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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집무실은 청와대인가 세종시인가?] ....

뚝섬 2025. 4. 27. 05:55

[대통령 집무실은 청와대인가 세종시인가?]

[대통령실 절반 축소해 재건축한 청와대로 옮기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청와대로 돌아가면 될까]

[차기 주자들 너도나도 “용산 안 간다”]

[‘내가 결정했으니 그대로 가자’ 식으론 안 된다]

[文은 자제하고, 尹은 대국적 자세를]

 

 

 

대통령 집무실은 청와대인가 세종시인가?

 

이전 공약이 난무하는데 수도의 조건을 살펴보자 

 

2004년 당시 세종시 원수산 아래 대통령 집무실 예정지. /김두규 제공

 

대선을 한 달여 앞두고 정당 후보들의 대통령 집무실 공약들이 난무한다. ‘실패한 땅’ 용산을 버리고 어디로 가야 할까? 요즘 필자가 머무는 순창의 시골 밤, 물 고인 논에서 우는 ‘개구리 소리’처럼 들린다. 미래 세계 강국을 염두에 둔 철학은 보이지 않는다. 표심을 염두에 둔 발언들이라 시끄럽기만 하고 진중한 메시지는 없다.

 

필자는 노무현 대통령 당시 신행정건설추진위원회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전북혁신도시, 경상북도 도청 이전 등 공공기관 입지 선정 과정에서도 공식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도 강원도 도청사 건립 자문위원이다. 그러한 인연으로 20년 넘게 도시 입지론과 도읍지론을 깊이 천착했다.

 

국력이 강해짐에 비례하여 ‘산간 지역(사대문 안: 청와대)에서 평지(한강을 접한 용산과 마포)로 그리고 바닷가로 도읍지를 옮겨야 한다’는 것이 전통 풍수관이다. 동아시아 풍수만의 주장이 아니다. 독일 철학자 헤겔은 “특정 민족의 유형과 성격은 그 지리적 위치의 자연 유형(Naturtypus)에 따라 규정된다”고 하였다(‘역사철학’). 이러한 자연 유형은 3가지로 분류된다. 고원(초원) 지대, 평야 지대, 해안 지대가 그것이다. 헤겔은 이 가운데 해안 지대만이 무역을 발달하게 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무한한 정복욕·모험심·용기·지혜 등을 심어주어 궁극적으로 국민(시민)의 자유를 자각하게 해준다고 하였다. 국가의 주요 활동 무대에 따라 국가의 흥망성쇠 및 시민의 자유의식이 규정된다는 주장이다. 

 

19세기 말 독일 지리학자 라첼 역시 바다는 해양 민족의 대담성과 거시적 안목을 심어준다고 했다. 자본주의 발달 이후 유럽에서는 경쟁적으로 패권국이 바뀌었다. 포르투갈·스페인·네덜란드·영국 등이 한때 패권을 차지했다. 그러나 패권을 추구했던 프랑스만은 끝내 제국을 이루지 못했다. 해양 국가로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양 국가를 지향할 때 패권국이 될 수 있음을 역사는 가르친다. 특히 한 나라의 수도가 분지에 있는가, 해안에 있는가는 나라의 흥망성쇠와 직결된다. 이웃 국가에서 성공 사례를 볼 수 있다. 무인 정권(幕府)의 최고 실력자(쇼군·將軍)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오사카를, 후임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에도(지금의 도쿄)를 근거지로 삼았다. 모두 바닷가다. 1868년 메이지 유신 직후 일본은 본격적으로 천도를 고민했다. 후보지로서 기존의 교토·오사카·에도 등이 논의됐다. 이때 정치인 마에지마 히소카, 산조 사네토미 등은 ‘수운(水運)의 장래성, 뛰어난 지세(地勢), 국운의 흥성’ 등을 이유로 에도(도쿄)를 관철한다. 오사카도 훌륭한 항구 도시지만 큰 배가 드나들기에 부적합하다는 이유로 탈락시켰다. 탈아입구(脫亞入歐), 즉 ‘세계화’를 염두에 둔 천도였다. 그리고 성공했다. 

 

2014년 정지작업 후의 세종시 대통령집무실 예정지 /김두규 제공

 

지금 우리의 수도는 어떠한가? 포화 상태가 된 서울이 과연 세계 제국 수도가 될 수 있을까? 세종시가 대안이 될 수 있는가? 민주당 이재명 대선 예비 후보는 “충청은 국토 중심이자 대한민국 심장으로, 대한민국 균형 발전의 심장 충청을 행정·과학 수도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또 당내 대선 후보들과의 토론에서 “임기 내 국회 세종의사당과 대통령 세종집무실을 건립하겠다”고도 했다. 충청도와 세종시에 분명 좋은 일이다. 세종시는 정치·행정·교육·문화의 중심지가 된다. 전국의 자본과 인재가 몰려들 것이다. 동시에 인근 지역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된다. 이른바 ‘균형 발전의 역설’이란 함정에 빠진다. 충북 옥천·영동, 충남 공주·논산·계룡, 전북 무주·진안·장수, 경북 김천·성주 등 지자체들이 긴장해야 할 이유다.

 

2003년 당시 필자는 세종시 수도 이전론이 옳다고 믿었다. 그때는 옳았으나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세종시가 세계 제국의 수도가 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수도는 단순한 정치적·행정적 결정이 아닌, 국운을 좌우하는 문명사적 결정이어야 한다. 정당과 대선 후보의 즉흥적 전략이 아닌,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지난 20일 서울 청와대를 찾은 관람객들. 6월 대선을 앞두고 청와대 개방이 중단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최근 방문객이 늘어났다. /고운호 기자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조선일보(25-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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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절반 축소해 재건축한 청와대로 옮기자

 

[朝鮮칼럼]

대통령 근무하는 건물은 국가의 위엄·안전 확보돼야… 용산 이전은 최악의 선택
차기 대통령은 청와대로 복귀… 단, 완전히 재건축하자
비서실·경호처 건물 해체 후 대통령 집무실과 단일 청사로
조직·인원도 절반 이하로 줄이자

 

대통령 집무실 이전 문제가 다시 대선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청와대 이전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이후 역대 대통령들이 검토하다가 여러 현실적 이유로 단념했던 것인데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긴 것이 오히려 문제를 키웠다. 역대 대통령들이 70년 이상 사용해온, 대한민국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청와대에 들어가기를 거부한 윤 전 대통령의 기이한 자세는 무속 논란과 함께 세간의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대통령이 근무하는 건물은 대내외적으로 국가의 위엄을 보여주는 상징으로서 손색이 없어야 하고, 유사시 대통령의 안전이 확보되고, 국군통수권 행사에도 지장이 없는 곳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과 국가의 안전을 보장하는 일이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기 이전과는 본질적으로 달라졌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북한이 재래식 무기만 보유하고 있다면 대통령 집무실을 어디로 옮기든 대수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은 이제 핵미사일 한 발로 대통령과 수백 명의 참모들을 일거에 몰살하고 국가 기능을 마비시킬 능력을 갖고 있다. 지형적으로 청와대는 북한의 핵미사일이 날아오더라도 막아내기가 서울에서 가장 용이한 곳인 반면에, 용산은 북한의 참수 작전에 취약한 곳이다. 대통령과 국가의 안전 차원에서 본다면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이전한 것은 최악의 실책이었다. 또한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 밖에 거처를 두고 집무실까지 출퇴근하는 것도 위험천만한 일이다.

 

차기 대통령은 반드시 청와대로 돌아가야 한다. 다만, 취임 당일이 아니라 청와대를 완전히 재건축한 다음에 돌아가야 한다. 청와대의 현재 구조나 시설 배치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산물로서 업무의 효율성과 기능적 편의성과는 거리가 있다.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본관은 구중궁궐처럼 비서실에서 동떨어진 언덕에 있어, 참모들이 대면 보고를 하려면 본관까지 자동차로 올라가야 한다. 긴급 상황이 발생할 경우, 대면 보고를 위해 오르막길을 뛰어올라가면 숨이 차서 제대로 보고할 수도 없다. 북한의 핵미사일이 서울까지 날아오는데 5분도 안 걸리는 나라에서 이런 배치와 구조는 위기 관리에 차질을 초래할 뿐 아니라 대통령과 참모들 간의 신속하고 원활한 소통을 저해한다.

 

이런 구조적 문제와 기능적 비효율을 해소하려면 청와대 경내에 있는 비서실과 경호처 건물을 모두 해체하고, 대통령 집무실·관저·비서실·국빈 연회장 등을 모두 수용할 단일 청사를 신축해야 한다. 전쟁을 해본 적이 있고 국가 안보를 중시하는 선진국과 군사 강국 가운데 통수권자의 집무실과 거처, 비서실이 떨어져 있는 나라는 없다. 대개 국빈 연회장과 기자회견장까지 같은 건물 내에 있다. 전시에 대통령실을 더 안전한 외부의 지하 시설로 소개(疏開)하는 구시대적 개념은 폐기하고,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전쟁을 지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 전술핵 미사일이 떨어지더라도 방호가 가능한 구조와 강도로 설계하고, 대통령과 참모들이 전시에도 안전하게 근무할 수 있는 지하 공간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청와대 경내에 경호처 건물을 별도로 두는 것은 국격에 어울리지 않는다. 선진 민주국가 가운데 경호 책임자가 중앙 부처 국장급 이상인 나라는 없고, 차관급이나 퇴역 장성이 경호처장을 맡는 관행은 정변이 자주 발생하는 미개국에서도 보기 어렵다. 속히 청산해야 할 군사 독재 시대의 부끄러운 잔재다.

 

대통령실의 조직과 인원도 지금의 절반 이하로 축소해야 한다. 대통령실이 비대할수록 권력의 집중은 심화되고 정부의 전반적 효율성은 떨어진다. 각 부처에서 국장급의 재량에 속하는 사안까지 대통령실이 사사건건 간섭하면 각 부처의 자율성과 책임 의식은 약화되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되고 대통령실의 개입이 사라진 기간 동안 정부의 운영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분석해보면 해답이 나온다.

 

청와대의 신청사가 완공될 때까지 대통령은 어디서 근무해야 하나? 당분간 국방부 청사에서 계속 근무하는 방법도 있지만, 종래 대통령 당선자와 인수위원회가 사용해온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 완공을 앞둔 창성동 정부서울청사 별관, 삼청동의 금융연수원 등 청와대 인근의 가용 건물로 옮기는 것이 낫다. 대통령의 거처를 청와대 관저로 옮기면 모두 차량으로 2분 거리에 불과하므로 인근 주민들에게 불편을 끼칠 일도 없다. 국빈 영접 등 각종 대통령 행사에는 당분간 청와대 본관과 영빈관을 활용하면 된다.

 

-천영우 前 청와대 외교안보수석·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조선일보(25-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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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일 없었다는 듯 청와대로 돌아가면 될까

 

[천광암 칼럼]

우리 헌정사에서 오랫동안
불통과 권위주의의 상징이었던 청와대
‘소통 획기적 강화’ 해법 없는
청와대 복귀는 ‘파멸의 길’ 될 수도

 

용산 대통령실 시대가 머지않아 막을 내릴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대선 유력 후보들 다수가 용산행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18일 열린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경선 첫 TV 토론에서는 대통령실 재(再)이전 문제가 핵심 이슈 중 하나였다. 이재명 후보는 “용산 대통령실을 잠시 사용하다가 청와대를 보수해 집무실로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김경수 김동연 후보는 용산에 아예 가지 않겠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서는 홍준표 안철수 후보가 청와대 복귀, 유정복 이철우 후보가 각각 세종과 충남 이전을 주장하고 있다. 다른 후보들은 유보적 태도다. 최소한 “용산을 고수하겠다”는 후보는 아직 없다. 세종 이전 시 먼저 정리해야 할 개헌 논란과 후보 지지율 판세 등을 감안하면 청와대 복귀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셈이다.

 

이렇게 되면 용산 집무실과 관저를 개축하고 이전하느라고 쓴 혈세는 아무 의미 없이 허비돼 버린 매몰비용이 되는 셈이다. 비단 돈만의 문제가 아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대통령실 이전을 인수위원회의 1호 사업으로 선정해 밀어붙였다. 집권 5년 청사진을 설계해야 할 중요한 시기에 무리한 계획을 강행하느라 소중한 시간과 국정 동력을 허비했다. 국가적으로 보면 ‘수백억 원이네, 1조 원이네’ 하는 이전 비용보다 이쪽이 더 큰 손실일 수도 있다. 윤 전 대통령이 ‘저지른 일’이니, 차기 대통령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용산을 떠나면 되는 것일까.

한국에서 ‘불행한 대통령’의 역사가 끝없이 반복되는 것은 후임자들이 전임자들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윤 전 대통령만 하더라도, 앞서 탄핵을 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불통’과 ‘비선정치’를 반면교사로 삼았더라면 김용현과 같은 소수 측근과 모의해 ‘자폭성 계엄’을 하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일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의 실패를 자기 일처럼 곱씹어 보지 않으면, 차기 대통령도 비슷한 전철을 밟지 말란 법이 없다.

윤 전 대통령의 ‘탈(脫)청와대’가 실패한 원인은 장소에 있는 것이 아니다.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데 있다. 윤 전 대통령이 대통령실 이전을 추진하면서 내세운 명분은 국민과의 소통, 언론과의 소통이었다. 하지만 ‘공간’에만 사로잡혀 ‘소통’이라는 대통령실 이전의 목적은 온데간데없어졌다. 용산 이전의 전(全) 과정이 ‘불통’ 그 자체였다.

 

대통령실 이전의 상징 중 하나였던 출근길 문답은 6개월여 만에 없는 일이 됐고, 그 자리에는 기자들의 눈을 가리기 위한 가림막이 설치됐다. 정식 기자회견은 건너뛰고 그 공백을 자신의 입맛에 맞는 특정 언론사만 불러서 하는 녹화 대담이나 인터뷰로 채웠다. 이른바 파우치, 외국 회사 그 뭐 쪼만한 백”과 같은 아부성 발언이 질문을 대신한 결과 ‘여사 리스크’는 걷잡을 수 없게 커졌고 그것은 다시 총선 참패→야당과의 대치 심화→무모한 비상계엄을 거쳐 대통령직 파면에 이르는 일파만파의 후폭풍을 낳았다.

해외의 사례지만,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전 멕시코 대통령의 경우는 윤 전 대통령과 좋은 대비를 보인다. 오브라도르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거의 매일 오전 7시에 생중계 기자회견을 했다. 임기 중 1400번이 넘는 회견을 할 정도로 소통을 열심히 한 그의 지지율은 퇴임 무렵에도 70%에 가까웠다. 정권 재창출에도 성공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매일 아침 정례 기자회견을 하는 전통은 후임자인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현 대통령도 이어받았다. 윤 전 대통령의 출근길 문답처럼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 몇 마디 던지고 끝내는 방식이 아니다. 대통령이 관련 각료나 전문가들과 함께 사전에 준비한 자료를 충실히 설명한 뒤, 기자들이 궁금증이 풀릴 때까지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다. 그러다 보니 매일 하는 회견이 2시간 가까이 걸릴 때도 있다. 뛰어난 업무 능력에 이 같은 ‘소통의 힘’이 더해진 결과 셰인바움 대통령의 지지율은 85%를 찍을 정도로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다시 우리 대선 이야기로 돌아오면, 민주당이든 국민의힘이든 ‘용산이냐 청와대냐 세종이냐’의 갑론을박은 있지만, 용산 이전과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 안전장치인 ‘소통’을 강화하려는 강한 의지나 실효성 있는 공약은 보이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탈청와대’ 공약을 내걸었던 대선 후보는 윤 전 대통령뿐이 아니다. 김대중, 이회창, 문재인 후보도 같은 공약을 내걸었다. 그만큼 우리 헌정사에서 청와대는 뿌리 깊은 불통과 권위주의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고민과 해답 없이 그냥 청와대로 들어가는 것은 이쪽저쪽 방향만 다를 뿐 ‘용산 흑역사’를 되풀이하는 일이 될 것이다.

 

-천광암 논설주간, 동아일보(25-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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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주자들 너도나도 “용산 안 간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공약의 빠른 실행을 약속하며 “좋아, 빠르게 가”를 외치곤 했다. 그 시원한 외침은 ‘밈(meme)’으로도 만들어져 인기를 끌었다.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은 말 그대로 ‘빠르게 가’였다. 애초 광화문 집무실을 공약했지만 당선 열흘 만에 용산 집무실로 바뀌었다. 그리고 50일이 지난 2022년 5월 10일 취임 당일 국방부 신청사에 마련된 집무실로 출근했다. 집을 이사해도 두 달은 더 걸릴 법한데, 국가 최고 보안시설이 ‘번개 이사’를 한 것이다.

▷폐쇄적인 공간인 청와대를 떠나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 집무실을 만든다고 했을 때만 해도 권위를 탈피한 일하는 대통령을 기대하는 국민이 많았다. 그런데 경호와 보안 문제 등을 이유로 난데없이 용산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광화문은 경호에 수반되는 시민 불편이 크고 안보 시설 구축이 마땅치 않은 반면에, 용산은 지하 벙커 등이 이미 갖춰져 비용이 적게 든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그다지 타당한 설명은 아니다.

당시 전 합참의장 11명이 대통령실 이전에 따른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등의 연쇄 이동으로 안보 공백이 우려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실제 미국이 대통령실을 감청한 사실이 드러났고, 북한 드론이 대공 방어망을 뚫고 침투했다. 이전 비용도 끊임없이 불어났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해까지 대통령 관저와 대통령실 용산 이전에 집행된 비용을 조사했더니 모두 832억 원이었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이 얘기한 496억 원의 1.7배다. 야당에선 경기 과천으로 옮길 예정인 합참 신축 비용 등을 포함하면 1조 원에 이를 것으로 주장하기도 했다. 외교 행사는 청와대 영빈관, 상춘재를 계속 이용했고 대통령 동선이 복잡해져 시민 불편도 결코 줄지 않았다.

 

상식적이지 않은 의사 결정의 퍼즐은 ‘무속’으로 맞춰졌다. 지난해 11월 공개된 명태균과 지인의 통화 녹음에서 명 씨는 대선 직후 김건희 여사에게 “경호고 나발이고, 거기(청와대) 가면 뒈진다”고 했다고 주장한다. 김 여사와 친분이 있다고 알려진 풍수가 백재권은 “청와대는 흉하다”, 무속인 천공은 “용산으로 가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백 씨는 관저 후보지였던 육군참모총장 공관을 방문한 사실이 경찰 수사에서 확인된 바 있다.

윤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용산 대통령실도 해체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여야를 막론하고 유력 대선 후보들이 입주를 꺼리고 있어서다. 군사 쿠데타를 모의한 본산” “불통과 주술의 상징” “안보적 취약성” 등을 그 이유로 들고 있다. 3년 임차료로 832억 원이나 내고 방을 뺄 판이다. 윤 전 대통령은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며 용산 대통령실을 백악관 웨스트윙처럼 개방적인 공간으로 만들겠다더니 정작 그곳에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용산 대통령실은 ‘구중궁궐’이라던 청와대보다 더한 공간이었나.


-우경임 논설위원, 동아일보(25-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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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결정했으니 그대로 가자’ 식으론 안 된다

 

[朝鮮칼럼]

대통령실 용산 이전, 시간 걸리더라도 설득·공감 과정 거쳐야
정책 결정하기 전 주위 조언 귀 기울이고 차분히 국정 검토를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을 위한 조감도 앞에서 직접 브리핑하는 윤석열 당선인의 모습은 신선했다. 직접 나서 소통하려는 당선인의 의지가 느껴졌다. 하지만 내용을 듣고는 당황했다. 구상도 비현실적으로 들렸고 형식도 자기가 이미 내린 결정을 사실상 ‘통고’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일반인이 이사를 갈 때도 집수리라도 하고 들어가려면 적어도 한 달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게 보통인데, 일국의 대통령이 머물 곳을 한 달 남짓한 시간 만에 고쳐 들어가겠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견장에서 대통령실 용산 이전과 관련해 조감도를 공개하고 직접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욱이 안보와 관련해서 국가적으로 가장 중요한 컨트롤타워인 청와대와 국방부를 사전 계획 없이 그렇게 짧은 시간 내에 옮기겠다는 것도 신중하지 못한 처사로 들렸다. 억지로 시간을 맞춘다고 해도 보안 사안의 유출이나 시스템의 불안정 등 부작용을 피하기 어려워 보였다. 취임식 날 곧바로 청와대를 국민에게 개방하겠다는 것도, 방 빼야 할 기존 거주자의 형편을 고려하지 않은 다소 무례한 생각 같았다. 구중궁궐 같은 청와대에서 나와서 일반 국민과 쉽게 만나고 또 참모들을 주변에 두어 국정 운영의 개방성과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당선인의 생각에는 공감하지만 이번 결정은 섣부르고 성급해 보였다. 취임 첫날 새로운 공간에서 차별화된 모습을 보이고 싶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까지 하면서 굳이 차별화하려고 할 필요가 있을까. 정권 교체가 바로 차별화를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발표에 더욱 주목했던 것은 어쩌면 이것이 윤석열 정부의 국정 운영 스타일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내가 결정했으니 그대로 가자는 식처럼 보였다. 행정 조직에서라면 인사 고과의 권한을 가진 상급자가 자기 뜻대로 부하 직원들을 다그치며 일을 할 수도 있겠지만, 정치의 세계에서는 거꾸로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업무 평가를 받는다. 국민으로부터 업무 평가를 나쁘게 받으면 국정 운영의 동력은 떨어지게 되고 그만큼 야당을 비롯한 비판자들의 거센 공세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더구나 최소한 향후 2년은 여소야대 정국이다. 그래서 검찰총장과 대통령이 처한 입장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대통령의 말과 뜻이 힘을 얻으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설득을 통한 공감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청와대 이전에 대한 세간 여론이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데 대해 윤 당선인은 여론의 지지 여부는 ‘별 의미 없다’라고 말했지만, 그 사안이 갖는 정치적 중요성과 상징성, 그리고 다가올 지방선거를 고려하면 여론의 향배가 결코 의미 없다고 말할 수 없다.

 

대통령직을 인수하는 단계에서 퇴임을 앞둔 대통령과 불필요한 잡음이 생겨나는 것도 당선인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다. 인사를 둘러싼 마찰은 그렇다고 쳐도, 당선인이나 인수위원회의 활동이 신구 권력 간 갈등처럼 비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자리를 물러나는 대통령은 정치적 갈등이나 대립이 생겨도 정치적 부담을 지지 않는다. 더 이상 정치적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서 잃을 것도 없기 때문이다. 인수 과정에서 생겨난 잡음과 갈등은 오롯이 당선인만이 짊어져야 할 부담이다.

 

대선에서 0.73%라는 득표율의 차이가 말하는 것은 윤 당선인이 세심하게 다가서야 할 절반의 국민이 있다는 뜻이다. 더욱이 윤 당선인에게 표를 준 사람들 중에서도 잘할 것이라는 믿음보다 일단 바꾸고 보자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았다. 당선인의 향후 행보를 지켜보겠다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는 말이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 결과는 역대 당선인 중 윤 당선자에 대한 기대감이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단임제하에서 모든 대통령은 아마추어로 시작한다. 설사 오랫동안 준비했다고 해도 당선되자마자 국정의 모든 것을 다 알기란 불가능하다. 정치 경험이 없는 윤 당선인의 경우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 당선인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더욱 겸손해야 한다. 대통령직 인수 기간 중 섣부른 결정을 내려 논란을 일으키기보다 국정 전반을 차분하게 검토하고 대안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누가 봐도 부작용이 불가피해 보이는 용산으로의 조기 이전 결정에 대해 주변에서 말리거나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은 없었을까. 시기적으로 특히 당선인에게 쉽게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일 테고 아마 어렵게 말을 꺼냈다고 해도 듣지 않았을 것 같다. 혼자 결정하려고 하지 말고 주변 측근의 조언과 직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소통을 강조하는 당선인이지만 지금으로서는 국민과의 소통에 앞서 주변과의 소통이 더 중요해 보인다. 대선에서 승리한 것이 끝이 아니라 이제부터가 진짜 정치의 시작이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조선일보(22-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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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은 자제하고, 尹은 대국적 자세를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News1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이 대선 후 19일 만인 오늘 저녁 첫 회동을 한다. 역대 대통령과 당선인의 만남 중 가장 늦었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지난 16일 예정됐던 만남은 인사 문제 등에 대한 입장 차로 회동 직전 결렬됐었다.

 

그동안 있었던 역대 대통령과 당선인 회동은 국정 현안과 인사 문제 등을 논의하는 협치의 자리였다. 1998년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당선인은 외환 위기 와중에서 5번의 주례 회동을 통해 노사정 합의와 재벌 구조 조정, 정리해고제 도입, 정부 조직 개편, 전직 대통령 사면에 합의했다. 2008년 노무현 대통령도 이명박 당선인과 인사 문제 등을 협의 처리했다. 서로 “당선자가 윗분” “선임자 우대”라며 깍듯이 예우했다.

 

그런데 이번엔 임기 말 알박기 인사와 집무실 용산 이전, 감사위원 지명 문제 등을 놓고 신구 권력이 충돌했다. 문 대통령은 자신도 공약했던 집무실 이전을 ‘안보 공백’을 이유로 반대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일해야 할 감사위원과 공공기관장 등을 자신이 임명하겠다고 고집부렸다. 결국 감사원이 “정권 이양기 감사위원 임명 제청은 부적절하다”고 해 없던 일이 됐다. 애초부터 문 대통령의 무리한 욕심이었다.

 

민주당은 윤 당선인을 향해 연일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 대장동 특검은 시간만 끌며 막더니 윤 당선인을 겨냥한 특검 법안을 제출하며 칼을 겨눴다. 대선 후 두세 달은 협력하는 관행을 깨고 ‘허니문’ 없이 정쟁으로 폭주하고 있다. 민주당은 검찰 수사권을 완전 박탈하는 법안을 문 대통령 임기 중 처리하겠다고 했다. 윤 당선인이 거부권을 행사 못 하도록 대못을 박겠다는 것이다. 검찰이 문 정권 비리를 못 건들게 하겠다는 뜻이다. 민주당은 경찰청이 인수위에 제출하는 업무 보고 자료를 자기들에게도 보내라고 했다. 정권 인수 비협조를 넘어 훼방 놓는 수준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코로나 폭증 등으로 경제와 민생이 복합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로 안보 위기도 심각하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은 경제·코로나·안보 등 시급한 현안부터 논의하며 협치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과 연금·건보 개혁 문제도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다. 문 대통령은 인사 문제로 더 이상 갈등을 키우지 말고 집무실 이전 문제 등에서 윤석열 정부가 순조롭게 출발할 수 있도록 협력하는 게 도리다. 윤 당선인도 점령군식 태도나 밀어붙이기보다는 상대를 예우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조선일보(22-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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