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전 대표 팬덤 '개딸'로 한 달 살아 보니]
이재명 전 대표 팬덤 '개딸'로 한 달 살아 보니
달달한 소통은 매력… 하지만 세상의 구석에 처박히는 기분이었다
비가 내린 지난달 27일 서울시청 앞 도로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 집회’에 간 본지 장근욱 기자. 이재명 전 대표 팬 카페로 이 집회 참여를 독려하는 게시물이 쉼 없이 올라왔다. 참석자 중 ‘개딸’은 몇 명이나 될까.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이장님을 좋아하게 된 계기나 이장님의 장점을 서술하세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팬카페(‘재명이네 마을’) 가입 인사란에 이런 질문이 있었다. 지난달 9일 이 팬카페에 가입했다. ‘이장님’은 팬카페 회원들이 그를 부르는 별명이다. 저 질문에 무어라 답해야 하나. 고민 끝에 “지자체 장이었을 때의 공약 이행률이 높고 호쾌하며 남자답고 멋있습니다”라고 적었다.
이 전 대표의 ‘팬’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한 달간 ‘개딸’(이 전 대표의 강성 지지자)로 살아보기 위해 이 팬카페에 가입했다. 회원은 무려 20만6000여 명. 문재인 전 대통령의 팬카페(‘문팬’) 회원 2만7000여 명,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 팬카페(‘위드후니’) 회원 9만여 명과 비교하면 엄청난 숫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매력을 알아보기 위해 그의 팬카페에 가입했다. 사진은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그의 팬아트. /X(옛 트위터)캡쳐
그런 만큼 정치권에서 영향력도 막강하다. 최근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에서 이 전 대표의 공개 지지를 받은 김민석 후보가 경선 1위로 뛰어올랐다. ‘개딸’에게 잘 보이면 후원금도 쏟아진다. 당 내부에서 “개딸이 당을 점령했다”는 말이 나오고, 국회의원들이 의정보고를 팬카페에서 할 정도다. 개딸들은 이 전 대표의 어떤 매력에 빠진 걸까.
◇밍모닝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7월 10일 오전 5시 54분. ‘밍모닝’이라는 제목으로 이 전 대표의 사진 7장이 올라왔다. “오늘 하루도 이재밍 어린이와 함께 아자아자”라는 문장과 함께 그가 손가락으로 브이(V)자를 그린 사진 등이 첨부돼 있었다. ‘밍’ 역시 이 전 대표의 애칭이다. 2006년 자신의 블로그 닉네임을 ‘밍밍’으로 지은 것에서 출발했다. 간혹 “친중 성향으로 간주되는 ‘이재명’의 한자 이름을 중국식 발음(Lǐ Zàimíng)으로 읽으며 비꼬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지만, 이곳은 그의 팬클럽이니 그럴 리는 없었다.
이들은 이 전 대표의 사진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이튿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매일 새로운 ‘밍모닝’ 게시물이 이어졌다(8월 7일 기준). ‘이장님 직찍’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오기도 했다. 직찍이란 ‘직접 찍은 사진’의 줄인 말. 보통은 아이돌 등 연예인을 찍은 사진을 일컫는다. 유래 역시 ‘돌판’(아이돌을 좋아하는 이들의 세계)이다.
7월 27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시청역 앞 도로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 집회에 참석해 봤다. 이 전 대표 팬카페 회원들이 연신 포스터를 퍼 나르며 참여를 독려하고 있었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이 전 대표를 귀여운 캐릭터로 묘사한 ‘팬아트’도 보였다. 개딸에게 이 대표는 연예인과 같았다. 가입 인사란에 적혀 있던 또 다른 문장이 떠올랐다. “이재명 대표를 최우선으로 지지하고 (…) 연예인을 지지하듯 이재명만을 지지한다는 말로, 이재명 대표님을 고립시키는 활동을 금지(한다).”
하나가 좋으면 나머지도 좋아 보이는 현상을 심리학에서 ‘후광 효과’라 한다. 이 전 대표가 웃는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매력적’이라고 되뇌었다. 개딸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최면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효과가 있는 걸까. 보다 보니 귀여운 것 같기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당 대표 출마선언 장면. /이재명TV
◇'난세의 영웅’ 이재명 대표님께
대부분의 글은 가입 인사를 하고 등급을 올려야 볼 수 있었다. 조건은 게시글 1개, 댓글 30개, 방문 30회, 가입한 지 1주. 방문 수를 채우려고 30분에 한 번씩 들락거렸다. 한 번의 고배 끝에, 마침내 7월 19일 ‘외지인’에서 1단계 ‘마을주민’으로 신분이 상승했다. ‘행복주민’ ‘동행주민’ 등 더 높은 등급이 있었지만, 어떤 기준을 충족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드디어! 등급이 오르자마자 이 전 대표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는 ‘To 이재명’ 게시판을 클릭했다. 그를 보는 개딸의 시선이 궁금했기 때문. ‘아빠, 딸램 왔어요!’ ‘이장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버스 안에서 쓰는 러브레터’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이유는 이장님을 지키고 돕기 위해서입니다’…. 며칠 뒤 올라온 ‘난세의 영웅이신 이재명 대표님께’라는 게시물에는 “제가 보는 대표님은 비범한 사람”이라며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고 느꼈다”고 적혀 있었다.
이 전 대표는 비리 의혹에 연루돼 피의자 신분으로 법원에 출석했다. 그런데 개딸들은 이런 모습이 드러날수록 등을 돌리기는커녕 그를 더욱 ‘사랑하는’ 모습을 보였다. 도대체 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 이유를 ‘From 이재명’ 게시판에서 찾았다. 이 전 대표(닉네임 ‘이장 이재명입니다’)가 직접 글을 올리는 게시판. 총선 직후인 5월 9일 밤 11시 45분, 이 대표는 ‘오랜만이죠? 고맙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승리는 바로 여러분의 헌신과 기여 덕”이라는 글을 올렸다.
그로부터 2분 뒤, ‘기다렸다’는 첫 댓글이 달렸다. 이 전 대표는 즉시 ‘반가워요♥♥♥’로 화답했다. 이어 ‘차기 대통령님의 댓글을 직접 볼 수 있는 잼마을’ ‘쏴라 있는 나의 영웅!’ ‘이재명이 대통령인 세상에 8년 살고 싶다’ 등 댓글이 줄줄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팬카페의 글 대부분은 가입 인사를 하고 등급을 올려야 볼 수 있었다. 조건은 게시글 1개, 댓글 30개, 방문 30회, 가입한 지 1주. /재명이네마을
그는 이 글을 올린 뒤 약 3분간, ‘감사♥♥♥’ ‘반갑지요? ♥’ 혹은 자신의 건강을 걱정하는 댓글에 ‘걱정말아요 ♥♥♥’ ‘별것 아닙니다. 걱정 마세요♥♥♥’ ‘걱정할 정도는 아닙니다♥♥♥’ 등의 댓글을 달았다. 반드시 하트(♥)를 붙인다. 직접 쓰는지, 보좌진이 쓰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들었다. 지지자 입장에서 보면, ‘스윗(달달)’한 건 사실. 이렇게 직접 소통하려는 태도가 그의 매력일 수도.
이 전 대표는 2022년 3월 11일 팬카페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로부터 3개월 뒤, ‘책을 추천해달라’ ‘요즘도 최애(가장 좋아하는 음식)가 배추전이냐’ 같은 지지자들의 트위터 게시물에 실시간 답글을 달아주는 행보를 보인다. 이후 ‘가는 곳마다 잼말(재명이네 마을) 주민들 많이 만나 힘난다’ ‘개가좍(개딸 가족) 여러분 덕에 힘들지 않다’ 같은 글을 올리며 개딸들을 본격적으로 챙기기 시작했다. 지지층 입장에서는 충성할 수밖에 없는 것. 그해 대선 패배 직후 정치활동도 이곳을 중심으로 재개하면서 팬덤 권력은 더 세졌다.
나도 모르게 빠져든 걸까. 구독자 103만명의 유튜브 채널 이재명TV 동영상을 하나씩 재생하다 보니 어느새 1시간 48분짜리 ‘당 대표 출마선언 풀버전’ 영상까지 왔다. ‘당대표 출마 선언문이 아니라 대통령 취임사 같다’는 댓글에는 동의하기 어려웠지만, 며칠 전보다 가슴이 웅장해지는 건 확실. 슬그머니 ‘좋아요’를 눌렀다. 최근 올라온 ‘당신이 몰랐던 이재명의 옆자리’ 같은 유의 영상을 보면서는 화가 나기도. 도대체 좌파는 눈물, 감성 자극용 콘텐츠를 왜 이렇게 잘 만드는 것인지.
◇'악플 신고 부탁, 선플 부탁’
7월 22일 오후 7시 18분 “중요 기사”라며 이 전 대표의 ‘헬기 이송 특혜 논란’ 관련 링크가 올라왔다. 이 전 대표가 부산에서 흉기 피습을 당한 뒤 응급 헬기를 이용해 서울로 이동한 것이 특혜라는 논란에 대해 국민권익위원회가 “특혜가 맞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는 내용. 개딸들은 “불공정의 선봉 권익위” “저따위 기관이 권익위라니”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이장님 기사’ 게시판에 올라오는 게시물의 제목에는 대부분 ‘선플34568′ ‘SOS’ ‘악플밭’ 같은 문구가 포함돼 있었다. 무슨 의미일까. 한 회원이 올린 ‘신고 부탁, 선플 부탁’ 게시물을 보고 깨달았다. 기사에 달린 이 전 대표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의 댓글을 ‘신고하고’, 긍정적인 댓글(선한 댓글)을 달아 달라는 뜻. 팬카페 공지에는 “‘총공(총공격)’ ‘화력 지원’ 등의 표현을 사용할 경우 (…) 카페에 정치적 목적으로 여론을 조작한다는 프레임이 씌워질 수 있으므로 금지한다”고 적혀 있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이들은 (당연하지만) 오프라인에서도 활동한다. 현재 진행 중인 민주당 당대표 선거 일정을 쫓아다니며 “어대명(어차피 당대표는 이재명)”을 외치는 등 힘을 실어주는가 하면, 밖으로는 대정부 투쟁에 열을 올린다. 7월 27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시청역 앞 도로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 집회에 참석해 봤다. 이 전 대표 팬카페 회원들이 연신 포스터를 퍼 나르며 참여를 독려하고 있었다. 일주일 전 열린 집회에는 이 전 대표가 직접 등장했다. 최고기온이 31.7도까지 치솟았지만 약 1000명이 3시간가량 자리를 지켰다. 이들 중 개딸이 몇이나 될지 궁금했다. 혹시나 싶어 입장한 이 전 대표 지지자 모임 오픈채팅방(참여자 160여 명)에는 “혹시 시청이신 분 계신가요?” “서울이신 분 나오세요” 같은 독려가 쏟아지고 있었다. 개딸의 하루는 길고도 길었다.
이 전 대표를 좋아하는 것은 가능했다. 그러나 세간에 떠도는 소리에 귀를 막아야 했다. 그를 좋아할 수 없는 여러 이유를 애써 무시해야 했기 때문이다. 왠지 사회의 어느 구석에 처박히는 일 같다고 할까? ‘박사모’ ‘노사모’ ‘문파’ 등 정치인 팬덤은 과거에도 있었다. 하지만 개딸은 단순히 ‘팬덤’이라는 용어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민주당에서조차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희한한 현상”이란 말이 나올 정도.
용인대 최창렬 특임교수는 “과거 타 정치인의 팬덤에서는 그가 잘못된 행보를 보였을 때 비판하거나 등을 돌리는 등 자정 능력이 있었다”며 “하지만 지금 이 전 대표의 강성 지지층은 그와 조금이라도 대립하면 공격적이고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다. 결국 정치에는 해악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했다.
개딸로 한 달 살아 봤으니 다음 도장 깨기는 무엇인가. 한동훈 대표를 지지하는 ‘위드 후니’로도 살아볼까?
☞개딸
이재명 전 대표의 강성 지지자를 지칭하는 표현. 한 드라마 속 아버지가 “딸아, 딸아, 개딸아”라며 딸을 부르는 애칭에서 유래했다. 당초 ‘(이재명의) 개혁의 딸’의 약자로 여성 지지자만을 가리켰지만, 현재는 성별 구분 없이 이 전 대표 지지자를 통칭한다.
-조유미 기자/장근욱 기자, 조선일보(24-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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