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 총리의 일본, 좋은 이웃이 될 수 있을까] ....
[이시바 총리의 일본, 좋은 이웃이 될 수 있을까 ]
[‘공기를 안 읽는’ 이시바, 기시다보다 어렵다 ]
[북·중·러 모두 핵 폭주, 무력한 국제사회]
[日 새 총리에 ‘온건파’ 이시바… 한일관계 ‘나머지 반 잔’ 채워야]
[日총리 1순위로 꼽히는 이시바, 자민당 총재 선거 출사표]
이시바 총리의 일본, 좋은 이웃이 될 수 있을까
[박상준 칼럼]
日 과오 직시하자는 비주류 이시바 당선
한일관계 개선 희망 다시 보이는 청신호
이시바, 당내 기반 약해 운신의 폭 좁아
기대 못 미쳐도 화해 손 내밀면 잡아주자
9월 27일 오후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가 있었다. 1차 투표 결과, 다카이치 사나에가 181표로 1위, 이시바 시게루가 154표로 2위였다. 두 사람이 결선투표에 진출했다. 이시바와 다카이치라니. 아홉 명 후보 중에서 가장 극과 극에 서 있는 두 사람이 결선에 올랐다. 다카이치는 당당하게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는 사람이다. 반면 이시바는 과거의 과오를 직시하지 않는 일본을 공공연히 비판한다.
거실에서 결선 중계를 시청하는데 손에서 땀이 났다. 선거 결과를 기다리며 초조했던 적이 없었는데 남의 나라 선거에 이렇게까지 긴장하다니, 어이가 없었다. 오후 3시부터 중요한 화상회의가 있었기 때문에, 왜 하필 이 시간에 회의냐고 투덜거리며 내 방으로 들어갔다. 마음은 콩밭에 있으면서 회의에 집중하려 하고 있는데, 복도에서 내 방으로 빠르게 걸어오는 아내의 발소리가 들렸다. 중요한 회의 중인 걸 알면서도 아내가 내 방문을 열었을 때, 나는 이시바가 이겼다는 걸 알았다. 얼굴을 돌리지 않은 채, 나는 아내에게 손가락으로 V자를 그려 보였다.
남의 나라 선거에 나는 왜 그렇게 떨었던가? 아내는 왜 감격해서 내 방문을 열었던가? 이시바 총재의 당선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이 과거를 극복하고 좋은 이웃으로 공동 번영을 추구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는 희망.
그런 희망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 1998년의 김대중-오부치 선언이었다. 오부치 게이조 총리는 식민 지배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사죄를 표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그 사죄를 높이 평가하며 좋은 이웃으로 미래지향적 관계를 발전시키자고 화답했다. 그 뒤에 상호 문화 개방이 있었고 한국에서는 일본 영화 ‘러브레터’가, 일본에서는 한국 드라마 ‘겨울연가’가 공전의 히트를 했다. 2001년에는 일본인 취객을 구하려다 희생한 이수현 씨가 일본 사회에 깊은 감동을 주었고, 2002년에는 월드컵 공동 개최가 있었다. 한국이 4강에 진출한 다음 날, 내 집 창문 옆을 지나던 일본 꼬마들이 “오메데토 고자이마스(축하합니다)”라고 외치던 소리가 이제는 마치 꿈처럼 희미하다. 지금 일본인들은 한국 드라마를 즐기고 한국인들은 일본 관광을 즐기지만, 한일 관계는 ‘겨울연가’ 시절보다 확연히 퇴화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그 이전에 있었던 무라야마 담화나 고노 담화의 연장선에 있다. 무라야마 도미이치와 고노 요헤이 그리고 오부치의 역사 인식을 계승하는 이시바의 총리 취임으로 이제 한국과 일본은 정말 좋은 이웃이 될 수 있을까? 쉽지는 않겠지만 보이지 않던 희망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희망이 현실이 되려면 일본은 물론 한국의 노력도 필요하다.
아직은 이시바가 운신의 폭이 넓지 않다. 각종 스캔들로 자민당 지지율이 역대급으로 낮은 상황에서 10월 27일에 중의원 선거가 있다. 국민들은 자민당의 전면적 쇄신을 요구하고 있지만, 당내 기반이 약한 이시바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아베 신조는 세계경제가 회복되던 시기에 집권했고 양적완화로 엔고를 엔저로 전환했다. 그러나 지금 일본은 양적완화를 축소해야 하는데, 미국 경제와 중동 정세가 불안하다. 실질임금이 다시 하락하기 시작한 것도 고민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시바 총리에게 그의 정치적 역량으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요구를 한다면 양국 관계는 개선되기 어렵다. 이시바 내각에는 아베파 의원이 없다. 아베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다카이치는 권토중래를 노리며 이시바에게 각을 세우고 있다. 이때 우리가 우리의 기대에 충분히 부응하지 못한다고 해서 이시바를 비난하고 나서면 그의 정적인 다카이치를 돕는 꼴이 된다. 지금은 한국에서 일본의 양심으로 칭송받는 무라야마지만, 정치적 생명을 걸고 사죄 담화를 냈던 그 무라야마도 총리 시절에는 한국으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았던 것을 상기해야 한다.
이시바 총리는 아마도 진심으로 한국에 화해의 손길을 내밀 것이다. 충분하지 않고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그 손을 잡아야 한다. 그게 끝이 아니라 출발선이다. 1층을 세우면 언젠가 그 위에 2층을 세울 수 있다. 원래 계획하던 높이가 아니라고 해서 1층을 허물면 건물은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 한일 관계가 살벌하던 시절에도 일본의 사죄를 촉구하며 비주류의 자리를 겁내지 않던 이시바다. 그를 총리로 선택한 일본이라면, 언젠가는 우리와 좋은 이웃이 될 수 있다.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동아일보(24-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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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 반핵 단체에 노벨평화상. 인간의 기술이 인류 위협하는 核의 비극, 노벨 물리·화학상 주인공 AI는 다른 길 가기를.
-팔면봉, 조선일보(24-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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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를 안 읽는’ 이시바, 기시다보다 어렵다
[특파원 칼럼]
일본 차기 총리인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집권 자민당 총재를 만난 건 6년 전이다. 해외연수차 일본 와세다대 방문연구원으로 있던 2018년 11월, 그가 특강을 하러 와세다대 캠퍼스를 찾았다. 그해 10월 대법원이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을 확정하면서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던 때였다. 그로서는 2개월 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에게 패하면서 암중모색(暗中摸索)하던 때다.
금기 개의치 않고 대담한 주장
‘강제 동원 판결로 얼어붙은 한일 관계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맨 앞자리에서 연구자 자격으로 질문을 던졌다. 몇 초간 생각하던 이시바 총재가 입을 열었다.
“판결은 국제법적으로 잘못됐다. 하지만 합법적으로라도 독립국이었던 한국을 합병하고 (조선인의) 성을 바꿨다. 그런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인식하느냐가 중요하다.”
냉기가 느껴질 정도로 강의실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2시간에 걸친 강연과 질의응답 중 이 부분만 다음 날 일본 언론에 보도돼 한국에도 전해졌다.
그날의 에피소드를 일본인들에게 들려주면 2가지 반응이 나온다. 일본에서 누구도 한일 관계를 입에 못 올리던 시기에 돌직구 질문을 던져 신기하다는 게 첫 번째 반응이다. 자민당에서 작심하고 ‘한국 때리기’에 나서던 시기에 여당 유력 정치인으로 한국을 알아야 한다고 말해 놀랍다는 게 두 번째다. ‘공기(空氣)를 읽는다’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눈치와 분위기 파악이 중요한 일본 사회에서 ‘공기를 읽지 않은’ 연구자와 정치인의 문답은 6년이 지나 새 총리의 한국 관련 발언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자민당 보수 강경파들이 ‘혐한 선동 경쟁’을 하던 최근 십수 년간, 그는 한국을 알고자 하던 몇 안 되는 정치인이었다. 이시바 총재는 과거 강연에서 “일본이 다른 나라에 점령당해 오늘부터 ‘너는 스미스다’라고 하면 어떻겠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후손에게 사죄 숙명을 지우지 말자’(2015년 아베 담화)며 가해 책임에 입을 닦은 아베 전 총리와 분명 다르다.
하지만 주변 눈치 보지 않고 할 말을 하는 그의 취임 후 첫 일성은 ‘아시아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창설이다. ‘한국 때리기’에 동조하지 않았던 그는 이제까지의 금기도 개의치 않는다. 동아시아 관여에 일정 수준 이상을 넘지 않으려는 미국의 눈치도, 해양 진출을 강화하는 중국의 압박도 개의치 않고 할 말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핵 반입을 공공연하게 주장하며 ‘핵은 만들지도, 갖지도, 반입하지도 않겠다’는 60년간의 ‘일본 비핵 3원칙’도 벗어던질 태세다.
4년 7개월간 외상을 지낸 ‘외교의 달인’ 기시다 총리와 방위 정무직만 3번을 역임한 ‘국방 전문가’ 이시바 총재는 다르다. 한국으로서는 더 어려운 카운터파트(counterpart)다. 차기 이시바 정권이 과거사에 과감하게 전향적 입장을 취하면서 집단 방위 체제 참여를 제안한다면 어떻게 될까. 과거사는 손을 잡고 ‘아시아판 나토’에선 발을 빼는 취사 선택이 가능할까. 주한미군을 주둔시키는 미국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시아판 나토’ 한국에 어려운 도전
한국은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일본은 우크라이나, 중동의 2개 전선으로 힘겨워하는 미국을 파고들며 ‘미일 동맹을 축으로 아시아 집단 안보 체제를 구축하자’는 정치인을 리더로 세웠다. 우리에겐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로 순진한 대일 인식의 현 정부와 “중국에도 셰셰(謝謝·고맙다), 대만에도 셰셰 하면 된다”는 야당 말고는 선택지가 없다. 상황 파악조차 제대로 못 하는 정치권을 바라보는 국민 등에서 식은땀이 흐른다는 걸 한국 정치인들은 알기나 할까.
-이상훈 도쿄 특파원, 동아일보(24-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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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러 모두 핵 폭주, 무력한 국제사회
러시아 라브로프 외무장관이 26일 북한 비핵화 개념은 “종결된 이슈(closed issue)”라고 했다. 북한과 군사 동맹을 부활시킨 러시아는 북한 핵 보유를 인정하겠다는 입장을 계속 밝히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도 같은 날 언론 인터뷰 도중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이라는 표현을 썼다. 미국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과 민주당이 채택한 새 정강에선 ‘북한 비핵화’라는 문구가 사라지기도 했다.
북한 핵 보유를 인정한다는 것은 북이 핵을 가진 상태에서 대북 제재가 해제되는 것을 의미한다. 인도·파키스탄이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으며 제재에서 벗어났다. 6년 전 트럼프·김정은 회담에서 기존 북한 핵무기와 신형 우라늄 농축 시설은 그대로 놔둔 채 고철 같은 영변 핵시설과 핵심 대북 제재를 맞바꾸는 거래가 성사될 뻔했다. 핵보유국이 돼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것이 김정은의 목표다. 미 대선 상황을 보고 김정은은 다시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는 시도를 할 것이다. 7차 핵실험도 할 수 있다.
최근 한반도 주변의 핵 위협과 증강이 심상치 않다. 북한은 우라늄 농축 시설을 보란 듯 공개했다. 중국은 2030년까지 핵탄두 1000기를 보유할 계획이다. 최근엔 44년 만에 태평양 공해상으로 핵 탑재가 가능한 ICBM을 발사하기도 했다. 러시아 푸틴은 ‘핵 교리’ 개정을 선언했다. 핵 없는 국가라도 핵보유국 지원을 받아 러시아를 공격하면 핵으로 공격하겠다는 취지다. 핵 폭주라고 할 수밖에 없다. 북·중·러 모두 독재자 한 명이 군사·안보를 좌지우지하는 전체주의 국가다. 한국은 핵 없이 이들과 맞서 있다.
국제사회 현실과 국내 갈등을 감안할 때 우리의 핵무장은 당장은 어렵다. 일본처럼 ‘잠재적 핵 능력’부터 갖출 필요가 있다. 미국의 핵과 한국의 재래식 전력을 통합해 북핵에 대응하는 작전 지침도 한미 연합 작계(작전 계획) 반영으로 구체화해야 한다. ‘설마’하고 있기에는 국제 핵 정세가 매우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다.
-조선일보(24-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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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새 총리에 ‘온건파’ 이시바… 한일관계 ‘나머지 반 잔’ 채워야
AP/뉴시스
일본 집권당인 자민당이 어제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을 새 총재로 선출했다. 3년간 재임한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뒤를 잇는 이시바 총재는 다음 달 1일 국회 표결을 거쳐 총리에 오른다. 당내 파벌 정치에서 비주류의 길을 걷다가 5번째 도전에 성공한 이시바 총재는 온건파로 분류된다. 2017년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두고 “한국이 납득할 때까지 사죄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보수적인 자민당 안에서 차별화된 역사 인식을 지닌 인물로 통한다.
이시바 총재는 윤석열 정부와 우호적인 관계를 지속시키려는 시도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시바 총재는 선거를 앞두고 출간한 책에서 “한일 관계가 윤석열 대통령의 명확한 리더십으로 극적으로 개선됐고, 일본에는 호기”라는 인식을 드러냈다.
하지만 새 총리의 이런 인식이 보수 파벌이 강한 자민당에서 어떤 구체적인 조치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3월 ‘과거를 묻고 미래를 중시한다’는 뜻에서 한일 관계 개선에 나섰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고강도 주문 아래 진행된 측면이 있지만, 한일 양국의 경제안보 이익에 부합하는 선택이었다. 그때 한국은 “물잔의 절반을 채웠으니 나머지 절반은 일본이 채우라”며 선제적 양보 조치를 내놓았다. 강제징용 배상금 판결에 대해 내놓은 제3자 변제안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기시다 총리마저 나머지 절반을 채우는 노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온건파로, 한국의 역사적 아픔을 이해하고, 할 말은 하는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는 이시바 총재지만 총리로서 어떤 선택을 할지는 두고 봐야 알 수 있다.
방위상을 지내며 군사 분야에 정통한 이시바 총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처럼 아시아판 다자안보협력체 결성을 주장해 왔다. 중국의 팽창을 겨냥한 것으로, 한국의 동참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사안이다. 한국은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에 나섰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은 물론이고 풀지 못한 과거사를 감안할 때 서두를 이유가 없다. 이시바 총재는 일본 헌법을 개정해 군대 보유를 명시하자는 주장도 펴왔다. 일본의 군사 대국화는 한국으로선 동의할 수 없는 일이다.
내년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앞두고 새 일본 총리가 탄생함에 따라 우리 정부도 일본 전략을 재점검할 것이다. 철저한 국익의 관점과 국민들의 역사 감정을 종합해서 냉정하게 판단해야 할 일이다. 윤 대통령의 이른바 ‘통 큰 양보’가 부적절했다는 국민 의견도 많다. 현 정부의 몇몇 인사는 대일 관계 및 과거사를 놓고 눈살 찌푸리게 하는 의견을 내 논란을 키웠다. 일본의 정권 교체기를 맞아 정부의 안정적인 상황 관리가 더 중요해졌다.
-동아일보(24-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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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차기 총리에 ‘기시다 계승’ 이시바 예정. 예측 불가 선거에 위기 빠진 한미일 ‘워싱턴 선언’, 일단 日 고개는 넘어.
-팔면봉, 조선일보(24-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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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총리 1순위로 꼽히는 이시바, 자민당 총재 선거 출사표
아베와는 역사·외교관 등 정반대
야스쿠니신사 참배 공개 반대하고 과거사 사죄 '무라야마 담화' 옹호
그간 와신상담, 절호의 기회 맞아
아베는 올들어 스캔들 3건 터지며 정권 지지율 브레이크 없이 추락
'포스트 아베' 1순위로 꼽히는 이시바 시게루(石破茂·61) 전 방위상이 오는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처음 공개적으로 밝혔다. 23일 일본 민영방송에 출연해 출마하겠다는 뜻을 자신의 입으로 명확하게 밝혔다. 오는 6월 20일 정기국회가 끝난 뒤 공식 발표를 하고, 이후 석 달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겨뤄서 9월에 승부를 보겠다는 로드맵이다.
아베 총리 입장에선 결코 반갑잖은 소식이다. 그만큼 몰려 있기 때문이다. 아베는 지난 2월부터 국내 스캔들 세 건이 한꺼번에 터져 정권 지지율이 브레이크 없이 하락 중이다. 지난주 미·일 회담 때 외교적 성과를 거둬 돌파구를 찾으려 했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 때마침 국내에서 재무성 차관이 여기자들을 상습 성희롱하다 들키는 바람에 "이 정권, 도대체 뭐냐"는 비판이 "아베 잘했다"는 칭찬을 덮어버린 측면도 있다.
아베가 이미 '위험 수역'에 들어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은 내각 지지율이 20%대이면 '위험수역'으로 보고 20%로 떨어지면 총리가 물러났다. 그런데 최근 한 민방 여론조사에서 아베 정권 지지율이 27%까지 주저앉았다(NNN방송 16일 조사). 아사히(31%)·마이니치(30%)·요미우리(39%)·NHK(38%) 조사에서도 매달 뚝뚝 떨어지는 추세다. 아베 입장에서 보면 이시바가 '하필' 이때 출사표를 던졌다.
이시바는 정치 인생을 통해 여러 차례 아베와 겨뤄왔다. 시작은 2012년 9월 총재 선거였다. 전체 당원 투표에선 이시바가 아베를 199대141로 눌렀지만 의원들만 참여한 결선에서는 아베가 이시바를 108대89로 역전했다. 이시바 입장에선 다 이기고 총리 자리를 뺏긴 셈이다.
이시바의 당내 입지가 아베만 못했던 게 원인이었다.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총리의 외손자로 태어나 한 번도 자민당을 떠난 적 없는 아베와 달리 이시바는 한때 자민당 주류에 반발해 탈당도 하고 파벌 탈퇴도 했다.
아베는 총리 관저에 입성한 뒤 이시바에게 3년 반 동안 '지방창생상'이라는 특임 각료 자리를 맡겼다. "정권을 비판하지 못하게 자기 밑에 묶어두고 고삐를 채워두려는 의도였다"고 보는 정치 평론가들이 많다. 3년 뒤 열린 다음 자민당 총재 선거 때는 아베 총리의 기세에 눌려 아예 출마 자체를 못하고, 아베가 '무투표 재선'에 성공할 때 박수만 쳤다.
이 구도가 올 들어 뒤집혔다. 재무성 관리들이 총리 부부가 낀 스캔들을 덮으려고 공문을 조작한 사실이 들통났다. 이어 총리 비서가 지자체 관리들에게 압박을 넣고 다닌 사건, 방위성이 자위대 해외 파견 기록을 줄곧 감춘 사건이 잇달아 터졌다. 차기 총재감을 묻는 NHK 조사에서 아베를 택한 응답자가 계속해서 줄고(31%→24%→23%), 이시바를 꼽은 응답자가 그 자리를 대신하면서(20%→22%→28%) 결국 역전됐다.
전문가들은 "이시바와 아베는 둘 다 보수 성향이지만 안보관만 빼고 역사관과 외교 노선은 크게 다르다"고 지적한다. 안보관은 둘 다 강성이다. 심지어 이시바가 아베보다 더하다. 이시바는 고이즈미 정권 때 방위상을 하면서 정치적 존재감을 확실히 했다. 2012년에는 '군을 보유한다'고 명기한 자민당 개헌안을 만들었다. "유사시 해외 일본인을 구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발언도 여러 번 했다.
하지만 역사관과 외교 노선은 보다 합리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군부가 폭주해 전쟁을 일으켰는데, 단지 죽었다고 그들이 모두 영령이 되는 거냐"며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일반 전몰자를 기리는 공간에 전범이 합사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우익 성향 각료가 과거사를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비판하자 "(주변국의) 오해를 사는 발언을 삼가야 한다"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문제는 당내에 적이 많은 이시바가 과연 아베 총리를 꺾을 만한 힘을 모을 수 있느냐다. 아베 총리가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을 거라는 시각도 있다. 작년 8월 자민당이 도쿄도의회 선거에 참패했을 때도 수많은 정치평론가가 "아베 정권은 여기까지"라고 했다. 하지만 두 달 뒤 총선에 압승한 사람은 야당이 아닌 아베였다.
-도쿄=김수혜 특파원, 조선일보(18-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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