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강] [마크롱의 올림픽 세일즈] [“올림픽 금메달 몇 개가 목표”… ]
[센강]
[마크롱의 올림픽 세일즈]
[“올림픽 금메달 몇 개가 목표”… 그렇게 운동하는 시대는 갔다]
센강
파리를 찾는 외국 관광객들이 빼놓지 않는 관광 코스가 ‘바토 무슈’ ‘바토 파리지앵’ 같은 센강 유람선을 타고 파리를 선상 관람하는 것이다. 센은 고대 라틴어로 ‘세쿠아나’라 불렸는데 ‘신성한’을 뜻하는 켈트어에서 유래했다는 말이 있다. 그 센강을 따라 에펠탑, 튈르리 정원,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노트르담 대성당 같은 명소들이 펼쳐진다. ‘파리 압축 관광’에 이만한 게 없다. 27일 새벽에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개막식은 각국 선수단이 배에 나눠 타고 센강에서 수상 퍼레이드를 하는 장관이 펼쳐졌다.
▶강폭이 1㎞ 안팎에 달하는 넓은 한강을 보다가 강폭이 100~200m밖에 안 되는 센강을 보면 “이게 강이야, 개천이야” 하는 말이 나온다. 그래도 길이는 한강의 1.5배다. 프랑스 중동부 발원지에서 777km를 흘러 북부 대서양으로 흘러 들어간다. 프랑스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지리적 중심지다. 센강 가운데 시테섬은 파리의 발상지다. 기원전 52년, 율리우스 카이사르 휘하의 로마군이 센강변을 따라 쳐들어와 시테섬을 점령했다. 그로부터 파리의 로마 시대가 열렸다.
▶”글을 한 편 완성했을 때, 혹은 뭔가 참신한 아이디어를 얻고자 할 때 센강변을 거닐곤 했다.… 맑은 날이면 포도주 한 병과 빵 한 조각, 소시지를 사들고 강변으로 나가 햇볕을 쬐면서 얼마 전에 산 책을 읽으며 낚시꾼들을 구경하곤 했다.”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파리에서 보낸 20대를 회고하며 “젊은 시절 한때를 파리에서 보낼 수 있다면 파리는 마치 ‘움직이는 축제’처럼, 남은 일생에 늘 당신 곁에 머무를 것”이라는 소회를 남겼다.
▶화가나 작가들에게 센강은 낭만의 공간이지만 프랑스 경제에는 오랫동안 물자 수송로, 교통 중심지였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친환경 물류로 센강이 다시 활용되고 있다. 10여 년 전부터 프랑스 유통업체 프랑프리는 파리 시내 점포에 물건을 공급할 때 화물 트럭 대신 센강의 바지선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수질 악화로 오랫동안 센강에서는 수영이 금지됐다. 프랑스 정부는 100년 만에 올림픽을 유치하면서 ‘친환경 올림픽’을 목표로 센강 수질 개선에 2조원 넘는 돈을 쏟아부었다. 철인 3종 중 수영 경기와 10㎞ 마라톤 수영 경기가 열린다는데 올림픽 개막 직전까지도 수질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센강의 수영 경기를 무사히 치르고 내년부터 파리 시민도 센강에서 수영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게 프랑스 정부 목표다. 오염수 오명을 벗고 청정 센강으로 거듭났으면 한다.
-강경희 논설위원, 조선일보(24-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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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의 올림픽 세일즈
[특파원 리포트]
프랑스 대통령 관저(官邸) 엘리제 궁에서 파리 올림픽 취재를 온 해외 기자 대상 리셉션이 지난 22일 있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200여 명의 외국 기자 앞에 직접 나섰다. 그는 이날 하루 프랑스 대통령이 아닌, 프랑스 대표 ‘올림픽 홍보맨’이었다. 마이크 앞에 서자마자 “프랑스가 해냈다”며 ‘사상 최초의 야외·수상 개막식’ ‘최고의 지속 가능 올림픽’ ‘최초의 성평등 올림픽’ 등 파리 올림픽의 역사적 의의를 줄줄이 읊었다.
무엇보다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프랑스라는 나라의 존재감을 다시 한번 세계에 각인시키겠다는 열정이 대단했다. 그는 “파리 올림픽을 통해 세계인은 프랑스의 미식(美食), 다양한 문화 유산, 과학 기술 혁신, 그리고 신기술 기업들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올림픽을 경험한 이들이 앞으로 (여러 분야에서) 다시 프랑스를 선택하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했다. 올림픽을 프랑스 문화와 경제·산업을 홍보하는 장으로 적극 활용하겠다는 선언으로 들렸다.
마크롱은 솔직했다. ‘세계인의 스포츠 제전’은 그저 명분인지도 모른다. 올림픽은 한 국가의 수준과 역량을 대규모 스포츠 행사를 통해 전 세계에 선전하는 기회로 더 중요할 수 있다. 올림픽이 항상 그런 이중적 모습을 지녀온 것도 사실이다. 1924년 파리 올림픽은 1차 대전의 참화에서 회복한 프랑스의 영광을,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은 나치 독일이 유럽 최강국이 되었음을 공표하는 무대였다. 1964년 도쿄, 1988년 서울,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은 각각 일본·한국·중국의 경제성장과 굴기(崛起)를 드러내는 기회이기도 했다. 각국이 수십조 원의 막대한 예산이 드는 올림픽 행사를 서로 하겠다고 경쟁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물론 멍석을 깔아준다고 아무나 재주를 보일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날 외국 기자들 앞에서 ‘프랑스 세일즈’에 나서는 마크롱의 모습은 그저 감탄스러웠다. 그는 12분에 걸친 연설을 모두 영어로 했다. 그러곤 단상 아래로 내려와 1시간 가까이 기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브리짓 마크롱 여사도 현장에 나와 그를 거들었다. 먼저 다가와 말을 건네고, 기자들의 셀피(selfie) 요청에 일일이 응답하며 매력을 발산했다.
자연스레 한국 정치인 중 여야를 통틀어 과연 몇이나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싶은 의문이 들었다. 외국어 실력은 물론이고, 자신의 유명세를 국가 홍보에 활용할 줄 아는 영민함, 또 그런 능력과 감각을 부부 모두가 갖췄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편가르기와 줄서기, 남 탓하기 전문가들 대신 저런 인물을 뽑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정치인의 능력과 품격을 겨루는 올림픽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파리=정철환 특파원, 조선일보(24-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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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금메달 몇 개가 목표”… 그렇게 운동하는 시대는 갔다
올림픽 메달은 하나하나가 소중하다. 금메달이라면 더욱 그렇다. 올림픽 금메달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할 선수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역대 최고 테니스 선수로 손꼽히는 노바크 조코비치(37·세르비아)조차 “내겐 아직 올림픽 금메달 꿈이 남아 있다”며 파리 올림픽에 출전했다. 조코비치는 메이저 대회 단식 최다(24회) 우승 기록 보유자지만 이전 네 차례 올림픽에서 금메달은 하나도 따지 못했다.
다만 어떤 과정을 거쳐 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삼게 됐는지는 다른 문제다. 성인 주말 골퍼 가운데 ‘올림픽 금메달을 따려고 운동한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부모님을 따라 필드에 나온 10대 청소년 중 어쩌다 한두 명 있을까. 그런데도 전국에 8100개가 넘는 골프 연습장이 성업 중이다. 어떤 운동이든 일단 재미를 붙이고 나면 더 잘 놀려고(play better) 더 열심히 노력하고(work harder) 싶은 마음이 드는 게 인간 본능이기 때문이다.
재미를 붙인 사람은 ‘운동의 주체’가 된다. 운동의 주체가 되면 ‘하지 말라’고 해도 훈련을 반복한다. 그 부장님 오른손이 틈만 나면 왼쪽 엄지를 감싸 쥐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생전 안 읽던 책까지 산다. 이사님 책상 서랍에서 ‘싱글로 가는 길’이 나왔다고 놀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스스로를 ‘엘리트’라고 칭하는 한국 체육인들은 정반대였다. 훈련은 기본적으로 ‘국위를 선양하기 위해’ 지도자, 그러니까 남이 시켜서 하는 일이었다. 이렇게 후진국에서 ‘운동의 객체’로 자란 이들이 대부분인 세대가 선진국에서 태어난 요즘 아이들을 가르친다. 그러니 “국제 경쟁력을 키우려면 훈련량을 늘려야 한다. 그런데 감독조차 훈련을 강요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한숨짓기 바쁘다. 단체 구기 종목의 한 감독은 “일본 선수들은 기본기와 테크닉을 익힌 다음 성인 무대로 올라온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훈련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경기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한탄했다. 이런 한탄은 흔히 “운동부 애들 수업 좀 빼주세요”로 이어진다.
그러면서도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는 일본 선수들이 그 정도 기본기를 어떻게 익혔는지 들여다보는 지도자는 별로 없다. 간단하다. 그 골프광 부장님처럼 재미를 붙였기에 익히게 된 거다. 그리고 재미를 계속 유지한 선수만 성인 무대까지 올라온 거다. 일본에서 나온 학생용 교재를 보면 반복 훈련을 한 번이라도 ‘덜’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연구 결과가 자주 나온다. 그래도 누군가는 반복하고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운동하는 재미란 원래 그런 것이다.
올림픽에 나갈 수 있을 만큼 노력한 선수에게 “금메달은 됐으니 즐기고 오면 된다”고 하는 건 위선이다. 금메달을 딴 선수가 4등 선수보다 올림픽을 더 즐기지 못할 이유 역시 그 어디에도 없다. 다만 결과에 관계없이 “올림픽을 즐겼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선수 본인, 그러니까 운동의 주체뿐이다. 한국도 머리 희끗한 어르신들이 마이크 잡고 “이번 올림픽은 금메달 몇 개가 목표”라고 떠들 때는 이제 지나도 한참 지나지 않았나.
-황규인 스포츠부 차장, 동아일보(24-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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