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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냐 영생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알랭 들롱의 안락사 결정] ....

뚝섬 2024. 7. 27. 07:30

[안락사냐 영생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알랭 들롱의 안락사 결정] 

[안락사 결심한 ‘세기의 미남’]

 

 

 

안락사냐 영생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10분 내 행복하게 죽는 안락사
육체·정신이 기계와 합쳐져 영생 기대하는 미래도
삶과 죽음, 선택의 영역 되나

 

감기를 2주간 앓아서 기력이 떨어진 몸에 장염과 위염이 한 번에 덮쳤다. 열이 오르고 복통·두통·근육통이란 삼중고에 잠을 설친 어느 새벽, 가까스로 정신을 차려 24시간 약국을 검색했다. 걸어서 20분 거리에 약국이 있었다. 차마 70세가 넘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새벽 세 시 약국행을 부탁할 순 없었다. 끙끙거리며 눈을 질끈 감자 머리가 어지러웠다. 약국 생각에, 부모님 생각에 어느덧 70대가 됐을 때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앞으로 신상에 변동이 없다고 가정할 때 혼자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이야 감기나 장염 정도로 고생하지만 그땐 더 큰 병에 걸릴 수도 있다. 호흡이 곤란해지거나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상황이 발생하면 몸에 차고 있는 스마트 시계·반지와 같은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병원에 연락이 갈 것이다. 그 후에도 의식이 없거나 거동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 혼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는 게 가능할지, 치료를 받은 뒤 아프기 전처럼 생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 큰 문제도 있다. 치매에 걸린 독거 노인의 일상은 도무지 가늠이 가질 않는다. 초기 치매 증상을 자각했을 때 제 발로 요양병원에 들어가야 할까. 그곳에서 먹고 자며 목숨을 이어 간들, 그렇게 보내는 시간을 온전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노화와 함께 맞닥뜨릴 수 있는 온갖 질병과 고통에 대해 생각하다가 그날 오후에 본 ‘안락사 캡슐’ 기사가 떠올랐다. 지난 18일 AFP통신에 따르면 안락사 단체 ‘더 라스트 리조트’는 곧 스위스에서 조력 자살을 위해 ‘사르코’가 사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사르코는 캡슐 내부 산소를 질소로 바꿔 저산소증으로 죽음에 이르게 한다. 버튼만 누르면 30초가 채 되지 않아 공기 중 산소량이 21%에서 0.05%로 급격히 떨어지고 그 후 사망 전 약 5분 동안 무의식 상태에 머물게 된다. 심지어 무의식 상태에 들어가기 전 약간의 행복감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진통제를 들이부어도 이길 수 없는 고통에 육체와 정신이 너덜너덜해질 바엔, 치매 독거 노인이 되어 인간이 아닌 무생물과 같은 존재로 취급받을 바엔, 사르코에 몸을 뉘이는 것도 나빠 보이지 않았다. 사르코는 석관을 뜻하는 ‘사르코파구스’에서 따왔다.

 

극심한 고통에 이르는 병이나 치매에 걸릴 경우, 어떻게 사르코가 있는 스위스까지 갈 수 있을지 궁리하고 있을 때 최근 테크 전문지 와이어드에 실린 레이 커즈와일의 인터뷰가 생각났다. 신시사이저 키보드 브랜드로 유명한 커즈와일은 우리 시대의 발명가이자 천재이고 괴짜다. ‘특이점이 온다’(2005)는 베스트셀러로도 잘 알려졌는데, 지난달 ‘특이점이 더 가까이 왔다’라는 신간을 냈다.

 

커즈와일은 인간이 아직 발명되지 않은 의료 기술을 활용해 더 오래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특이점에 다다르면 기계와 합쳐지고 초지능이 되어 무한히 살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사람들이 99세까지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하지만 막상 99세가 되면 생각이 달라진다”며 120세, 아니 300세까지 사는 인생에 대해 이야기했다. AI의 발전에 따라 신약과 치료제 개발 속도는 비약적으로 빨라질 것이고 40~50년 후 보편화될 반려 로봇이랑 함께라면 노인 혼자여도 안전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르코에 들어가려고 했던 늙고 병든 나의 육신은 어느새 AI와 한 몸이 되어 생의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사르코와 커즈와일 사이를 수없이 오간 밤을 보내자, 동이 트고 열이 식었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을 때 둘 다 잊어버린 채 앞으로 술을 줄이고 운동도 시작하자는 결심만 떠올랐다. 안락사도 영생도 선택할 수 있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지만, 일단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는 게 최선이다.

 

-변희원 기자, 조선일보(24-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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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들롱의 안락사 결정

 

40대 이상은 알랭 들롱을 ‘아랑 드롱’이라고 불렀다. 그레고리 펙이니 리처드 버턴이니 하는 미국 할리우드 미남 배우들의 이름은 몰라도 이 프랑스 배우의 이름은 알았다. 지금 60대 중반까지만 해도 그를 개봉 영화관이 아니라 TV 영화를 통해 봤을 뿐인데도 그렇다. 한국인에게 미남 배우의 대명사는 알랭 들롱이다.

▷들롱의 첫 히트작은 주제음악으로도 유명한 ‘태양은 가득히’(1960년)다. 자신이 한 거짓말을 사실처럼 믿는 병을 리플리 증후군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영화에서 들롱이 맡은 리플리 역에서 나왔다. 하지만 들롱 하면 역시 ‘누아르(범죄)’ 영화에서 트렌치코트의 깃을 세우고 중절모를 푹 눌러쓴 냉혹한 범죄자 연기다. 장폴 벨몽도와 같이 나온 ‘볼사리노’(1970년), 장 가뱅과 함께한 ‘암흑가의 두 사람’(1973년)이 한국에서 특히 인기가 있었다.

▷들롱은 젊었을 때 독일 미녀 배우인 로미 슈나이더, 록 그룹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객원 멤버인 니코와 염문을 뿌리고 70대에도 20대 여성 모델과 동거했지만 결혼은 1964∼69년 여배우 나탈리 들롱과 한 것이 유일하다. 그 사이에 낳은 아들이 앙토니다. 지난해 나탈리가 췌장암에 걸렸을 때 안락사를 시도했다. 그때 이 아들이 어머니를 끝까지 모셨다. 아들은 19일 한 인터뷰에서 “아버지로부터 자신이 죽게 되면 안락사를 택할 텐데 그때 끝까지 곁에 있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고 그러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들롱은 1999년 스위스 국적을 취득해 이후 스위스에 살고 있다. 스위스는 안락사가 가능한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그의 이주는 프랑스의 많은 부자들처럼 ‘부유세’를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게 가긴 갔으나 안락사가 맘에 들어왔던 모양이다. 들롱은 나탈리가 죽은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누구나 어느 나이가 되면 병원을 거치지 않고 수술 자국 없이 조용히 사라질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들롱의 나이 올해 87세다. 그는 2019년 뇌졸중을 겪었지만 아직 건강하니 당장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유명인의 안락사 결심이 하나둘 늘고 있는 초고령사회의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2016년 일본 인기 TV 드라마 ‘오싱’의 작가 하시다 스가코(橋田壽賀子)가 한 월간지에 “안락사로 죽고 싶다”는 글을 게재해 우리나라에서까지 화제를 모았다. 안락사를 뜻하는 에우타나시아(euthanasia)를 그리스 어원으로 직역하면 아름다운 죽음이란 뜻이다. 세상에 아름다운 죽음이 어디 있겠냐마는 아름답지 않은 죽음을 피하려는 욕구는 조금씩 커져가고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동아일보(22-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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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 결심한 ‘세기의 미남’ 

 

호주의 저명한 식물학자 데이비드 구달이 104세 생일이던 2018년 4월 4일 “내 삶은 야외 활동이 대부분이었는데 이제는 밖에 나갈 수도 없다. 더 이상 행복하지 않다”며 안락사를 선택하겠다고 했다. 구달 박사는 102세 때도 대중교통을 이용해 연구실에 갈 정도로 노익장을 과시했었다. 집에서 넘어져 다친 이후로 혼자 거동할 수 없게 되긴 했지만 불치병을 앓던 것도 아니었다. 한 달여 뒤인 2018년 5월 10일, 구달 박사는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는 호주 땅을 떠나 멀리 스위스 바젤에 가서 약물을 투여받고 생을 마감했다. 

 

▶‘세기의 미남’으로 불리며 1960~70년대 스크린을 주름잡던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이 건강이 더 나빠지면 안락사를 선택하기로 결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1935년생으로 86세인데 자신이 세상 떠날 순간을 정하면 임종을 지켜봐 달라고 아들에게 부탁했다는 것이다. 알랭 들롱은 현재 안락사를 허용하는 스위스에 살고 있다. 2019년 뇌졸중으로 수술받은 뒤 급격히 쇠약해졌다. 전처 나탈리 들롱도 안락사를 희망했지만 프랑스 법이 허용하질 않아 실행에는 못 옮겼고 작년 1월 파리에서 췌장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9년 전 파리의 유서 깊은 호텔에서 86세 동갑내기 노부부가 안락사 금지를 비판하는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조용히 생을 마감하고 싶은 사람들을 무슨 권리로 잔인한 상황으로 몰고 가느냐”는 항변이었다. 남편은 경제학자, 아내는 작가이자 교사였던 지식인 부부였다. 60여 년 해로한 이 노부부는 사별해서 혼자 남겨지거나, 거동 못 하는 지경에 이르러 누군가에게 의존해야 하는 상황을 죽음보다 두려워하면서 이런 선택을 했다고 한다.

 

▶1975년 미국에서 21세 여성 캐런 앤 퀸런이 술과 약물을 함께 복용한 뒤 의식을 잃고 식물인간 상태가 됐다. 딸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인공호흡기를 제거할 수 있게 해달라는 소송을 부모가 냈고 이듬해 법원이 허락했다. 이를 계기로 ‘인간답게 죽을 권리’라는 개념과 함께 존엄사 논쟁이 촉발됐다. 우리나라도 2018년부터 환자 뜻에 따라 무의미한 연명 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일명 ‘존엄사법’이 시행됐다. 하지만 구달 박사나 알랭 들롱이 선택한 것 같은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 여전히 극소수다.

 

▶'100세 시대’를 넘어 곧 ‘120세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한다. 늘어나는 수명만큼 ‘존엄한 죽음’ ‘품위 있게 죽을 권리’에 대한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강경희 논설위원, 조선일보(22-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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