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띠 중 유일한 상상의 동물.. 하늘로 날아오르는 ‘용꿈’을 꾼다]
[열두 띠 중 유일한 상상의 동물.. 하늘로 날아오르는 ‘용꿈’을 꾼다]
[동양 용과 서양 용 가장 큰 차이점은?]
[2024년 1월1일 자 조선일보 1면]
열두 띠 중 유일한 상상의 동물… 하늘로 날아오르는 ‘용꿈’을 꾼다
2024 甲辰年, 龍을 말하다
초등학생 때부터 나는 12지(支)를 이렇게 외우고 다녔다. 쥐소범토용뱀말양원닭개돼. ‘태정태세문단세…’ 마치 조선 시대 왕의 계보를 외우듯이. 어린 나이에도 ‘사람’이 태어난 해를 12마리의 ‘동물’과 매칭해 ‘띠’로 부른다는 게 재밌고 신기했다. 옛날 옥황상제가 주최한 동물들 달리기 경주에서 도착한 차례대로 12지의 순서가 정해졌다는 얘기를 접했을 때는 한 편의 동화를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했다.
무엇보다 나를 매료시킨 부분은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자기 해에 해당하는 동물을 딱 한 마리만 가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좋고 싫어도 바꾸거나 거부할 수 없는 정해진 숙명의 동물. 나와 매칭된 숙명의 동물은 다섯째 ‘용’이었다. 그런데 그 대목에서 나는 조금 아쉬웠다. 다른 띠들은 일상에서든 동물원에서든 쉽게 만날 수 있는 동물인데, 용은 어디를 가도 볼 수 없는 동물이 아닌가. 왜 12지에 있지도 않은 동물을 한 마리 끼워 넣었을까. 그리고 하필 왜 나는 하고 많은 동물 중에서 용과 매칭이 되었을까. 12지에 상상 속 동물이 왜 들어갔는지 알 수 없었지만, 용띠 동갑 친구가 해준 다음 같은 말에 나는 용띠인 것을 더는 아쉬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특별하지 않니? 어디에도 없는 동물이잖아.” 친구는 신화와 전설에 등장하는 용은 신성하고 귀해서 왕처럼 위엄한 존재를 표현하는 단어에 자주 쓰인다고 말했다. 곤룡포(袞龍袍), 용안(龍顔), 용좌(龍座) 등등. 용이 가진 상서로운 힘을 알기에 조폭도 몸에 용 문신을 하는 거라고도 했다.
소설가가 되고 나서는 동료 작가에게 돼지꿈보다 좋은 꿈이 용꿈이란 말을 들었다. 그러고 보니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용은 꿈이란 세계에서는 볼 수 있구나 싶어서, 전설에 나오는 용이 꿈에 나온다면 길몽일 수밖에 없겠구나 싶어서, 새해 첫날 용꿈을 꾸려고 노력한 적도 있었다. 소설 쓰기가 갈수록 힘들어져서 용꿈을 꿔서라도 글쓰기의 동력과 즐거움을 되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용은 실재하는 동물이 아니라서 만날 수 없기에 그 노력이란 것도 허구적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자기 전에 인터넷에 떠도는 용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보거나 용이 나오는 유튜브 영상을 반복 시청했다. 인쇄한 그림을 지갑에 넣고 다녀보기도 했다. 그런데 사진도 영상도 실제 용이 아닌 그래픽으로 그려낸 가짜라 그런 걸까. 몇날 며칠을 봐도 용은커녕 용의 발톱조차 꿈에 나타나 주지는 않았다.
지금이야 더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고, 그렇게 인위적으로 꾸는 꿈이 행운을 가져다줄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용꿈 꾸기를 포기했냐고? 어떤 꿈이든 꿈은 포기하는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최선을 다해 내 할 일을 하면서 꿈이 이루어질 날을 자연스러운 태도로 기다릴 줄 알게 됐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내 아이패드 배경 화면에 깔아둔 용 사진을 여전히 바꾸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패드를 켤 때마다 용은 입을 벌려 내게 말을 건다. 용의 해에 태어난 너는 나와 숙명의 관계야!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에 더없이 특별하고 신비로운 용. 그러니 기다리기만 하면 언젠가 내 꿈에도 나와주지 않을까.
천간(天干) 10개 중 갑(甲)·을(乙)은 푸른색에 해당한다고 한다. 2024년 갑진년은 푸른 용, 청룡의 해다. 12지 중 유일한 상상의 동물인 만큼, 갑진년에는 우리 모두 청룡처럼 푸른빛으로 날아올라 자기만의 특별한 꿈과 상상의 세계를 펼치기를 바라본다. 그리하여 어디에도 없는 귀하고 풍요로운 한 해가 되기를.
-용띠 소설가 장은진, 조선일보(24-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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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용과 서양 용 가장 큰 차이점은?
‘청룡의 해’인 갑진년(甲辰年) 새해가 밝았다. ‘십이지신(동물 얼굴을 한 열두 신)’이 아시아를 넘어 서구권에서도 친숙해지면서 유럽과 미국 등에서도 올해를 ‘용의 해’로 주목하는 뉴스를 접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용인데도 동양의 용과 서양의 용(dragon)은 생김새에 차이가 있다. 동양의 용은 뱀처럼 기다란 몸에 다리가 짧고, 수염이 달려 있으며 입에는 구슬(여의주)을 물고 있다. 날개는 없지만 기다란 몸을 구불구불 움직이며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가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반면 서양의 용은 육중한 몸통에 상대적으로 길고 튼튼한 네 다리가 있다. 박쥐처럼 날개를 푸덕이며 하늘을 난다. 입에는 구슬을 물고 있지 않은 대신 불을 무섭게 내뿜는다. 이렇게 전혀 다른 생김새를 하고 있는 것은 동양과 서양이 용을 다르게 인식하기 때문이다.
황제의 곤룡포에 부착한 오조룡보. 권능을 상징하는 다섯 발가락의 용을 수놓았다. /한상수자수박물관
동양에서 용은 국가를 수호하고 인간을 지켜주는 신성한 존재다. 중국 옛 자전(字典)인 ‘광아(廣雅)’는 용을 “머리는 낙타 같고 뿔은 사슴 같으며, 눈은 토끼 같고, 귀는 소와 같고, 목덜미는 뱀과 같고, 배는 큰 조개처럼 생겼으며, 비늘은 잉어 같고, 발톱은 매와 같으며, 주먹은 호랑이 비슷하다”라고 묘사했다. 모든 동물의 장점만 모아 놓은 전설의 동물인 동양의 용은 머리의 뿔과 수염, 몸을 덮고 있는 비늘을 특징으로 하며 입에는 소원을 이뤄주는 구슬인 여의주를 물고 있는 모습으로 종종 표현된다. 고대 인도 신화에도 용과 생김새가 비슷한 전설의 동물 ‘나가’가 등장하고, 중국 남부에서도 오래전부터 파충류를 숭배하는 문화가 있었다.
옛 청나라 국기 황룡기에 그려진 용(위 사진)과 중세 유럽 가상의 나라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등장하는 용. 동양문화권에서 신성함을 상징하는 용과 달리 서양에서의 용은 거대한 날개와 불을 뿜는 능력을 가진 파괴의 상징으로 인식된다. /위키백과·HBO
뱀과 도마뱀 등 파충류에게서 모티브를 얻어 나라와 민생을 지켜주고 소원을 들어주는 신령한 존재로 숭배하면서 지금의 용의 이미지가 구축된 것이다. 용은 특히 농사와도 깊은 연관이 있는 물의 신으로도 추앙받아 왔다. 고대 중국의 재상 관중의 저서 ‘관자(管子)’에서 용은 마음먹기에 따라 아주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며, 구름 위로 솟을 수도 있고 깊은 샘 속으로 잠길 수도 있는 변화무쌍한 존재로 그려진다. 이 때문에 동양의 용은 단순한 동물이 아닌 인격체로도 인식돼왔다. 여느 동물들처럼 태어나서 자라는 게 아니라 ‘인간이 되듯이 용이 되는’ 신성한 존재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해리포터 속 등장하는 용 /워너브라더스
반면 서양의 용은 오히려 파괴와 공포의 화신이면서 무찔러야 할 악한 존재로 여겨졌다. 용감한 왕자가 탑에 갇혀 있는 공주를 구하기 위해 칼로 용을 무찌른다는 구도는 서양의 옛 동화와 전설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설정이다. 이렇게 용이 주인공의 목숨을 위협한다는 설정은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나 디즈니 애니메이션 ‘잠자는 숲속의 미녀’ 등 현대 작품에도 등장한다. 또한 서양의 용은 일반적인 파충류처럼 알에서 부화해서 성체로 성장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렇게 서양에서 용을 ‘악마의 짐승’처럼 인식하는 것은 기독교 문화의 오랜 영향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서양 일각에서는 용의 기원을 구약성경 창세기에서 인류 최초의 여성인 이브를 유혹하는 뱀에게서 찾고 있다. 신약성경의 마지막 편인 요한계시록에는 용을 ‘뱀이자 사탄‧마귀’라고 적시했다.
-유재인 기자, 조선일보(24-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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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1일 자 조선일보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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