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 보니 선진국'을 만든 진짜 영웅은 누구인가] ....
['태어나 보니 선진국'을 만든 진짜 영웅은 누구인가]
[세계 1위 ‘조선 기술’마저 中으로 속속 유출… 이러다 뭐가 남나]
[너무 빨리 변하는, 그만큼 늘 새로운 한국]
'태어나 보니 선진국'을 만든 진짜 영웅은 누구인가
[최재붕의 디지털 신대륙]
반도체 1위, 자동차 3위, 군사력 5위의 명실상부한 선진국
기적 만든 건 민주화 세력이 아닌 자기 일 매진한 보통 사람들
AI 대전환 성공하려면 개도국 시절 같은 정치권력 다툼 중단을
요즘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이 예사롭지 않다. K팝을 중심으로 한류 열풍이 세계를 휩쓸고 있다는 이야기는 식상할 정도다. 거기에 더해 K드라마, K웹툰, K무비 등이 인기를 누리더니 이제는 K푸드까지 팬덤이 폭발 중이다.
문화적 팬덤뿐만이 아니다. 세계 각국에서 우리나라 전투기, 탱크, 자주포, 미사일을 사겠다는 나라들이 줄을 선다. 체코는 우리에게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맡겼다. 첨단 무기나 원전은 원래 선진국이 휩쓸던 시장이다. 아무리 가난한 나라라도 자국민을 보호하는 첨단 무기를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에서 사는 나라는 없다. 세금을 내는 국민들이 가만있지 않기 때문이다. 안전이 절대 중요한 원전도 개도국에 맡기는 걸 놔둘 선진국 국민은 없다.
노르웨이·핀란드가 우리 K9 자주포를 사고, 폴란드가 우리 탱크와 전투기를 구매한 건 유럽 시민들이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인정한다는 확실한 시그널이다. 이들은 산업혁명 이후 세계를 지배하던 서구 문명의 발상지인 유럽의 일원인 국가들이다. 30년 전만 해도 이들에게 전쟁고아의 나라, 보잘것없는 개도국이었던 코리아가 어느새 이렇게 선진국으로 인식이 바뀐 것이다.
그러고 보니 미국 잡지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리포트’에 올라온 대한민국 군사력 순위는 세계 5위, 강대국 순위는 세계 6위다. 1차 세계대전 이후 후진국에서 세계 10대 강대국 순위에 올라온 신흥국은 오직 우리뿐이다. 도대체 누가 이런 믿기 힘든 기적을 이끌어낸 진짜 영웅일까.
일단 자기들이 한 일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만든 주역이라며 연금을 받겠다는 사람들이다. 민주화를 달성한 건 칭찬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반도체 산업이나 원전 산업, 방위 산업을 만든 건 아니다. 그렇다면 반도체 세계 1위를 만든 건 누가 했을까? 2년간 반도체 불황으로 세수 줄어든 게 연 60조원이라고 한다. 1년 국가 예산의 10%나 된다. 그동안 경기도 나빠지고 나라 살림도 어려워졌다. 역설적으로 적자가 나니까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자동차 산업도 세계 3위다. 현대·기아차가 토요타, 폴크스바겐에 이어 매출, 영업이익 규모에서 2년 연속 세계 3위를 기록했다. 올해는 영업이익으로 폴크스바겐을 넘어설 기세다. 조선은 중국과 매출 규모에서 엎치락뒤치락한다지만 기술력만큼은 압도적 세계 1위다. 미국 군함 시장까지 넘보는 중이다. 이런 제조업의 탄탄한 기반 위에 전투기 만드는 방위산업까지 꽃피기 시작한 셈이다.
우리나라 GDP(국내총생산)의 28%를 차지하고 경제의 반석을 만든 제조업은 도대체 누가 만든 것일까? 그러고 보니 아무도 공치사하는 이가 없다. 제조업 연금 만들어 달라는 요구도, 사람도 없다. 정주영, 이병철, 이건희 같은 기업가들이 깃발을 세운 건 맞지만 누가 뭐래도 이 기적을 현실로 만든 건 지난 30년간 묵묵히 자기 일에 매진해온 대한민국 보통 사람들이다. 대기업 현장에서, 중소기업 현장에서, 열심히 공부하며 일본도 독일도 해볼 만하니 따라잡자고 땀 흘린 사람들이다. 이들이 만든 대한민국은 지난 120년 현대 인류사의 유일한 기적이 되었다. 세계 10대 강대국 중 우리나라를 빼면 모두 1차 세계대전 주요 참전국들이니까.
디지털 문명 시대는 광고하지 않는다. 일론 머스크는 TV 광고 하나 없이 테슬라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었는데, 단지 소셜미디어를 통해 기업을 소개하고 신제품을 내놓았을 뿐이다. 그의 말대로 광고는 ‘차를 타본 고객들이 유튜브에 스스로 올리는 것이 진짜’인 시대다.
유럽의 시민들이 우리 전투기를 사고, 원전을 사는 것은 우리를 선진국으로 인지한다는 뜻이다. 폴란드, 노르웨이 국민에게 TV로 광고 한번 안 하고 만든 팬덤 덕분이다. 문화의 초일류화에 집착했던 콘텐츠 전문가들과 제조의 초일류화에 집착했던 우리 엔지니어들이 힘을 모아 만든 기적의 성과다. 첨단 산업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냈다. 지난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64국을 평가한 ‘디지털 경쟁력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6위였다.
디지털 문명은 국경 없는 팬덤 경제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우리 문화와 우리 상품을 경험한 세계 시민들이 스스로 K팬덤을 만들어 코리아를 선진국으로 인지하게 된 것이다. 이런 기적을 만든 영웅들이 바로 세대에 상관없이 열심히 살아온 대한민국 보통 사람들이다.
디지털 문명은 다시 또 AI 문명으로 거대한 전환의 용틀임을 시작했다. 금융가에서는 2000년 닷컴버블 이후 가장 많은 자본이 하나의 기술 주제로 쏠린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그때 인터넷으로 몰렸던 자본이 지금의 디지털 문명을 만든 주인공이다. 그리고 다시 AI라는 주제로 모인 거대 자본은 이제 AI 문명 시대를 여는 에너지가 될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닷컴 버블 시대를 슬기롭게 넘기며 빠르게 디지털 전환을 이룰 수 있었다. 이번 AI 대전환도 잘해야 한다. 이미 국회에서도 AI 관련 포럼이 4개나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아직 AI가 만들 미래에 대한 어떤 논의도, 정책도 들어보지 못했다. AI 지원은커녕 온통 정치 싸움에다 국민 용돈 지원금 논란으로 시끄럽다. 어느 국회의원도 미래를 위해 AI 산업 지원하자는 특별법 하나 내지 않는다.
디지털 문명 세계는 우리를 선진국으로 인지하는데 대한민국 정치권은 개도국 시대 권력 다툼에 목을 매고 있다. 기적을 만든 대한민국 보통 사람들이라도 각성해야 한다. 국민이 곧 권력이고 영웅인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어차피 미래도 그렇게 준비해야 한다.
-최재붕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 조선일보(24-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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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위 ‘조선 기술’마저 中으로 속속 유출… 이러다 뭐가 남나
한국 조선업계의 액화천연가스(LNG)선 개발·제작 기술이 중국에 유출된 정황이 드러나 해양경찰청이 수사에 나섰다고 한다. LNG선은 한국 조선업이 중국의 가격·물량 공세에 따라잡히지 않고 1위를 유지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고부가가치 수출품이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정보기술(IT) 분야에 집중됐던 중국의 한국 기술 탈취 시도가 다른 기간산업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는 의미여서 각별한 경계심이 요구된다.
해경은 국내 조선업체에서 일하던 인력이 중국 업체로 이직하거나, 중국 업체에 컨설팅을 해주는 과정에서 LNG선 ‘화물창 기술’ 등이 흘러 나간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천연가스를 저온·고압의 액체 상태로 배로 실어 나르는 데 필요한 화물창 기술은 LNG선의 안전성과 품질을 좌우한다. 글로벌 LNG선 입찰 경쟁에서 한국에 번번이 고배를 마셔온 중국 조선업체로선 탐날 수밖에 없는 핵심 기술이다.
올해 상반기 글로벌 선박 수주 점유율은 중국이 64%, 한국이 25%로 중국이 앞서 있다. 초대형 컨테이너선 등 한국이 앞서던 분야에서도 중국이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하지만 LNG 운반선은 355척의 수주 잔량 중 70%가 HD한국조선해양·한화오션·삼성중공업 국내 3사의 몫일 정도로 독보적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의 공세가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이미 한국 조선업체에서 10년 이상 경력을 쌓은 인력 수십 명이 중국으로 이직했다고 한다. ‘한국 연봉의 2배’, ‘2, 3년 고용보장 플러스 성과 시 2, 3년 추가 고용’ 등 중국 기업이 내거는 매력적인 조건에 넘어간 인력이 적지 않다. 실제로는 이직 전후 기존에 일하던 업체의 기밀 정보를 요구하고, 기술을 빼내지 못하면 ‘토사구팽’당하는 일이 다반사라고 한다.
물량에선 밀려도 고부가가치 선박을 더 많이 만드는 게 현재 한국 조선업의 전략이다. 이런 상황에서 ‘초격차 기술’이 중국에 따라잡힌다면 조선업계 리더에서 완전히 밀려나게 된다. 미국, 일본 등 한때 글로벌 조선업을 호령했던 나라들 중에서 주도권을 일단 뺏기고 난 뒤 정상의 자리를 되찾은 전례가 없다. 친환경·자율 운항선 등 미래형 초격차 기술을 개발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앞서 있는 분야의 기술과 인재를 도둑맞지 않도록 지키는 일이다.
-동아일보(24-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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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빨리 변하는, 그만큼 늘 새로운 한국
[폴 카버 한국 블로그]
한국은 정말 빨리 변하는 나라다. 외국 친구들끼리 하는 얘기이긴 한데 영국에 잠깐 있다가 몇 주 만에 한국에 돌아와도 동네가 너무 달라져 버려서 길 찾기가 어렵다는 농담을 하곤 한다. 내가 사는 곳만 해도 여기저기 공사가 끊임없이 진행된다. 몇 달 만에 뚝딱 새로운 빌라가 들어선다. 그 와중에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또 다른 건물이 철거된다. 매일매일 이 광경을 지켜보는 우리로서는 그 변화가 그렇게 크게 와닿지 않을 수 있지만 가끔 한국을 방문하는 분들은 그 차이를 바로 볼 수 있는 것 같다.
이번 주에 부모님이 영국에서 한국을 방문하셨다. 부모님은 지난 25년 동안 20번 정도 한국을 방문하셨으니 1, 2년에 한 번꼴로 오신 셈이다. 그래서 한국의 변화를 외부인의 눈으로 더 잘 관찰하시는 것 같다. 한국에 자주 오시는 덕분에 부모님에게는 단골 식당도 있고 커피숍도 단골로 가는 곳이 많았는데, 이런 요식업은 보통 굉장히 빠르게 손바꿈되는 경향이 있어서 부모님이 예전에 자주 들르던 곳들이 이번에 와서는 문을 닫은 것을 보고 많이 실망하셨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또 여러 새로운 곳들을 방문할 기회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한국에 너무 자주 오시다 보니 이전에 갔던 곳을 또 들르는 것은 식상하실 것 같아서 나는 꾸준히 부모님을 위한 관광상품을 계속 개발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안 가본 데를 계속 발굴해야 하니 한국분들도 잘 모르는 장소를 찾아내기도 하는데 다행히도 서울은 계속 발전하는 도시라 여전히 새로운 갈 곳들이 생겨난다.
이번에는 여의도에 새로 오픈한 ‘서울달’에 갔는데 거기 올라가면 서울의 멋진 전경을 볼 수 있다. 새로운 장소들도 많이 생겨났지만 서울 신규 지하철 노선 개통이나 노선 연장, 영국보다 더 많은 듯 보이는 전기버스와 전기 승용차들도 부모님이 금방 알아차리신 서울의 변화들이었다. 서울로 7017과 경의선숲길도 둘러봤는데 여기는 새로운 장소는 아니지만 부모님이 지난번에 왔을 때보다 훨씬 더 무성해진 식물들과 나무들 덕분에 새로운 장소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이런 변화들이 부모님에게 모두 긍정적으로 비쳤던 것은 아닌 듯하다. 예전에 내가 오랫동안 살았던 동네를 부모님과 함께 걷는데, 이전에 있던 오래된 건물들이 새로운 건물들로 거의 모두 교체되는 바람에 부모님이 알아볼 수 있던 곳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고 지난번에 오셔서 자주 들렀던 빵집, 커피숍, 식당 등도 거의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직업상 길을 잘 찾으시는 우리 아버지조차도 길을 헷갈리셨는데 아버지가 이전에 오셨을 때 길을 찾으며 참고하시던 랜드마크 건물도 모두 새로운 건물로 바뀌어 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낙후된 구도심이 활성화되며 외부인과 돈이 유입되고 원주민이 밀려나는 현상)이 지역 주민들에게 좀 더 편리하고 안락한 삶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있기는 하겠지만, 시대와 지역의 특정하고 고유한 성격을 반영하는 길, 도로, 주택과 건물들이 사라지고 다른 동네와 별반 다를 것 없는 비슷한 디자인의 아파트와 빌라로 교체된다는 점은 서울의 발전 과정에서 나타나는 안타까운 결과인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면서 서울이 변화하듯이 우리 부모님도 나이가 드실 것이다. 같은 나이대 분들과 비교해 여전히 활동적이시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에 오셨을 때보다 체력이 떨어지신 것 같아 보였고 걸으시는 동안 중간중간에 쉬는 시간도 더 늘어난 것 같았다. 어머니는 오랜만에 남산 정상에 가보고 싶어 하셨는데 지난번에는 직접 걸어서 오르셨다면 이번에는 관광버스를 타고 가실 수밖에 없게 되었고, 아버지는 바닥에 앉아서 먹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시기에는 무릎이 너무 안 좋아지셨다.
한국을 자주 방문하다 보니 이제 갈 데가 없어져 버렸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서울은 정말 살아 숨 쉬는 도시인 듯하다. 그렇게 자주 방문하셔도 또 새로운 갈 곳이 항상 생기니 말이다. 게다가 한류 덕분에 너무 멋있어져서 세계적인 여행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어머니는 영국에서 영국 신문에 소개된 한국의 관광지를 나에게 보여주셨는데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곳이었다. 언젠가 우리 부모님도 한국까지 오는 비행이 너무 힘들어서 한국의 새로운 관광 명소들을 더 이상 방문하지 못하실 때가 올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계속 부모님에게 한국의 새로운 곳들을 여기저기 구경시켜 드릴 결심이다.
-폴 카버 영국 출신·번역가, 동아일보(24-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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