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國史-文化]

[한강 노벨문학상, 한국 문화의 새 역사] ....

뚝섬 2024. 10. 11. 09:16

 

 

[한강 노벨문학상, 한국 문화의 새 역사]

[“강렬한 시적 산문” 한강 노벨 문학상 수상]

[亞 여성 첫 수상 뒤엔 번역의 힘… 작품 낸 佛출판사 "언젠가 받을 거라 확신"]

[상실의 고통 앞에 인간을 묻다… 변방인 한국어 문학, 세계 중심으로 진입]

[북녘 땅의 '솔제니친']

["거지 시체 밟고 넘으며... " 詩로 '북한의 지옥' 폭로]

[북한 실상 비판 소설, 영국서 번역상]

[노벨문학상]

 

 

 

 

한강 노벨문학상, 한국 문화의 새 역사 

 

소설가 한강이 2016년 맨부커상을 받고 국내에서 기자회견을 하고있다./AFP 연합뉴스

 

소설가 한강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한씨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 문학의 높은 수준을 세계 최고 권위의 문학상을 통해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한씨 개인의 영예일 뿐 아니라 국가적 쾌거이기도 하다. 이로써 노벨문학상 수상자 배출이라는 한국 문학의 오랜 숙원이 풀리게 됐다. 한·중·일 동아시아 3국 가운데 유일하게 노벨 문학상을 받지 못한 나라에서도 벗어났다.

 

한강은 우리 작가들 가운데 노벨문학상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유럽에서 가장 잘 알려진 작가다. 2016년 ‘채식주의자’로 노벨문학상·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영국 맨부커상을 수상했고, 지난해에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하나인 메디치상을 수상하며 한국 작가 중 노벨문학상에 가장 가깝게 다가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여기에는 한강 자신의 문학적 역량이 가장 크게 작용했겠지만, 한국을 노벨문학상 수상 국가 반열에 올리기 위해 한국문학번역원과 대산문화재단 등이 번역 지원을 통해 우리 문학을 꾸준히 세계에 알려온 공도 컸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개인의 영광을 넘어 문화 강국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 문학 작품을 읽고자 하는 세계 각국 문학 독자들의 주목을 받으며 한국 문학 시장의 규모를 전에 없이 키우고, 한국 문학 국제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 분명하다. 일본과 중국 문학도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세계 시장에 본격적으로 뻗어나갈 수 있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나라들의 선례에서 볼 수 있듯, 우리 문학 작품이 영화와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으로 제작되는 파급 효과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한국 문화에 대한 세계의 관심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뜨겁다.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의 K팝에 열광하고, ‘기생충’ ‘오징어 게임’ 등 한국 영화와 드라마는 아카데미상과 에미상의 주인공이 됐다.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등 글로벌 OTT는 한국인 감독이 만들거나 배우가 출연하고 한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여기에 한국 문학도 가세하며 한국은 명실상부 대중문화뿐 아니라 문학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돋움하게 됐다. 한반도 역사에 일찍이 없었던 큰 성취가 이어지고 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듭 축하한다.

 

-조선일보(24-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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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시적 산문” 한강 노벨 문학상 수상

 

소설가 한강(54)이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스웨덴 한림원은 10일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생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한 작가는 역대 121번째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며, 여성으로는 18번째, 아시아 여성 작가로는 최초의 수상자다. 아시아 작가로는 인도 타고르(1913년), 일본의 가와바타 야스나리(1968년)와 오에 겐자부로(1994년), 중국 소설가 모옌(2012년)에 이어 5번째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동안 한국 작가들은 노벨 문학상과 거리가 멀었던 것이 사실이다. 올해도 그를 포함해 한국 작가들 중 누구도 유력 수상 후보로 거론된 이가 없었다. 하지만 한 작가는 8년 전부터 해외 유력 문학상을 휩쓸며 해외 문단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16년엔 ‘채식주의자’로 세계 3대 문학상인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하면서 세계 문단에 이름을 알렸다. 이듬해인 2017년 ‘소년이 온다’로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 2018년 ‘채식주의자’로 스페인 산클레멘테 문학상을 연이어 수상했고, 지난해엔 ‘작별하지 않는다’로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받으며 세계적인 작가로 명성을 얻었다.

 

한 작가는 1987년 47세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러시아 출생 미국인 조지프 브로드스키 이후 역대 가장 젊은 수상자다. 올해로 등단 31년이 된 그가 작가로는 이른 나이에 노벨상을 수상한 것은 그의 소설이 문화의 벽을 뛰어넘어 독자들에게 신선하되 보편적인 체험을 선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표작인 ‘채식주의자’는 트라우마를 지닌 여성이 극단적인 채식으로 폭력을 거부하는 이야기다. 시와 산문, 연약함과 잔인함, 아름다움과 기괴함이 강렬한 조화를 이룬다. 혁신적인 스타일로 문학의 지평을 넓힌 것은 그의 작품이 널리 읽히는 이유이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비결일 것이다.

한 작가는 특히 한국 현대사의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인류 보편의 주제인 폭력성에 천착해 왔다. ‘소년이 온다’(2014년)에서는 광주 5·18민주화운동, ‘작별하지 않는다’(2021년)에서는 제주 4·3사건을 배경으로 인간의 폭력성과 그로 인한 상처를 집요하고 아름답게 헤집어 보였다. 한 작가는 “역사 속에서 일어난 일을 다룬다는 것은 폭력의 반대편에 서겠다는 맹세이자 인간 본성에 대해 질문하는 일”이라고 했다. 이 역시 그의 작품이 세대와 언어를 가로질러 보편적인 울림을 주는 요인이다.

한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에는 음지에서 한국문학 세계화에 힘을 발휘한 번역도 작지 않은 기여를 했다. 그가 세계에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된 작품 ‘채식주의자’는 민간 문화재단의 번역 지원을 통해 영국에서 출판될 수 있었다. 한국문학이 뛰어난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만큼 세계 독자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것은 여전히 부족한 번역 인프라 탓이 크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번역 부문에 대한 지원이 확대되기를 기대한다.

한 작가의 깜짝 수상 소식을 들으며 2020년 한국 영화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4관왕에 올랐던 기억이 떠올랐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코로나 시절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클래식계에선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임윤찬을 비롯해 신예 음악가들이 유수의 콩쿠르상을 휩쓸고 있고, BTS 뉴진스 블랙핑크 등 케이팝의 선전은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분단의 아픔을 이기고 상상해낸 한국의 이야기와 음악이 세계인을 위로하는 시대다. 한 작가는 “상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의 수상 소식에 감정이 벅차오르지 않을 수가 없다.

 

-동아일보(24-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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亞 여성 첫 수상 뒤엔 번역의 힘… 작품 낸 佛출판사 "언젠가 받을 거라 확신"

 

노벨문학상 어떻게 가능했나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

 

지난 120여 년간 노벨문학상의 영토에서 한국은 ‘아시아의 변방’이었다. 일본은 가와바타 야스나리(1968), 오에 겐자부로(1994), 가즈오 이시구로(2017·국적은 영국) 등 세 수상자를 배출했고, 중국은 가오싱젠(2000·국적은 프랑스), 모옌(2012) 등 두 수상자를 배출했다. 한국은 시인 고은, 소설가 황석영 등이 2000년대 초부터 유력 후보로 외신에 등장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제대로 된 영어 번역서가 드물고, 일본·중국 등에 비해 국제사회 인지도가 낮기 때문이라는 것이 문단과 출판계의 중론이었다. 그 ‘번역의 장벽’은 지난 2016년 한강이 소설 ‘채식주의자’로 맨부커 인터내셔널 문학상을 받으면서 처음 무너졌다.

 

이는 한국의 국력이 성장하고, K팝, K드라마 등으로 ‘문화적 영토’를 글로벌하게 확장한 것과 연관이 깊다. 당시 28세로 한국어를 공부한 지 6년 만에 ‘채식주의자’를 영역해 한강과 함께 맨부커상을 공동 수상한 영국인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는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한국 문학은커녕, 한식을 먹어본 적도, 한국인을 만난 적도 없었지만 한국이 상대적으로 부유한 선진국인 것으로 보아 한국 문학계가 활발할 것으로 짐작해 한국 문학 번역가가 되기로 했다”고 밝혔다. 문학평론가 정명교 연세대 명예교수는 10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스미스가 ‘채식주의자’를 굉장히 서양인의 문학적 취향에 맞게 번역한 것은 확실하다. 식물이 되고 싶어하는 여인과 처제의 몸에 페인트칠하고 싶어하는 탐미주의자의 대립을 번역가가 효과적으로 대비시켰다고 했다.

 

한강은 이후 2017년 ‘소년이 온다’로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을 받았고, 2018년엔 스미스가 번역한 소설 ‘흰’으로 다시 맨부커상 최종심 후보에 올랐다. 지난해엔 장편 ‘작별하지 않는다’로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하나인 메디치상을 받았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펴낸 프랑스 출판사 그라세의 조아킴 슈네프 편집자는 10일 언론에 “언젠가 한강이 노벨상을 받을 거라고 확신은 했지만 오늘이 그날이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문학평론가 서영채 서울대 교수는 “한강의 노벨상 수상은 큰 관점에서 보자면 ‘K’라 불리는 한국 전체 문화력의 향상 덕이라 할 수 있다. 한류 팬들이 한국을 알리기 위해 한국 문학에 접근하고 발견해 자기 문화권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그렇지만 그간 많은 노력을 해온 한국문학번역원의 힘이 간과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곽아람 기자, 조선일보(24-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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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고통 앞에 인간을 묻다… 변방인 한국어 문학, 세계 중심으로 진입 

 

이광호 문학과지성사 대표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변방의 언어인 한국어 문학이 세계문학의 중심으로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이다. 오랫동안 세계문학은 서구-남성-백인-거대 서사를 중심으로 움직여 왔다. 상대적으로 동양-여성-여성 언어는 비주류에 속했고, 더욱이 한국어는 세계 보편의 언어의 장에서 주변부에 속한 것이어서 ‘번역’이라는 어려운 매개의 과정이 필요했다. 한국어 문학을 세계문학의 보편 언어로 번역해낼 수 있는 유능한 번역자들의 출현은 이번 수상에 크게 기여한 부분이겠지만, 그런 번역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매력을 한국문학이 가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세계문학의 중심이 아시아의 여성 언어에 주목하고 있는 것은 최근 몇 년간의 중요한 흐름이었다. 아시아 여성은 지역적으로 그리고 젠더적으로 이중으로 주변화되어 있어서, 세계문학에서 아직 평가받지 못했던 인간과 역사에 대한 새로운 언어와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강 작가는 계간지 ‘문학과사회’를 통해 시인으로 문학에 첫발을 디뎠다. 한강 작가의 문학적 출발이 시 장르였다는 것은, 소설 작품 속에서도 드러나는 시적 상상력의 근원을 짐작하게 한다.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에 드러난 시적 감성은, 작가의 소설 문법에도 스며들어 있다. 상처와 사랑에 대한 정밀한 감수성을 보여준 ‘여수의 사랑’ 등 단편소설을 통해 작가는 소설의 영역에 진입했으며, ‘노랑무늬영원’에까지 이르는 작가의 뛰어난 단편들은 한국 단편 미학의 최전선에 있는 것이었다. 한강 작가의 지속적인 관심은 인간의 아름다움과 고통이었고, 남성 서사에서의 익숙한 소설적 화법을 넘어서는 글쓰기로 문학화되었다. 소설 ‘채식주의자’가 남성적인 제도적 폭력에 대한 식물성의 저항의 보여주는 것이었다면, ‘바람이 분다, 가라’는 미스터리한 서사를 통해 여성들의 사랑의 역사를 드러내고 있으며, ‘소년이 온다’는 그런 상상력이 광주라는 역사적 트라우마와 만나 한국소설에서 예외적인 고통의 언어를 보여주었다. 최근작 ‘작별하지 않는다’는 그 고통의 언어가 제주라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현재적인 아픔으로 환기시키면서 문학적 애도의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낸다.

 

“세상은 왜 이토록 아름다우며 동시에 잔인한가. 상실과 고통 앞에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나”라는 한강 작가의 오래된 질문은, 이제 한국문학 안에서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보편성을 갖는 질문이 되었다. 이번 수상에는 그동안 한국 콘텐츠가 세계문학에서 보여준 매력과 한국의 여성문학이 세계문학에서 드러낸 역량과 성취들이 뒷받침 되었을 것이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문학 그리고 한국문화가 대중문화 너머의 예술적 영역에서 동시대의 세계 무대에 서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중의 화법이 아닌 독창적인 언어로 구성된 한강의 문학은 한국문화가 고급 문화의 영역에서도 이미 세계적인 레벨에 도달해있음을 드러내준다. 한국문학에는 ‘노벨문학상 콤플렉스’라는 주변부 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결정적인 역사적 계기가 만들어졌다. 동시대 세계인의 주목 안에서 한국문학은 그 창의적 다양성을 폭발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제 ‘한강’이라는 익숙한 고유명사는 한국문학의 고유성이 동시대의 세계인과 연결되는 놀라운 상징이 되었다.

 

-이광호 문학평론가·문학과지성사 대표, 조선일보(24-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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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땅의 '솔제니친'

 

'댁에 매화가 구름같이 피었더군요.…어쩌면 그렇게도 소담스런 희멀건 꽃송이들이 소복한 부인네처럼 고요하게 필 수가 있습니까.' 이 아름다운 산문을 쓴 월북 예술인 김용준의 비극적 최후를 떠올리면 가슴 아프다. 그는 1967년 평양에서 자살했다. 김일성 초상화가 실린 신문을 집 앞에 버린 게 알려지자 처벌받을 게 두려워서였다고 한다. 고고한 품격의 화가·문필가였던 그가 공산 전체주의 사회 실상을 모른 채 북으로 올라간 것부터가 불행의 시작이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쓴 시인 백석은 또 어떤가. 토속 모국어의 맛을 절정의 경지에 끌어올린 그는 월북 후 북한 체제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데 동원됐다. 그러나 낭만적, 예술지상주의적 성향이 끝내 문제 돼 집필을 금지당했다. '순결한 영혼의 시인'으로 불렸던 그는 압록강변 집단 농장으로 추방된 후 일이 서툴러 주변의 놀림을 받았다. '조선의 체호프'였다던 소설가 이태준도 있다. 그는 반동작가로 몰려 숙청됐고, 다섯 자녀마저 철저히 망가진 인생을 살아야 했다. 

▶하긴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도 스탈린 치하에 살았다면 인간과 역사를 그렇게 깊이 있게 파고든 걸작들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자유와 개성이 생명인 예술은 문예를 이념의 도구나 하수인쯤으로 여기는 공산주의와 애초부터 함께하기 어려운 것인지 모른다. 소련 문학이 바깥세상 평가를 받기 시작한 것은 솔제니친이 스탈린 독재의 만행을 고발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수용소 군도'를 발표하면서다.

▶3년 전 북한 세습 독재의 비인간성과 주민의 처참한 생활상을 폭로한 소설집 '고발'로 '북한의 솔제니친'으로 불리는 반디의 시집이 3월 말 국내 처음 출간된다고 한다. '반디'는 필명이며, 현재 북한에 생존해 있는 60대 후반 작가로 알려졌다. 그의 실재(實在)를 확인할 길은 없다. 그러나 관계자들은 "북한을 그리는 솜씨가 흉내 낼 수 없는 수준으로 보아 북한 A급 작가일 것"이라고 한다. '지옥에서 부르는 노래'에 실린 50편의 시에는 김씨 왕조의 횡포에 대한 분노와 동포에 대한 연민이 가득하다. '굳어진 거지 시체 밟고 넘으며/생활전선 대군이 아우성치는/아 신성천역 공산주의 종착역'.

▶스탈린의 소련이 그랬듯 북한은 문학과 예술을 하려면 숨어서라도 목숨 걸고 저항하고 맞서야 하는 사회다. 반디의 꿋꿋한 대결을 보며 김용준·백석·이태준의 배반당한 순정을 생각한다. 우리 지식인들은 민족을 자주 얘기하면서 북한 정권의 탈선과 동포들의 비참한 처지를 고발하는 데는 왜 인색한 건가.
 

-김태익 논설위원, 조선일보(17-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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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시체 밟고 넘으며... " 詩로 '북한의 지옥' 폭로

 

-현역 北작가 추정 반디, 이르면 내달 첫 시집...

북한의 솔제니친, 이번엔 詩로 '지옥'을 폭로.. 北현실 냉정한 묘사

-누런 원고지에 연필로 詩 50편
'배뚱뚱이 金부자놈, 천하 왕도적' '굳어진 거지 시체 밟고 넘으며' '성분타령 없인 학급장 못해먹어'

-소설집 '고발' 해외서 좋은 반응
호기심보다 작품 문학성에 주목
美 등 20개국 18개 언어로 번역… 국내선 13일 한글 개정판 나와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소속으로 북한 현역 작가로 알려진 '반디'의 첫 시집이 이르면 3월 말 출간된다. 반디는 '반딧불이처럼 북한의 어둠을 밝히겠다'는 의지가 담긴 필명(筆名)으로 탈북자 등을 통해 밀반출한 단편 7편을 묶은 소설집 '고발'이 2014년 한국에서 출간되면서 국내외로부터 '북한의 솔제니친'으로 집중 조명된 바 있다. 반디의 시가 공개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반디의 시집‘지옥에서 부른 노래’와 소설집‘고발’원고 묶음. 반출 당시 적발을 피하기 위해 김일성·김정일 저작집 사이에 숨겨 나왔다고 한다. 원고지 원본 사진은 작가의 필체 노출 등을 우려해 공개하지 않았다. /행복한통일로

 

시는 모두 50편으로 북한 내 궁핍과 그로 인한 인간 존엄성 파괴, 봉건제적 폐단 등을 꼬집는다. 반디가 직접 손으로 쓴 시집의 원제는 '지옥에서 부른 노래'. 시들은 질 낮은 누런 원고지에 연필로 쓰였다. 원고를 2013년 처음 입수한 도희윤 행복한통일로 대표는 "탈북하다 중국 변방대에 붙잡힌 한 여성으로부터 반디 작가의 존재를 전해 듣고 중국의 지인을 통해 원고를 받았다"며 "북한에선 제대로 된 펜과 종이를 구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디는 1950년대생으로 현재 평양 인근에 거주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확실한 신원은 파악되지 않는다. 통일부는 "검증할 방법이 없다"는 입장. 반면 국제PEN망명북한작가센터 관계자들은 "북한을 그리는 솜씨가 흉내 낼 수 없는 수준"이라며 "A급 북한 작가의 작품이 틀림없다"고 평가하고 있다. 도 대표는 "최근 소식통을 통해 반디 작가의 생존 사실을 확인했다"며 "북한 내부에서도 처절한 싸움을 계속하는 저항 세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시집에서 눈에 띄는 작품은 '신성천역(新成川驛)'. 3연으로 나뉜 9행짜리 짧은 정형시다. '따기군(소매치기)의 칼날에 낟알짐(곡식이 담긴 짐) 찢긴/ 녀인의 통곡소리 내 가슴도 찢는/ 아 신성천역 공산주의 종착역.' 신성천역은 평안남도 성천군에 있는 기차역으로 북한의 주요 물류 기지다. 이곳에서 목격한 인민의 곤궁한 일상을 통해 체제의 기만을 폭로한다. 도 대표는 "시의 성격이 작품 전체를 대표해 '신성천역'을 시집 표제로 삼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했다.

 

시 '성분타령 없이야'는 혈통과 가족의 공과(功過)가 사회적 위치를 결정 짓는 북한의 봉건적 신분 세습을 꼬집는다. '성분타령 없이야/ 내가 학급장 어찌 해먹어/…/네 할애빈 악질지주 네 아버진 대 브로카(밀무역 중개상)/네 삼촌은 반공단 네 사촌은 치안대였지.' 작가의 화살은 북한 독재자 김 부자(父子) 3대로 향한다. '성분타령 없이야/ 쟤넬 우리가 어찌 다스려/…/내 할애빈 백두혈통 내 아버진 락동강 핏줄/ 내 외켠(외가)은 피살자 내 처켠(처가)은 렬사자야.' 비판의 수위는 과감하다. 시 '오적타령'은 '이 도적놈 저 도적놈 그 중에도 왕도적은/ 배뚱뚱이 김 부자놈 천하제일 명적이라/ 온 나라의 공장 농촌 한엉치에 깔고 앉아/ 백주에도 뚝뚝 뜯어 제 맘대로 탕진한다'고 직격탄을 날린다.

최근 반디의 작품은 해외에서 더 큰 반응을 얻고 있다. 해외 판권을 담당하는 KL매니지먼트 이구용 대표는 "'고발'은 프랑스·일본·포르투갈·미국 등 20개국 18개 언어로 번역됐다"며 "북한 작가의 작품이라는 호기심보다 작품이 지닌 문학성에 더 주목한다"고 말했다. 지난달엔 한강 소설 '채식주의자' 번역으로 맨 부커상을 받은 데버러 스미스(29)가 '고발'을 번역해 영국 작가 단체 '펜(PEN)'이 주는 번역상을 받기도 했다. 프랑스 번역판 발문을 쓴 피에르 리굴로 사회역사연구소장은 "반디의 글은 저항의 신호이며 전 세계를 향한 부르짖음"이라 평했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 짧은 북한 이야기가 국제적 스파크를 일으키고 있다"고 했다. 국내에선 출판사 다산북스가 '고발'을 첫 출간했던 조갑제닷컴에서 판권을 구매해 오는 13일 개정판을 출간한다. 3월 28일부터 나흘간 행복한통일로 주최 국제 콘퍼런스가 열려 15명의 해외 인사가 방한해 반디의 작품을 토론한다.

 

-정상혁 기자, 조선일보(17-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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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실상 비판 소설, 영국서 번역상

 

北 반체제 작가 반디의 '고발'… '채식주의자' 데보라 스미스 번역 

 

북한에서 활동하는 반체제 작가 반디의 작품들.

 

'북한의 솔제니친'으로 불리는 익명의 북한 작가 반디의 단편집 '고발(The Accusation)'이 영국에서 번역상을 받았다고 미국의소리(VOA) 방송이 18일 보도했다.

VOA는 영국 작가 단체인 펜(PEN)이 북한 현역 반체제 작가 반디가 쓴 단편 소설집 '고발'을 지난해 하반기 펜 번역상 수상작 가운데 하나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번역해 지난해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은 데보라 스미스가 이 책을 영문으로 번역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디는 현재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다. 북한 체제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풍자한 원고를 중국을 통해 밀반출했다.

그의 원고는 2014년 서울에서 단편모음집 '고발'(조갑제닷컴)로 출간됐다. 반디라는 필명에는 반딧불이처럼 북한의 암흑을 밝히려는 작가의 의지가 담겨 있다고 한다. 탈북민들이 남한에 와서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작품을 펴낸 경우는 있었지만 북한의 현역 작가가 반체제 작품을 출판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어서 큰 관심을 받았다.

해외 문학작품의 출판을 장려하기 위해 2012년 제정된 펜 번역상은 매년 두 차례에 걸쳐 뛰어난 문학성을 갖춘 번역도서를 선정해 시상하고 있다.

 

-김명성 기자, 조선일보(17-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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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노벨 문학상이 올해도 우리를 비켜갔다. 한때 수상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지난 몇 년간은 자포자기 상태였다. 그래서인가. 최근 들어 노벨 문학상에 연연하지 말자는 주장이 번지고 있다.

노벨 문학상 강박증에서 벗어나자고 하는 이들은 "문학은 즐기면 될 뿐이지 웬 상 타령이냐"고 한다. 이런 주장은 영국·프랑스 같은 문학 선진국에서 우리보다 더 많이 한다. 한강 연작소설 '채식주의자'를 영어로 번역해 올해 맨부커상을 받은 데버러 스미스도 지난 6월 방한했을 때 "한국의 노벨 문학상 집착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많은 이가 그의 말에 공감했다. 하지만 필자는 스미스가 그 말을 했을 때 영국이 그간 받은 노벨 문학상 수를 떠올렸다. 무려 9개다. 우리도 9개쯤 받으면 그런 말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노벨상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말은 작가들도 한다. 프랑스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설가 르 클레지오와 파트리크 모디아노도 "상을 받기 위해 작품을 쓴 적 없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작가를 가진 프랑스는 이 상을 15번이나 받았다.

"노벨 문학상에 집착하지 말고 문학 자체를 즐기자"는 말은 그 상을 한 번이라도 받고 나서 해도 늦지 않다. '노벨 문학상 강박'에 대한 지적은 이솝 우화의 '여우와 신 포도'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어차피 받지 못할 상이니 맛없는 신 포도 취급 하는 것 같아 떳떳하지 못한 느낌이다. 백번 양보해 작가나 독자가 '상보다 작품'이라 주장할 수는 있다. 하지만 국가 차원의 인식은 달라야 한다. 문학에는 개인이 즐기는 예술 측면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문학은 출판·영화·애니메이션 종사자가 먹고사는 스토리 산업의 기반이다. 스토리 산업 육성에 노벨 문학상이 기여할 효과를 결코 포기해선 안 된다.

지난봄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 이후 경험한 고무적 현상을 우리는 기억한다. 영국에선 많은 이가 이 상을 통해 한강의 소설을 읽고 한국 문학을 주목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한강의 또 다른 작품 '소년이 온다'를 스미스가 번역하자마자 출간 소식을 주요 뉴스로 전했다. 영어로 번역된 한국 소설에 그런 대접은 낯선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고사(枯死)해가던 문학 시장에 다시 생기가 돌았다. 교보문고 조사에선 지난여름 소설 판매가 전년 동기 대비 두 배로 늘었다. 노벨 문학상은 그보다 더한 효과를 국내외에서 일으킬 게 분명하다.

어떤 이들은 무라카미 하루키나 조앤 롤링의 신작이 나올 때마다 서점 앞에서 밤샘하는 열혈 독자가 우리에겐 없다고 지적한다. 그러고서 무슨 노벨 문학상이냐고 한다. 이 지적이 맞는다면 한국이 노벨 문학상을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스웨덴 한림원이 수상 조건으로 각국의 문학 사랑 실태를 내걸었다는 말은 들은 적 없다. 수상 가능성을 높이는 직접적 수단은 좋은 작품과 심사위원 눈을 사로잡을 번역이다. '채식주의자'에 대해 "놀라운 번역에 의해 이 기묘하게 빛나는 작품이 영어로 제 목소리를 완벽하게 찾았다"는 보이드 턴킨 맨부커상 심사위원장의 말은 수상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이 번역임을 웅변한다. 우리도 좋은 작가와 작품이라는 구슬은 충분하다. 이 구슬을 꿰어 보배로 만들 수 있도록 정부는 질 좋은 번역을 위한 투자에 집중해야 한다. 노벨 문학상은 신 포도가 아니다.

-김태훈 여론독자부장, 조선일보(1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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