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탄핵소추, 이제 차분히 경제·안보 지킬 때] ....
[윤 대통령 탄핵소추, 이제 차분히 경제·안보 지킬 때]
[헌재, 압박에 휘둘리지 말고 오로지 법만 보고 가야]
[12·14 여의도 집회는 일상을 되돌려달라는 외침이었다]
윤 대통령 탄핵소추, 이제 차분히 경제·안보 지킬 때
지난 14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소추안에 대한 표결과 개표 직후 우원식 국회의장이 탄핵안 가결을 선포하고 있다. 헌정 사상 세 번째 탄핵안 가결로 인해 윤 대통령 직무는 정지되고 탄핵 심판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14일 국회 본회의에서 찬성 204표로, 가결 정족수 200표를 넘겨 통과됐다. 범야권 192표를 빼고도 국민의힘에서 최소 12명이 찬성했다는 뜻이다. 윤 대통령은 표결을 하루 앞두고 “(계엄 선포는) 대통령 퇴진과 탄핵 선동을 반복하며 국정을 마비시키는 거대 야당의 반국가적 패악과 위기 상황을 국민께 알리고 멈추도록 경고하기 위한 통치행위였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조차 납득시키지 못한 것이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이 느닷없고 독단적인 계엄령 선포로 선진 한국을 수십 년 후퇴시키려 했다는 국민적 분노가 컸다.
이로써 우리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 2016년 박근혜 대통령에 이어 세 번째로 현직 대통령의 권한이 탄핵소추로 정지되는 사태를 맞게 됐다. 250년 가까이 대통령제를 실시해온 미국에서는 대통령 탄핵안이 상하 양원을 최종적으로 통과한 적이 없다.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탄핵이 불가피한 상황에 내몰렸던 닉슨 전 대통령은 소속 정당 의원들의 권유를 받고 스스로 하야하는 길을 택했다. 윤 대통령의 경우에도 질서 있는 퇴진 방안이 검토됐으나 민주당은 탄핵에만 총력을 모았고 대통령 자신도 탄핵 심판을 받겠다며 자진 사퇴를 거부했다. 우리 정치는 언제나 타협이나 인내가 아니라 충돌로 일관하고 있다.
계엄 선포 열흘 남짓 만에 탄핵소추안이 통과되면서 국가적 분열이 장기화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다. 권위를 상실한 채 미래가 불투명해진 대통령이 여전히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경제와 외교·안보에 큰 불확실성을 지속시킬 가능성이 높았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 끝날 때까지 국정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맡게 됐다. 대통령 권한대행은 현상 유지적 권한 행사만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대내외 상황은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 무엇보다 이제 곧 트럼프 미 행정부가 출범한다. 국제 질서가 예측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새로 짜이는 상황에서 우리만 손을 놓고 있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경제 상황도 녹록지 않다. 트럼프 당선인의 보호주의 정책과 중국의 저가 물량 공세에 밀려 우리 주력 산업 경쟁력은 약화되고 장기 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계엄 사태 이후 해외 거래가 끊기고 증시 자금이 빠져나가는 등 위기감은 더 높아졌다. 경제를 위해 반드시 통과돼야 할 법안들도 줄줄이 막혀 있다.
한 대행은 정치적 논란에 휘둘리지 말고 경제와 안보만큼은 책임지는 자세로 이끌어야 한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통화를 통해 “한미 동맹이 굳건하다”는 점을 재확인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국민의힘은 탄핵안 통과 후 지도부가 해체되면서 비상대책위 체제로 가게 됐다. 여당이 내분에 빠져 지리멸렬한다면 국정 혼란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조속히 내부를 정비해 국정의 한 축을 담당해야 한다. 경제·안보엔 여야가 있을 수 없다. 정부와 기업,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헌재 판단을 기다리며 차분하게 경제와 안보를 지켜야 할 때다.
-조선일보(24-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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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압박에 휘둘리지 말고 오로지 법만 보고 가야
지난 14일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윤석열 대통령의 운명은 헌재 결정에 맡겨 졌다. 사진은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전경. /전기병 기자
국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의결함으로써 공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다. 헌재는 180일 이내에 결론을 내려야 한다.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탄핵 찬성·반대 측 시민단체들은 각각 대규모 집회를 예고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도 “기각 땐 폭동” “인용 땐 참극”이란 식의 협박이 찬반 양측에서 난무했다. 비슷한 상황이 또 벌어질 수 있다.
정치권도 갈등에 올라타려 할 것이다. 조기 대선을 노리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벌써부터 “헌재는 절차를 신속히 진행하라”고 압박하고 나섰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온 국민이 승복할 수 있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헌재는 시위나 정파의 압박에 휘둘리지 말고 오로지 증거와 법리만으로 판단해야 한다.
헌재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심판 당시 탄핵 요건을 ‘공직자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중대하게 헌법·법률을 위반한 경우’라고 정해 놓았다. 이번 사건도 윤 대통령이 헌법·법률을 위반했는지, 위반했다면 탄핵에 이를 정도로 중대한 것인지만 판단하면 된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이 민주당의 입법 폭주, 탄핵 폭주를 막기 위한 정당한 통치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내란죄도 부인하고 있어 사실 관계를 놓고 공방이 치열할 것이다. 대통령의 방어권도 법과 절차에 따라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사실상 유고 상태인 비상 상황이 장기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헌재는 역량을 총동원한 집중 심리를 통해 법치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현재 헌재는 재판관 9명 중 3명이 결원인 ‘6인 체제’다. 대통령 탄핵은 재판관 6명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지난 10월 재판관 3명이 퇴임했으나 여야가 추천 인원수를 놓고 다투면서 아직도 후임 재판관을 임명하지 못했다. 이론상 재판관 6명으로도 결론을 내릴 수 있지만 국가 중대사를 그렇게 판단해서 되느냐는 정당성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후임 재판관을 빨리 임명해 심판 절차나 결정에 작은 흠결도 남겨선 안 된다.
-조선일보(24-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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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민주주의 퇴행 조속히 바로잡아야
尹 탄핵안 가결… 국민을 이기는 정치는 없다
윤석열 대통령일 15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에서 산책하는 모습이 원거리에서 본보 망원렌즈 카메라에 포착됐다. 전날 국회 본회의에서 탄핵안이 가결되면서 윤 대통령은 직무가 정지됐다. 윤 대통령은 탄핵안 가결 직후 입장문을 내고 “잠시 멈춰 서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전영한 기자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14일 오후 국회에서 가결됐다. 12·3 비상계엄 선포 11일 만이다. 대통령 탄핵안이 통과된 것은 노무현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우리 헌정 사상 세 번째다.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서는 곧바로 헌법재판소에 접수됐고, 헌재는 사건번호 부여와 함께 탄핵심판 심리에 착수했다. 헌재는 16일 회의를 열어 전자 배당으로 ‘주심재판관’을 확정하고 준비 절차를 담당할 ‘수명재판관’ 두 명도 곧 지정할 예정이다.
이번 탄핵안은 국회의원 300명 전원이 표결에 참여해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효 8표로 가결됐다. 일주일 전 국민의힘 의원 가운데 3명만이 표결에 참여해 ‘투표 불성립’으로 무산됐던 첫 번째 탄핵안 표결과 달리 여당 의원 108명 중 최소 12명이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 국민의힘은 이번에 표결에 참여하되 부결시킨다는 당론을 유지했으나 의원 12명의 양심에 따른 소신 투표와 의원 11명의 소극적 회피를 막지 못했다.
아무리 대통령의 정당, 집권여당이라도 국민 대다수가 원하는 탄핵을 끝내 거부할 수는 없었다. 이번 표결 결과 한동훈 대표 체제가 무너지면서 국민의힘은 당장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내분에 휩싸이게 됐지만 대통령과 사실상 운명을 같이해야 하는 정당으로서 그 진통은 불가피하다. 국민의힘의 위기는 곧 보수정당의 위기를 의미한다. 깊은 성찰과 반성을 토대로 보수(保守)를 제대로 보수(補修)하기 위한 분골쇄신이 절실하다.
국회의 탄핵 가결로 이제부터는 헌재의 시간이 시작됐다. 윤 대통령이 자진 사퇴를 거부하며 여당과 정부에 국정을 위임하는 이상한 비정상 체제가 해소되고 헌법 절차에 따른 권한대행 체제로 전환된 것은 다행이지만 정부의 제한적 리더십은 작금의 혼란과 불안을 일소하기엔 한계가 뚜렷한 것도 사실이다. 어느 때보다 신속한 헌재의 탄핵 결정이 필요한 이유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 탄핵안 의결부터 헌재 결정까지 91일이 걸렸다. 측근 비리가 복잡하게 얽혀 있던 박 전 대통령과 달리 윤 대통령은 비교적 사실관계가 명확해 훨씬 빠른 심리도 가능할 것이다. 다만 재판관 9명 중 3명이 공석인 점은 논란을 낳을 소지가 크다. 헌재가 9인 체제를 완성해 오점 없는 결론을 낼 수 있도록 국회가 재판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등 절차를 서둘러 마무리해야 할 것이다.
지난 열흘 넘게 우리 국민은 예기치 않은 시간 여행을 해야 했다. 윤 대통령의 느닷없는 계엄 선포는 45년 전 군사정권의 발동 이후 역사의 뒤안길에 있던 어두운 기억을 21세기 한국에 다시 불러왔다. 국민은 한밤중 계엄 선포에 큰 충격을 받았고, 국회의 저지로 무산되자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후 윤 대통령의 계엄 당시 행적이 속속 전해지면서, 나아가 궤변과 억지로 그 정당성을 강변하는 윤 대통령 담화를 들으며 국민은 다시금 고개를 흔들어야 했다.
헌재는 윤 대통령의 위헌·위법적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국회의 정치적 심판에 이어 내란죄 혐의에 대한 사법적 심판을 통해 대통령직 파면 여부를 결정한다. 탄핵 심리 동안 우리 사회는 극심한 이념적 당파적 분열과 대립 양상을 보일 수 있다. 윤 대통령조차 깊이 빠져 있는 부정선거 음모론 같은 비합리적 주장을 펴는 세력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클 것이다.
헌법의 수호자로서 헌재는 법리에 따른 신중함, 나아가 빠른 혼란 종식을 위한 과단성을 보여줘야 한다. 이번 결정은 그 사법적 판단 못지않게 한국의 지난한 민주화가 이룬 여정을 돌아보며 퇴행적 궤도 이탈을 바로잡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재판관 한 명 한 명이 느끼는 무게도 남다를 것이다. 역사가 과거의 망령에서 벗어나 미래로 돌아가라고 외치고 있다.
-동아일보(24-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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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4 여의도 집회는 일상을 되돌려달라는 외침이었다
12월 14일 오후 5시경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순간. 국회의사당부터 여의도역까지 의사당대로를 꽉 메운 시민들 사이에선 일제히 “와” 하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떼창이 시작됐다. ‘좋지 아니한가’ ‘삐딱하게’ 등 이른바 탄핵 플레이리스트에 맞춰 머리 희끗한 어른도, 반짝이는 응원봉을 든 20대도 함께 춤을 췄다. 그건 45년 전으로의 역사적 퇴행을 막아 냈다는 안도감이었다.
▷1987년 민주화로부터 이제 37년이 지났다. 민주주의 역사가 짧기에 3일 한밤 비상계엄과 같은 반동이 일어났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간 민주주의로 단련된 시민들의 수준은 달랐다. 지하철 여의도역 출구를 나오자 앳된 학생들이 수줍게 “추운데 가져가세요”라며 핫팩을 나눠줬다. 자칫 사고 우려가 있을 만큼 인파로 가득했지만 시민들은 침착했다. 서로 밀칠까 조심하며 걸었고, 너무 밀집돼 위험하다 싶으면 누군가 나서 “2줄로 가요” “유모차 있으니 비켜주세요”라고 교통정리를 했다.
▷커피나 빵이 선결제된 카페에선 시민들이 몸을 녹였다. 인근 빌딩들은 화장실을 개방했다. 2020년 5월 미국에서 경찰 폭력에 목숨을 잃은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촉발된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시위가 한창일 당시 뉴욕 등 주요 도시 상점이 약탈당했던 것과 비교된다. 그래서 상점은 시위가 예정된 날이면 나무판자를 덧대 아예 봉쇄했다. 외신들이 K팝 콘서트 같은 한국의 시위 문화를 주목하는 이유다.
▷이날 탄핵 집회에선 해학이 가득 담긴 깃발이 곳곳에서 나부꼈다. ‘제발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사람들’은 무언가 행동해야 한다는 데 슬퍼하며, ‘고주망태 연합’은 나라 걱정 없이 술 마시고 싶어서 나왔다고 했다. ‘고혈압약 어버이 연합’은 혈압이 올라서, ‘갱년기 연합’은 열불이 나서 집회에 참여했다. ‘통영 아기들 보호단’은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겠다는 엄마들이 뭉쳤다. ‘화병 걸린 TK(대구 경북) 딸내미 연합’과 ‘부모님 몰래 시위 나온 PK(부산 경남) 청년 연합’도 있었다.
▷시민들이 자체 제작한 깃발을 들고나오는 건 어느 단체에 정치적으로 동원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집회에 참여했다는 의사 표시 방법이다. 이들 깃발의 공통된 주장은 단 한 가지, 일상을 되돌려 달란 것이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식 비상계엄으로 불안에 떨지도, 가족과 친구의 안위를 걱정하지도, 존엄할 권리를 위협받지도 않는 ‘보통의 하루’를 되찾고 싶다고 했다. 시민들은 한밤 계엄 선포를 막기 위해 국회로 달려 나오는 용기를 보였고, 질서정연한 평화 시위로 탄핵을 이끌어 냈다. 우리는 2024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수준과 시민의식에 맞는 그런 대통령을 가질 자격이 있다.
-우경임 논설위원, 동아일보(24-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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