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잠재력, 떠들수록 더 멀어진다] ....
[핵 잠재력, 떠들수록 더 멀어진다]
[종로구 스위스 대사관에는 핵 방공호가 있다]
[우크라 보며 민주당서도 나온 핵 잠재력 확보론]
[후쿠시마, 정말 ‘오염’ 때문인가?]
[언제까지 미국의 핵 방어 공약만 믿고 살 것인가]
[6개월~1년내 독자 핵무장 가능할까? 조기 핵무장의 4대 장애물]
[한미 핵협의그룹에 숨겨진 ‘아시아 核 쿼드’]
[북한은 우리의 敵手가 못 된다는 교만과 착각]
핵 잠재력, 떠들수록 더 멀어진다
[朝鮮칼럼]
25년 전 한국, 비밀 농축 실험
IAEA 발각돼 안보리 회부될 뻔
그전엔 佛 재처리시설 수입 시도
그때도 미국 압력으로 취소
핵, 감정이 아닌 현실을 보라
자체 농축 기술 확보가 우선
원심분리 기술·공정 개발에
기술적·산업적 역량 집중해야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함께 미국의 확장 억제 공약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면서 한국 내에서 독자 핵무장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핵무장에는 반대하지만 언제든 핵무장에 나설 수 있는 잠재적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는 주장은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한미 원자력 협정의 내용을 모르면서 협정 개정을 요구하는 ‘선무당’들이 활개를 치는가 하면, 평소 한미 동맹을 중시하는 세력이 동맹을 해칠 핵무장에 더 큰 목소리를 내는 기이한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핵 담론은 가히 백가쟁명의 시대를 맞고 있다.
먼저, 핵 잠재력이 없는 나라가 핵무장을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공허한 일인지를 알아야 한다. 핵 잠재력이란 한마디로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기술적·산업적 인프라를 말하는데, 우라늄 농축 시설이나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시설을 보유해야 핵 잠재력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핵무기 원료로 고농축우라늄(HEU)이나 플루토늄이 사용되는 데, 농축 시설에서 우라늄을 90% 이상 농축하면 무기급 HEU가 되고,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면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다. 그러나 농축과 재처리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서도 필요하므로 핵비확산조약(NPT)이 허용하는 합법적인 활동이다. 원전 연료로 사용되는 저농축우라늄(LEU)을 생산하려면 농축 시설이 있어야 하고, 재처리 시설은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유용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엄격한 사찰과 감시를 통해 투명성이 유지되고, 평화적 용도로만 사용된다는 국제사회의 신뢰를 전제로 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민감핵주기(sensitive fuel cycle) 시설이 핵무장에 악용될 위험성 때문에 원자력 기술 선진국들은 이와 관련된 기술·부품·장비 등의 해외 이전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따라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확대를 위해 농축이나 재처리가 꼭 필요한 국가라도 장차 이를 핵무장에 전용할 수 있다는 의심을 받으면 관련 기술과 물자에 대한 접근이 조직적으로 차단된다. 즉 핵 잠재력 확보를 위해 농축·재처리 시설이 필요하다고 공공연히 주장하는 것은 민감 핵기술 보유국들에 민감 기술과 물자에 대한 접근을 막아 달라고 호소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은 이미 50년 전에 프랑스와 재처리 시설 도입 계약을 체결했다가 미국의 압력으로 취소한 적이 있고, 2000년에는 비밀리에 레이저를 이용한 농축 실험을 한 사실이 2004년 IAEA 사찰에서 발각되어 유엔 안보리에 회부될 위기까지 겪은 바 있다. 핵개발 미수 ‘전과’가 있는 나라는 평화적 목적만을 위해 농축이나 재처리를 하겠다고 아무리 우겨도 믿어줄 나라가 없다. 이렇듯 핵 잠재력이란 잡으려고 소리를 낼수록 더 멀리 달아나는 이치를 모르면 헛발질만 하게 된다.
그렇다면 한국은 민감 핵주기 시설을 보유할 방법이 없나? 결론부터 말하면 농축은 가능한데 재처리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현행 한미 원자력협정하에서 재처리는 미국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하지만, 독자적 기술로 농축 시설을 건설하는 데는 제약이 없다. 협정 11조2항에서 미국의 동의를 받아 20% 미만 농축만 할 수 있다고 한 문구를 두고 농축에도 사전 동의가 필요한 것으로 착각하는 ‘전문가’들도 있지만, 이는 미국에서 도입한 우라늄이나 장비를 사용할 경우에만 적용된다.
한미 원자력협정을 탓하기 전에 협정이 허용하는 자체 농축 기술부터 확보해야 한다. 농축 시설 건설에 외국산 소재나 장비를 사용할 생각을 버려야 한다. 평화적 농축은 아무도 시비할 수 없는 당당한 명분이 있다. 전력 공급에서 원전이 3분의 1을 차지하는 나라에서 핵연료 공급을 해외 농축 독과점업체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도 위험천만한 일이다. 에너지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에 에너지 안보는 바로 국가 안보다. 원전 연료의 부분적 자급을 위해서라도 농축 기술 개발을 최우선 국책 과제로 삼아야 한다. 경제성이 입증된 원심분리 기술과 공정 개발에 우리의 기술적·산업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재처리는 핵연료를 연소한 원자로의 원천 기술 보유국과 핵연료 공급국의 동의를 요하는 협정상의 제약을 받지만 설혹 동의를 얻더라도 국내 환경단체들이 가로막을 것이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건설에 50년 이상이 걸리는 나라에서 그보다 환경적으로 훨씬 더 위험한 재처리 시설 부지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천영우 前 청와대 외교안보수석·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조선일보(25-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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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스위스 대사관에는 핵 방공호가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기조로 출범하면서 한국의 북핵 대응 고민이 한층 깊어지고 있다. 김정은과 직접 대화해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핵 군축 협상에 나서는 ‘코리아 패싱’ 우려도 커진 가운데, 자칫하면 북한의 핵 인질이 되어 국가 존립마저 위태로워지는 상황으로 치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은 6차례 핵실험을 거쳐 실전에 배치할 수 있는 정도의 핵무기를 확보했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대체적 평가다. 가장 확실한 대응 수단은 핵이지만, 그게 그렇게 만만치 않다는 점이 문제다. 일각에서 자체 핵무장론을 제기하지만,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가 국제사회의 제재를 견뎌낼 도리가 없고, 당장 핵무기를 생산할 인프라도 갖추지 못했다. 그 밖에 핵우산이나 전술핵 재배치, 잠재적 핵 능력 보유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국제사회와 미국의 용인이나 협조 없이는 구두선에 불과하다.
이제는 북한 핵 억제력의 또 다른 방편으로 핵 공격 발생 시 피해를 최소화하는 민방공 시스템 구축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때가 됐다. 우리나라 민방공 훈련은 1975년 민방위기본법이 제정되면서 체계화했다. 하지만 주로 북한의 공습이나 생화학 테러 대비에 초점을 맞춰 왔다. 2023년 8월, 민방공 훈련을 6년 만에 실시하면서 처음으로 ‘핵 민방공’ 개념을 도입했고 비상 대비 행동 요령까지 마련했지만 국민 인식은 저조하다.
미국은 2017년 11월 29일 북한이 화성12형 미사일을 발사하자 같은 해 12월 하와이에서 민방공 대피 훈련을 벌였다. 일본은 북한 미사일이 본토에 접근한다고 판단하면 즉시 전국순시경보시스템(J-ALERT)을 가동해 실전 같은 훈련을 한다.
영세중립국인 스위스 전역에는 5100여 공공 대피소를 포함해 대피 장소가 약 30만곳 있어 전체 인구 수용이 가능하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주한 스위스 대사관에도 ‘핵 방공호’가 설치돼 있다. 전쟁이 일상화되다시피 한 이스라엘의 민방공 시스템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19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원폭 공격을 받을 당시만 해도 핵에 대한 지식이 없어 열 폭풍이나 충격파, 방사선에 따른 1차 피해 못지않게 방사능 낙진 등으로 인한 2차 피해가 컸다. 우리나라는 핵 공격의 우선 목표가 될 가능성이 큰 도시 지역에 고층 건물과 지하 시설이 많아 핵 민방공 체제를 잘 정착시키면 1차 피해는 물론이고 2차 피해까지 대폭 줄일 수 있다.
북한의 핵 개발은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에도 온갖 기만 술책을 되풀이하며 3대에 걸쳐 이뤄졌다. 김일성이 창시자이자 설계자, 김정일이 집행자, 김정은이 운용자인 셈이다.
앞으로 다양한 핵 카드를 갖고 우리가 가진 외교·안보 자산과 역량을 총동원해 대응책을 찾는 게 중요하겠지만,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준비할 필요가 있다. 핵 민방공 시스템 구축이 시급한 이유다.
혹여 국민 불편과 불안감만 일으킨다는 우려가 있을 테지만, 그보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살길이다. 여기에 어떠한 정략적 접근도 있어서는 안 된다. 지금부터라도 실제 상황에 준하는 핵 민방공 훈련 지침을 마련하고 비상 대피 시설을 크게 늘려야 한다. 나라가 어려울 때일수록 기본이 중요하다.
-채성준 서경대 군사학과 교수·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조선일보(25-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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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보며 민주당서도 나온 핵 잠재력 확보론
민주당 위성락 의원 등 안보통 의원들을 중심으로 독자적 핵 능력 강화와 핵 무장 논의에 대한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동북아평화협력특별위원회 출범식에서 위성락 의원(오른쪽)이 발언하는 모습. /뉴스1
미국과 우크라이나 간 정상회담이 파행되고 유럽이 자체 ‘핵 공유’ 방안을 추진하면서 민주당에서도 ‘독자적 핵 능력 확보론’이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 내 대표적 외교안보통인 위성락 의원은 “핵 잠재력에 대한 담론을 어떻게든 잘 만들어서 정책 방향을 정립해야 한다”고 했다. 국정원 차장을 지낸 박선원 의원도 “이제 우리가 핵 무장에 대해 얘기할 때가 됐다”고 했다.
민주당은 그동안 핵 무장과 전술핵 반입 등에 대한 논의 자체를 금기시해 왔다. 이재명 대표가 대표적이었다. 하지만 강대국들의 안전 보장 약속을 믿고 2000여 개 핵무기를 포기했던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으로 영토를 빼앗기고 미국에마저 외면당하는 상황에 처하자 핵 잠재력이라도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핵 잠재력은 핵무기 개발은 아니지만 언제든 핵 무장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은 1988년 미·일 원자력 협정 개정으로 재처리·농축 권한을 확보했다. 일본이 재처리를 통해 추출한 플루토늄은 47t이 넘는다. 유사시 즉각 핵 무장에 나설 수 있다. 현재 우리는 재처리 권한이 없고 우라늄 농축도 제한돼 있다.
한국의 핵 잠재력은 미국에도 도움이 된다. 미국 비확산 정책에 직접적 충돌이 아니면서 중국, 러시아, 북한에 대한 억제에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일의 자체 핵무기 보유에 열린 생각을 갖고 있다”고 했었다. 러시아는 북핵을 용인했고 트럼프 정부 인사들도 북한을 핵 국가로 불렀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핵 잠재력 확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매우 긍정적인 변화다. 여야는 핵 잠재력 확보 국론을 모아가기 바란다.
-조선일보(25-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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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 우방 우크라에 지원 끊고 이웃 나라엔 관세 폭탄. ‘위대한 미국’ 외치더니 ‘희대의 미국’을 만드네.
-팔면봉, 조선일보(25-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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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정말 ‘오염’ 때문인가?
[김대중 칼럼]
왜 다른 나라는 조용한데 우리만 시끄러운가
우선 광우병, 세월호로 ‘재미’ 본 좌파 세력 추억 때문이지만 더 큰 이유가 있다
북핵 막기 위해 꼭 필요한 건 한국의 원자력 발전과 핵 무장
후쿠시마 괴담은 그걸 막고 있다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사직로에서 열린 윤석열 정권 퇴진 7·15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이 일본의 핵오염수 해양방류에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행진 하고 있다./연합뉴스
후쿠시마 원전(原電) 방사능 오염 처리수의 방류를 반대하며 온갖 괴담을 퍼뜨리는 한국 야당과 좌파 세력의 진의는 정말 ‘오염’ 그 자체에 있는 것인가? 오염이 문제라면 직접 피해를 보는 일본 국민, 캐나다, 미국 등이 벌써 들고 일어났어야 하고 국제기구가 브레이크를 걸고 나왔어야 한다. 그런데 거기는 조용하고 우리만 시끄럽다.
그것이 유독 한국의 야권과 좌파 세력의 ‘먹잇감’이 되고 있는 것은 광우병, 세월호 사건 등으로 정치적 재미를 본 민주당 등 좌파 세력의 추억(?) 때문이리라. 나는 거기서 나아가 이것이 한국의 원자력 발전과 핵 무장을 반대하는, 이른바 ‘이재명식(式) 평화론’에 기인하는 것이고, 한국의 원전 산업을 뿌리째 흔든 ‘문재인식(式) 반핵·반원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핵(核)은 천사와 악마 두 얼굴을 갖고 있다. 하나는 자원(資源)이고 다른 하나는 가공할 살상·파괴 무기다. 그런 핵을 ‘이용’하는 나라는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가 핵무기만 보유하는 나라고, 둘째가 원자력 발전만 하는 나라이며, 셋째가 핵무기와 원자력 발전을 모두 보유한 나라다. 북한이 원자력 발전 없이 핵무기만 보유하고 있고 일본과 한국은 핵무기 없이 원자력 발전만 하고 있으며 미국과 중국은 핵무기와 원전을 모두 갖고 있다. 특히 그 규모에서 세계 톱 랭킹에 들어있다. 핵무기를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든 무기화할 수 있는 잠재국으로 일본을 친다면, 북한은 핵무기에, 한국은 원전에만 올인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원전에 문제가 생기면 그로 인해 손해 또는 피해를 보는 나라는 한국이다. 원전이 없는 북한은 그 여파에서 제외되고, 서해와 남지나해 연안에 즐비한 중국 원자력 발전소 1백50여 기는 어떤 사고가 있었는지도 확실치 않으며, 있었어도 원전 폐지로 쉬쉬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 곳은 일본인데 왜 우리가 난리일까? 나는 이것이 후쿠시마 사태가 단순히 후쿠시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핵 이용’ 능력에 제동을 걸려는 어떤 움직임으로 번져나가는 배경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번 후쿠시마 괴담 사태는 원전을 둘러싼 국제적 시각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리의 원전이라고 불의의 사고에 휩싸이지 않는다는 법이 없다. 문재인 정부가 원전을 폐쇄하고 풍력발전 등으로 옮겨가려 했던 것도 바로 그런 공포감(?)을 이용한 것이다. 지금 수모를 당하고 있는 IAEA는 그때 우리를 어떤 눈으로 볼 것이며 또 주변국들은 우리의 노력과 조처를 어디까지 믿어주고 받아줄 것인가. 지금 야당과 일부 단체가 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막무가내식, 어쩌면 반일 감정에 편승한 정파적 대응은 우리를 국제적으로 고립시킬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금의 후쿠시마 오염 처리수 대응 방식이 한국의 핵무기 보유 노력에 어떤 파장을 미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 북핵의 위협 아래서 살아남을 수 있고 한국이 안보 면에서 보장받을 수 있다. 그래야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국제적 안정성 보장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원전의 부작용 문제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한국에서 ‘핵의 이용’을 멀리하게 하려는 북한, 중국, 더 나아 일본 등에 악용당할 우려가 있다.
듣기만 해도 소름 끼치는, 적개심을 돋우는,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평화론’이 있다. “평화는 아무리 비싸도, 아무리 기분 나빠도,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전쟁보다 낫다”는 이재명의 평화론이다. 한마디로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남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낫다는 생물학적 평화론이다. 하지만 평화도 두 가지가 있다. 아무리 비싸도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살아남으면 된다는 굴종과 굴욕의 평화가 있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아니 설혹 전쟁과 희생을 치르고라도 지켜야 하는 자유의 평화가 있다. 인류의 역사는 후자의 역사다.
지금 야당과 좌파 세력이 후쿠시마 오염 처리수를 갖고 맹렬히 대시하는 것은 두 가지 목표를 갖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반일 감정을 부추겨 일본과 관계 개선을 도모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를 곤궁에 빠뜨리려는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때마침 한국 내에 일고 있는 자체 핵무기 보유 여론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것이다.
-김대중 칼럼니스트, 조선일보(23-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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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미국의 핵 방어 공약만 믿고 살 것인가
[김대중 칼럼]
‘워싱턴 선언’도 사실 종잇조각, 방위 약속·위원회도 결국은 말뿐… 다음 美대통령도 과연 지킬까
호주에는 핵잠수함 공급한 美… 왜 한국 핵무장은 거부하나
핵 방어장치 마련하는 지도자 우리 역사에 길이 남을 것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3년 4월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한미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을 마친 후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한국의 안전보장은 미국과의 동맹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의 핵무장, 중국의 패권주의, 일본의 잠재적 군사력 등을 감안할 때 한국의 독자적 방어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의 안보공약은 영원히 불변인가? 미국의 세계전략에 따라 대외(對外) 안보공약은 바뀔 수 있다. 그러면 우리 안보는 어떻게 되는가?
이것은 미국을 믿고 안 믿고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도 상황에 따라 세계경영 방침을 바꿀 수 있다. 미국이라고 천년만년 한국을 지켜야 한다는 법도 없다. 궁극적으로 자기 나라와 국민은 자기가 책임진다는 만고의 진리에 부합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근자에 미국의 한 군사전략가가 “한국은 독자적인 핵무장을 고려해야 한다”며 그 이유로 “첫째 언제까지 미국을 믿고 갈 수는 없다. 둘째 4년마다 전혀 다른 관점을 가진 정부가 들어서는 미국 정치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미 육사를 거쳐 캔자스대(大)·해군참모대 교수로 있는 에이드리언 루이스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베트남과 아프가니스탄에서 보았듯이 미국의 방위공약은 항상 지켜지지 않았다”며 트럼프가 한국 방위를 위해 수많은 ‘청구서’를 내민 사실을 상기시켰다.
사실 주한미군의 숫자는 항상 미국의 대외정책의 변화를 반영하는 바로미터였다. 모택동과 거래할 때 닉슨과 키신저는 대만을 내줬을 뿐 아니라 주한미군 2사단도 내주었고 그 뒤 카터도 그랬다. 더 거슬러 올라가 2차대전 후 미국은 아시아대륙을 중국에 내주며 동해를 방어선으로 그은 애치슨 라인을 선언해 결국 6·25 전쟁을 유발했다.
때마침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공식방문을 계기로 한국의 핵무장 문제가 진지하게 거론되기를 바랐다. 한국 내 찬성 여론도 70%가 넘었고 미국 조야에도 이제 한국의 핵개발 억제의 끈을 슬그머니 놓아줄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루이스 교수 유(類)의 주장이 늘었다. 그러나 결과는 ‘워싱턴 선언’이라는 또 한 장의 종잇조각이었다. 루이스 교수는 ‘워싱턴 선언’을 이렇게 혹평했다. “방위 약속, 긴밀 논의, 위원회 구성 등은 그야말로 말뿐이다. 다음 미국 대통령이 들어와서 이런 약속들 그냥 지키겠는가?”
아마도 미국은 핵확산을 우려하는 것 같다. 북한 핵은 공격용이고 파괴용이다. 하지만 남한의 핵은 방어용이고 평화용이다. 미국은 북한핵을 막지 못했다. 그렇다면 한국 쪽에 미안해서라도 살길을 터줘야 한다. 북한을 못 막았으니 한국만이라도 막자는 논리는 차라리 궤변이다.
미국은 강대국 논리를 즐기고 있다. 미국은 전 세계를 동원하다시피해서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으면서 자기들은 내밀하게 중국과의 대화를 모색하고 있다. 엊그제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시진핑을 만나는 장면은 그런 강대국 외교의 뒷면을 보는 것 같았다. 앞에서는 한국으로 하여금 대만해협 자유통행을 거론케 하고 대만 독립을 응원하며, 뒤로는 필리핀을 다시 붙들고 인도 호주까지 동원하는 원거리 봉쇄 정책을 펴면서 정작 시진핑 앞에서는 대만 문제를 꺼내지 않는 미국의 전략을 우리는 숙지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특히 한국의 핵무장에는 온갖 이유를 대며 거부하면서 대중(對中) 포위망 격인 군사협력체 오커스(AUKUS) 동맹의 일원인 호주에는 핵잠수함을 조기에 공급하기로 한 미국의 결정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악의적으로 보면 백인국가는 믿을 수 있지만 한국은 아니다라는 차별마저 느낀다.
지금 세계의 안보환경과 여론은 우리에게 호의적이다. 미국 내에서도 한국의 핵 보유에 긍정적인 시각이 늘어나고 있다. 북한의 대남(對南) 협박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한국은 중진을 넘어 선진으로 진입하고 있다. 내년 트럼프가 또다시 집권하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바이든은 다르다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민주당 정부는 공화당 뺨치게 기회주의적이다. 미국 정부가 언제 중국과 ‘큰 그림’을 그리고 아시아 대륙에서 ‘한 발 물러난’ 현대판 애치슨 라인을 그을지 모르는 일이다. 루이스의 말대로 “한국의 핵무장을 미국의 신뢰에만 의존하는 것은 옳은 선택이 아닐 수 있다” 윤 대통령은 6·25때 불리한 여건에서도 휴전의 조건으로 한미 방위동맹을 이끌어낸 이승만의 지혜와 용기와 배짱을 배워야 한다. 한국의 핵 방어 장치를 마련하는 지도자는 한국의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길 것이다.
-김대중 칼럼니스트, 조선일보(23-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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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1년내 독자 핵무장 가능할까? 조기 핵무장의 4대 장애물
[유용원의 군사세계]
한국의 진짜 핵무장 잠재력은?
“한국은 핵무장을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빠른 시일 내에, 심지어는 1년 이내에도 핵무장을 할 수 있는 기술 기반을 갖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미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에서 이같이 밝힘에 따라 우리나라의 핵무장 잠재력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리 핵무장 잠재력에 대해선 “6개월이면 가능하다”는 낙관론과 “1~2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신중론이 엇갈려왔다.
지난 2015년 미국의 핵군축 전문가 찰스 퍼거슨 미 과학자연맹(FAS) 회장이 발표한 이른바 ‘퍼거슨 보고서’는 조기 핵무장이 가능하다는 낙관론에 불을 지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핵무기 제조 능력은 북한에 월등히 앞선다. 한국 원자력 설비 용량은 세계 5위이고 운전 기술력은 세계 1위, 핵무기 제조 잠재력은 세계 10위권 내에 들어 있다. 이는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에 버금가고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보다 높은 것이다.
◇ “월성 원전서 핵무기 4330개 분량 플루토늄 추출 가능”
한국의 레이저 우라늄 농축 기술은 세계가 주목할 만한 경지로 플루토늄이 없이도 단기간에 핵무장이 가능하다고 퍼거슨 보고서는 주장했다. 특히 경북 월성에 있는 4기의 가압중수로형 원자로에서 그동안 추출해 쌓아놓은 폐연료봉을 재처리하면 무기급 플루토늄 26t을 얻을 수 있다. 이는 핵무기 4330개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이다. 월성 원자로에서는 매년 핵무기 416개를 만들 수 있는 2.5t의 준(準)무기급 플루토늄이 생산되고 있다. 증폭 분열탄이나 수소폭탄 제조에 필요한 중수소와 삼중수소도 상당량 확보돼 있다고 한다. 또 핵무기 제조 과정의 핵심인 고농축이나 재처리 시설도 자체 제작이 가능하고 핵물질, 핵탄두, 운반체도 자체적으로 확보돼 있다는 게 이 보고서의 판단이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명예교수 등 일부 전문가들도 “한국은 마음만 먹으면 6개월 이내에 핵무기를 터뜨리는 기폭(起爆) 장치와 탄도미사일 등 투발 수단을 갖춘 핵무장이 가능하다”며 낙관론에 힘을 보태왔다.
그러면 실제로 6개월 내 독자 핵무장이 가능할까? 핵무기는 원료에 따라 우라늄탄과 플루토늄탄으로 나뉜다. 천연 우라늄 중 핵분열을 하는 우라늄 235는 0.7%에 불과한데 핵무기 원료로 쓰려면 이를 90% 이상으로 고농축해야 한다. 고농축 우라늄 1㎏을 얻기 위해선 1000t의 천연 우라늄이 필요한데 우라늄탄 1기 제조엔 고농축 우라늄이 15~20㎏가량 있어야 한다. 고농축 우라늄은 보통 원심 분리기를 활용해 얻지만 레이저를 활용한 최신 농축법도 있다. 현재 우리나라엔 원심분리기 시설이 없다. 다만 지난 2000년 최신 레이저농축법으로 0.2g의 순도 77% 농축 우라늄을 추출한 적이 있다. 이를 토대로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레이저 농축 기술을 갖고 있어 언제든지 레이저농축으로 고농축우라늄을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왔다. 하지만 이에 대해선 “핵무기 개발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양으로 큰 의미가 없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플루토늄탄은 퍼거슨 보고서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월성 중수로 원전 때문에 독자 핵무장에 우라늄탄보다 유리한 방식으로 거론돼왔다. 중수로 방식인 월성 원전은 경수로 방식인 다른 원전에 비해 플루토늄 함량이 높은 폐연료봉이 나온다. 폐연료봉에서 플루토늄을 뽑아내는 방법은 전기분해(건식), 습식 재처리(퓨렉스 등) 방식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 기술적으로 크게 어렵지 않아 우리도 만들 수 있지만 현재 재처리 시설은 없는 상태다. 대규모 재처리 시설을 만드는 데에만 6개월~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플루토늄탄 1기 제조엔 과거엔 플로토늄 6~8㎏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기술 발전으로 4~6㎏ 정도면 가능하다.
◇핵기폭장치 등 개발 40년 이상 중단 상태
고농축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이 충분히 확보되더라도 이를 핵무기로 만드는 기폭장치 등 무기 기술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기폭장치 개발엔 100만분의 1초까지 타이밍을 맞추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우리 핵기폭장치 개발은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 시절 비밀 핵개발 당시 추진됐지만 핵개발을 포기한 뒤엔 40년 이상 중단 상태다. 핵기폭장치 및 탄두 개발에는 국산무기 개발의 총본산인 국방과학연구소(ADD)가 참여할 수밖에 없는데 현재 국방과학연구소에 핵무기 관련 기구와 인력은 전무하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핵개발에 대해서도 상당히 진척됐다는 시각과 함께 부풀려졌다는 평가도 있다. 한용섭 국제안보교류협회 회장(전 국방대 부총장)은 저서 ‘핵비확산의 국제정치와 한국의 핵정책’에서 “박정희 대통령 시절 핵개발이 마치 성공할 수 있었던 것처럼 ‘신화 만들기’가 있었고, 이 신화 만들기가 오히려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국과 국제사회의 한국에 대한 불신 가중과 우리의 평화적 핵이용 정책 면에서 국익 손실을 초래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재처리 시설 도입 美와 협상 필요”
이에 따라 독자 핵무장에는 최소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제기된다. 윤 대통령이 ‘1년 이내’를 언급한 것도 그런 기술 기반을 갖고 있다는 것이지 실제로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핵자강론자’인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핵공학자와 기술자들을 선정해 팀을 만들고 시설을 건설하는 데에도 일정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3~6개월 내 핵무기 개발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지나친 낙관론에 빠져있기보다 우리 핵잠재력에 대한 냉철한 평가를 토대로 적극적으로 잠재력 확보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동북아외교안보포럼(이사장 최지영)은 지난달 30일 사용후핵연료 습식 재처리 시설의 국내 도입을 위해 미국과 협의해 나갈 것을 요청하는 청원서를 외교부에 제출했다. 최 이사장은 “오는 2030년쯤 고리와 영광 원전 부지 내에 위치한 사용후핵연료 임시 저장 시설이 포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원자력 발전의 지속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사용후핵연료 처리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워싱턴 선언’에서 핵확산금지조약(NPT) 준수 등을 언급한 것이 핵잠재력 포기까지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핵잠재력 확보 추진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북 핵무기 보유량, 20~90기로 다양한 추정
현재 북한의 핵무기 수는 20~90기 범위로 추정하는 경우가 많다. 추정하는 전문가와 기관에 따라 차이가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작년 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6차 전원회의에서 핵탄두 보유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리라”고 지시해 북한의 비밀 고농축 우라늄 시설 등이 계속 활발하게 가동되며 핵무기 원료를 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이 2016년 공개한 구형(球形) 핵탄두(왼쪽 사진)와 2023년 공개한 ‘화산-31형’전술핵탄두. 화산-31형은 직경 50cm 이하로 작아져 다양한 미사일에 탑재가 가능한 것으로 평가된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지난 1월 한국국방연구원(KIDA) 박용한 선임연구원과 이상규 현역연구위원은 ‘북한의 핵탄두 수량 추계와 전망’ 보고서에서 “북한이 현재 보유한 핵탄두 수량이 80~90기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미국 핵군축 전문 민간연구소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가 발간한 ‘북한 핵무기 보유고-새로운 추정치’ 보고서는 지난달 북한이 핵무기 45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2022년 말까지의 북한 핵무기 수에 대해 “경우에 따라 북한이 만들 수 있는 핵무기는 35~65기 사이인데 중간값은 45기”라고 분석했다.
북한 핵무기는 숫자뿐 아니라 각종 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는 전술핵탄두 등 소형화 측면에서도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북한은 지난 3월 ‘화산-31형’이라 불리는 소형 핵탄두 실물과 명칭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화산-31형은 직경 40~50㎝, 길이 90㎝가량으로 북한이 지금까지 공개한 핵탄두 중 가장 작다. KN-23 ‘북한판 이스칸데르’ 미사일은 물론 600㎜ 초대형방사포, 무인수중공격정 ‘해일’, 화살-1·2 장거리 순항미사일, KN-24 미사일, ‘미니’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8종의 무기에 탑재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유용원 군사전문기자:
1993년 이후 줄곧 30년간 국방부를 출입, 우리나라 최초이자 현직 최장수 군사전문기자로 꼽힙니다. 누적 방문자 4억2000만명을 돌파한 대한민국 최대의 군사안보 커뮤니티인 ‘유용원의 군사세계’를 비롯, 유튜브(구독자 25만명), 페이스북(팔로워 6만8000여명), 네이버TV, 인스타그램 등 7개의 개인 채널을 운영하며 많은 분들과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23-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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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핵협의그룹에 숨겨진 ‘아시아 核 쿼드’
NCG는 日·濠까지 합류할 ‘4국동맹’의 그릇
‘억제력 강화-中과의 갈등’ 시험대 오른 한국
4·26 한미 정상회담 결과 나온 핵협의그룹(NCG·Nuclear Consultative Group)을 두고 ‘사실상 핵 공유’라느니 ‘속 빈 강정’이라느니 그 평가는 극과 극이었다. 어떤 제도나 기구든 시작은 낯설고 어설프기 마련이다. 첫발을 떼자마자 주저앉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몸집을 불리고 힘도 키우기 마련이다. 일단 자리를 잡으면 쉽게 소멸하지도 않는다. 냉전과 함께 탄생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탈냉전 이후에도 확장을 거듭하는 것은 그 제도화의 힘이다. NCG도 앞으로 무엇이 담기고 어떻게 변화할지 주목해야 한다.
NCG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그 연원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재작년 2월 바이든 행정부 출범 직후 나온 시카고국제문제연구소(CCGA)의 보고서 ‘핵 확산 방지와 미국 동맹 안전보장’이 그 시작으로 보인다. 여기엔 척 헤이글 전 미국 국방장관과 케빈 러드 전 호주 총리, 맬컴 리프킨드 전 영국 외교장관이 공동의장을 맡고 여러 나라 안보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이 보고서는 호주 일본 한국을 미국의 핵 기획 과정에 참여시키고 이들과 미국 핵전력 정책을 논의할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며 나토의 핵기획그룹(NPG·Nuclear Planning Group)과 같은 ‘아시아 핵기획그룹(ANPG)’의 창설을 제안한다. 미국 일본 호주 인도의 4개국 안보협의체 쿼드(Quad)와는 별도로 핵 억제에 특화된 ‘아시아판 핵 쿼드’의 설립을 주문한 것이다.
그 제안의 동인은 미국의 정권 교체였다. 전임 트럼프 행정부의 동맹 경시와 자국 우선주의에서 벗어나 동맹국들의 의구심을 씻어내지 않으면 여러 나라의 독자 핵무장 등 세계적 핵 확산을 막을 수 없다는 위기감의 발로였다. 나아가 작년 2월엔 한국인의 71%가 자체 핵개발에 찬성한다는 CCGA의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미국 방위공약에 대한 한국의 불신이 이슈로 떠올랐다. 또 올해 초 윤석열 대통령의 ‘핵 보유 가능’ 발언은 세계 안보전문가 그룹을 화들짝 놀라게 했다. 워싱턴 전문가들은 윤 대통령의 발언이 단순 말실수인지, 국내 여론 관리용인지, 미국을 향한 압박용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면서도 커져가는 미국에 대한 한국인의 반감을 관리해야 한다는 데는 의견이 모아졌다.
그중 눈에 띄는 정책구상이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의 ‘신뢰의 위기: 아시아에서 확장억제 강화의 필요성’ 보고서였다. 클링너도 한미일 3국과 호주가 참여하는 나토식 다자 NPG 설립을 제안한다. 다만 “한국은 NPG란 이름에 미치지 못하는 어떤 것이든 불만족스럽게 여길 것”이라며 한미 전력의 통합성과 한국의 다급한 요청, 국가적 자부심을 감안해 일단 양자 NPG를 만든 뒤 4자 그룹으로 묶는 2단계 방안을 제시했다. 이런 배경 아래 태어난 한미 협의체 NCG는 미국의 전략적 큰 그림에선 한미일 3자, 이어 아시아판 4자 NPG로 가는 첫 징검다리일 것이다. 실제로 NCG가 핵 확장억제의 실효성을 갖추려면 위협 인식을 공유하는 한미일 3각 협력은 필수적이다. 나아가 북핵 위협이 더욱 커지고 미중 대결이 한층 격화되면 호주의 합류도 시간문제일 것이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한국이 불가피하게 중국과의 갈등을 최전선에서 감당해야 하는 지정학적 딜레마에 처하게 된다는 데 있다. 중국은 쿼드 같은 안보협력체를 두고 ‘배타적 패거리 짓기’라며 강력 반발해 왔다. 한국은 북핵에 맞선 한반도 안보에 초점을 맞추고 싶지만 미국은 대만해협은 물론 인도태평양에서 중국을 봉쇄하려 한다. NCG가 미국엔 아시아판 핵 동맹의 시험대지만, 한국엔 미중 간 선택의 시험대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철희 논설위원, 동아일보(23-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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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우리의 敵手가 못 된다는 교만과 착각
빈약한 북한 경제력 근거로 잘못된 '안보 낙관론' 퍼져
아테네·中 국민당·南 베트남 외형상 국력 우위 믿다가 패망
세계은행과 한국은행 발표를 종합해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12위이며 북한의 47배나 된다. 즉 북한 경제력은 한국의 2.1% 수준이다. 이렇게 현격한 경제력 격차는 '북한은 더 이상 우리에게 위협이 안 된다'는 안보 낙관론의 근거가 되고 있다.
북한이 128만의 정규군과 760만의 예비군에다가 핵무장까지 했는데도 실제로 우리는 천하태평이다. 가난한 나라는 부자 나라를 침략하거나 이길 수 없다는 잘못된 믿음이 사회적 통념으로 자리 잡은 탓이다. 하지만 인류 전쟁사를 보면 풍요에 취해 무(武)를 천시한 부자 나라들이 가난한 선군(先軍) 병영 국가의 상대가 되지 못한 경우가 대세를 이룬다.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404년) 발발 당시, 아테네는 민주 정치와 해상 무역을 꽃피우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스파르타에 비해 인구는 3배가 많고 경제력도 절대 우위였다. 병력도 육군은 비슷했지만 군함은 3배 많았다. 그러나 내부 분열과 시칠리아 원정 같은 무모한 정책을 계속하다가 북한처럼 인간을 전쟁 기계로 만든 스파르타에게 패망했다.
11세기 중국의 송(宋)은 연간 철강 생산이 12만5000t으로 유럽 전체보다 많고 인구도 1억 명으로 최강대국이었다. 그러나 인구 400만의 거란에 두 번 연속 패하고 몽골에 나라를 뺏기는 대굴욕을 맛봤다. 17세기 초반 명(明)은 인구가 세계 23%인 1억5000만명에 달하는 강대국에 180만의 대군을 갖고 있었지만, 가난하고 척박한 만주 땅에서 단련된 후금(後金)의 6만 팔기군(八旗軍)에 무너져 멸망했다.
20세기 들어서도 1946년 국공(國共) 내전 당시 국민당은 병력 430만에 항공기와 함정·야포를 갖춘 현대 정예군을 보유했으나 거의 소총밖에 없는 120만 공산군에 밀려 대만으로 쫓겨났다. 1967년 3차 중동전이나 1975년 베트남 공산화에서 보듯 아랍 동맹국과 남(南)베트남은 인구·경제력은 물론 병력, 최신 무기 등 군사력에서도 월등히 앞섰으나 패배했다.
이런 나라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경제와 군사 같은 외형상 국력은 상대방보다 훨씬 뛰어났지만 내부적으로 정신 무장이 해제된 상태에서 지도층의 무능, 정치적 혼란과 분열, 군사력보다 상대방의 선의(善意)를 기대하며 돈으로 평화를 살 수 있다는 착각이 만연했다. 나라를 지키는 데 국가 내부의 기강과 건강성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피와 눈물로 가득 찬 패망국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역경을 이기는 사람이 백 명이면, 풍요를 이기는 사람은 한 명이다." 영국 최전성기인 빅토리아 시대의 사상가, 토머스 카알라일(1795~1881)이 쓴 '영웅숭배론' 서문에 나오는 글귀다. 패망한 부자 나라는 모두 풍요의 문턱을 넘지 못했는데, 카알라일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 앞에도 풍요라는 결정적 도전이 기다리고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근대 이후 세계적 부국(富國)인 영국과 미국이 여러 전쟁에서 연승(連勝)하고 있는 것은 과거 부자 나라와 달리 경제력·군사력은 물론 상무(尙武) 정신까지 겸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국방·안보 여건은 세계사에서 명멸한 부자 나라들보다 훨씬 불리하다. 우리는 인구·경제력 정도에서만 북한을 앞설 뿐, 핵을 포함한 군사력에선 북한이 우리를 압도한다. 그나마 한·미 동맹과 자주 국방 노력, 국민의 안보 의식이란 세 가지 기둥 덕분에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남북 관계나 주변국 상황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가장 기본인 이 세 가지가 문재인 정부 들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우리는 세계 1등 자리를 놓고 싸우는 강대국들 틈에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와 일본을 빼면 북한을 포함해 모두 핵무장국이다. 여건만 되면 바로 핵무장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일본은 미·일 동맹 강화와 자체 방위력 증강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우리는 정반대다. 탈(脫)원전으로 남아있는 핵 잠재력마저 없애고 한·미 동맹과 자체 안보 태세도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다. 안보 태세와 안보 의식을 허물어도 경제력만 우월하면, 북한이 우리의 적수(敵手)가 못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역사의 교훈을 외면한 어리석음과 교만일 뿐이다. 강대국도 꺼리는 '안보 실험'을 국방 개혁이란 명분 아래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현 정부의 행동은 무지(無知)에서인가, 아니면 북한은 어떤 경우에도 적이 안 될 거라는 신념에서인가.
-신원식 前 합참 작전본부장·예비역 육군 중장, 조선일보(18-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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