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퍼스트 패밀리' 나올까] [트럼프는 좌회전, 해리스는 우회전]
[한국계 '퍼스트 패밀리' 나올까]
[트럼프는 좌회전, 해리스는 우회전]
한국계 '퍼스트 패밀리' 나올까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한국 사랑은 유별났다. 오바마는 틈만 나면 한국의 교육열과 IT 인프라를 칭찬했다. “한국은 저렇게 앞서가는데 왜 우리는 못 하느냐”고 했다. 전미 초등학생 퀴즈쇼에선 “한강이 있는 아시아의 수도는 어디냐”는 문제도 냈다. 워싱턴을 빼고 가장 많이 방문한 국가의 수도가 서울이라고 했다. 백악관 내부엔 한국계 측근 인사가 많았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지지하고 김용 전 세계은행 총재를 지명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땐 한국계 여성이 숨은 ‘문고리 실세’였다. 마샤 리 켈리 관리행정국장은 백악관 행정 직원들을 지휘하며 내부 운영을 책임졌다. 트럼프와 부인 멜라니아의 신임을 받은 그는 공화당 전당대회 운영도 총괄했다. 트럼프 퇴임 후에는 멜라니아의 수석 고문으로 마러라고의 살림도 도맡았다. 가족 못지않았다.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선 후보로 지명된 해리스 부통령의 조카들이 알고 보니 한국계였다. 그의 동서는 한국계 주디 리 박사다. 미국 이민 121년 만에 한국계가 처음으로 미 대선 후보의 가족이 된 것이다. 해리스는 작년 4월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만찬 때 “미국엔 200만명의 한국계 미국인이 살고 있는데 제 가족 일원도 포함된다”고 했다. 조카인 재스퍼와 아덴 엠호프는 전당대회에서 “큰엄마만큼 바쁜 사람은 없지만 요리하고 식사하며 농담도 주고받는다”며 응원했다. 해리스는 동서·조카들과 무척 사이가 좋다. 주변에 이들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자주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한국 음식과 문화에 관심이 많은데 가족의 영향이 크다고 한다.
▶주디 리 박사는 자연치유의학 분야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남편 앤드루 엠호프는 캘리포니아에서 과학교사를 하다 소방 엔지니어로 20년간 일했다. 재스퍼는 UC버클리를 졸업한 뒤 스타트업에서 근무하고 있고, 아덴은 USC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있다. 한때 고려대에 여름 학기 연수를 한 적도 있다. 미국의 전형적인 중산층으로 모범적인 가정을 일군 것이다.
▶해리스의 남편 더글러스 엠호프 변호사는 윤 대통령 취임식 때 축하 사절단장으로 방한했다. 당시 광장시장을 찾아 빈대떡 등 전통 음식을 맛본 뒤 “한국 음식과 수공예품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며 즐거워했다. 이번 추석엔 백악관에서 처음으로 한국 추석을 축하하는 행사가 열린다. 만약 해리스가 대선에서 이긴다면 한국계가 처음으로 ‘퍼스트 패밀리’(대통령 가족)가 된다. 미국 내 한국계의 위상과 자부심도 그만큼 높아질 것이다.
-배성규 논설위원, 조선일보(24-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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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좌회전, 해리스는 우회전
미국 정치에서 “플립-플롭(flip-flop)을 했다”는 평가는 정치적 치명상을 뜻한다. 우리말로 이랬다저랬다 혹은 갈지자 행보에 가까운 표현이다. 2004년 대선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 반대여론이 높은데도 재선에 성공한 것은 상대를 이 프레임에 가두는 데 성공한 영향이 크다. 상대편 후보가 전쟁을 위한 추경예산 110조 원 편성에 찬성표를 던져 놓고도 반전여론이 생겼다고 1년 만에 돌아선 것이 대통령답지 못하다고 외면받았다.
▷이렇게 치명적인 플립-플롭은 일관성을 중시하는 미국 정치의 전통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올 11월 대선을 앞두고 노선 변경이 잦아졌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는 ‘임신 6주’ 이후의 낙태를 금지하기 위한 플로리다주 주민투표에서 반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6주 만의 판단은 너무 일러 산모의 선택권을 제약한다”는 이유였다. 여성인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의 등장 이후 여성표 쏠림을 막으려는 시도다. 트럼프는 애초에 낙태 반대론자였다. 여성의 낙태권을 허용한 1972년 연방대법원 판결을 50년 만에 뒤엎는 일에 그가 재임 중 임명한 강경보수 연방대법관 3명이 앞장섰다.
▷해리스 후보는 프래킹(fracking)이란 셰일가스 채취 공법에 대한 찬반 견해를 바꿨다. 암석에 고압의 물을 분사해 셰일가스를 채취하는데, 이 방식을 도입한 뒤로는 미국은 중동산 석유 의존증에서 벗어나고 있다. 다만, 수질오염 등이 심각해 민주당에선 반대가 강하다. 해리스 자신도 2020년 경선 때는 반대했다. 그러다가 부통령 후보가 된 후로는 돌아섰다.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 당선에 크게 기여했고, 올해도 핵심 경합주가 된 펜실베이니아주 때문이다. 셰일가스 산업 관련자 30만 명이 그곳 유권자다.
▷이 밖에도 트럼프는 마리화나 합법화에 찬성하기 시작했다. 술 한잔 입에 댄 적 없다는 그는 마약반대론자였다. 요새는 “자기가 피우려고 소량을 지녔다고 일일이 적발한다면 행정력 낭비”라는 논리를 댔다. 젊은층 표를 의식한 결과다. 해리스도 과거엔 불법 이민자 형사 처벌을 두고 “미국답지 못하다”며 반대했지만, 지금은 동의한다. 이처럼 공화당 트럼프의 좌클릭, 민주당 해리스의 우클릭은 뜨거운 논쟁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이건 어디서건 이랬다저랬다 정치는 힘을 얻기 어렵다. 하지만 시대와 기술이 바뀌고, 안보 상황이 달라졌는데도 오래전 생각을 고집하는 일관성이 좋다고만 말할 수 있을까. “왜 갈지자 행보냐”는 비판에는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 게 정공법이다. 어쩌면 올 대선은 플립-플롭에 돌아앉던 과거와 달리 유연함에 주목하는 보기 드문 선거가 될 수도 있다. 해리스는 지난주 인터뷰 때 첫 내각에 공화당원을 합류시키겠다고 했다. “다른 경험과 시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이 역시 유연함을 강조한 말이다.
-김승련 논설위원, 조선일보(24-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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