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건달’ 개탄했던 어느 사회주의자의 訃告] [ .. ‘대화와 타협’]
[‘민주 건달’ 개탄했던 어느 사회주의자의 訃告]
[한국인이 제일 어려워하는 일 ‘대화와 타협’]
‘민주 건달’ 개탄했던 어느 사회주의자의 訃告
[김윤덕 칼럼]
문재인·586 비판했던 ‘톨레랑스’ 지식인 홍세화… 죽음 목전에도 總選 투표
‘진보 참칭’해온 인사들의 더없이 화려한 부활에 그의 격문이 떠올랐다
‘한국 사회 어디에서 수치심 찾을 수 있나’
지난 4월 21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故 홍세화 씨의 영결식이 엄수되고 있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로 잘 알려진 작가이자 언론인, 사회운동가인 고인은 지난해 전립선암 판정을 받고 투병 생활을 이어가던 중 지난 18일 숨을 거뒀다. /뉴스1
홍세화를 만난 건 작년 이맘때다. 암 투병 소식에 일면식도 없는 그에게 무턱대고 문자를 보냈었다. 답장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사회주의자인 그는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란 책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뒤 조선일보에 줄곧 비판적 태도를 견지해왔다. 그런데 두 시간 뒤 문자가 울렸다. 홍세화였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소중합니다’라면서도 인터뷰를 전제로 한 만남은 아니길 바란다고 했다.
사흘 뒤 우리는 광화문의 한 찻집에 마주 앉았다. 그는 일산에서 전철을 타고 왔다. 암 4기로 진단받았지만 생수를 사러 마트에 갈 때만 빼고 웬만하면 걸어 다닌다고 했다. 담배는 끊지 않았다고 했다. 암으로 죽는 것보다 암 스트레스로 죽는 사람이 더 많다며. 그는 온화하고 유머가 있는 남자였다.
우리는 주로 파리 생활과, 40대 중반인데도 결혼하지 않는 그의 두 자녀 이야기, 서울대 문리대 연극반 시절의 추억을 두서없이 나눴다. 십수 년 전 프랑스를 여행할 때 파리의 택시 운전사들에게 당한 수모를 들려주자 자기 일인 양 미안해하기도 했다.
차가 다 식을 무렵 기어이 불편한 질문을 던졌다. 조국 사태 이후 그가 일관해온 ‘진보 저격’에 관하여. 홍세화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부동산, 미투, 산업재해, 성 소수자 등 불편한 질문엔 침묵하면서, 국민청원게시판으로 ‘상소’나 받는 ‘임금님’이라고 비판해 파장을 일으켰었다.
파리로 돌아가 택시 운전이나 하라는 맹비난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586 운동권을 “제대로 공부한 것도 아니고, 돈 버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도 모르는 민주 건달”이라 일갈하는가 하면,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기회의 사재기’를 한 가족을 위해 ‘우리가 조국이다, 추미애다’를 외치는 이들은 대체 어떤 멘털인가” 개탄했다. 자신이 몸담아온 언론사 간부가 대장동 일당과 수억원대 돈 거래를 한 사건에 분노해 1인 시위를 했던 그는 “진보의 가치가 소멸되고 있다”며 끝내 절필했다.
찻잔을 만지며 홍세화가 말했다. “그땐 정말 빡쳤죠. 사회주의를 욕먹이고 진보를 참칭한 이들에게. 적어도 좌파 지식인이라면 ‘아, 이건 내가 해선 안 되는 거야’라는 원칙이 있어야 해요. 주식 투자, 펀드, 신분을 대물림하려 편법을 쓰는 것…. 부끄러움은 느껴야죠.”
그날 홍세화가 가장 길게 이야기한 건 ‘장발장’이었다. 장발장은 벌금 낼 돈이 없어 교도소에 온 이들에게 무이자, 무담보로 벌금을 빌려주는 은행이다. ‘장발장 은행장’이라 적힌 명함을 건넨 그는 신청자가 너무 많아 후원금이 못 따라가는 형편이라며, 좌우 할 것 없이 가난한 민중들 삶엔 도무지 관심이 없는 권력자들에게 화가 치민다고 했다.
홍세화를 마지막으로 본 건 그해 5월 김지하 1주기 시화전에서다. 조용한 성품 때문인지, 진보를 향해 쏟아낸 독설 탓인지 그는 외로워 보였다. 이른바 민주 진영 동지들과 왁자하게 인사를 나누는 대신 김지하의 유작을 홀로 응시하다 어느새 사라졌다.
그는 곧 가족을 만나러 파리에 간다고 했었다. 파리에 가면 일요일 새벽 4시에 차를 몰고 파리의 도심을 질주할 거라고도 했다. 30년 전 파리에서 택시 운전을 하며 터득한 유일한 낙(樂)이었다. “하지(夏至)라 새벽 4시면 동이 터요. 토요일 밤 다들 신나게 놀다 잠들어서 일요일 새벽의 파리는 텅 비어 있지요. 떠오르는 태양에 서서히 자태를 드러내는 도시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내 고단한 운명과 대조돼 그때는 연방 주먹으로 눈물을 훔치며 달렸었죠. 콩코드 광장을 지나 센 강을 건너 생제르맹 대로로, 바스티유를 거쳐 레퓌블리크를 지나 개선문까지.”
전태일의 죽음을 보고 사회주의자가 됐다는 홍세화는 남민전 사건에 연루돼 프랑스로 망명해 살면서 톨레랑스(관용)에 눈떴다. 서로의 차이를 차별과 억압의 근거로 삼아선 안 된다는 관용, 힘의 투쟁보다 대화, 처벌보다 포용을 역설해온 그는, “조선일보가 사회적 약자들, 소외 계층의 편에 서주길 바란다”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홍세화의 부고(訃告)는 총선 직후 들려왔다. 부고의 한 대목에 시선이 멎었다. 암과 사투하던 와중에도 사전투표를 하러 병원을 나섰다는 것이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그는 무엇을 위해 투표장으로 간 걸까. 그의 한 표는 세상을 바꾸었을까. 총선 후 우리가 아는 ‘화려한’ 면면의 인사들이 정치적으로 부활하는 모습을 보며 홍세화가 그의 책에 쓴 한 줄 격문이 가슴을 때렸다. ‘지금 한국 사회 어디에서 수치심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약삭빠른 냉소로 가득한 이 도시에 온통 탁류가 흐르고 있다.’
-김윤덕 기자, 조선일보(24-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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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제일 어려워하는 일 ‘대화와 타협’
분열하고, 타협하지 못하는 건 정말 한국인의 특성일까. 악의적 편견에 불과하지만 새삼 마음이 무겁다. 최근 일련의 뉴스에서 우리 사회가 가진 대화와 타협의 역량에 일찌감치 한계가 드러나는 일이 잦아서다.
침수 문제가 불거지고도 24년 동안 비만 오면 물에 잠기는 처지로 방치된 국보 반구대 암각화 문제만 해도 그렇다. 1970년 발견된 반구대 암각화는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선사 유적이지만 앞서 건설된 울산 사연댐 탓에 침수를 반복하며 훼손돼 왔다. 학계가 대책 마련을 촉구한 2000년 이후에도 원형 보존을 둘러싼 이견, 예산 문제 등에 더해 대구·경북 지자체 간의 물 갈등까지 엮이면서 해결책을 내지 못했다. 사연댐의 수위를 낮추면 지자체 간에 도미노식으로 식수를 끌어와야 하는데 2009년 발암물질 낙동강 유출 사태로 대구와 구미가 물 분쟁을 벌이는 가운데 대책이 함께 표류했다. 정치권이 개입한 가변형 임시 물막이 설치는 수리 전문가들의 반대에도 추진했다가 실패하면서 아까운 시간만 버렸다. 최근 환경부가 사연댐에 수문을 설치하기로 했지만 식수 갈등은 여전히 잠재해 있는 실정이다.
‘힘 대 힘’ 갈등의 패자는 국민
재정안정론과 소득보장론이 팽팽한 국민연금 개혁 논의는 사실과 의견이 뒤섞여 혼란스럽다. 기금의 고갈 시기나 이후 가입자에게 약속한 급여를 지급하는 데 필요한 돈은 계산하면 나온다. 비교적 정해진 미래에 가깝다. 반면 고갈 뒤 부족액을 모두 가입자의 보험료로 충당할지, 재정을 투입할지, 자산소득에도 보험료를 부과할지 등은 가치 판단과 의사 결정의 영역이다. 두 영역이 뒤섞인 채 전문가들이 다투다가 지난해 8월엔 재정계산위원 2명이 사퇴하기까지 했다.
최근 일단락된 국회 공론화위 시민대표단 숙의토론회는 새로운 시도였음엔 틀림없다. 그러나 미래세대에 대한 대표성이 약한 시민 500명을 ‘대표단’이라고 부르기도, 이들 대상 설문조사 결과가 온전한 민의라고 보기도 어렵다. 토론회에 관련 참고 자료가 제대로 제공되지 않았다는 등의 뒷말까지 나오고 있다. 영국은 연금개혁 당시 전문가 보고서를 가지고 여러 차례 간담회와 많은 국민이 참여하는 토론회를 거친 뒤, 정리된 안을 가지고 다시 전국 각지를 돌며 간담회와 토론회를 열어 개혁안을 마련했다고 한다.
갈피를 못 잡는 의대 증원 문제는 갈등 관리 실패의 전범처럼 보인다. 지난해 정부와 대한의사협회의 대화는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평행선을 그렸다. 의정 대화를 사회적 협의체로 끌고 가는 등 새로운 방식의 공론화가 필요했지만 정부는 총선을 두 달 앞두고 ‘2000명 증원’을 전격 발표하면서 갈등을 폭발시켰다. 협상 상대에 대한 상호 존중도 찾기 어렵다. 의사 측은 시종일관 집단행동을 통해 힘으로 정부를 꺾을 심산이다.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더니 ‘원점 재검토’만 되풀이하며 의료개혁특위 참여마저 거부한다. 이런 전개에선 누가 이기건 국민은 패자가 될 공산이 크다.
타자 입장 생각 않으면 함께 길 잃을 것
“한국인은 너무 극단적이다. ‘끝장을 보자’ ‘너 죽고 나 죽자’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 그래서 너무 무섭다.” 양서를 꾸준히 내 존경받았던 한 출판계 어른이 작고 전 사석에서 가끔 했던 말이다. 그게 한국인의 민족성이라기보단 격동의 근현대사에서 극단적인 상황을 너무 많이 경험한 탓일 게다. 이젠 사생결단식 소통을 넘어설 법도 한데, 최근 정치의 양극화와 맞물리며 대화와 타협은 더 어려워지는 것처럼 보인다. 독일 사회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최근 책 ‘공론장의 새로운 구조변동’에 실린 인터뷰에서 공론장의 포용성을 강조했다. 토의엔 “타자의 관점을 취하고 그의 상황에 서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같은 공동체의 일원임을 잊고 산적한 과제 앞에서 함께 길을 잃을까 두렵다.
-조종엽 논설위원, 동아일보(24-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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