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정권 대북 정책 잘못돼 北이 통일 거부' 李도 이렇게 보나] ....
['文 정권 대북 정책 잘못돼 北이 통일 거부' 李도 이렇게 보나]
[최덕근 영사 암살범들 모두 확인됐다]
'文 정권 대북 정책 잘못돼 北이 통일 거부' 李도 이렇게 보나
더민주혁신회의가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선언과 차기 민주정부의 과제라는 주제로 긴급 토론회를 열고 있다. /이덕훈 기자
친명계 최대 조직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혁신회의)’가 25일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선언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발제를 맡은 신준영 혁신회의 대북정책혁신위원장은 최근의 남북 관계의 책임을 문재인 정부 탓으로 돌렸다. 그는 문 정부가 대북 제재를 철저히 지켜 남북 관계가 파탄 났고 북한이 통일 거부와 적대적 두 국가론을 펴는 것이란 취지로 발표했다.
신 위원장은 “문 정부의 대북 제재 준수 노력은 눈물겨웠다”고 했다. 북한이 “옥류관 냉면은 맛있게 먹고…”라는 대남 비난 성명을 낸 것에 대해서도 “(대북 제재로) 우릴 빚더미에 앉혀 놓고 너희는 한 일이 뭐냐는 볼멘소리로 보인다”고 했다. 그는 북한이 남북 관계를 파탄 낸 이유에 대해 “문재인 정부에서 한미 군사훈련이 중단 없이 추진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겉으로만 훈련 중단이고 실질적으로는 훈련을 해서 북한이 반발했다는 취지였다.
이 발제문은 궤변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대북 제재는 북의 핵개발 때문에 유엔이 하고 있는 것이다. 북이 핵을 포기하면 즉시 없어진다. 핵을 포기하지 않는데 제재만 없애면 북핵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하자는 뜻인가. 문 정권은 사실상 한미 훈련을 중단했으며 그 기간 중에도 북은 계속 미사일을 발사했다.
발표자는 이재명 대표가 경기도지사 때 경기도 평화협력국장을 지냈고, 지금은 국회 평화외교 자문위원이다. 한 개인의 돌출 발언이라 보기 어렵다. 그는 1992년 빨치산 출신 장기수 이인모의 구술을 정리한 책을 통해 그의 북송을 도왔고, 취재와 각종 교류를 구실로 북한을 100회 이상 방문했다. 그런 인물이 이재명 대표 핵심 조직의 대북 정책을 맡고 있다.
혁신회의는 작년 6월 “이재명 대표의 차기 대선을 위한 조직을 만든다”며 강성 친명계가 주도해 만든 단체다. 출범 당시에는 원외 인사로만 구성됐지만, 22대 총선에서 의원 31명을 배출하며 최대 의원 모임이 됐다. 이 단체 간부의 납득할 수 없는 주장들이 이 대표의 생각과 같은 것인지 묻게 된다.
-조선일보(24-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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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근 영사 암살범들 모두 확인됐다
[양상훈 칼럼]
1996년 10월1일, 국정원 러시아 파견관이 北에 무참히 살해돼
오랜 추적 끝에 北 범행 조직, 책임자 공작원 3명 신원 밝혀내
반드시 대한민국 법으로 심판해야
국정원 보국탑 '이름없는 별' 추모석. 최덕근 영사는 새겨진 별 중 유일하게 실명이 공개된 요원으로, 그중에서도 '첫 번째 별'로 알려졌다. /뉴스1
벌써 28년이 됐다. 1996년 10월 1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근무하던 최덕근 영사(국정원 파견관)가 퇴근해 귀가하다 집 앞에서 북한 요원 3명에 의해 칼, 도끼와 독침으로 무참히 살해됐다. 아내가 뛰어나왔지만 사망한 뒤였다. 국정원은 북한이 살인용으로 사용하는 독극물 샘플을 러시아 측에 제공했고 러시아는 부검에서 이 독극물을 검출했다고 한다. 하지만 러시아는 부검 결과 발표에서 이 독이 검출된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밝히면 북한 소행이 입증되기 때문이었다. 러시아는 북 요원들 도주로도 차단하지 않았다. 외교적으로 골치 아픈 사건이 빨리 덮이기만을 바랐다. 최 영사 시신이 국내로 온 뒤 다시 실시한 부검에서 예상대로 북한이 쓰는 그 독이 검출됐다.
당시 북한은 식량 배급이 끊기는 이른바 ‘고난의 행군’으로 수십, 수백만 명이 굶어 죽고 있었다. 돈이 궁해진 김정일은 전 세계에서 온갖 부정한 방법으로 달러를 벌었다. 대표적인 것이 위조 달러, 마약 판매와 외교관 신분을 이용한 밀수였다. 국정원은 북한의 이런 불법행위를 추적하고 있었다. 최 영사도 이런 추적 활동을 하다 북한에 살해당한 것으로 추측됐다. 필자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이병호 전 국정원장이 쓴 책 ‘좌파 정권은 왜 국정원을 무력화시켰을까’를 읽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이 전 원장은 북이 한국 공무원을 살해한 이유에 대해 다른 추정을 했다. 최 영사는 부임 3개월째로 업무 인수인계 중이어서 본격적인 대북 추적 활동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북한이 최 영사를 살해한 것은 그의 어떤 활동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한국 정부 요원 살해 그 자체가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살해 수법이 필요 이상으로 잔인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당시 북한 잠수함이 우리 제1함대 사령부를 정찰하기 위해 특수부대원들을 태우고 강릉으로 들어왔다가 고기 그물에 걸리는 사건이 있었다. 북한 무장 대원들은 모두 잠수함에서 내려 북으로 귀환을 시도하다 전원 사살되거나 체포됐다. 우리 군의 이 작전은 47일 동안 계속됐다. 최 영사는 이 작전 기간 중에 피살된 것이다. 북은 연일 백 배, 천 배 보복을 공언하고 있었다. 이 전 원장은 최 영사가 북한 보복의 희생양이 된 것으로 추정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는 북의 보복 목적에 최적의 장소였다. 러시아 당국이 수사를 적극적으로 할 리가 없었고 북으로 도주하기도 좋았다.
이 전 원장은 최 영사 사망 두 달 뒤에 차장으로 국정원을 퇴직하면서 후배 요원들에게 “우리가 언젠가는 평양에 들어갈 날이 있을 것이다. 그때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일은 북한의 정보 파일을 뒤져서 누가 최 영사 살해범인가를 밝히는 일이다. 여러분이 이 추적을 계속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로부터 18년 뒤인 2015년 이 전 원장은 국정원장이 돼 국정원으로 돌아왔다. 국정원장으로서 그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이 전 원장은 책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나의 퇴직 때 당부대로 최 영사 사건 추적이 간단없이 이뤄졌음을 알게 됐다. 국정원 요청으로 러시아의 사건 공소시효도 무기한 연기됐다. 국정원은 이제는 안다. 북한의 어떤 조직이 테러를 주도했고, 누가 지휘했으며 누가 실제로 범행했는지를 안다. 이 정보를 확인하고 또 확인해 나갈 것이다.’
최 영사 살해 지시자가 김정일이란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국정원이 범행을 실행한 조직, 책임자는 물론이고 실제 실행자 3명의 이름까지 알고 있다는 것은 놀라웠다. 이들 전원이 대한민국 법의 심판을 받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우리는 ‘기억이 짧은 나라’라고 자조한다. 큰 사건이 나면 그때 지나치게 호들갑을 떨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망각한다는 것이다. 실제 그런 경우가 많았다. 그런 점에서 국정원이 최 영사 살해범들을 오랜 세월 추적해왔다는 사실은 의외였다. 놀랍고 대견했다. 북한의 아웅산 테러와 KAL기 폭파 테러, 소련의 KAL기 격추 등 우리 국민을 떼죽음시킨 만행에 대한 추적과 심판에도 시효가 있어선 안 된다. 이 전 원장 표현대로 우리도 기억이 긴 나라로 바뀌어야 한다.
지금 최 영사는 국정원 정문 옆 보국탑에 한 개의 별로 새겨져 있다. 최 영사 피살 석 달 뒤 북한 주체사상 최고 권위 황장엽 국제 담당 비서가 한국으로 망명했다. 황 비서는 김씨 왕조의 실정에 절망하고 있었다. 김씨들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역사의 시계는 멈출 수 없으며 분단이 끝나는 날도 막지 못할 것이다.
-양상훈 주필, 조선일보(24-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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