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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적 올림픽 개회식] ["사지가 타들어 가는" 마지막 스퍼트] ....

뚝섬 2024. 7. 29. 09:28

[혁명적 올림픽 개회식]

["사지가 타들어 가는" 마지막 스퍼트]

[파리 올림픽, 나만의 감동을 찾아라]

 

 

 

혁명적 올림픽 개회식

 

지금까지 이런 올림픽 개회식은 없었다. ‘물 위의 개회식’이라는 형식부터 파격이다. 단두대에 머리가 잘린 마리 앙투아네트가 노래하고, 여장 남자들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하며, 남성 여성 성소수자 3명의 결혼식이 연출됐다. 개회식의 새 지평을 열었다.” “역대 최악의 무례한 개회식이다.” 올림픽 개회식에 대한 평가가 이렇게 갈라진 적도 드물다. 1900년, 1924년에 이어 100년 만에 다시 열린 프랑스 파리 여름올림픽이 시작부터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번 개회식은 센강을 중심으로 파리 전체를 무대 삼아 펼쳐졌다. 206개국에서 참가한 선수들이 에펠탑 근처 광장까지 6km 구간을 85척의 배를 타고 입장하는 동안 루브르 박물관을 비롯한 파리의 명소 곳곳에서 2000명의 예술인들이 발레, 캉캉, 뮤지컬, 패션쇼 등을 선보였다. TV 시청자들은 선수단 입장 사이사이 화려한 쇼와 영상을 한눈에 즐길 수 있었지만 현장에 있던 관중은 개회식의 일부만을 지켜봤을 뿐이다. TV 속 이미지가 더 진짜 같다는 점에서 ‘보드리야르적인’ 개회식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내용도 ‘개최국의 역사와 문화 홍보’라는 통념을 깨는 것이었다. 헤비메탈 밴드와 합창단이 협연한 프랑스 혁명의 노래 공연이 대표적이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가두었던 파리 최초의 형무소에서 펼쳐졌는데 머리가 잘린 왕비 분장을 하고 나와 합창하고, 형무소 창문 밖으로 붉은 색종이 피가 분출되는 장면은 19금 영화처럼 기괴하고 전위적이었다. 여장 남자들의 ‘최후의 만찬’ 패러디는 가톨릭계로부터 “역겹고 경박한 조롱”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행사 막바지 성화 주자 중에는 프랑스 축구 영웅 지네딘 지단과 함께 스페인 테니스 스타 라파엘 나달, 미국의 테니스 선수 세리나 윌리엄스와 육상의 칼 루이스, 루마니아 체조 전설 나디아 코마네치가 포함됐다. 개최국 스타만이 성화 주자로 등장하는 고정관념을 깬 시도에 대해서는 ‘포용적’이라는 호평이 나왔다. 개회식 마지막 희귀병을 앓고 있는 캐나다 가수 셀린 디옹이 ‘사랑의 찬가’를 열창하는 장면은 논쟁적 행사에서 드물게 보편적 감동을 주는 순간이었다.

파격의 개회식을 놓고 프랑스 내부 평가도 “환상적이다” “자기 비하적이다” 등으로 엇갈린다. 한 프랑스 작가는 “자부심의 역사를 기념하는 순간 혁명의 끼가 발동했다. 저급한 취향과 고급스러움, 노골적 유머와 진보적 깨어있음이 뒤섞여 논쟁을 유발하는 혼란의 도가니는 프랑스 정신의 완벽한 구현”이라고 평가했다. 이쯤 되면 오륜기가 거꾸로 걸리고, 한국을 북한으로 소개한 실수도 프랑스적으로 보인다. 파리의 레전드급 개회식에 다음 개최 도시인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고민이 깊어질 듯하다.

-이진영 논설위원, 동아일보(24-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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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지가 타들어 가는" 마지막 스퍼트

 

마라톤보다 긴 거리를 4시간 가까이 걷는 육상 경보 50km는 ‘죽음의 레이스’로 불린다. 막판 스퍼트 때는 온 힘을 짜내 100m를 17~18초에 주파하는 스피드를 내기 때문에 체력 부담이 매우 크다. 이 종목 한국기록 보유자인 박칠성은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당시 45km 지점에서 2위로 올라선 뒤 경쟁자들 막판 추격을 뿌리쳤다. “마지막 2km를 남겨두곤 혼수상태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파이팅’을 외치는 응원 소리가 욕으로 들리더라.”

 

▶1992 알베르빌 동계 올림픽은 ‘한국 쇼트트랙 왕조’의 서막을 연 대회였다. 당시 쇼트트랙 남자 5000m 계주 마지막 주자로 나선 김기훈은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스케이트 날을 들이밀어 역전 금메달을 따냈다. 사전에 준비한 작전이 아니라, 끝까지 사력을 다하다 보니 본능적으로 나온 동작이었다. 김기훈은 “감독도, 동료도, 나 자신도 놀랐다. 그저 무기력하게 지고 싶지 않아 일단 따라가서 뻗은 발에 희망을 걸었는데 기적이 일어났다”고 했다.

 

▶0.01초, 0.001초가 승부를 가르는 스포츠에서 선수들은 조금이라도 먼저 골인하려고 몸부림을 친다. 종목마다 다른 결승선 통과 기준에 따라 마지막 순간 손가락을 쭉 뻗거나 가슴을 한껏 내밀기도 한다. 넘어지면서 보드를 밀어넣기도 한다. 결승선 코앞에서 성급한 세리머니를 하는 사이, 뒤쫓아가던 선수의 막판 뒤집기로 우승자가 바뀌는 일도 벌어진다. 농구도, 축구도 종료 휘슬이 울리는 순간까지 집중력을 유지하는 팀이 승리한다.

 

▶28일 파리 올림픽 자유형 400m 동메달을 따낸 김우민은 “마지막 50m가 굉장히 힘들었다. 사지가 타들어가는 느낌이었다”면서도 “올림픽 메달을 위해서는 감당해야 할 무게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눈물과 미소가 뒤섞인 얼굴이었다. 그의 말대로 끝까지 “잘 참고 이겨내서” 4위 호주 선수를 0.14초 차로 제치고 박태환에 이어 한국 수영 역대 두 번째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됐다.

 

▶박태환 현역 시절 트레이너도 “박태환이 막판 스퍼트 훈련을 할 때 주저앉기 직전까지 힘을 짜내는 모습을 자주 봤다”고 말한 적 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라는 말은 너무 익숙해서 쉽게 들리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온 힘을 다하는 것은 끊임없는 노력과 굳은 의지, 반복적인 다짐이 필요한 일이다. 포기하지도, 자만하지도 않고, 끝날 때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선수가 더 큰 박수를 받아야 하는 이유다.

 

-최수현 논설위원·스포츠부 차장, 조선일보(24-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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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올림픽, 나만의 감동을 찾아라

 

올림픽은 한계를 극복하는 장… 매 대회 감동적인 장면들 많아
다양한 희생과 용기 보여주는 선수들 보면서 새 기운 얻기를

 

덴마크 선수 리즈 하텔은 1952년 헬싱키 올림픽 승마 종목에서 은메달을 따냈다. 두 가지 점에서 놀라웠다. 첫째, 그는 여자였다. 남자 선수들과 경쟁해 이룩한 업적이다. 둘째, 소아마비로 하반신이 마비된 장애인이었다. 말에 오를 때마다 남편 도움을 받아야 했고, 올림픽 시상대에 오를 땐 금메달을 딴 선수가 부축해줬다. 그는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서도 또다시 은메달을 거머쥐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올림픽 핵심 가치를 탁월함(excellence), 존중(respect), 그리고 우정(friendship)에 둔다. 여기서 탁월함이란 일상이나 경기장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는 게 공식 설명이다. 사견을 보태자면 실상 그 탁월함이란 운동 경기에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투지는 때때로 기적을 만들고 감동을 부른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일본 체조 선수 후지모토 슌은 단체전 마루 종목 경기를 하다가 무릎을 크게 다쳤다. 몹시 아팠지만 동료들이 걱정할까 봐, 그래서 팀에 지장을 줄까 봐 알리지 않았다. 의사는 “장애인이 될 수도 있다”면서 말렸다. 약물 검사 때문에 진통제도 먹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남은 링 종목 출전을 강행했다. 연기를 다 끝내고 마지막 동작. 멋지게 공중에서 몸을 뒤튼 뒤 착지했다. 순간 무릎에 극심한 고통이 왔지만 참고 자세를 유지했다. 9.7점. 그는 다리를 절룩이며 경기장을 빠져 나왔다. 그제야 동료들은 후지모토가 어떤 헌신을 했는지 알게 됐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 셈이다. 일본은 그 종목에서 기어코 소련을 누르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올림픽을 위해 4년간 땀을 흘린 선수들이라면 누구나 마지막 순간 환희 속에 지난 노력을 보상받고 싶어 한다. 그럼에도 승리가 전부는 아니다.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마라톤에서 탄자니아 선수 존 스티븐 아쿠와리는 19㎞ 지점에서 다른 선수들과 부딪혀 넘어지는 바람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렸다. 57명 중 56명이 이미 결승선을 통과한 다음, 관중도 거의 빠져나간 경기장에 그가 기진맥진한 채 모습을 드러내자 남아 있는 관중은 뜨거운 박수로 맞이했다. 최종 기록은 3시간 25분 27초. 그는 “조국이 5000마일 떨어진 이 먼 곳까지 나를 보낸 건 단지 경기를 시작하라고 한 건 아닐 것”이라면서 “경기를 끝까지 마치고 오는 게 내 사명”이라고 말했다. “최고가 된다는 건 반드시 가장 빠르고, 가장 높고, 가장 강하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장애물에 상관없이 한 약속을 지켰다는 걸 의미합니다.”

 

4년에 한 번밖에 없는 올림픽. 선수들에겐 전부일 수 있다. 하지만 숨을 고르고 보자면 더 중요한 건 인생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 요트 종목에서 참가한 캐나다 선수 로렌스 르뮤는 2등으로 달리고 있었다. 부산 앞바다 강풍과 거친 파도를 제치고 나아갔다. 그런데 갑자기 한쪽에 빈 요트가 눈에 띄었다. 싱가포르 팀 선수가 바닷속에서 팔을 흔들고 있었다. 예상치 못했던 파도 탓에 요트가 뒤집혀 물에 빠진 것. 르뮤는 주저하지 않고 방향을 틀어 이 선수를 구조했다. 그러고 나서 경주에 복귀했지만 메달권에서 멀어진 뒤였다. 그는 “항해의 제1 규칙은 곤경에 빠진 사람을 보면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IOC는 르뮤에게 “스포츠맨십, 자기희생, 용기로 올림픽 이상에 걸맞은 모든 걸 구현했다”면서 쿠베르탱 메달을 수여했다. 이번 파리올림픽에서도 이런 감동과 희망을 품은 수많은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위재 기자, 조선일보(24-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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