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위험자산 동시에 오르는 ‘에브리싱 랠리’] ....
[안전·위험자산 동시에 오르는 ‘에브리싱 랠리’]
[삼성전자 홀로 고전, ‘초격차’ 줄고 ‘속도전’ 밀리는 K반도체]
[세계 최강 ‘금소법’도 못 막은 ELS 사태]
안전·위험자산 동시에 오르는 ‘에브리싱 랠리’
대표적 안전자산인 금과 ‘디지털 금’으로 불리는 비트코인, 위험자산의 대표인 주식 가격이 동시에 급등하고 있다. 안전자산과 위험자산이 함께 오르는 이른바 ‘에브리싱 랠리(everything rallly)’다. 글로벌 자금시장에서 도는 돈이 한쪽으로 쏠리면 다른 쪽에선 돈이 밀물처럼 빠져나가 가격이 하락하는 게 일반적이어서 이례적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그제 4월 인도분 금 선물은 전 거래일보다 3.10달러 상승한 트로이온스(31.1g)당 2188.60달러로 거래돼 사상 최고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장중 한때 2200달러 선까지 육박했다. 중국 등이 달러 의존을 줄이려고 금을 사들이는 데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6월 금리 인하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금값은 천정부지다. 금리가 내려 달러 가치가 떨어질까 봐 글로벌 투자자들이 금을 사서 위험을 분산하기 때문이다.
▷한국 가상화폐 시장에서 비트코인 값은 개당 1억 원을 처음 넘어섰다. 비트코인은 총 발행량이 2100만 개로 제한돼 금처럼 희소성이 있고, 미국 금융당국이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를 허용해 제도권에 진입한 뒤 가격 움직임이 더욱 금을 닮아가고 있다. 채굴량이 절반으로 주는 반감기가 다음 달 돌아오는 만큼 당분간 강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글로벌 증시는 갈수록 끓어오르고 있다. 미국, 일본, 대만 증시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사상 최고치 경신 소식이 전해진다. 인공지능(AI) 혁명의 영향이 AI 반도체 업체 엔비디아 등을 보유한 미국, 엔비디아의 주문을 받아 반도체를 만들어주는 TSMC가 있는 대만, 세계 굴지의 반도체 장비·소재 업체가 즐비한 일본 증시로 번지고 있다.
▷금, 비트코인 값 상승의 근저에는 달러화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미국의 국가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00% 선을 넘어 100일마다 1조 달러(약 1310조 원)씩 증가하고 있다. 미국의 재정이 악화되면 결국 돈을 더 찍어낼 수밖에 없고, 안전자산인 달러화 가치가 흔들릴 수 있어 대신 금 등을 사들인다는 거다.
▷이번 랠리에서 한국 경제는 멀찍이 떨어져 소외된 느낌이다. AI 열풍의 영향은 AI 반도체용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만드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그친다. 한국은행 자산 중 금 비중은 1% 정도이고, 11년째 금을 사지 않고 있어 값이 올라도 별 도움이 안 된다. 다만 일부 청년층 사이에선 비트코인 계좌를 인증하며 “내게 이런 날이 오다니”라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모든 게 다 오르는 시장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 없다는 점만은 잊지 말아야 한다.
-박중현 논설위원, 동아일보(24-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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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홀로 고전, ‘초격차’ 줄고 ‘속도전’ 밀리는 K반도체
착공 1년 10개월만에 완공한 대만 TSMC의 일본 구마모토 반도체 공장. /뉴시스
올 들어 대만 TSMC, 미국 마이크론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 주가가 연일 급등하는 속에서도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인 삼성전자 주가는 9% 하락해 대조를 이루고 있다. 삼성전자가 인공지능(AI) 반도체에 필수적인 HBM(고대역폭 메모리) 경쟁에서 뒤처진 데다, 주문형 시스템 반도체를 생산하는 파운드리 분야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에 HBM을 독점 공급해 K반도체의 체면을 세우고 있었는데, 얼마 전 마이크론이 4세대를 건너뛰고 5세대 HBM3E를 양산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해 이마저도 위협받게 됐다. 세계 1위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가 HBM에선 3등으로 추락할 처지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세계 최초로 12단 HBM3E 개발에 성공했다고 밝혔지만, 시장 반응은 냉랭하다. 외국인은 최근 5일간 삼성전자 주식을 965만주나 팔아치웠다. 양산 가능성과 생산성, 엔비디아 납품 가능성에 낮은 점수를 주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2022년 3월 세계 최초로 3나노 반도체를 개발, 파운드리 시장을 개척할 게임 체인저라고 자랑했지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2021년 18%에서 2023년 11%로 오히려 뒷걸음질했다. 경쟁자들 도전도 거세지고 있다. 미국 인텔은 “2027년부터 1.4나노 공정을 양산해 2030년까지 세계 2위 파운드리가 되겠다”며 ‘삼성 추월’을 선언했다. 메모리 반도체 패권을 한국에 빼앗긴 일본은 TSMC·인텔과 손을 잡고 범용 메모리 반도체와 2나노급 시스템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다. 일본 정부가 지원한 대만 TSMC 구마모토 공장은 착공한 지 불과 1년 10개월 만에 준공하는 가공할 속도를 과시했다.
반면 한국은 반도체 기술 경쟁에서는 ‘초격차’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고, 차세대 생산 라인 구축을 위한 속도전에서도 경쟁국에 밀리고 있다. SK하이닉스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2019년에 투자 의향서를 제출했으나 토지 보상, 용수 공급 문제 등으로 지연돼 이제 부지를 조성하고 내년 3월에 1기 공장 착공에 들어간다. 삼성전자 평택 공장도 송전탑 문제로 5년을 허비했다. 경쟁국들은 민관(民官)이 국가 차원 총력전을 벌이는데 어떻게 경쟁을 이겨낼 수 있나.
-조선일보(24-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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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강 ‘금소법’도 못 막은 ELS 사태
온갖 제동 장치 마련해도 고위험 상품 판매 못 막아
수수료 목매게 만드는 은행원 ‘성과평가’ 수술해야
이복현 금융감독원 원장이 11일 홍콩 H지수 ELS 대규모 손실 사태와 관련, 투자자 피해 배상안을 발표하고 있다./뉴시스
요즘 은행에 가서 펀드나 ELS(주가연계증권) 상품에 투자하려면 1시간 정도는 각오해야 한다. 온갖 서류에 서명하고, “상품 설명을 듣고 이해했다”는 문구를 친필로 쓰고, 구두로 녹취까지 해야 하기 때문이다. 투자 절차가 한층 까다로워진 것은 2021년 ‘금융소비자보호법’(이하 금소법) 시행 이후부터다. 2019년 외국 금리 연계 파생상품(DLF) 사태, 2020년 라임·옵티머스 사건 이후 금융회사의 고위험 상품 판매에 제동을 걸기 위해 금소법이 제정됐다.
금소법은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해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우선 금융회사가 금융상품을 판매할 때 적합성, 적정성을 지켜야 한다. ‘적합성’은 투자자의 재산 상황, 투자 경험 등에 비추어 부적합한 금융상품 추천을 금지하는 것이다. ‘적정성’은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투자하려는 금융상품이 소비자의 재산 등에 비추어 부적정할 경우 그 사실을 투자자에게 고지하고 확인하라는 것이다. 이 두 잣대만 들이대도 홍콩H지수 ELS를 19조원어치나 팔아치운 은행들이 상품 판매의 정당성을 설명하기가 난감할 것이다.
더 무서운 칼도 구비돼 있다. 금융회사가 상품 설명을 제대로 안 하고, 부당한 권유를 하면 수입의 50%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설명 의무와 관련한 과실 여부를 피해자가 아니라 금융사가 입증해야 한다. 은행이 자필 서명과 녹취에 목을 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금소법은 금융사의 불완전 판매가 드러나면 몇 년 뒤에라도 투자자가 ‘계약 해지권’을 갖도록 했다. 은행, 증권사가 고위험, 고난도 투자상품 판매 후 문제가 생기면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면하기 어렵게 만든 것이 금소법이다. 가히 세계 최강 소비자 보호법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도 은행들이 고위험 홍콩H지수 ELS를 금소법 시행 후 무려 19조원어치나 팔아치웠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은행원에겐 금소법보다 더 무서운 게 있다. 은행원들의 업무 성과를 측정하는 지표인 KPI(Key Performance Indicator)가 그것이다. KPI 점수가 높아야 승진도 하고 보너스도 두둑이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영업점 창구에선 예금보다 ELS를 팔아야 KPI 점수를 더 높게 받는다. 금융 당국의 실태 조사 결과, A은행의 경우 KPI에서 1000점 만점에 410점이 고위험 상품 판매 실적과 관련한 배점인 것으로 드러났다.
위험한 상품을 걸러내라고 만든 은행 상품위원회는 실적에 목매는 영업 부문 대표의 목소리에 눌려 제 구실을 못한다. KPI는 이런 구조에서 판매가 결정된 상품을 많이 팔라고 재촉하는 구조로 배점이 짜여 있다. 그러니 은행원들은 은행에 더 많은 수수료를 안겨주는 고위험 상품 판매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은행원 입장에선 고위험 상품을 많이 팔수록 자기에게도 이익이다. 나중에 문제가 되면 은행이 손실금을 물어주니 은행원의 ‘도덕적 해이’가 만개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과거 고위험 상품 판매와 관련한 금융사고가 터질 때마다 고위험 상품 판매를 부추기는 KPI의 문제점이 지적됐지만,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은행이 무분별하게 고위험 상품을 팔고, 대규모 손실이 나면 정부가 은행 팔을 비틀어 보상하는 것은 세계 10위 경제 대국의 위상에 걸맞지 않은 후진적 방식이다.
KPI 가산점을 투자 고객이 이익이 날 때만 부여하고, 권유 상품으로 고객이 손실을 볼 경우 과거 받았던 보너스를 토해내게 하는 제도(claw back)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은행원이 고객에게 투자를 권할 때 자기 돈 투자하는 것처럼 신중해지지 않겠나.
-김홍수 논설위원, 조선일보(24-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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