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與 능가하는 국회의원 특권 포기 선언하길] ....
[민주당, 與 능가하는 국회의원 특권 포기 선언하길]
[더 이상 ‘비명’ 없는 민주당의 비명]
[제3지대가 성공을 말하기전에]
[비례대표제 논의 표류… ‘위성정당’ 꼼수 결국 되풀이되나]
민주당, 與 능가하는 국회의원 특권 포기 선언하길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가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민주당에 국회의원이 금고형 이상 확정 시 세비 반납과 불체포특권 포기를 제안했다. 이에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그 답을 요청하려면 (국민의힘이)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자유로운지부터 얘기하라”고 했다. 국민의힘이 ‘김건희 특검법’을 통과시키고 ‘대통령실이 잘못했다’라고 얘기하면 협의할 수 있다고 했다. 세비 반납과 불체포특권 포기는 의원들이 결심하면 된다. 아무 관련 없는 특검을 조건으로 내세운 것은 특권 포기에 나설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한 위원장의 제안은 새로운 것도, 무리한 것도 아니다. 세비를 무조건 깎자는 것도 아니다. 범죄를 저질러 유죄가 확정되고 그 때문에 수감 생활을 하느라 의정 활동을 못 했다면 보수를 받지 않는 게 당연하다. 민주당이 미적대는 것은 7개 사건에 10개 혐의로 재판받는 이재명 대표와 ‘돈 봉투’ 의원 등 재판을 받는 사람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유죄판결을 받으면 당장 이 합의가 적용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이를 약속하면 국민이 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도 있다.
사실 세비 반납과 특권 포기는 민주당이 먼저 제안했어야 한다. 민주당은 2020년 총선 때 이미 국회에 10% 이상 불출석한 의원의 세비 삭감을 공약했다. 의원들이 관련 법안도 냈다. 불체포특권 포기를 제안한 것도 민주당 혁신위가 먼저였다. 그런데 이런 약속을 하나도 지키지 않았다.
다른 문제도 마찬가지다. 총선을 80여 일 앞두고 가장 시급한 것은 선거제 개편이다. 4년 전 민주당이 강제로 바꾼 선거제는 이미 국민으로부터 사망 선고를 받았다. 민주당도 이를 인정했다. 그런데 막상 다시 선거 때가 되자 민주당은 미적거리며 입장 정리를 하지 않고 있다. 연동형 반, 병립형 반으로 하면 어떠냐는 말까지 한다. 이러다 한국 선거제도가 무슨 난수표처럼 될 지경이다. 그 사이에 각종 군소 정당들이 민주당을 이용해 비례 의석을 얻으려고 혈안이 되고 있다. 민주당은 이들을 막지 않고 있다가 경우에 따라 위성 정당으로 활용할 생각인지도 모른다.
민주당은 그동안 유권자들에게 좋은 약속을 많이 했다. 그러다 막상 이 약속을 지켜야 할 때가 되면 말을 뒤집었다. 이런 민주당의 행태는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들의 신임을 얻는 데 걸림돌이 될 것이다. 민주당으로서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의원 특권 축소와 선거제도 정상화 약속은 좋은 신호가 될 것이다. 물론 이번만큼은 반드시 지킨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조선일보(24-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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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비명’ 없는 민주당의 비명
[김지현의 정치언락]
지난주 더불어민주당에선 탈당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이재명, ‘너’ 밑에선 아무것도 할 생각 없다”던 ‘원칙과 상식’ 소속 김종민 조응천 이원욱 의원이 10일 결국 탈당을 선언했고, 다음날엔 이낙연 전 대표도 “민주당은 1인 정당, 방탄 정당으로 변질됐다”고 비판하며 24년 만에 민주당을 떠났습니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월 11일 오후 국회에서 민주당 탈당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 전 대표는 이 자리에서 “민주당은 저를 포함한 오랜 당원들에게 이미 ‘낯선 집’이 됐다”고 비판했다.(좌)/‘원칙과 상식’ 소속 이원욱 김종민 조응천 의원(왼쪽부터)이 1월 10일 오전 국회에서 탈당 기자회견을 마친 뒤 어두운 표정으로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뉴스1(우)
이 대표 입장에선 앓던 이가 한꺼번에 빠져 속이 시원할 것 같습니다. 줄곧 자신의 리더십을 비판하는 비명(비이재명)계가 그동안 얼마나 꼴 보기 싫었겠습니까.
한 야권 원로는 탈당을 고민하는 원칙과 상식 소속 의원 A에게 “어차피 이재명이 당신에게 공천을 줄 리가 없다. 그냥 당에 남아 불출마를 선언하거나, 나가서 신당을 차려라. 다만 불출마는 비겁해 보인다”고 조언했다고 합니다. 이 대표는 결코 자신을 거스르는 사람에게 보여주기용으로라도 공천을 줄 리 없다는 거죠.
“민주당, 광신적으로 변할 것”
그럼 이제 ‘비명’계가 없는 민주당엔 마침내 평화가 찾아올까요? 꼭 그럴 거 같진 않습니다.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는 10일 CBS라디오에서 “지금 (민주당은) 당의 미래 같은 것들을 잘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며 “이분(원칙과 상식)들이 빠지면서 그나마 이견도 없어지고 집단이 순수해질 것이다. 광신적으로 변한다는 얘기”라고 했습니다. “(당이) 나아지려면 다른 의견을 내야 되는데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들을 가만 놔두지 않고 공격해서 잘라버리는 정치”라는 거죠.
실제 당내에선 다른 의견은 쉽게 허용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1월 2일 김철민 도종환 박용진 송갑석 오영환 이용우 전해철 홍기원 홍영표 의원은 “분열의 불안함을 차단하고 혁신의 몸부림을 시작할 책임은 이재명 대표와 당 지도부에게 있다. 당내 변화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시간 가기만 기다리는 것으로 통합과 혁신을 만들 수 없다”고 촉구했습니다. 민주당 의원 전체 대화방에도 성명을 올렸지만 민망할 만큼 아무 반응도 없었다죠.
성명을 주도했던 한 의원은 “정말 어렵게 뜻을 모아 낸 성명인데, 그 직후 이 대표가 습격당해 묻혔다”고 아쉬움을 토로하더군요. 또 다른 의원은 “초선부터 중진까지 나름 의기투합해서 용기 내어 올린 글이었을 텐데 아무도 대답을 안 하더라”며 “아무도 굳이 말을 안 하려 하는 것, 그게 공포정치의 시작”이라고 했습니다. 공천을 앞두고 누가 굳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려 하겠냐는 거죠.
‘개혁신당’(가칭) 창당을 이끄는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도 민주당의 ‘침묵’ 분위기를 비판했습니다. 그는 12일 KBS라디오에서 “이 전 총리(이낙연)도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자’는 것부터 많은 주장을 했지만, 어느 것 하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것을 상대하는 태도 속에서 이 전 총리에 대한 무시, 때로는 멸시까지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민주당에 중진 의원들이 많지 않냐”며 “누구라도 이 전 총리가 하는 주장 중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받아들이자고 (말하는) 용기를 냈어야 했는데 그런 말을 못 하는 분위기인 것 같다”고 했습니다.
‘집단린치’도 불사하는 전체주의
그런데 솔직히 저 같아도 굳이 말하기 싫을 거 같습니다. 이 대표의 뜻을 조금만 거슬러도 강성 지지층(한때 스스로 ‘개딸’이라더니 이제는 ‘개딸’이라 부르면 안 된다는 그분들)은 물론이고 오매불망 공천만 기다리는 당내외 친명 인사들이 득달 같이 달려들어 집단린치에 나서니 말입니다.
그 시작은 일단 탈당자들을 향한 거친 공격일 겁니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이 전 대표를 향해 “생존형 탈당” “이낙연은 2021년 1월 박근혜 사면론으로 정치적 폭망의 길로 들어섰고, 2024년 1월 탈당으로 정치적 죽음의 길로 들어섰다”고 했습니다. 이외에도“제2의 안철수의 길”(윤준병 의원) “선택받지 못했을 때 정치인의 진정한 바닥을 볼 수 있다”(우원식 의원) 등 비난이 쏟아졌죠.
원칙과 상식을 향해서도 “이원욱, 김종민, 조응천 의원은 민주당 당원들이 좋아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의힘이 좋아하는 정치인”(양이원영 의원) “원칙과상식? 공천과 탈당!”(김용민 의원) 등 비아냥이 이어졌고요.
이재명 대표는 침묵으로 이들의 공격을 암묵적으로 방치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비명계의 사퇴 요구에 ‘단합’ ‘통합’ 등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하던 그는 이들이 실제 탈당했는데도 한 마디 입장도 내지 않았죠.
참고로 국민의힘만 해도 지난달 27일 이준석 전 대표가 탈당을 선언하자 “감사했고, 앞으로 뜻하는 바 이루길 바란다”는 공식 입장을 냈습니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당일 방송 인터뷰에서 “당 대표를 지내신 분이 탈당하게 된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도 “어쨌든 새로운 출발이 잘 됐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박정하 수석대변인도 구두 논평을 통해 “이 전 대표는 우리 당에서 오랫동안 당원으로 활동했다. 그동안의 활동에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뜻하는 바 이루시길 바란다”고 했고요.
물론 그 속뜻은 ‘그 동안 더러웠고 다신 보지 말자’였더라도, 최소한 이런 공식 입장이라도 내는 게 한 때 동료였던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요. 일반 회사에서도 퇴직하거나 이직하는 사람에게 그 동안 좋았든 싫었든 인사는 하는데 말이죠. 민주당엔 그런 최소한의 동료 의식조차 남아있지 않은 듯합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0일 서울대병원에서 퇴원하며 입장문을 읽을 준비를 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이날 직접 마이크를 잡고 “증오의 정치를 끝내야 한다”고 했다. 뉴스1
혹시 이 대표가 피습 후 컨디션이 아직 회복되지 않아 그런 것 아니냐고요? 그러기엔 10일 서울대병원에서 퇴원하면서 육성으로 “증오 정치를 멈추자”고 한참을 이야기했고, 11일 이 전 대표의 탈당 선언 직후엔 보라는 듯 페이스북에 “고 조연우 위원장님의 영면을 기원한다”는 글을 올렸더군요. 탈당 관련 입장을 충분히 낼 수 있지만, 안 내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걸로 해석됩니다. ‘친명’ 현근택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성희롱성 발언이 논란이 되자 병상에서도 “현근택은 어느 정도로 할까요? (컷오프는) 너무 심한 거 아닐까요”라고 걱정하던 것과 상반되는 모습입니다.
강선우 대변인은 12일 최고위원회의 후 백브리핑에서 “이낙연 전 대표가 민주당을 저격하면서 탈당했지만 그래도 전임 당 대표였는데 고생했다는 예우 인사도 없고 비판만 있다. 이게 노무현 정신에 맞느냐”는 한 질문에 “그건 언론인 여러분들이 해석하시면 될 듯”이라고도 하더군요.
‘친명’ 좌장인 더불어민주당 정성호 의원이 1월 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재명 대표와 텔레그램 메시지를 주고받는 모습. 두 사람이 친명계 현근택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성희롱 의혹’에 대한 징계 수위를 논의하는 모습에 ‘사당화’ 논란이 일었다. 이데일리 제공
그나마 쓴소리하던 이낙연 전 대표와 원칙과 상식 멤버들, 이상민 의원까지 모조리 빠졌으니 이제 진짜 민주당이 원했던 ‘원보이스’가 될 수 있겠네요. 방향성에 대해 아무도 쉽게 지적하진 못할 거고요. 쓴 소리를 내는 자가 곧장 다음 타깃이 될 테니 말입니다. 극단적 전체주의 속에 ‘일단 공천까지는 입 다물고 있겠다’는 사람들이 다수가 될 테고, 도저히 못 버티는 사람들은 추가로 당 밖으로 튕겨져 나가겠죠.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서 주인공인 권력자 돼지 ‘나폴레옹’은 자신이 기른 사나운 개 아홉 마리를 호위병으로 앞세워 매주 일요일 아침마다 열리던 동물들 간 회합도 일방적으로 중단하죠. “앞으로 회합은 중지한다. 토론은 일체 없다”는 그의 말에 일부 돼지들이 반발하지만, 으르렁거리는 개들 앞에 다들 결국 침묵합니다.
몇몇 돼지들은 그래도 좀 더 똑똑했다. 앞줄에 앉은 네 마리 젊은 돼지가 못마땅한 듯 째지게 소리를 내더니 벌떡 일어나 동시에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갑자기 나폴레옹 주위에 앉아있던 개들이 위협적으로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깊숙이 뱉어내자 돼지들은 아무 소리 못 하고 다시 앉았다.
그 뒤로 권력을 쥔 돼지들은 자신들만의 ‘특별위원회’에서 주요 결정을 내리고 다른 동물들에게 일방 통보하죠. 동물농장 내 철칙이었던 ‘7계명’도 필요할 땐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수정하고요. 어디서 많이 본 장면들 같습니다.
-김지현 기자, 동아일보(24-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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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지대가 성공을 말하기전에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이낙연 전 대표(가운데)와 국민의힘에서 탈당한 이준석 개혁신당(가칭) 정강정책위원장(왼쪽), 비명(비이재명계)계 탈당 그룹인 '원칙과 상식'의 김종민 의원이 1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 카페에서 티타임 회동을 하며 밝게 웃고 있다./연합뉴스
제3지대 신당 사람들은 “설 연휴 전엔 기호 3번으로 대통합할 것”이라고 말한다. 4·10 총선 두 달 전 명절 밥상 주제로 올리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막후 사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새로운미래(이낙연), 미래대연합(민주당 탈당파), 새로운선택(금태섭·류호정), 한국의희망(양향자), 개혁신당(이준석) 5개 세력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다. 이낙연 전 대표 측과 민주당 탈당파는 창당도 안 한 신당의 당권을 놓고 신경전을 벌인다. 야권 계열 세력이 설 연휴까지 극적으로 합친다 해도 이준석 신당과의 통합은 쉽지 않아 보인다. 여권 성향 지지자들은 “우리가 왜 민주당 탈당파들과 함께해야 하느냐”고 반발한다. 대북·안보 분야 노선 차이도 극명하다.
“기득권 양당 정치 타파” “승자 독식 양당제에서 다당제로” “혐오와 적대의 정치 이젠 끝내자”. 지난 14일 미래대연합 창당준비위원회 출범식에서 쏟아진 구호들이다. 말만 들으면 유럽식 다당제의 장밋빛 꿈이 당장 실현될 기세지만 한국의 유권자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5개 신당 대표가 모두 모였다는 인터넷 속보엔 이런 댓글이 달렸다. “저렇게 나가서 양당 체제에 신물 느낀 유권자들이 귀한 표 던져줘서 배지 달고 나면 지들끼리 성향이 맞네 안 맞네 내부에서 싸우다가 결국엔 다시 국민의힘·민주당에 복귀하고 당 해체할 거면서... 한두 번 속냐??” “양당에서 꿀을 빨 만큼 빤 너희를 왜 뽑아줘야 하지?”라는 반응도 있었다.
2015~2016년 국민의당 창당 과정에서 신당 사람들은 지금과 똑같은 얘길 했다. 당시 창당대회에서 손잡고 웃으며 찍은 당 주역들의 사진은 그런 구호가 얼마나 허망했는지 말해준다. 대부분 양당으로 돌아가거나 당을 바꿔 정권의 요직을 맡거나 또 배지를 달았다. 우리 국민의 기억력이 단기적·세부적으로는 어두울 수 있다. 그러나 아름다운 말을 외치던 정치인들이 어떤 길을 걸어 어디에 도착했는지 잊는 국민은 아무도 없다. 2020년 국민의당 후신 바른미래당이 흔적도 거의 없이 사라질 때 적잖은 보좌진·당직자가 여의도를 떠났다. 그들은 “다당제를 정말 믿었는데 현역들에겐 그저 배지 한 번 더 달겠다는 수단에 불과했다. 우린 노예였다”고 말했다.
정당 대표가 대낮에 흉기 습격을 당하고 국회의사당 난동이 일상화한 세상. 양극 구도에 혐오와 환멸을 느끼는 유권자의 존재는 상수(常數)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무당층이 30~40%에 이른다. 그러나 양당의 온실에서 누릴 건 다 누리다가 당을 뛰쳐나와 별안간 다당제 전도사가 된 일부 기득권 정치인들에 대한 역겨움도 그에 못지않다. 국민은 ‘너희도 이 난장판을 함께 만들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제3지대 신당이 성공하려면, 자신들이 과거 양당 체제에서 얼마나 달콤한 열매를 맛봤는지, 그 탐욕에 취해 어떤 언행(言行)으로 이 적대 구도를 공고히 했는지, 그것부터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
-원선우 기자, 조선일보(24-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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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례대표제 논의 표류… ‘위성정당’ 꼼수 결국 되풀이되나
기본소득당 열린민주당 사회민주당 등 소수 야권이 참여하는 개혁연합신당 추진협의체가 어제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4월 총선에서 진보진영의 비례연합정당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유지를 전제로 ‘반윤(반윤석열) 최대 연합’을 내건 범야권의 비례대표 단일화를 이루자는 것이다. 이에 민주당 측도 “위성정당 제도를 방지할 수 없을 때 불가피한 선택지 중 하나”라며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이런 야권의 동향은 결국 이번 총선도 2020년 위성정당 난립으로 망가진 21대 총선의 비례대표 선거를 사실상 되풀이하겠다는 예고편이나 마찬가지다.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4년 전 양당 대결 정치를 개혁하자는 차원에서 도입됐지만 거대 양당이 위성정당 창당이란 꼼수를 부리면서 그 취지는 무력화됐고 혼란만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 이번 비례연합정당 제안도 당시 일부 다른 정당 후보를 비례대표 후보에 세웠다가 선거 뒤 출당시켰던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시민당’과 같은 방식을 그대로 재연하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처럼 4년 전 망령이 되살아난 것은 무엇보다 다수 의석의 민주당이 연동형 유지와 병립형 회귀 사이에서 오락가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 때 ‘위성정당 없는 연동형’을 내세웠던 민주당은 현실적으로 위성정당 출현을 막기 어렵다며 정당 득표율에 따라 단순 배분하는 병립형 회귀로 한때 가닥을 잡았다가 안팎의 반발에 부딪히자 다시 준연동형 쪽으로 바꾸었다. 여기에 국민의힘도 병립형 회귀 방침을 완강히 고수하면서 그게 안 되면 위성정당을 만들겠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결국 여야의 논의가 표류하면서 제2의 21대 총선이 될 수밖에 없는 분위기로 가고 있는 셈이다.
준연동형제는 소수 정당의 원내 진출을 늘림으로써 서로 삿대질만 하며 ‘적대적 공생’을 하는 양당 독식 구조를 바꾸기 위한 정치개혁의 노력에서 탄생했지만,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 꼼수로 개혁 정신은 사라지고 그 껍데기만 남았다. 어차피 도돌이표이니 차라리 나눠 먹기식 배분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이 크게 들리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최소한의 개혁 노력도 없이 타협의 정치, 생산적 국회는 만들 수 없다. 비례대표제 논의는 각 정당의 유불리가 아니라 그 정신을 어떻게 살려내느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동아일보(24-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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