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時事-萬物相]

[유라시아 지각변동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

뚝섬 2024. 4. 26. 09:42

[유라시아 지각변동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윤석열 외교, 변주가 필요하다]

[호랑이 등에서 내리려면]

[이란이 절대 이스라엘 이길 수 없는 이유]

[한국이 대북 제재 ‘구멍’]

 

 

 

유라시아 지각변동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朝鮮칼럼]

우크라·러시아·중동·대만… 끝자락 한반도까지 연쇄 파도

北, 러에서 핵잠수함 기술 추진.. 이란과는 탄도미사일 협력중

中이 대만 무력통일 시도할 때 한반도 아노미 사태 원할 것

안보는 산소와 같다.. 부족하면 민생도 살릴 수 없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유라시아의 지각변동이 중동 지역을 거치며 증폭되고 있다. 러시아, 이란, 중국, 북한 등이 유라시아 질서의 향배를 좌우하는 주요 변수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자칫 유라시아 대륙의 끝자락에 있는 한반도에까지 지각변동의 파고가 몰려올 수 있다.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점령한 직후 국제관계의 최대 화두는 ‘지정학의 귀환(return of geopolitics)’이었다. 러시아, 중국, 이란 등이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국제질서’보다는 각자 지정학적 이해에 따라 ‘현상 변경’을 도모할 것으로 예측됐다. 결국 러시아는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미국과 유럽 주요국들의 적극적인 지원에도 전황은 교착되었다. 이들이 ‘피로감’을 느끼던 순간에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판 9·11′로 불리는 대규모 테러 공격을 이스라엘에 가했다. 이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시작됐고, 하마스 후견국인 이란과 숙적 이스라엘 간에 보복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지정학적 위기 속에 중국·러시아·이란·북한 등이 전략적으로 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를 공개 지지하진 않으면서, 살상 무기 대신 드론과 (서방 제재로 막힌 방산 핵심 부품인) 컴퓨터 칩을 지원하고 있다. 대신 중국은 러시아로부터 잠수함 소음 억제(silent running) 기술과 지(함)대공 미사일 방어체계를 들여와, 미국과 서태평양 지역의 군사 경쟁에서 ‘게임 체인저’를 기대한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이 있기 전까지 이란은 외교적으로 매우 어려운 처지였다. 이스라엘과 사우디 간 수교가 가까워져 중동 평화에 대한 역내 기대감이 높았으나, 이란은 내전 중인 시리아 아사드 정권의 만행에 철저히 눈감고 러시아와 함께 지원을 지속해 역내 신뢰도가 추락하고 있었다. 이란은 뒤늦게 중국의 중재로 사우디와의 관계를 개선함으로써 사우디-이스라엘 수교를 저지하려 했다. 하마스도 비슷했다. 이스라엘과 사우디가 수교할 경우,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이슬람 강경투쟁 노선은 설 땅이 사라질 판이었다. 이란이 하마스에 ‘10월 테러’를 사주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하마스를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무장시키고 훈련까지 시켜온 이란이 중동 지정학의 ‘판’을 흔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마스와 공유했을 확률이 높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6개월째 하마스 소탕 작전을 벌이고 있지만, 과도한 민간인 살상을 초래해 국제사회의 거센 비난에 직면해 있다. 현재 국제적 관심사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아니다. 가자지구 내 인도주의적 참상과 더불어 (미국의 만류에도) 역내 긴장을 극대화하는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권에 시선이 집중돼 있다. 하마스는 물론 러시아와 이란이 원하던 시나리오가 펼쳐진 것이다.

 

미 바이든 행정부가 중동 문제에 집중하는 사이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황을 개선하기 위해 북한과의 군사협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북한이 러시아에 대한 포탄 지원의 반대급부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전 배치, 핵추진 잠수함 건조 기술을 받게 된다면 한미 동맹에 큰 위협이다. 게다가 북한은 이란과 탄도미사일 협력을 해왔고, 하마스에 무기도 공급한다.

 

궁극적 변수는 중국의 인식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보면서 상대를 과소평가하면 큰 곤욕을 치른다는 점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우크라이나에서 멀지 않은 중동에서 무력 충돌이 일어나 미국의 군사적 대응이 분산되는 것을 보면서, 향후 중국이 대만에 무력 통일을 시도할 때 한반도가 (현재 중동처럼) ‘혼돈 상태’에 있어야 유리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유라시아의 지각변동, 즉 우크라이나-중동-대만-한반도의 연계성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및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는 가운데 내년 초 국제문제 개입을 원치 않는 행정부가 들어선다면 유라시아 지각변동은 무질서로 귀착될 것이다. 우리는 한중 관계를 안정적으로 가져가면서도, 대만해협의 급격한 긴장 고조와 북·러 협력에 따른 북한의 오판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대만과 한반도 위기 발생 시 동시 대처를 위해 미·일 동맹과 한미 동맹의 연계성을 강화해야 한다.

 

안보는 산소와 같다. 안보가 부족하면 민생도 살릴 수 없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前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 조선일보(24-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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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외교, 변주가 필요하다 

 

[이철희 칼럼]

우크라戰 2년, 유럽엔 ‘안보 각성’의 시간
일본은 동맹 결속하며 군사대국화 질주
이념외교론 ‘초불확실 파고’ 넘을 수 없어
中과 소통-北위기 관리 위한 유연함 절실
 

 

지난 주말 미국 하원에서 우크라이나·이스라엘·대만에 대한 안보지원 예산안이 통과됐다. 공화당 강경파의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 반대로 6개월이나 표류했던 이 예산안은 “연말이면 우크라이나가 패전할 수 있다”는 중앙정보국(CIA) 국장의 경고 끝에 하원 문턱을 넘었다. 그나마 이란의 이스라엘 본토 공격이 없었다면 기약 없이 미뤄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미국의 지원으로 우크라이나는 일단 한숨 돌리게 됐지만 상황은 여전히 암울하다.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가 5발 쏠 때 고작 1발로 응수하며 힘겨운 전쟁을 하고 있다. 그만큼 미국의 군사지원은 우크라이나 생존에 절대적이다. 다른 국가들의 지원액을 다 합해도 미국에 미치지 못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2년은 유럽에는 ‘안보 각성의 시간’이었다. 각국은 방위비를 대폭 늘리고 의무복무제 도입도 추진하고 있지만 ‘유럽안보의 유럽화’는 요원하다. 당장 미군이 빠진 200만 유럽 병력은 허울뿐인 ‘포템킨 군대’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군사령관은 미군 4성 장군이 맡아왔고, 유럽 군대는 그 지휘 아래 항공 지원과 정보까지 전적으로 의존했다. 유럽이 자체 방위력을 키우는 데는 최소 10년이 걸릴 것이라고 한다.

 

일본은 이런 유럽을 바라보며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최근 미일 간 동맹 결속의 기세는 예사롭지 않다. 미국을 방문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미국은 혼자가 아니다. 우리가 함께한다”고 외쳤다. 지금껏 미국의 일방적 보호(protection)를 받던 일본이 이제 한 축을 맡아 함께 힘을 투사(projection)하게 된다고 미국 측도 의미를 부여했다. 일본으로선 ‘아시아 파트너 1강(强)’의 위상을 확보했다고 자부할 만하다.

일본의 미국 밀착은 거침없는 군사대국화와 맞물려 있다. 지난 2년간 방위비를 50% 늘린 일본은 2027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2%를 달성해 미국 중국에 이은 세계 3위의 군사비 지출 강국으로 발돋움한다. 토마호크 미사일 400기도 도입해 반격 능력까지 확보할 예정이다. 아베 신조 때부터 걸어온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의 길을 쾌속으로 달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본의 행보는 우리에겐 질시와 불안을 부르는 불편한 현실이다. 윤석열 정부도 북핵 위협에 맞서 확장억제 같은 한미동맹 강화에 총력을 기울였다. 국내적 반대를 무릅쓰고 대일관계 개선을 밀어붙인 끝에 한미일 3각 안보 협력도 확고히 했다. 북한이 연일 미사일을 쏴대고, 세계적 신냉전 구도가 고착화하는 터에 불가피하고 필수적인 노선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쩌면 쉽고 뻔한 길이었다. 특히 윤 대통령의 행보는 과감했지만 거칠었다. 미국 일변도 외교는 중국의 거센 반발을, 대일관계 급진전은 국내적 반감을 불렀다. 이번 4·10총선에선 야당 대표가 “왜 중국에 집적거리나. 그냥 ‘셰셰’ 하면 되지”라는 경박한 언사를 쏟아놓는데도, 민심은 오히려 정부여당에 박절할 만큼 인색했다. 정부가 자랑하는 외교적 성과가 묻힐 만큼 다른 정부 실책들이 너무 컸기 때문일까.

총선 참패에도 명시적인 공개 사과를 하지 않은 윤 대통령이다. 마음에 없는 말은 절대 하지 않는, 하고 싶은 말은 기어이 하고야 마는 윤 대통령으로선 무엇보다 뚝심 있는 외교로 이룬 성과를 몰라주는 민심에 섭섭할지 모른다. 그래서 앞으로도 외교정책만큼은 고집스럽게 밀고 나갈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도 많다.

하지만 주변을 살피지 않는 직진 외교로는 다가오는 초불확실성의 시대를 헤쳐 나가기 어렵다. 특히 연말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한국 외교는 험난한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트럼프에겐 동맹도 돈 계산이 먼저다. 김정은과의 협상도 언제든 꺼내 쓸 와일드카드로 여긴다.

윤석열 정부의 대외정책은 유연하고 정교해져야 한다. 단조로운 음악의 볼륨만 높이는 외교는 피로감을 낳을 뿐이다. 이념 편향적 가치외교가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처하는 해법이 될 수는 없다. 꽉 막힌 중국과의 외교적 소통부터 나서야 한다. 북한발 충돌 위기를 관리할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일본의 여전한, 오히려 퇴행하는 역사인식에는 할 말을 해야 한다.

일본은 미국과 손잡고 중국 포위망을 강화하면서도 ‘건설적이고 안정적인 중일관계’에 대한 언급을 빠뜨리지 않는다. 북한의 도발을 맹비난하면서도 정상회담 가능성을 끊임없이 타진한다. 당장 성과가 있을 리 없지만 그럼에도 소통 창구를 열어 두고 관리 차원의 접근을 중단하지 않는 일본 외교를 우리 정부는 찬찬히 들여다봐야 한다.

-이철희 논설위원, 동아일보(24-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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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등에서 내리려면

 

[임용한의 전쟁사]

 

이란과 이스라엘이 보복과 보복의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세계의 공포도 커지고 있다. 서로 돌이킬 수 없는 강은 건너지 않으려 하고는 있지만, 서로 보복을 반복하다 보면 수위는 계속 높아질 수밖에 없다. 미국이 이란에 추가 제재를 하고, 팔레스타인의 유엔 가입에 부담을 무릅쓰고 거부권을 행사하는 등 노력을 보이고 있지만, 이스라엘을 만족시키기는 힘든 모양이다. 미사일, 드론, 공중전으로 서로 상대를 괴롭히는 전쟁은 신개념의 전쟁이지만 단점도 분명하다. 상대를 괴롭힌다는 것 외에는 마땅한 전략적 해결 수단이 없다. 서로를 괴롭히고, 재력을 낭비하고 분노만 키워간다. 이 분노는 적에 대한 분노로 시작해서 자국 정권에 대한 분노로 확산된다.

네타냐후 정권도 내심 전쟁을 멈추고 싶을 것이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후유증은 처리하기 힘들어지고, 반작용도 커진다. 전쟁을 끝내려면 국민을 만족시킬 가시적 성과가 필요한데 단기간에 성과를 이룰 방법이 없다.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문제는 깊고 깊은 수렁이다. 군사적 승리는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한다. 그 점은 이스라엘 국민이 제일 잘 알고 있다. 이란과 서로 보복을 반복하며 장기전으로 가면 모두가 힘들어질 뿐이다.

이스라엘 입장에서 의외의 타깃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레바논의 헤즈볼라이다. 하마스와 달리 헤즈볼라는 레바논 입장에서는 외래 집단이다. 헤즈볼라는 레바논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지 않다. 여러 정파 세력 중 가장 강력한 세력일 뿐이다. 현재 레바논의 경제, 정치 상황은 좋지 않다. 가자 전쟁이 시작됐을 때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을 너무 얕봤고, 이란의 지원을 과도하게 기대했다. 국제사회 압력 등 변수가 많지만, 네타냐후 정권이 헤즈볼라를 타깃으로 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5차 중동전쟁은 아니라도 중동의 분쟁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으로 꽤 오래 지속될 듯하다.

 

-임용한 역사학자, 동아일보(24-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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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 절대 이스라엘 이길 수 없는 이유 

 

이란의 선제 공격(preemptive strike)과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retaliatory attack)으로 중동 지역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hover over the Middle East). 그런데 이번 일촉즉발 위기(touch-and-go crisis)는 판도가 영 딴판이다. 과거이스라엘 vs 모든 이슬람 국가구도였던 것이 뒤죽박죽 뒤얽혔다(get entangled).

 

이란의 미사일·드론 공격을 저지한 데는(thwart Iran’s attacks) 미국·영국 등 이스라엘 동맹국뿐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아랍에미리트도 가담했다. 비밀 정보를 제공하는가 하면 영공을 마음대로 사용하도록(use their airspace at will) 온갖 편의를 제공했다. 불구대천의 (sworn enemy)이었던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 보호에 나선다는 얼마 전까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걸까.

 

결정적 요인(key factor)은 이슬람 시아파와 수니파의 세력 다툼(power struggle)이다. 16억명 신도의 15% 불과한 시아파 거점(stronghold) 이란이 핵무기 운운하며 준동하자 나머지 85% 수니파 아랍 국가들이 급거 경계에 나선(be put on alert) 것이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도 시아파 이란이 수니파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외교 관계 정상화를 좌초시키고 수니파 국가들 사이에 불화를 확산시키려고(spread discord)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를 사주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반군도 이란의 이슬람 장악 대리전을 벌이는(wage proxy wars) 시아파 무장 세력들이다.

 

서기 610년 이슬람교를 창시한 마호메트가 후계자를 정하지 못한 채 사망하면서 분파가 생겼다. 혈통을 이어가야(pass through his bloodline) 한다는 시아파와 공과에 따라 정해야 한다는 수니파로 갈렸다. 1979 이슬람 혁명으로 율법학자들이 집권한(seize power)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를 필두로 수니파의 상호 증오(mutual hatred) 급격히 악화됐다(deteriorate rapidly).

 

이후 45년 동안 이란은 소수파 설움에 절치부심하며(gnash its teeth with rage) 반전 기회를 노려왔고(seek to turn things around), 핵 보유국을 자처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에 페르시아만에 인접한 쿠웨이트, 바레인, 오만, 카타르 수니파 걸프 국가들은 이란을 생존의 위협(existential threat)으로 여기기 시작했고, 사우디와 함께 미국·영국 등을 도와 이란의 숙적(arch enemy) 이스라엘 보호에 나서게 것이다.

 

현재는 모로코와 수단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수니파 국가들이 ‘사악한 시온주의 정권(evil Zionist regime)’ 이스라엘을 말살하려 했던 과거를 뒤로한 채 시아파 이란을 공동의 (common enemy)으로 삼고 있다. 이제는 이란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하마스, 헤즈볼라, 후티 반군을 척결하려는 이스라엘을 막후에서 응원한다(root for it behind scenes). 이스라엘엔 정복 의도는 없는 비해 이란은 중동 전역을 장악하려는 야심을 노골화하고 있기(wear its ambitions on its sleeve) 때문이다. 어제의 적(yesterday’s foe)이 오늘의 동지(today’s comrade)가 된 것이다.

 

-윤희영 에디터, 조선일보(24-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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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대북 제재 ‘구멍’

 

[특파원 리포트]

미 워싱턴DC의 비영리 단체 '아웃로 오션 프로젝트'는 작년 중국의 수산물 가공 공장들이 밀집한 단둥에 조사관들을 파견해 북한 노동자들을 20명을 인터뷰했다. 천명이 넘는 북한 주민들이 학대 받으면서 이 지역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게 확인됐다. 사진은 조사관들이 북한 주민들의 증언을 받아적은 기록. /아웃 오션 프로젝트

 

간나, 머저리, 돌대가리. 중국 단둥의 수산물 공장에서 일하는 한 북한 여성 노동자는 이런 상욕을 매일 듣는다고 했다. 그는 하루 18시간 동안 좁은 공간에서 바지락을 손질한다. 꾸물거리면 북한 당국이 감시를 위해 파견한 관리자들에게 두드려 맞았다. 다른 북한 주민은 공장 관리들이 걸핏하면 성관계를 강요한다고 했다. 견디다 못한 노동자들이 목숨을 끊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빈손으론 못 가는데…. 지치고, 사는 게 힘들어 슬픕니다.”

 

미 워싱턴DC의 비영리 단체 ‘아웃로 오션 프로젝트’는 작년 중국인 조사관들을 고용해 단둥에서 일하는 북한 주민 20명을 만나게 했다. 생생한 증언이 담긴 필사본을 미국으로 전송받았다. 중국은 북한 노동자 고용을 부인해 왔다. 유엔 제재 위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소 공장 15곳에서 1000명이 넘는 북 노동자들이 강제 노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단둥엔 이런 공장이 수백 개 있다. 북한 당국은 이들 수입의 90%를 가져간다. 북한 주민들의 ‘노예 노동’으로 나오는 돈이 고스란히 김정은의 핵(核) 개발에 쓰이는 구조가 확인됐다.

 

미국의 외교·안보 정책에서 북한 문제는 갈수록 ‘뒷전’이 되어간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었다. 그러나 이 단체가 조사 결과를 발표하자 미 정가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북한 주민들이 강제 노동으로 만든 중국 수산물이 미국에서 대량 유통된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연방법 위반이다. 의회 청문회가 열렸고 월마트, 맥도널드 등 대형 기업들이 다급하게 “거래를 중단하겠다”고 했다.

 

2019년 12월 5일 북한과 국경을 맞댄 중국 단둥시에서 공장으로 출근하는 북한 노동자들. /공공부문

 

본지는 최근 이 단체와 함께 중국 회사들의 무역 자료 등을 분석해 이 중국 수산물들이 한국으로도 수입된다고 보도했다. 일부 초기 자료로 확인된 것만 수백 톤이다. 부끄럽지만 이런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북 핵·미사일 위협의 최대 피해자는 한국이다. 우리가 우리를 위협하는 북한 핵 개발에 돈 대는 상황을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본지 보도 이후 일부 한국 기업이 문제가 된 수산물 거래를 중단하겠다고 나선 건 그나마 다행이다. 본지 기사엔 ‘물가 오르면 책임질 거냐’ ‘우리가 먹고사는 게 먼저’란 댓글이 달렸다. 이해한다. 북한 인권 유린엔 이상하리만큼 침묵하고, 중국엔 ‘셰셰(고맙다는 중국어)’ 하면 된다는 야당 주장에 동조하는 분도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의아한 건 북한 인권을 최우선 순위에 두겠다던 현 정부 반응이다. 북한 인권 재단을 세우겠다는 통일부는 “제재 결의 의무 준수를 촉구한다”고만 했다. 우리가 제재 위반을 방조하고 있는데 남 말 하듯 한다. 파악해 보기는 했나. 선거가 급했다지만 여당에서도 고민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본지 보도가 나온 직후 미 의원들이 먼저 “한국은 문제 수산물 수입을 중단하라”는 성명을 잇따라 보내왔다. 다른 나라도 아닌 한국이 ‘제재 구멍’이 되면 안 된다는 이들의 말이 유독 씁쓸하게 들렸다.

 

-워싱턴=이민석 특파원, 조선일보(24-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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