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절하사(折節下士)] [“총선 지면 尹 정부 뜻 한번 못 펴고 끝”]
[절절하사(折節下士)]
[“총선 지면 尹 정부 뜻 한번 못 펴고 끝” 알면서 이러나]
[황상무 수석 “회칼 테러” 언급… 진짜 심각한 건 저열한 언론관]
절절하사(折節下士)
[이한우의 간신열전]
절절하사(折節下士)란 큰 뜻을 품은 사람이 자기 주장이나 생각을 굽히고 여러 선비들에게 자기를 낮춘다는 뜻이다. 하사(下士)는 하인(下人)이라고도 하는데 남에게 자기를 낮춘다는 뜻이다. 조선 임금 중에서 이를 잘 갖추었던 임금은 태종이다. ‘태종실록’ 총서에는 젊은 시절 태종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고려 말 태종은 세상을 구제할 뜻이 있어 능히 자기 주장이나 생각을 굽히고 여러 선비들에게 자기를 낮추었다.” 이는 상투적 표현이 아니다. 여러 형제들 중에 유독 이방원에게 많은 사람이 따른 이유를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리더가 절절하사(折節下士)할 때라야 많은 이들이 따르게 된다.
많은 사람이 따르게 하는 또 한 가지는 너그러움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관즉득중(寬則得衆)이라고 했다. 사실 관(寬)과 절절하사지심(折節下士之心)은 서로 통한다. 설사 자기 마음에 들지 않고 자기 뜻과 어긋나더라도 많은 이가 바라는 쪽으로 선택하려면 자기를 낮춰야 하고 그렇게 하면 너그러워져 많은 이들이 따르기 때문이다.
세습 왕조 시대에도 이처럼 민심(民心)을 얻기 위한 임금들의 수양이 끊임없이 강조되었다. 그렇다면 국민들이 지도자를 선출하는 민주사회에서는 이 점이 더 중시되어야 하는데 유감스럽게도 실상은 그렇지 않다. 선거 과정에서만 잠깐 자기를 낮추는 시늉을 할 뿐 막상 자리에 오르면 제왕도 이런 제왕이 없는 것이 지난 20여 년간 대통령들이 보여준 모습이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절절하사(折節下士)는 그저 선거 승리를 위한 꼼수의 하나로 전락한 것이다.
태종은 정승 조준과 하륜이 세상을 떠났을 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두 사람을 그냥 신하로 대하지 않았고 늘 스승과 같은 신하[師臣]로 대했다.” 한 번도 이름을 부르지 않고 늘 ‘조정승’ ‘하정승’이라고 불렀다.
-이한우 경제사회연구원 사회문화센터장, 조선일보(24-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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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지면 尹 정부 뜻 한번 못 펴고 끝” 알면서 이러나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월 23일 눈이 내리는 가운데 충남 서천 특화시장 화재 현장을 나란히 걸어가고 있다. /뉴스1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번 총선에서 지면 윤석열 정부는 뜻 한 번 제대로 펼쳐보지 못하고 끝나게 된다.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연하고 맞는 말이다. 많은 국민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모든 정부는 시대적 소명이 있다. 그 시대가 요구하는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라는 것이다. 윤 정부의 소명은 두말할 것도 없이 노동·연금·교육·규제 등 핵심 개혁을 완수해 국가의 성장 동력을 다시 살려내는 것이다. 이 구조 개혁이 미진하거나 없어서 우리 경제는 장기 침체의 기로에 서 있다. 윤 대통령도 취임 때부터 흔들림 없이 구조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국회를 장악한 민주당은 거의 모든 개혁을 거부했다. 윤 대통령은 “소수 정부라 힘들다”며 총선에서 개혁에 필요한 의석을 달라고 호소해 왔다.
그런데 막상 총선이 되자 윤 대통령에게 개혁에 필요한 다수 의석을 확보하겠다는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윤 대통령은 해병대원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으로 공수처 수사를 받던 이종섭 전 국방장관을 호주 대사로 임명해 출국시켰다. 출국 전에 국민의힘에서 총선 직전 출국은 안 된다는 뜻을 전했지만 윤 대통령은 무시했다. 윤 대통령은 이 대사를 귀국시켜야 한다는 국민의힘 요구도 거부했다. ‘회칼 테러’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황상무 시민사회수석에 대한 사퇴 요구도 “법적으로 문제없다”며 거부하고 있다. 상식에 안 맞고 선거에도 악영향을 줄 일인데 윤 대통령이 이러는 이유를 참모들조차 잘 모른다고 한다. 대통령실 안팎에선 언론과 여론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나오면 더 거꾸로 간다는 말까지 나온다.
국민의힘 공천을 받았다가 과거 발언으로 공천이 취소된 장예찬씨는 8차례나 자신이 ‘윤 대통령의 1번 참모’임을 강조하며 무소속 출마했다. 무소속으로 여권 표를 나누면 의석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놀랍게도 윤 대통령이 장씨의 무소속 출마를 권했다는 설이 돈다. 이에 대해 장씨는 잘라서 부인하지 않으며 뭔가 있는 듯한 인상을 풍기고 있고 대통령실도 아무 반응이 없다.
국민의힘 비례대표 공천은 감동은 없고 뒷말만 무성하다. 비례대표는 인선 자체로 국민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스토리 있는 참신한 청년·기업인·전문가 등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생소한 공무원 두 사람의 공천에 대해선 납득할 만한 설명도 없다. 한 명은 하루 만에 취소됐다. 이 두 사람이 한동훈 비대위원장, 검사 출신 당 인사와 사적인 관계가 있다는 소문만 무성하다. 한 위원장은 “선거에 지면 끝”이라면서 비례대표 공천을 이렇게 하나. 이래서 어떻게 국민 지지를 얻어 국정 개혁을 완수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국민의힘이 총선에 지면 윤 대통령의 국정 개혁은 시작도 못 한 채 끝날 수밖에 없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벌써 과반 승리를 언급하며 ‘윤석열 탄핵’과 ‘임기 단축 개헌’을 주장한다. 실제 정치권에선 이들이 170~180석 안팎을 확보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만이 아니라 국민의힘도 인정하고 있다. 국민의힘 수도권 후보들은 사실상 전멸했던 4년 전 총선의 재판이 될 수 있다고 호소한다. 국민들은 선거를 대하는 대통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개혁 약속이 진심이었는지 묻고 있다. 이대로 선거에 참패한다면 남은 3년간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무엇을 할 것인가.
-조선일보(24-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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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년 전 총선 후 與 공관위원장이 쓴 책 이름은? “총선 참패와 생각나는 사람들.”
-팔면봉, 조선일보(24-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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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무 수석 “회칼 테러” 언급… 진짜 심각한 건 저열한 언론관
용산 대통령실이 그제 ‘회칼 테러’ 발언을 한 황상무 대통령시민사회수석을 사퇴시킬 뜻이 없음을 밝혔다. 그러면서 “대통령실은 언론을 상대로 강압·압력을 행사해 본 적이 없고, 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 참모의 부적절한 발언을 두고 본인 사과로 상황이 종료됐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언론인 출신인 황 수석은 지난주 대통령실 취재기자 몇몇과 오찬을 하면서 “MBC는 잘 들어라. … 내가 정보사령부 나왔는데, 1988년 경제신문 기자가 허벅지에 칼 두 방이 찔렸다”고 말했다. 이어 “(그 기자가) 정부에 비판적인 글을 쓴 게 문제가 됐다”는 취지의 말을 덧붙였다고 한다. “농담”이라고 주워 담기는 했지만, 정부를 향해 비판 칼럼을 쓴 언론인이 출근길에 정보사 요원들로부터 25cm 회칼로 테러당한 사건을 거론한 것이다. 과거 정부의 언론 탄압을 말하다 나왔다는 게 본인 해명이지만, 위협적으로 느낄 만한 발언이었다. 황 수석은 이틀 뒤에야 “상대 입장을 헤아리지 못했다”며 4줄짜리 사과문을 냈다.
그가 “잘 들어라”고 지목한 방송사는 ‘바이든-날리면’ 보도로 대통령실과 소송을 진행 중인 곳이다. 해외 순방 때 대통령실이 해당 방송사 취재진의 전용기 탑승을 불허해 논란이 된 적도 있다. 언론의 자유와 책임 있는 보도 문제는 원칙대로 대응해 가리면 될 일인데도, “잘 들어라”며 뜬금없이 테러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발언 당사자가 사회 곳곳의 다양한 민심을 파악해 대통령에게 조언하는 시민사회수석이란 점도 더 충격적이다. 대통령실 누구보다도 유연한 자세가 필요한 자리다. 게다가 그는 공영방송 KBS의 9시 뉴스 앵커 출신이다. 언론과 권력의 건강한 긴장 관계를 누구보다 잘 이해해야 할 대통령의 핵심 참모가 저열하고 위험한 언론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대통령실은 야당의 사퇴 프레임에 걸려들어 대통령 인사권이 흔들리면 안 된다는 기류가 강한 듯하다. 상황의 심각성을 전혀 모르는 안이한 생각이다. 오죽하면 여당 안에서도 “지체 없는 사퇴가 국민 눈높이”라는 지적이 나오겠는가. 무리한 방송심의 논란, 사라져 버린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말하는 것처럼 언론 자유에 대한 몰이해가 용산을 감싸고 있는 것 아닌가. 대통령실이 문제의 본질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심각한 일이다.
-동아일보(24-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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