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 안 세 살 아기] [이스라엘-레바논의 '블루 라인'… ]
[감옥 안 세 살 아기]
[이스라엘-레바논의 '블루 라인'… 분쟁 막으려 그은 비공식 국경]
감옥 안 세 살 아기
시리아를 철권통치해온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가 오랜 내전 끝에 축출되며 정치범 수용소에 갇혔던 이들이 풀려나고 있다. 그간 묻혀 있던 숱한 비극적인 사연도 세상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고문과 처형 수법이 너무 잔인하고 엽기적이어서 도저히 관련 사진을 볼 수가 없다고 한다. 지하 감옥이 너무 거대해 콘크리트를 부수며 수색을 하지만 전모를 알기 어려울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행방불명자들의 귀환 소식도 이어진다. 고문으로 신체가 훼손된 채 수십 년 갇혀 있던 이들이 가족과 만나 부둥켜안고 통곡한다. 지하 감옥에 40여 년 갇혔던 사람은 모든 기억이 사라졌고 말할 수 있는 게 자기 이름밖에 없었다.
▶끝내 가족을 못 만나는 이들도 많다. 리비아에서 영국으로 망명한 작가 히샴 마타르가 쓴 논픽션 ‘귀환’에는 카다피 통치 시기, 정치범 수용소에서 사라진 가족을 찾지 못해 애태우는 이들의 사연이 실려 있다. 정치범이었던 마타르의 아버지가 갇혀 있던 수용소에서 1996년 1000명 넘게 학살당했다. 마타르의 아버지는 사망자 명단에 없어 ‘실종’ 처리됐다. 마타르는 “지금도 아버지를 찾아 헤매고 있다”고 했다.
▶시리아 뉴스 중에서도 3세 아기가 수용소에서 발견된 것은 충격이었다. 엄마 품에 있어야 할 아기가 어른도 견디기 힘든 곳에서 발견되다 보니 “수감된 여성이 간수에게 성폭행당해 낳은 아이일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이 추측을 들으면서 영화 ‘그을린 사랑’이 떠올랐다. 1970~80년대 레바논 내전 당시의 비극을 다룬 영화다. 한 여자가 내전 통에 어린 아들과 생이별하면서 수십년 뒤 만나도 알아볼 수 있도록 아들 발목에 문신을 새긴다. 훗날 여자는 정치범으로 투옥된 감옥에서 간수에게 성폭행당해 쌍둥이 남매를 낳는다. 나중에 석방된 여자가 남매와 함께 캐나다에서 살다가 그 간수를 우연히 목격한다. 그런데 그 간수의 발목에 자신이 새긴 문신이 있었다. 이 참혹한 현실에 여자는 절망한다.
▶‘그을린 사랑’에서 여자는 죽음이 다가오자 간수였던 아들 앞으로 편지 두 통을 남긴다. 한 편지엔 그에게 사랑한다고 했고 다른 한 통엔 용서한다고 썼다. 쌍둥이 남매에겐 ‘함께하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는 유언을 남겼다. 그녀는 비극으로 맺어진 자기 아이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길 바랐다. 간수 아들은 어머니 무덤 앞에서 참회한다. 알아사드 시대는 끝났지만 시리아의 비극이 끝난 것인지는 모른다. ‘그을린 사랑’과 ‘귀환’에 그려진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기원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4-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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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레바논의 '블루 라인'… 분쟁 막으려 그은 비공식 국경
작년 10월 이스라엘 공격에 사망한 동료의 장례식에 참석한 헤즈볼라 대원들이 깃발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어요. /AP·신화 연합뉴스
이스라엘과 레바논 남부에서 활동하는 친(親)이란 무장 단체 헤즈볼라가 지난달 27일부터 휴전에 들어갔어요. 전쟁이 시작된 지 416일 만에 성립된 임시 휴전이에요. 양측은 60일 동안 서로 공격하지 않기로 약속했답니다. 하지만 임시 휴전에 돌입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이들은 서로 로켓 공격을 주고받으며 곧바로 다시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죠. 휴전을 중재한 미국과 프랑스는 ‘휴전이 깨진 것은 아니다’라고 했지만, 국경 인근 주민들은 다시 피란길에 오르는 등 혼란이 계속되고 있어요.
둘 사이에 평화가 찾아올 수 있을까요.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분쟁은 1980년대부터 시작됐어요. 오늘은 이 둘이 왜 싸우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기독교도가 세운 레바논
둘의 관계를 이해하려면 먼저 이스라엘과 붙어 있는 레바논의 역사부터 알아야 해요. 이스라엘이 남쪽에, 레바논이 북쪽에 있지요. 레바논은 원래 시리아의 한 지역이었어요. 프랑스는 1920년부터 시리아를 지배했는데, 레바논엔 중세 십자군 전쟁 때부터 프랑스를 도운 ‘마론파’ 기독교인들이 살고 있었어요. 마론파는 시리아에서 태동한 기독교의 한 교파예요. 이들은 시리아를 지배하는 프랑스의 믿음직한 친구였죠. 프랑스어에도 능통했고요.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당시 마론파 기독교도들은 프랑스에 기독교인들이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어요. 그래서 프랑스는 이들을 위해 레바논이라는 나라를 세우기로 하지요. 하지만 당시 마론파 기독교인이 많이 살았던 레바논산맥 북부 지역으로만 한 나라를 만들기는 어려워 인근 지역도 새 국가 영토로 포함했어요. 그러면서 마론파 기독교인뿐 아니라 무슬림을 포함한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도 새로운 나라의 국민이 된 거죠.
레바논은 1943년 독립하면서 종교별 인구 비율에 따라 권력을 나눠 갖기로 해요. 인구조사를 거쳐 기독교와 무슬림 국회의원 비율을 6대5로 정했지요. 그리고 대통령은 마론파 기독교인이, 총리는 수니파 무슬림이, 국회의장은 시아파 무슬림이 맡기로 했답니다.
1980년대 시작된 분쟁
레바논은 이후 평화를 유지했어요. 그런데 1970년대 요르단에서 활동하던 PLO(팔레스타인 해방 기구)가 본거지를 레바논 남부로 옮기며 평화가 깨지고 맙니다. 레바논의 무슬림들은 종교가 같은 PLO를 환영했지요. PLO가 레바논 남부에서 이스라엘 공격을 이어가자, 이스라엘은 1982년 레바논을 침공하게 됩니다.
지난 10월 레바논 베이루트 남부의 주거 지역 건물들이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파괴돼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어요. /AP·신화 연합뉴스
이때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인 이란은 이스라엘을 막고자 레바논 남부의 시아파 무슬림들을 규합해 헤즈볼라(Hezbollah)를 만들었지요. 헤즈볼라는 이슬람 경전 코란의 구절에서 따온 말이에요. ‘헤즈브(Hezb)’는 사람들이라는 뜻이고, 알라(Allah)는 이슬람교의 하느님이죠. 그러니까 ‘하느님의 사람들’이라는 뜻이 됩니다.
이란은 시리아 영토를 가로지르며 헤즈볼라에 무기와 돈을 지원하기 시작했어요. 이란에서 레바논으로 가기 위해선 시리아를 거쳐야 하는데, 시리아 역시 이스라엘을 싫어하기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휴전 이후에도 갈등 불씨 여전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군사 분쟁이 계속되자 2000년 유엔이 중재자로 나섰어요. 그리고 이스라엘과 레바논 사이에 일종의 군사 경계선을 설정했지요. 레바논 남부와 이스라엘 북부 접경 지역에 120㎞ 길이 선을 긋고 이를 ‘블루 라인(Blue Line)’이라 명명했어요. 이 선에 따라 이스라엘 군대는 2000년 레바논 남부에서 철수했어요. 유엔이 정한 블루 라인은 사실상 두 국가의 국경 역할을 한답니다. 블루 라인이 지나는 지역엔 유엔의 평화 유지군이 들어가 양측이 싸우지 못하도록 감시하죠. 우리나라도 이 지역 평화를 지키기 위해 ‘동명 부대’를 파견하고 있어요.
이후 헤즈볼라는 사실상 이스라엘 군대를 몰아낸 주역으로 인기가 치솟았지요. 이란의 지속적인 지원으로 심지어는 레바논 정규군보다 더 강한 군사력을 갖게 됐어요.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군대가 철수한 이후에도 이스라엘을 계속 공격했어요. 그러자 이스라엘은 2006년 다시 레바논 폭격을 시작하죠. 레바논 남부에서 자꾸 군사적 충돌이 벌어지니 유엔은 헤즈볼라에 레바논의 리타니강 북쪽으로 철수하라는 결의안을 채택해 싸움을 말립니다. 리타니강은 레바논 동쪽 베카 계곡에서 시작해 서쪽 지중해까지 흐르는 강이에요. 블루 라인과 리타니강은 약 5~40㎞ 떨어져 있어요. 앞서 말한 블루 라인이 이스라엘 군대 철수선이라면, 리타니강은 헤즈볼라의 철수선인 거지요. 유엔 결의안에 따라 이 사이 레바논 남부 땅은 ‘완충지대’가 됩니다.
작년 레바논에 주둔한 유엔 평화 유지군이 장갑차를 타고 이스라엘·레바논 접경 지역을 순찰하는 모습. /AP·신화 연합뉴스
그런데 헤즈볼라는 유엔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어요. 리타니강 이남 지역에 계속 군사시설을 세우는 등 군사 활동을 이어갔지요. 나아가 헤즈볼라는 이란의 도움을 받으며 무장 단체에서 정당으로 발전해요. 레바논 남부 주민을 위한 복지 사업도 벌이기 시작합니다.
현재는 임시 휴전을 맺었지만,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사이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어요. 작년 10월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이슬람 무장 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는 일이 있었어요. 헤즈볼라는 하마스를 돕고자 이스라엘에 로켓 공격을 퍼부었죠. 그러자 이스라엘은 헤즈볼라 지도부를 살해하고 레바논을 공습하며 맞불을 놓았고요. 최근엔 무선호출기(삐삐)를 폭발시켜 헤즈볼라를 공격하기도 했죠. 싸움이 커지자 미국과 프랑스가 이들을 중재해 이스라엘군은 블루 라인 남쪽으로, 헤즈볼라는 리타니강 이북으로 물러나도록 했어요. 레바논 남부에는 레바논 정규군만 주둔하고, 미국과 프랑스가 주도하는 평화 유지군이 휴전협정 준수를 감시하기로 했답니다. 양측이 협정을 잘 지켜 다시 전쟁이 시작되지 않길 바랄 뿐이지요.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교수/기획·구성=윤상진 기자, 조선일보(24-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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