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백악관에 재입성하는 날] [이번 美대선, ‘브래들리 효과’.. ]
[트럼프가 백악관에 재입성하는 날]
[ 이번 美대선, ‘브래들리 효과’ 소환하게 될까]
트럼프가 백악관에 재입성하는 날
[특파원 리포트]
지난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악수를 나누는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둘은 2018~2019년 세 차례 만나면서 '브로맨스'를 과시했지만 북핵 문제에 대해선 진전을 보지 못했다. 북핵 위협은 지금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AP 뉴시스
미국 대선이 다가올수록 트럼프가 재선(再選)돼 백악관에 발 디디는 장면을 자주 상상하게 된다. 당선 가능성 때문이 아니라 한국에 미칠 여파가 더욱 커서다.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는 그는 더 이상 눈치 볼 이유도, 자제해야 할 이유도 없다. 트럼프의 본성과 충동이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반영된 미국의 정책을 우리는 당장 마주해야 한다.
트럼프 1기 때 미국에서 근무했던 우리 당국자들은 “매일 밤이 두려웠다”고 했다. 트럼프가 새벽 2~3시까지 TV를 보면서 수시로 날리는 트윗 때문이었다. 자신을 ‘악의 대통령’ ‘늙다리 전쟁광’이라는 북의 도발에 ‘화염과 분노’ ‘핵 버튼’ ‘꼬마 로켓맨’으로 맞받았다. 20~30자 남짓한 글을 두고 전 세계 언론들이 실시간 속보와 분석 보도를 쏟아냈다. 한국 본부에서 “무슨 뜻이냐”는 전화가 빗발쳤지만 한밤중이었다. 다음 날 아침 백악관으로 달려가 고위 참모들에게 물었더니 “나라고 알겠느냐”는 답이 돌아왔다.
트럼프 재임 기간 김정은은 그와 ‘밀당’하는 법을 익혔다. 트럼프의 자존심과 불안감을 자극하는 법을 터득했다. 많은 사람이 우려하는 핵(核)실험 카드는 트럼프 취임 전까지 아낄 가능성이 크다. 취임 전후 위협 수위를 최고로 끌어올려 그를 씩씩거리게 만들려 할 것이다. “김정은과 잘 지내겠다”고 해왔던 트럼프는 표변해 분노의 ‘말 폭탄’을 쏟아낼 것이다. 약올리는 북한과 성난 트럼프 간 ‘팃 포 탯’(tit for tat·맞대응)은 브레이크 고장 난 트럭처럼 폭주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트럼프와 김정은이 다시 만나는 날 찾아올 것이다. 대선 현장에서 만난 트럼프 참모들은 하나같이 “둘은 다시 만날 것”이라고 했다. 빠르면 취임 첫해, 아니면 내후년 국내 정치가 막다른 길로 몰리면 언제든 ‘미북 회담’ 카드를 꺼내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1기 때 김정은에게 비핵화 의지가 없다는 걸 확인했다. 무슨 조건으로 다시 보겠다는 건가.
핵심 참모들은 “트럼프만이 안다”고 했다. 확실히 모르겠다는 뜻이다. 기자가 관찰한 트럼프는 미 본토를 노리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 핵 동결 등 북한의 제안을 언제든 그럴듯하게 포장해 “미국이 안전해졌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북핵을 지고 사는 한국의 안보는 후순위다. 트럼프 1기 때 최측근 인사가 “전쟁이 벌어진다고 해도 저쪽(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수천명이 죽는다고 해도 여기(미국)가 아닌 저쪽에서 죽게 될 것”이라고 했던 걸 잊어선 안 된다.
‘트럼프 2기’가 현실화되는 즉시 닥칠 수 있는 일들이다. 트럼프 취임 직후부터 단계별 상황을 가정한 시나리오를 우리 정부가 세세하게 마련해놨을 거라고 믿는다. 김정은이 트럼프를 조종하지 못하도록 한·미 소통 채널을 잘 다져야 할 것이다. 트럼프가 불쑥 들이미는 ‘거래’들에 어떤 입장을 바탕으로 대응할지도 정해놔야 한다. 당선된 뒤 생각하면 이미 늦었다.
-워싱턴=이민석 특파원, 조선일보(24-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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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美대선, ‘브래들리 효과’ 소환하게 될까
[한규섭 칼럼]
여론조사 앞서고도 실제 득표율 하락 현상
2016년 힐러리, 트럼프에게 패배로 확인
해리스, 큰 차로 앞서지 못해 재연 가능성
미국 대선이 한 달 남짓 남았다. 지정학적 이유로 한국에서도 미국 대선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정치커뮤니케이션 학자인 필자의 시각에선 이번 미국 대선의 핵심 관전 포인트는 소위 ‘브래들리 효과’로 불리는 ‘숨은 표’의 존재 여부다. 유색 인종 후보의 경우 여론조사에서 우세하다가도 실제 득표율은 다소 낮게 나오는 현상을 가리킨다. 1982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 때 여론조사는 물론이고 출구조사에서도 앞섰던 흑인 후보 톰 브래들리 로스앤젤레스 시장이 개표 결과 1.2% 차로 경쟁 백인 후보에게 패배한 데서 유래됐다.
뜬금없이 왜 브래들리 효과인가. 이번 선거가 바이든이 트럼프를 여유있게 이겼던 2020년보다는 힐러리 클린턴이 전국 투표수에서 앞서고도 주별 선거인단 수에서 트럼프에게 뒤져 패배했던 2016년 대선과 더 닮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표적 데이터저널리즘 기관 파이브서티에이트(FTE)에서 조사기관 바이어스 보정 후 추정하는 전국 단위 조사의 지지율을 보면 9월 28일 현재 약 3.2%포인트 차로 해리스(51.6%)가 트럼프(48.4%)에게 앞서고 있다.
2016년 트럼프가 클린턴에게 전국 투표수에서 2.1%포인트 차로 지고도(45.9% 대 48.0%) 선거인단 수에서 이겨 당선됐을 당시 필자가 전국 단위 여론조사 지지율 격차를 추정한 결과를 보면 클린턴이 2.4%포인트 앞섰다. FTE 기준으로는 3.6%포인트 차였다. 딱 지금 정도다. 반면 바이든이 트럼프를 이겼던 2020년 선거 한 달 전 두 후보 간 차이는 필자의 분석에서는 약 6.7%포인트, FTE 기준으로는 7.4%포인트였다. 단순 지지율 차이만 보아도 이번 선거는 2020년보다 2016년 선거와 더 닮았다. 심지어 2020년에도 실제 득표율 차이는 4.4%포인트(51.3% 대 46.9%)로 여론조사보다는 작았다는 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미국 대선에서 중요한 것은 각 후보가 확보한 주 단위 선거인단 수다. 필자는 주별 여론조사를 취합해 조사 숫자가 충분한 곳은 시계열로 예측하고 부족한 경우는 가장 최근 조사 결과로 트럼프와 해리스의 주 단위 지지율을 추정했다. 최근 지지율 조사가 없는 주는 이미 큰 격차가 나는 곳들이어서 좀 지난 결과라도 예측이 많이 빗나갈 가능성은 낮다. 이렇게 추정한 주별 지지율을 기반으로 통계적 시뮬레이션을 통해 각 주의 후보별 승리 확률을 계산하고 해당 주의 선거인단을 이 확률에 따라 나누는 방식으로 두 후보가 얻을 총 선거인단 수를 추정했다.
분석 결과 28일 현재 281(해리스) 대 257(트럼프)로 해리스가 불과 24명 차이의 우위를 보였다. FTE가 내놓은 283 대 255(28명 차이)와 거의 비슷한 결과다. 문제는 필자가 2016년 대선을 한 달 앞둔 시점에서 동일한 분석을 실시했을 때는 78명 차이(308 대 230)로 지금보다 두 후보 간 차이가 훨씬 커 선거인단 수에서도 클린턴의 낙승이 예상됐다. 당선 확률도 클린턴 94.9%, 트럼프 5.1%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선거 결과는 232 대 306으로 오히려 트럼프의 완승이었다.
이런 예측 실패는 약간의 ‘샤이 트럼프’ 현상 때문이었다. 당시 주별 여론조사가 트럼프 후보의 지지율을 1.5∼2%포인트 정도 과소 추정했다고 가정하고 시뮬레이션을 다시 해 보면 바로 승자가 뒤바뀌었다.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현재 나온 주별 여론조사들이 트럼프 지지율을 약 1.5∼2.0%포인트 과소 추정하거나 해리스 지지율을 비슷한 정도로 과대 추정했다고 가정하고 다시 시뮬레이션을 실시하면 바로 승자가 뒤바뀌는 결과가 나왔다. 반면 2020년 대선에서는 158명 차이(348 대 190)로 바이든의 승리가 예상됐고 트럼프 지지율이 약 3.5∼4.0%포인트 과대 추정되었다고 가정해야 승자가 뒤바뀔 수 있었다. 따라서 현재 상황은 2020년보다는 2016년 대선 때와 비슷한 것으로 보이며 약간의 ‘브래들리 효과’만 있어도 트럼프 당선이 현실이 될 수 있다.
‘브래들리 효과’가 나타날까. 사실 해리스는 자메이카 출신 흑인인 부친도 스탠퍼드대 경제학 교수였고 부모의 이혼 후에는 인도계 과학자인 모친을 따라 캐나다에서 성장했다. 그러다 보니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흙수저’ 출신도 아니면서 유색인종 우대정책의 수혜자가 된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특히 20대 후반 주 검찰 재직 당시 30년 이상 연상인 거물 흑인 정치인 윌리 브라운 전 샌프란시스코 시장과 교제했던 점도 과도한 출세지향적 성향으로 비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피로도가 상당하다. 하버드대, 펜실베이니아대 등의 총장 줄사퇴 사태에서도 잘 드러난 바 있다. 이번 미국 대선은 2016년의 데자뷔가 될까.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동아일보(24-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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