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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도, 투지도, 품격도 모두 빛난 우리 선수들] [활과 한국인]

뚝섬 2024. 7. 30. 05:43

[실력도, 투지도, 품격도 모두 빛난 우리 선수들]

[활과 한국인]

 

 

 

실력도, 투지도, 품격도 모두 빛난 우리 선수들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앵발리드 경기장에서 열린 2024파리올림픽 양궁 여자 리커브 단체 결승 한국과 중국의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한국 전훈영(왼쪽부터), 임시현, 남수현이 시상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4.7.28. 파리=양회성 기자


한국 여자 양궁이 파리 여름올림픽 단체전 결승에서 중국과 슛오프까지 가는 접전 끝에 10연패를 달성했다. 전훈영(30) 임시현(21) 남수현(19)으로 구성된 대표팀은 센강의 바람과 연패의 위업을 이어야 한다는 중압감을 이겨내고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섰다. 세 선수 모두 올림픽 무대가 처음이어서 우려의 시선이 있었지만 내부 선발전을 통과할 때 쏜 화살 2500발의 힘을 믿었다고 한다. 오로지 실력만 보고 뽑는 공정한 선발 시스템은 외신이 ‘초인적 경지’라 극찬한 한국 양궁의 승리 비결이다.

이번 한국 대표팀은 최약체라는 예상을 깨고 초반부터 시원한 메달 소식을 전해 오고 있다. 29일엔 대표팀 최연소 선수인 반효진(17)이 공기소총 10m 개인전에서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이번 대회 4번째, 역대 100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늘이 준 기회라 생각하고 이름 남기려 독하게 쐈다”고 한다. 여자 공기권총 10m에서는 메달권 밖에 있던 오예진(19)과 김예지(32)가 금메달과 은메달을 차지했다. 오예진은 “부담감을 느끼기보다 재미있었다”며 웃었다. 수영 대표 주자인 김우민(23)은 남자 자유형 400m에 출전해 물살 저항이 큰 1번 레인에서 “막판 사지가 타들어가는 느낌”을 견뎌내고 동메달을 따냈다.

이번 대회 1호 금메달의 주인공은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우승한 ‘괴물 검객’ 오상욱(28)이다. 한국 남자 선수가 사브르 개인전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딴 것은 처음이다. 이로써 오상욱은 개인전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는데 그랜드슬램보다 빛난 것은 결승전에서 보여준 매너였다. 경기 도중 상대 선수가 뒤로 넘어지자 한 점만 따면 금메달을 차지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운 것이다. 그는 “펜싱 선수들은 다 그렇게 한다. 경쟁하며 쌓아온 선수들만의 우정이 있다”고 했다.

 

승리의 드라마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남자 자유형 200m 유력 메달 후보였던 황선우(21)는 결승전에 오르지 못했다. 팬들은 충격을 받았지만 선수는 의연했다. “내 수영 인생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교훈이 된 레이스였다.” 남자 유도 노장 안바울(30)은 3연속 올림픽 메달에 도전했으나 16강전에서 탈락했고, 김원진(32)도 어깨 연골이 찢어지는 부상에도 세 번째 올림픽에 도전했지만 노메달로 도복을 벗었다. 그는 “올림픽이 마지막 무대여서 영광스럽다. 후회는 없다”고 했다. 당당하게 이기고 품위 있게 질 줄 아는 한국의 올림피안들에게 뜨거운 응원을 보낸다.

 

-동아일보(24-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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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과 한국인

 

활이 등장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그림은 한국에 있다. 울산시 울주에 있는 반구대 암각화다. 한민족은 신석기 시대, 늦어도 청동기 시대 초기에 이미 활을 쐈다는 의미다. 세계적으로 활 잘 쏘는 나라의 원조로 꼽히는 나라가 서기 2~3세기 중동의 지배자였던 파르티아다. 말 타고 달리며 후방을 향해 활을 쏘는 게 ‘파르티아 사법’이다. 이런 고난도 궁술은 동쪽으로 전해졌는데 우리도 이를 썼다는 사실이 5세기 고구려 고분 무용총에 그려진 수렵도로 밝혀졌다.

 

▶고구려 건국 설화인 동명왕 이야기에 ‘주몽이 7세부터 손수 활을 만들었고 살을 날리면 백발백중이었다’고 돼 있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신궁(神弓)으로 불렸다. 고려 말 황산대첩에서 왜구 대장의 투구 깃털을 활로 쏘아 맞혔다는 기록이 있다. 그가 위화도 회군 당시 군사를 돌리는 명분으로 내세웠던 ‘4불가론’에도 활이 등장한다. ‘지금은 장마철이어서 활을 붙이는 접착제인 아교가 풀릴 수 있다’고 했다. 활은 서양인들도 사랑하는 무기였다. 아폴론, 헤라클레스, 아르테미스 등 고대 신화의 주인공은 명궁이기도 했다.

 

▶서양은 방아쇠를 당겨 쏘는 기계식 활인 석궁이 대세를 이뤄갔다. 스위스 설화에 등장하는 명궁 빌헬름 텔의 무기도 석궁이었다. 살상력이 커서 12세기 교황 이노센트 2세는 “기독교도 간 전쟁에 석궁을 쓰지 말라”고 했다. 오늘날로 치면 대량 살상 무기 취급한 것이다. 우리의 활은 나무로 만든 목궁이나 나무를 여러 겹 덧댄 뒤 무소 뿔로 연결해 장력을 강화한 각궁(角弓)을 썼다. 영화 ‘최종병기 활’에 등장하는 편전은 짧은 특수 화살을 쓴다. 오늘날의 총열에 해당하는 ‘통아’에 넣어 쏘면 살상력이 더 커졌다. 근거리에선 철 갑옷을 뚫을 정도였다고 한다. 조선의 신무기였다.

 

▶대한민국이 내세울 것 없던 시절, 활은 국민적 자긍심이 되어 주었다. 1979년 양궁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소녀 궁사 김진호가 금메달 다섯 개를 목에 걸고 돌아오자 온 나라가 들썩였다. 그것은 단지 시작이었다.

 

▶한국 여자 양궁이 올림픽 단체전 10연패를 달성했다. 올림픽 한 종목에서 한 나라가 한 스포츠를 40년 지배한다는 것은 ‘위업’이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신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초인적”이라고 했다. 이번에 결승에서 한국 선수들은 최종적으로 단 1점을 앞섰다. 그러나 그 1점에 우리 민족과 활의 수천년 인연이 깃들어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래서 이 아성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4-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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