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개방 2년] [금단의 하늘이 열리다]
[청와대 개방 2년]
[금단의 하늘이 열리다]
청와대 개방 2년
이승만 대통령은 청와대 전신인 경무대를 6·25 이듬해인 1954년 봄 국민에게 개방했다. 수천명이 방문할 만큼 주목받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1년에 2~3일이던 개방 기간을 1주일로 늘렸다. 어린이 방문객에겐 수학 문제를 내고 맞히면 용돈도 줬다. 북한 무장 공비가 청와대 목전까지 쳐들어온 1968년 1·21 사태가 모든 것을 바꿨다. 청와대 문은 굳게 닫혔고 앞길과 인근 효자동·궁정동 골목 통행까지 막혔다. 근위병 교대식으로 친근한 영국 버킹엄궁이나 지하철역에서 내려 몇 걸음만 가면 안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미 백악관과는 너무도 달랐다. 적막강산이 따로 없었다.
▶1993년 김영삼 정부 때 청와대 앞길이 다시 열렸다. 김대중 정부는 경내 관람까지 허용했고 노무현 정부는 의장대 시범 등 볼거리를 제공했다. 그러나 방문객이 즐기기엔 여전히 불편했다. 몇 달 전에 예약해야 했고 막상 방문해도 녹지원·수궁터·본관·영빈관의 겉모습만 볼 수 있었다. 사진도 허가된 곳만 찍을 수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실천하며 비로소 완전 개방이 이뤄졌다.
▶청와대가 지난 10일로 개방 2주년을 맞았다. 그 사이 500만명 넘는 국민이 다녀갔다. 국민 10명 중 1명 꼴이다. 적지 않은 성과지만 개방 효과에 대해선 긍정과 부정이 맞선다. 무엇보다 개방 첫달 50만명이 넘던 방문객이 지난해부터 월 10만명대로 줄었다. 청와대를 경복궁처럼 연 300만명이 찾는 명소로 만들겠다던 약속도 지키기 어려워 보인다.
▶이렇게 된 데는 청와대를 공개했지만 막상 내용을 어떻게 채울지 고민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콘텐츠가 다양하지 않아 “한번은 호기심에 오지만 재방문 계획은 없다”는 이도 적지 않다. 패션 잡지 화보 촬영을 허가했다가 “청와대를 영리 목적으로 쓰느냐?”는 지적을 받고 사과하는 등 갈팡질팡했다. 프랑스 베르사유궁처럼 미술관으로 쓰자는 의견도 흐지부지됐다.
▶개방 첫해, 청와대 뒤의 북악산 백악정에 올라 서울 도심을 내려다본 적이 있다.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서울이 거기 있었다. 번화하고 깨끗하고 활기찼다. 청와대는 가난에서 벗어나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원대한 꿈을 잉태하고 실행한 역사적 장소다. 개방된 청와대는 그 성취를 확인하고 세계에 자랑하는 공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전시를 하건 공연을 하건 그 취지에 맞췄으면 한다. 개방 3주년 때는 더 많은 국민이 찾아가 긍지를 느끼고 나라의 밝은 미래를 그리는 랜드마크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4-05-13)-
_____________
금단의 하늘이 열리다
청와대 뒤편 상공에서 드론을 통해 내려다보니 파란색 지붕 앞으로 경복궁과 서울 시내 전경이 펼쳐져 있다./오종찬 기자
청와대 하늘 위에 드론을 띄웠다. 청와대 뒤편 상공에서 내려다보니, 파란색 지붕 앞으로 경복궁과 서울 빌딩 숲이 한눈에 들어온다. 도심과 거리를 둔 채 잘 가꿔진 숲에 둘러싸인 모습이 아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외로운 공간이라는 느낌도 든다. 본관 앞에는 입장하려는 관람객들이 길게 줄 서있었다. 국민에 개방된 지 44일 만에 누적 방문객이 100만명을 넘을 정도로 청와대는 요즘 가장 인기 있는 ‘핫 플레이스’가 됐다.
청와대 항공 촬영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동안 청와대 인근 반경 8.3km 상공은 비행 금지구역으로 지정돼 드론이 이륙조차 할 수 없는 지역이었다. 하지만 청와대가 개방된 직후 비행 금지구역이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용산 일대로 옮겨지면서 청와대 상공에서 비행이 가능해졌다. 관계 당국에 신청만 하면 언제든 청와대 하늘에서 드론을 띄울 수 있게 됐다. ‘금단의 하늘’이 열린 느낌이다.
-오종찬 기자, 조선일보(22-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