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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서도 실종된 통일 담론, 그래도 통일은 온다] ....

뚝섬 2025. 5. 27. 09:45

[대선서도 실종된 통일 담론, 그래도 통일은 온다]  

[우리의 소원은 자유·민주·인권·법치다]

[우리의 소원은 평화!]

 

 

 

대선서도 실종된 통일 담론, 그래도 통일은 온다        

 

26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통일과나눔 재단 10주년 국민보고회에서 이영선 이사장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 고운호 기자

 

1945년 해방 이후 남북이 분단된 지 올해로 80년이다. 하지만 남북 갈등과 단절은 심화되고 통일 의식마저 희미해지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도 구체적 통일 공약과 담론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26일 외교·안보 공약을 발표하면서 “호혜적 남북 대화와 교류 협력을 추진하면서 북한 주민 인권 개선과 인도적 지원”을 언급했다. 구체적인 통일 정책 공약은 없었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자유 통일 대통령이 되겠다”면서 비핵 평화 통일 여건과 로드맵을 마련하겠다는 원칙론만 제시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도 다르지 않다. 과거 대선 후보들이 중요한 통일 방안이나 구체적 대북 관계·통일 공약을 제시했던 것과 달리 통일 문제를 사실상 외면하고 있다.

 

2015년 순수 민간 차원의 통일 준비 기금인 통일과나눔 재단이 국민적 관심과 성원 속에 출범했다. 일반 국민과 기업·단체·각계 인사 등 170여 만명이 자발적으로 모금에 참여했고 720여개 통일 준비 사업에 대한 지원이 이뤄졌다. 하지만 10년이 지나면서 통일 열기와 북한 문제에 대한 관심은 현저히 줄었다. 재단 주최 청년 토론회에서 참석자 100명 중 59명은 ‘통일은 축복이 아니다’라고 했다. 10명 중 6명은 ‘통일에 관심이 없다’ ‘현 상태를 유지하거나 통일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했다.

 

북한 김정은은 2023년 말 “남북은 동족이 아닌 적대적 두 국가”라며 공식적으로 통일 거부 선언을 했다. 북한 주민들이 한국을 동경하자 통일에 대한 기대를 갖지 못하게 싹을 잘라버린 것이다. 그러자 놀랍게도 국내 친북 단체들이 동조하고 나섰다.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는 자진 해산했고, 통일 운동을 외쳤던 정치인이 돌연 “통일하지 말자”고 했다. 김정은 한마디에 ‘통일 지우기’로 급선회한 것이다.

 

이날 열린 재단 출범 10주년 행사에서 참석자들은 “통일은 후손들에게 물려줄 가장 큰 선물”이라고 했다. 이 말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나. 통일로 8000만 겨레가 함께 자유와 번영을 누릴 수 있다. 통일 한국은 통일 독일과 같은 지위의 나라가 될 것이다. 그러려면 준비해야 한다. 대선 후보들부터 앞장서야 한다. 누가 뭐라고 해도, 어떻게 방해해도 통일은 온다.

 

-조선일보(25-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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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원은 자유·민주·인권·법치다

 

[朝鮮칼럼]

통일 추진 기구 해산하라” 김정은 한마디에 남 통일 운동 세력 우왕좌왕
전쟁 對 평화 양자택일에 빠지면 우리에겐 출구가 없다
중요한 건 北 정권이 아니라 주민… 인도주의만이 감옥 문 여는 열쇠

 

북한이 “남조선”을 “대한민국”이라 부르는 정치 쇼를 벌이고 있다. “우리민족끼리”를 금과옥조로 여겨온 통일 지상주의자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그들을 지배해 온 정치 행동의 강령이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통일 추진 기구를 해산하란 김정은의 한마디에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 본부는 와르르 무너졌다. 김씨 왕조에 끌려다니던 지난 정권의 핵심 인물들은 굳게 입을 닫고 있다.

 

북한이 남녘을 향해 쏘아 올린 반통일의 포탄이 남한의 통일 운동 세력을 궁지에 빠뜨렸다. 대한민국은 지금 왜 이런 부조리를 겪고 있는가? 그 원인은 같은 민족이란 이유만으로 무조건 “민족 통일”을 지상 목표라 부르짖어 온 맹목성에 있다. 대체 몇 십 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 노래 불러 왔던가? 이젠 어떠한 가치를 실현하는 어떤 형태의 통일인지 다시 묻고 따질 때가 됐다.

 

헌법 제4조를 보면,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한다지만, 이때의 통일은 무조건적 통일이 아니라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이다. 이 원칙에 따르면, 오늘날 대한민국은 핵으로 무장한 북한의 호전적인 전체주의 정권에 맞서서 평화적으로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확장해야만 하는 커다란 딜레마에 직면하고 있다. 비유하자면 입이 작은 유리병을 깨지 않고서 그 속에 들어앉아 발톱을 드러내고 눈알을 부라리는 흉포한 검독수리만을 산 채로 꺼내야 하는 상황이다. 냉전 시대 최후의 동서 문제와 민족 모순이 중첩된 세계사적 난제가 아닐 수 없다. 그토록 어려운 문제인 만큼 더 깊은 성찰과 더 창의적인 발상법이 필요하다.

 

고작 “그럼 전쟁하잔 말이냐?”며 전체주의 세습 왕조에 수억 달러 국민 혈세를 바치는 방법으론 병 속의 검독수리만 더 살찌우고 만다. “우리가 어디 남이냐?”는 낭만적 민족의식에 들떠서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훼손하려 한다면 반헌법적 망동을 자초할 뿐이다. “전쟁이냐, 평화냐?”라는 양자택일의 함정에 빠지면 출구가 없다. 낡은 사고를 버리고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 한반도의 꽉 막힌 수챗구멍을 뚫어버릴 쾌도난마의 묘책은 진정 없는가?

 

그런 묘책은 당장 안 떠오를지라도 누구나 정도(正道)는 알고 있다. 바로 김씨 왕조가 자행하는 잔혹한 인권유린과 악랄한 정치 범죄에 희생당해 온 북한의 인민에게 자유와 민주의 가치를 알려주고, 인권과 법치의 희망을 전해주는 일이다.

 

지난해 나는 서울에서 2006년 탈북한 도명학 작가를 만났다. ‘조선작가동맹’ 소속 시인으로 활약하다가 정치범이 되어 3년간 투옥되었던 그는 탈북 후 북한의 참혹한 실상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한 여러 편의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그의 작품집 “잔혹한 선물”은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역작이 아닐까. 그는 말했다.

 

“휴전선 너머 북녘 땅의 동포들은 고저 거대한 감옥에 딱 갇혀있는 포로들이야요! 감옥 안에서는 절대로 바깥에 걸린 자물쇠를 부술 수가 없는 거디요. 밖에 있는 사람들이 고저 문밖에 걸린 자물쇠를 열어줘야죠. 그래야만 포로들이 박차고 밖으로 뛰쳐나올 수가 있는 거디요, 고럼!”

 

핵 무장에 성공한 이상 김씨 왕조는 앞으로도 대한민국을 향한 비대칭적 군사 도발의 수위를 높여갈 것이다. 호전적인 북한 정권에 대해서 지난 20여 년 대한민국 정부는 감상적 민족주의와 투항적 평화주의 이외엔 아무 대책도 없이 핵 개발의 시간만 벌어주고 말았다. 무엇보다 북한 주민이 겪고 있는 정치적 핍박과 인권유린에 대해선 비판의 목소리도, 실질적 해결책도 내놓지 못했다.

 

북한 주민의 수난을 외면하고선 한반도 문제를 풀 수가 없다. 독재 정권과의 대화도 필요하지만, 북한 주민을 위한 인민 중심의 대북 정책이 더 시급하다. 민족주의는 독재 정권에 악용될 수 있다. 인도주의만이 감옥 문을 여는 열쇠다. 북한 정권이 아니라 직접 북한 주민을 향해 목소리 높여 자유·민주·인권·법치를 외칠 때다. 도명학 작가의 말대로 감옥의 자물쇠는 문 바깥에 채워져 있다. 밖에서 그 자물쇠를 깨줘야만 포로들이 문을 부수고 자유를 얻을 수 있다. 더는 북한 정권에만 목매지 말고, 자유민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액션 플랜을 짜서 북한 주민에게 알려야 한다. 남북한이 함께 “우리의 소원은 자유·민주·인권·법치”라고 외칠 때, 오직 그때에만 “통일이여, 어서 오라” 노래할 수 있다.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역사학, 조선일보(24-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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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원은 평화!

 

자유민주주의와 수령절대주의를 통일한 제3의 국가 지도 원리는 허상
'모든 통일은 善이다'는 무책임한 감성적 선동… '평화·번영'이 핵심 가치
 

 

'우리의 소원은 통일', 남북 공동 예술 행사에 반드시 등장하는 노래다. 평창올림픽 때 북한 예술단의 서울 공연과 우리 예술단 평양 공연의 대단원을 장식했다. 우리 가슴을 울리는 곡이다. 파격적인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6·12 미·북 정상회담 개최까지 확정되자 희망에 벅차 통일을 말하는 이들이 늘었다. 진보 진영의 좌장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대표적이다. 새 책 '변화의 시대를 공부한다'에서 그는 "낮은 단계의 남북연합이 이미 진행 중"이라고 낙관한다.

남북연합은 '남북이 각자 헌법, 군대, 정부를 따로 갖춘 국가로서 교류 협력을 통해 점진적 통일로 가자'는 주장이다. 2000년도 제1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체결한 6·15 공동선언이 남북연합을 명시한 바 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남측의 연합 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 제안이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하기로 합의했다. 작금의 한반도 해빙 분위기는 남북연합에 입각한 통일론을 전면적으로 되살려내고 있다.

하지만 교류·협력과 통일은 전혀 다른 차원의 사안이다. 햇볕정책의 난파(難破)가 증명하는 그대로이다. 백 교수의 문재인 정부에 대한 막대한 영향력을 감안하면, 그의 장밋빛 통일론이 정부의 무리한 통일정책으로 연결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남북연합을 발전시켜 통일로 나아가자는 백낙청의 통일론에는 치명적 결함이 내재한다. 너무나 이질적인 남북의 두 국가이성(國家理性)을 통합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와 북한의 수령절대주의를 통일한 제3의 국가 지도원리 따위가 있을 리 없다.

대한민국 시민들이 수령 김정은에게 복종하는 게 어불성설인 것처럼, 북한 인민들도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를 따를 수 없다. 한반도 국제정치는 남북 어느 일방이 주도하는 통일을 구조적으로 막고 있다. 6·25전쟁은 남과 북 그 어느 쪽도 한반도의 단일 패권을 장악하기 어려운 한반도 특유의 지정학적 '단층선'을 증명했다. 미·중의 21세기 패권 경쟁으로 그 단층선은 더 선명해졌다. 대만 문제와 남중국해에서 가열되고 있는 항행의 자유를 둘러싼 미·중 갈등이 그런 단층선의 존재를 실증한다. 결국 흡수통일과 적화통일 모두 불가능에 가깝다. 남북 국가 이성의 통합도 무망한 일이다.

 

그럼에도 미·북 국가 전략의 접점이 한반도 냉전 해체의 전망을 밝게 만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김정은의 핵 포기와 함께 남북이 주권국가로서 상호 인정하고 미·중·러·일이 남북을 교차 승인하는 게 한반도 2국 체제이다. 통일이 아니라 평화 공존을 지향하는 2국 체제가 헌법에 위배된다는 질책도 있지만 헌법의 통일 조항이 한반도 현실 때문에 '중단'되어 있는 것을 감안해야만 한다. 최악의 인권탄압국 북한을 승인하면 북한 인민을 포기하는 셈이라는 비판도 날카롭다. 그러나 북한 사회의 불가역적 시장화야말로 북한 인민의 인권을 개선할 최적의 방안이다. 김정은이 북핵 폐기에 합의한 후 설령 몇 발의 핵을 감춰두어도 한반도 2국 체제의 거시적 균형은 크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섣부른 통일 시도가 상호 궤멸의 대(大)참화로 이어진 비극적 경험은 6·25전쟁 한 번으로 족하다.

하지만 백낙청은 한반도 2국 체제가 "비현실적 탁상공론이며, 통일이 빠진 평화와 번영은 무의미하다"고 강변한다. 무엇이 통일이냐를 두고 다투지 말고 남북 간 교류를 진행해나가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상호 교류와 통합이 충분히 진척되었을 때 남북이 만나 통일됐다고 선포해버리면 그것이 바로 '우리식 통일'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국가이성의 엄중함을 송두리째 외면한 비현실적 탁상공론이 아닐 수 없다. 그의 말과는 정반대로, 평화와 번영이 빠진 통일이야말로 무의미한 데다 위험천만한 기획이다.

한반도 2국 체제가 뿌리내려 남북이 교류하며 평화와 자유를 누린다면 같은 민족이 꼭 한 국가로 살아야 하는 건 아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처럼 현대 세계에선 1민족 2국가가 더 흔하다. 오랜 시간이 지나 미래의 남북 주권자들은 통일을 선택할 수도 있고 2국 체제 존속을 결의할 수도 있다. 따라서 '모든 통일은 선(善)이다'는 명제는 감상적 선동에 불과하다. 우리에겐 적화통일은 최악의 악몽이며 모든 게 초토화하고 난 후의 흡수통일은 재앙 그 자체다. 우리의 소원은 결코 통일이 아니다. 평화는 통일을 압도하는 핵심 가치이기 때문이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조선일보(18-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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