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 이길 사람이냐 지킬 사람이냐] .... [‘올드보이’ 출마 러시]
[공천, 이길 사람이냐 지킬 사람이냐]
[여야 前 대표들 동시에 탈당하는 한국 정치]
[김기현 대표 사퇴는 시작일 뿐, 다 안 바뀌면 미래 없어]
[지천명(知天命)]
[‘올드보이’ 출마 러시, 나라 위한 건가, 노욕인가]
공천, 이길 사람이냐 지킬 사람이냐
[朝鮮칼럼]
여당도 야당도 “공정한 공천” 다짐하지만
각오보다 두려움이 앞서면 이길 수 있는 사람보다 믿을 수 있는 사람 찾게 돼
전쟁 중에는 나를 지키고 패배 후에도 나를 보호할 사람… 그러면 싸우나 마나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뉴스1
정당끼리, 후보끼리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경합하는 선거는 총칼 없이 싸우는 전쟁이다. 단순하다. 최선을 다해서 싸운 이후 이기거나 지거나 둘 중 하나다. 이에 비해 전투 준비, 공천은 훨씬 더 복잡하다. 잡음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 공천이지만 큰 탈이 나면 선거는 해보나 마나다. 그래도 옛날엔, 김영삼·김대중 같은 리더들이나 심지어 전두환·노태우 같은 군 출신 보스도 좋은 사람 뽑아서 선거에 내보냈는데 요즘은 그때만 못하다는 이야기가 많다. 맞는 말이다. 과거 일인자들이 사람 뽑아서 배치하던 시절보다 지금이 훨씬 못하다.
제왕적 총재들은 언변이 뛰어나서 공중전을 맡길 사람, 조직력이 뛰어난 사람, 정책 기획력이 뛰어난 사람, 이미지가 좋아서 대중적 인기가 높은 사람, 정치 자금을 댈 적재(適材)를 추린 다음에 적소(適所)에 내려보냈다. 측근들도 국회에 보낼 사람, 당직자로 의원들을 관리 감독할 사람, 지근거리에서 자신을 보좌할 사람으로 나눠서 배치했다. 이 모든 것은 밀실에서 비공개로 진행됐다. 당원들이 참여하는 경선, 외부 기관에 맡기는 여론조사 따위는 신문 국제면에 나오는 외국 이야기였다. 권력도 책임도 오직 한 사람의 것이었다.
하지만 이젠 그렇게 못 한다. 그런 시대가 다시 돌아오지도 않을 것이다. 게다가 제왕적 총재 시대 이후로 따져도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는 약한 리더다. 김대중, 김영삼까지 갈 것도 없다. 이회창, 노무현, 박근혜, 문재인이 지녔던 유무형의 장악력, 당 구성원들과 지지자들이 그들에게 보냈던 애정이나 충성과 현재를 비교해보면 알 일이다. 양쪽 모두에서 벌어진 사당화 논란, 이로 인한 이탈과 3지대의 부상이야말로 그 약함의 증거다.
정당의 지도자와 후보, 지지자까지 선거에서 지고 싶은 사람은 없다. 개별 후보의 경우 당의 승리보다 자기 당선이 우선이긴 하다. 지지자들은 이기면 신이 나겠지만 진다고 해서 인생이 본질적으로 바뀌진 않는다.
현재 거대 여야 양당 중 아무도 “우리가 지난 4년간 잘했으니까 다시 찍어달라”는 말은 차마 못 하고 있다. 대신 “무능하고 불통인 데다가 대통령 부인만 감싸고 도는 여당이 의회 권력까지 쥐게 되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냐” “음주운전도, 전과도, 막말도 딱 자기 당 대표 같은 사람들만 모인 방탄 야당이 또 다수당이 되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냐”고 맞서고 있다. 둘 다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여당이 진다고 해서 대한민국이 갑자기 ‘베네수엘라행 급행열차’를 탄다든가, 야당이 진다고 해서 민주당 김용민 의원 말대로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해 장기집권의 길에 들어서진 않을 것이다. 뒤집어 봐도 마찬가지다. 여당이 이기면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을 잘하고 각종 개혁이 착착 진행되고 경제 성장률이 높아질까? 야당이 이기면 남북이 화해하고 성장과 분배가 균형을 맞추면서 민주주의가 꽃피게 될까? (다만 조국 전 장관의 주장대로 ‘범진보 진영’이 200석 이상을 얻는다면 즉각적 탄핵 혹은 임기 단축 개헌 시도가 나타날 수는 있겠다)
이런 점에서 보면 총선 패배가 가장 두려운 사람은 딱 둘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다. 대한민국 5000만 국민 중 총선 결과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을 두 사람이다. 정치인들이 그간 해온 일에 대한 평가를 받는 것이 선거일진대, 제일 불안할 두 사람도 그들이다. 시험이 다가오는데 공부해놓은 것이 없어서 겁이 난다면 진심을 다한 벼락치기라도 해야 한다. 그게 바로 좋은 공천이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공정한 공천 관리는 총선 승리의 핵심 열쇠”라면서 ‘국민 눈높이에 맞는 공천’을 강조했다. 정권의 2인자 소리를 듣는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공정한 공천, 설득력 있는 이기는 공천을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들의 이런 각오를 의심할 필요는 없다. 선거에서 승리해야 하고,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공천을 잘해야 하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일테니까. 하지만 각오 뒤에 있는 약함과 두려움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두려움이 앞서면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찾게 된다. 상대와 맞서서 잘 싸우고 승리 이후에도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전쟁 중에는 나를 보호하고 패배하고 나서도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을 찾게 된다. 그렇게 되면 싸우나 마나다.
-윤태곤 정치칼럼니스트, 조선일보(2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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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지대 다섯 그룹 한자리에 모여 “양당 독식 끝내겠다.” 합종연횡·이합집산 시즌 본격 스타트.
-팔면봉, 조선일보(2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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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前 대표들 동시에 탈당하는 한국 정치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와 이준석 개혁신당(가칭) 정강정책위원장이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양향자 한국의희망 대표 출판기념회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뉴스1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에 이어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11일 탈당했다. 이낙연 전 대표는 탈당 회견에서 “(민주당에서) 김대중·노무현의 정신과 가치, 품격은 사라지고, ‘1인 정당’ ‘방탄 정당’으로 변질됐다”고 했다. “저의 지지자들은 ‘수박’으로 모멸받고, ‘처단’의 대상으로 공격받았다”며 이재명 대표를 비판했다. 이에 앞서 이준석 전 대표도 윤석열 대통령을 비판하며 탈당했다.
총선이 있는 해에 정치인들의 이합집산은 익숙한 풍경이다. 하지만 이번처럼 얼마 전까지 여야의 당 대표를 했던 이들이 거의 동시에 탈당한 것은 이례적이다. 도저히 정상이라고 볼 수 없다. 두 전직 대표는 자신들이 속했던 정당과 정책적 차이가 있어서 탈당한 것이 아니라 당내 권력 싸움에서 밀려났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느 정당이나 주류와 비주류는 있게 마련이다. 당권을 잡은 주류가 상대적으로 더 큰 힘을 행사하지만, 비주류도 일정 지분을 보장받으면서 견제하는 역할을 해왔다. 잘만 되면 이런 경쟁 분위기가 당이 긴장감을 잃지 않고 활력을 유지하게 만드는 역할도 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정당들은 주류는 친(親)자를 붙이고 아닌 쪽은 비(非)자를 붙여 서로 상종 못 할 사람들처럼 상대해왔다. 이런 당내 권력 싸움은 국민의 환멸만 불렀을 뿐 국정과 정치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았다.
두 전직 대표는 각각 ‘이낙연 신당’ ’이준석 신당’을 만들어 총선에 뛰어들 계획이라고 한다. ‘빅 텐트’를 명분으로 두 사람이 서로 연대해 하나의 당을 만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지금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의힘과 민주당 모두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 숫자가 상당하다. 제3당이 성공할 최소한의 여건은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준석, 이낙연 신당은 대북 관계나 경제정책 원칙 같은 이념적 정체성에서 거의 정반대라고 할 정도로 상반된 입장이다. 그런 두 당이 합친다면 ‘반윤’ ‘반명’이라는 것 이외에 어떤 정책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조선일보(24-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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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당과 야당 전직 대표 모두 탈당. 다이내믹 코리아를 넘어 대혼돈에 빠진 정치의 단면.
-팔면봉, 조선일보(24-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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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 대표 사퇴는 시작일 뿐, 다 안 바뀌면 미래 없어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11일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네덜란드를 국빈 방문하는 윤석열 대통령 환송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뉴스1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사퇴했다. 당 혁신 차원에서 퇴진 압력을 받아오던 김 대표는 친윤 핵심 장제원 의원이 내년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한 지 하루 만에 물러나기로 했다. 김 대표는 “우리 당이 지금 처한 모든 상황에 대한 책임은 당 대표인 저의 몫이며 그에 따른 어떤 비판도 저의 몫”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이 지금과 같은 위기를 맞은 것은 기본적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책임이지만, 지난 3월부터 당을 이끈 김 대표와 지도부의 책임도 작지 않다. 최근 민심은 지난해 5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후 1년 반 만에 크게 돌아섰다.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3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은 계속 확산돼 국민의힘이 텃밭으로 인식해온 영남 지역에서도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한다.
여당의 기본적인 책무는 대통령의 인사와 정책에 대한 민심의 동향이 어떤지를 파악하고 이를 가감 없이 전달해 민심 반영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고 이것이 개혁 국정의 동력이 된다. 그런데 김 대표와 당 지도부는 정부와 여당이 이렇게 가라앉고 있는 데도 상황을 직시하지 않았다. 대통령에게 민심을 제대로 전달한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았다. 정치인은 대통령의 ‘졸병’이 아니다. 공무원들은 심각한 대통령 부인의 문제를 직언할 수 없지만 정치인은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정치를 할 자격이 없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을 바로 사면시켜 다시 출마시키는 무리한 일이 벌어지는데도 이를 바로잡지 못했다. 이 선거 참패로 출범한 혁신위가 이런 당 지도부·중진·친윤 핵심에게 물러나달라고 요구한 것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그런 결단 없이는 돌아선 민심을 되돌릴 수 없다.
김 대표의 사퇴와 장 의원의 불출마 선언은 국민의힘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이 변화를 실감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만큼 지금 정권과 민심의 거리가 멀다. 무엇보다 혁신적인 공천과 과감한 세대교체로 젊은 세대를 전면적으로 국민 앞에 내세워 나라의 미래를 보여줘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부에서 장차관을 했거나 대통령실 요직에 있던 이들이 당선되기 쉬운 ‘지역구 쇼핑’에 나서는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한국 정치 역사에서 국민 시선을 두려워하며 자신을 희생하고 변화한 정당은 국민의 선택을 받았고 아닌 정당은 사라졌다.
-조선일보(23-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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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명(知天命)
[이한우의 간신열전]
공자는 50세쯤 되어서야 지천명(知天命)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천명이라 하면 약간 신비주의적 용어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때 천(天)은 공(公)을 비유로 표현한 것이고 명(命)이란 일의 형세를 말한다. 따라서 지천명이란 자기 개인 팔자를 알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 일의 형세를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와 짝을 이루는 개념이 예(禮)이다. 주희는 이 예를 예법 정도로 위축시켰지만 공자는 이미 ‘예기(禮記)’에서 예란 치사(治事), 즉 일을 잘 처리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예를 사리(事理), 일의 이치라고 했다.
정(正)은 예(禮)이고 일의 이치[事理]이고, 중(中)은 명(命)이고 일의 형세[事勢]다. 일에는 이치와 형세가 있다는 말이다.
모르는 여인 손을 잡지 않는 것은 예(禮)이자 정도(正道)이고, 물에 빠진 낯선 여인은 어디를 붙잡아서라도 구해주는 것은 권도(權道)이다. 정도(正道)는 신하의 길이고 명(命)을 행하는 권도(權道)는 임금의 길이다. 그래서 임금이 신하에게 일과 관련해서 하는 말을 명(命)이라고 하는 것이다. 일의 형세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신하가 일의 형세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길은 그 자리를 내던지는 것 정도 말고는 없다. 신하에게 명(命)이란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외천명(畏天命)이라고도 했다.
여야 정치권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양쪽 모두 민심과는 동떨어져 있었던 결과다. 여권은 대통령 의지가 많이 작동해 지금의 당 구도를 만들었는데 무감동 정당으로 전락하며 위기를 맞고 있다. 장제원 의원의 때늦은 불출마 선언이 무의미하지는 않겠지만 지금 형세를 바꿀 정도는 아니다. 형세를 단번에 바꿀 수 있는 힘이 여당은 대통령, 야당은 당대표에게 있다.
실상을 제대로 파악해 형세를 바꿔내는 것을 중(中), 적중함이라 한다. 적중하는 것은 머리 문제가 아니라 마음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절실함[切]이 적중하는 비결이다.
-이한우 경제사회연구원 사회문화센터장, 조선일보(23-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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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보이’ 출마 러시, 나라 위한 건가, 노욕인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예비후보자 등록 창구 ./뉴스1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 원로급 정치인의 출마 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이인제 전 의원은 12일 충남 논산에서 출판기념회를 열고 “고향의 발전과 행복한 나라를 위해 마지막 도전을 결심했다”며 7선 도전 의사를 밝혔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도 “지역(부산 중·영도)에서 나와 달라는 요청이 많다”며 7선 도전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일찌감치 고향 지역구 출마를 선언했다. 주민들에게 1만3000통 이상 전화를 돌렸고 16일 전남 해남에서 출판기념회까지 연다고 한다.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과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도 옛 지역구 출마를 준비 중이다.
이들의 나이는 대부분 70~80대다. 나이나 선수(選數)가 많다고 출마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들이 가진 경험과 연륜이 정치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유권자가 보기에 ‘저 사람은 할 일이 더 남아 있다’고 판단하면 얼마든지 당선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사람들은 40~50대 때부터 당대표, 대선 후보, 장관 등을 지냈다. 수많은 자리를 거치며 국민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을 다 보여줬다. 잘한 일도 못한 일도 있겠지만, 지금 정치권의 혐오스러운 구태에 큰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에 대한 국민의 평가가 내려져 정치 일선을 떠났던 사람들이 이제 또 출마한다면 국민들 눈에 어떻게 비칠지 생각해봐야 한다.
특히 출마를 준비 중인 ‘올드보이’는 모두 당선되기 쉬운 자기 고향이나 예전 지역구에 나가겠다고 한다. 대부분 ‘공천=당선’인 지역이다. 출마 명분도 하나같이 ‘지역 발전’이다. 나라의 미래나 국민 전체를 위한 정책이나 비전은 들어보지 못했다.
이들이 따가운 눈총을 감수해가며 출마하는 진짜 이유는 과거의 지위와 영화를 잊지 못함일 것이다. 국회의원이 되면 많은 특권을 누리고 세비만 1억5000만원에 보좌진 9명과 차량까지 제공받는다. 정년도 없으니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계속할 수 있다. 수십 년씩 특혜에 익숙했던 사람들이 그 유혹을 버리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들의 출마는 나라를 위한 것인가, 개인의 노욕인가. 국회의원 특권을 줄이지 않는 한 선거 때마다 이런 모습을 계속 볼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23-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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