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폭염보다 뜨거운 '정치 가을'이 다가온다] [정치인의 말.. ]
[이 폭염보다 뜨거운 '정치 가을'이 다가온다]
[정치인의 말, 정당의 저력]
이 폭염보다 뜨거운 '정치 가을'이 다가온다
[강경희 칼럼]
혐오 조장, 가짜 뉴스 남발하며
강력한 팬덤 형성한
트럼프 운명 가를 美 대선
비명계 쳐내고 민주당 장악한
이재명의 운명 첫 심판을 할
올가을 1심 선고
한미 트럼피즘의 주목되는 앞날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럴라 해리스 부통령(왼쪽)과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AFP 연합뉴스
지난 두 달간 미국 정치는 급등락을 거듭하는 증시보다 더 요동치면서 스릴 넘치는 장면을 연출했다. 4년 만의 TV토론에서 바이든 참패와 트럼프 압승(6월 27일)→피습당해 피 흘리면서도 주먹 불끈 쥔 트럼프(7월 13일)→‘트럼프의 귀환’ 선언한 공화당 전당대회(7월 15~18일)→사흘 뒤 바이든의 대선 후보직 사퇴(7월 21일)→'해리스 대관식’ 치른 민주당 전당대회(8월 19~22일)가 급박하게 이어졌다. 이제 확정된 ‘트럼프 대 해리스’ 대결이 오는 11월 5일 미국 대선까지 두 달여간 펼쳐진다.
지난주에 끝난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는 스타 총출동의 ‘신년 버라이어티 쇼’ 같았다. 첫날 무대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올랐다. 고령에 실수 연발로 지지율이 낮았던 그 바이든 맞나 싶게 “생큐, 조”를 외치는 거대한 함성에 묻혀 연설을 시작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둘째 날에는 오바마 전 대통령이, 셋째 날에는 클린턴 전 대통령이 등장해 해리스 지지를 이어갔다. 마지막 날에 해리스의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이 경쟁자인 공화당 전당대회의 트럼프 후보 수락 연설보다 시청자 수가 3.1% 많았다. 일단 전당대회 흥행에는 성공했다.
앞서 한 달 전 공화당 전당대회는 트럼프가 압도적 지지율로 후보가 됐지만 분위기가 달랐다. 미국 보수를 상징하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을 비롯해 딕 체니 전 부통령, 댄 퀘일 전 부통령,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 등이 참석하지 않았다. 트럼프의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은 역대 최장인 93분이나 됐다. 트럼프를 위한, 트럼프에 의한, 트럼프의 전당대회였다.
이 ‘트럼프 단독 콘서트’에 맞서 ‘민주당 총출동쇼’가 벌어진 건 오는 11월 치러질 미국 대선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전통적인 ‘공화당 대 민주당’의 양당 구도이지만 내용은 ‘트럼프 대 반(反)트럼프’로 치러진 2020년 대선의 재판이다. 트럼프에게 밀리자 바이든이 현역 대통령으로는 56년 만에 재선 도전을 포기했다. 인기 없는 부통령이었던 해리스가 대선 후보로 지명되자 민주당 출신 전·현직 대통령과 정치인이 똘똘 뭉쳐 해리스를 띄우고 있다.
그만큼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의 귀환’이 주는 의미는 심상치 않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정치 이단아다. 내 편과 네 편을 갈라 진영을 구축하고 사법부와 선거 제도, 주류 매체를 공격해왔다. 임기 4년 동안 2만5000개 넘는 트윗 메시지를 날리며 대중적 지지를 모았다. 거짓말과 가짜 뉴스도 남발해왔다. 2020년 대선 패배에도 “미국 국민에 대한 사기”라며 대선 결과에 승복하지 않았다. 2021년 1월 극렬 지지자들이 의회에 난입해 미국 사회에 충격을 줬다. 이를 배후 조정한 혐의도 받고 있다. 미국 역대 대통령 중 처음으로 형사 기소됐고, 주렁주렁 사법 리스크의 쇠사슬을 온 몸에 두른 채 대통령 재선에 도전한다.
8년 전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자 세계의 정치학자들이 바빠졌다. 민주주의 연구의 권위자인 하버드대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 교수는 트럼프 때문에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책을 썼다.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된 저서에서 두 학자는 “규범은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연성 가드레일이다. 규범이 무너질 때 용인 가능한 정치 행동 범위는 넓어지고 민주주의를 파멸로 몰아갈 주장과 행동이 시작된다”고 트럼프 현상을 분석했다.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하자 후속 저서에서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고, 민주주의가 다시 균형을 회복했다고 결론을 내리고픈 마음이 든다”고 안도했는데 오는 11월 대선 결과에 따라 두 학자가 다시 바빠질 수도 있다. 그만큼 트럼피즘으로 상징되는 민주주의 위기론은 세계적 화두가 됐다.
갈등과 분열의 정치사는 단연 우리가 앞섰는데 지금 한국의 정치 시계가 미국과 비슷한 일정으로 굴러간다.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와 비슷한 시기에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렸다. ‘블루페’(블루 페스티벌)라고 부르면서 록페스티벌 같은 축제로 치렀다. 이재명 대표의 포토카드나 민주당 굿즈도 팔아 아이돌 콘서트 같기도 했다. 미국 민주당과 당 상징색도 파란색으로 같아서 비슷해 보이는데 전당대회 성격은 ‘트럼프 독주’로 보수가 갈라진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와 비슷하다. 전통의 민주당에서 비명계를 잘라내고 친명계로 당을 장악해 대표직 연임에 성공한 이재명 대표는 자신의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려고 정치와 당과 지지자를 도구로 사용하는 한국판 트럼피즘이다.
우리 상황이 더 심각한 건 아직 대통령 임기가 절반도 더 남았는데 거대 야당이 탄핵을 노래 부르며 대통령을 흔들고 사사건건 국정을 훼방 놓는데만 주력해 되는 게 없는 나라가 되어간다는 사실이다.
미국 대선이 치러지고, 이재명 대표 재판 4개 중 하나에 1심 선고가 내려질 올 가을은 한여름 폭염보다 더 뜨거울 정치의 계절이다. 무더위를 참고 버티면 청량한 가을이 오는 계절의 순리처럼, 우리 정치에 상식이 회복되는 첫 단추가 채워질까.
-강경희 논설위원, 조선일보(24-08-26)-
_______________
정치인의 말, 정당의 저력
[특파원 리포트]
22일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 마지막 날 천장에서 풍선 10만개가 쏟아지고 있다. /AP 연합뉴스
지난주 시카고에서 치러진 민주당 전당대회에는 나흘 동안 200여 명의 연사가 등장했다. 전현직 대통령부터 차차기를 노리는 장관과 주지사, 유명 배우, 총기 사건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 10대 때 낙태를 경험한 여성 등 각계를 망라한 이 무대는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물론 재선 도전을 포기하고 횃불을 넘긴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격려의 박수가, 카멀라 해리스보다 8년 앞서 첫 여성 대통령에 도전했지만 지금은 원로로 남게 된 힐러리 클린턴에게는 미안함의 박수가 쏟아졌다. 하지만 대다수는 짧으면 3분, 길면 30분 정도 되는 시간 동안 오로지 말 하나로 승부를 봐야 했다. 의미는 기본이고 재미가 있어야 했고, 재치 있는 ‘펀치 라인’ 몇 개 정도는 있어야 2만 인파를 들었다 놨다 할 수 있었다.
미국 정치인들의 필설(筆舌)에 감탄한 경우가 적지 않다. 현역 중 아무나 콕 집어도 그는 학창 시절 ‘토론의 신’이란 얘기를 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전 교육 과정에 거쳐 말하기·글쓰기를 강조한다. 고등교육으로 갈수록 수사학의 중요성이 커지는데 이는 말을 하고 글을 써서 타인의 마음을 얻는 게 모든 업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정치야말로 말과 글이 전부 아닌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본인의 16년 전 선거 슬로건을 패러디한 “예스 쉬 캔”이란 말로 그날 밤 모든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팀 월즈 부통령 후보는 시험관 시술로 7년 만에 얻은 딸, 학습 장애를 앓은 아들을 호명하며 “내 세상의 전부”라고 말해 보는 이들을 뜨겁게 만들었다. 풋볼 코치였던 그가 “하루에 1야드씩 전진하자”고 말한 건 삼척동자의 마음도 움직이게 할 메타포였다.
2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최고(最古) 정당의 자부심과 저력이 대회 곳곳에 녹아있는 모습도 돋보였다. 1만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공항 입국장부터 시내 곳곳에 배치돼 먼저 참가자들에게 다가갔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자원봉사를 오겠다는 대기자만 1만명이 넘는다”고 말했다. 70대 여성 봉사자는 “1968년 시카고 대회 때 엄마 손을 잡고 전대장에 왔던 것을 기억한다”며 “여성·흑인 후보를 추대하는 역사적 순간에 뭐라도 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했다. 전국에서 모인 대의원들은 아침 일찍부터 모여 대선 필승 전략을 논의했고, 한편에선 당 간부들이 나와 선거 자금 관리부터 소셜미디어 활용법까지 교육했다.
전당대회는 마지막 날 해리스의 후보 수락 연설과 함께 천장에서 성조기를 상징하는 파란색·빨간색·하얀색 풍선 10만개가 내려오며 막을 내렸다. ‘대선의 꽃’이라 불리는 나흘 행사를 지켜본 이들이 느낀 바는 각자가 달랐을 것이다. 저급할 대로 저급해진 여의도의 언어 문화 속 바른 필설이 되는 정치인, 지지자든 아니든 국민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이벤트를 기획하는 정치 결사체가 우리도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조선일보(24-08-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