)이 나타난 것을 축하하는 축제를 맞이해 로마인들이 나보나 광장에서 펼치는 광란과도 같은 떠들썩한 모습들을 그렸다. 트럼펫 솔로를 비롯한 금관들이 표현하는 것은 더도 덜도 아닌 ‘고성방가’다.

말러의 ‘대지의 노래’는 가곡집과 교향곡 사이에 놓인 독특한 작품이다. 독일어로 번역된 옛 한시(漢詩)들을 가사로 사용했다. 여섯 개 악장 중 두 개가 술 노래다. 1악장 ‘지상의 괴로움을 노래하는 술 노래’는 술 권하는 노래다. ‘가득 찬 술잔은 세상 어떤 나라가 부럽지 않다’고 찬미하다가 순간 어두운 표정으로 ‘삶은 어둡다. 죽음도 그러하다’고 노래한다. 5악장의 ‘봄에 취한 자’에서는 ‘삶이 꿈에 지나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수고할 건가. 차라리 흠뻑 취하리라’고 외친다.

노래가 함께하는 오페라는 어떨까. 유명한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를 비롯해서 여러 오페라에 ‘축배의 노래’가 나오지만 의외로 술 취한 사람을 그리는 장면은 많지 않다. 도니체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 나오는 ‘묘약’은 다름 아닌 와인이다. 돌팔이 약장수의 ‘이 약을 마시면 사람들이 자네를 사랑하게 된다’는 말만 믿고 순진한 총각 네모리노는 덥석 ‘약’을 사서 마신다. 술을 마시고 기분이 좋아진 네모리노는 사모하는 처녀 아디나 앞에서 취기를 이기지 못하고, 아디나는 기분이 상하고 만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장미의 기사’에서 나잇값 못하는 늙은 신랑 옥스 남작이 부르는 ‘나 없으면’도 술 취한 장면의 노래다. 늦장가를 가게 된 옥스 남작은 신부의 집에 청혼 사절을 보냈지만 잘되어 가는지 보겠다며 직접 그 집으로 들어가 말썽을 피우고 만다. 신붓감은 그에게 크게 실망하고, 철없는 옥스 남작은 포도주에 취해 다른 여인과의 밀회를 꿈꾸며 흥겨운 왈츠를 흥얼거린다.

KBS교향악단이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하는 피에타리 잉키넨 음악감독 지휘 정기연주회에서 연주할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을 머릿속에 떠올렸다가 얘기가 길어졌다. 바딤 레핀이 협연하는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 등도 이날 연주된다.

졸업과 입학을 축하하는 계절, 술자리의 유혹도 많다. 하지만 술은 예술가의 뮤즈이기에 앞서 수많은 사고를 유발하는 어두운 유혹이기도 하다. 특히나 술 마신 채 운전대를 잡는 것은 절대 삼갈 일이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동아일보(22-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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