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 정년 연장의 꿈, 계엄이 도왔다] [대한민국, 괜찮습니다]
['운동권' 정년 연장의 꿈, 계엄이 도왔다]
[대한민국, 괜찮습니다]
'운동권' 정년 연장의 꿈, 계엄이 도왔다
야당의 '야비한' 탄핵과 혐오 전략
국민은 '이 시대 계엄'에 더 분노
계엄은 '586 청산' 흐름에 찬물
'겨울 광장'에서 회춘하는 운동권
“성탄절에는 윤석열 정권 퇴치를 노래하고, 송년회에는 열 명만 모여도 시국선언을 하고…” “오 오 이십오(주·週), 6개월 안에 승부를 냅시다.”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이 연설하는 동안 이재명 대표는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며 건성건성 박수를 쳤다.
계엄 선포 3일 전인 지난 11월 30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민주당 주최 5차 장외집회는 김빠지고 시들한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기자는 반(半)은퇴상태였던 그가 어떻게 민주당 지도부로 ‘역주행’했는지 힌트를 얻었다. 학생회장 출신인 그는 ‘80년대 집회시위 선동’ 기술을 잃지 않고 있었다. 구호 발성과 손짓에 힘이 있었다. 짠하기도 했다. 구식 기술로 은퇴 후 재취업에 나선 선배를 보는 느낌이랄까.
그날 그는 ‘윤석열 계엄론’을 밀지 않았다. 근거를 대지 못해 “386 상상력 참 구리다”는 비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3일 후, ‘김민석이 맞았다’는 뉴스가 쏟아졌다. 자신도 포기했던 ‘윤석열 계엄론’을 증명해준 건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2024년 11월 23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민주당 '김건희-윤석열 국정농단 규탄 및 특검 촉구 제 4차 국민행동의 날' 장외집회에 참석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김민석 최고위원. /전기병 기자
민주당은 그간 대통령 부부를 향한 ‘혐오’와 ‘탄핵’ 두 개의 카드를 잔인하게 흔들었다. ‘유례없는 폭거’였지만, 어쨌든 합법이었다. 대통령의 ‘계엄령 발동’ 역시 합법이다. 심지어 유례없는 일도 아니다. 하지만 절차상의 불법 여부는 차치하고, 국민들은 계엄령 발동 순간 바로 분노했다. 바로 그 수많은 ‘유례’ 때문이다.
‘현실의 계엄’에서는 군인이 민간인에게 밀려 넘어졌지만, ‘정신의 계엄’은 국민을 70년대, 80년대 기억으로 끌고갔다. 일종의 ‘환상통(幻想痛)’이지만 엄연한 질환이다. 계엄하면 뭐가 떠오르는지 후배들에게 물어봤다. 약속이나 한 듯 여럿이 ‘탱크? 서울의 봄(영화)’이라고 했다. 군사정권의 계엄을 겪어본 적 없는 세대가 집회현장을 가득 메운 데는 이런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군부 정권과 운동권은 사실 ‘적대적 공생관계’였다. ‘군부 독재’를 비판하며 운동권은 불법을 저질렀고, 정권은 난장판을 수습하며 권위를 유지했다. 역사는 결국 ‘자유와 민주’를 선점한 쪽 편이었다. 그래서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는 ‘운동권 전과자’를 장관도 시켜주고, 국회의원으로 뽑아줬다. 기름진 권력은 오래지 않아 산패했고, 그 정점에 조국과 윤미향이 있었다. ‘운동권 청산’ ‘586 청산’이 시대정신이 된 것은 자연스러웠다.

여의도 국회 담장에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우원식 국회의장 등이 국회 진입을 위해 넘었던 담장을 표시한 문구가 붙어 있다. / 연합
그 흐름에 역행이 일어났다. 12월 3일 밤 11시 전후, 국회 정문이 닫히고 의원들의 입장이 막혔다. 85년생 이준석은 경찰에게 말로 따졌고, 57년생 운동권 우원식 국회의장은 다짜고짜 담을 넘었다. ‘월담 우원식’ 탄생의 순간이다. “역시 운동권 근성 있다”는 찬사가 나왔다. 운동권 출신 이학영·남인순·박홍근 민주당 의원은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며 곧바로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80년대 초식(招式)’은 이뿐 아니다. 아무것도 잃을 게 없는 교수들의 ‘시국선언문’이 대유행이다. 추위와 안전사고 외에는 특별한 위협이 없는 집회에 나가 20대들이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 40년 전 나온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무료 커피’를 마시며 ‘광주의 주먹밥’이 떠올랐다는 글을 올린다. ‘낙인찍기’도 운동권의 전유물인데, ‘정치병 586′들은 시위 현장에 나오지 않은 20대 남성을 ‘극우화’됐다고 공격해댄다.
야당은 ‘벚꽃 대선’에서 이기기 위해 ‘겨울 광장’에서 인민 재판 완결판을 찍으려 할 것이다. 이런 일에 이골이 난 운동권들이 큰 그림을 그리고, ‘매력적 상품’을 기획해 선봉에 올릴 것이다. 586 혹은 운동권의 ‘정년 연장의 꿈’, 대통령의 계엄령이 돕고 있다.
-박은주 기자, 조선일보(24-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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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괜찮습니다

대통령의 계엄 선포 다음 날, 학과 사무실에서 연락이 왔다. 뉴욕타임스 서울사무실에서 내 연락처를 물어왔는데, 휴대폰 번호는 개인 정보라 이메일 주소를 대신 알려줬다고 했다. 학교 행사 관계로 뉴욕타임스 인사들과 안면이 있던 터라 미디어 전공 교수인 나와 인터뷰를 원했던 것 같다. 질문의 요지는 이번 계엄령에 대한 미디어의 반응과 한국 내 언론 자유의 향방 관련이었다. 나는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한국의 언론 자유는 굳건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취지의 답변을 했다.
답변이 너무 간단했는지, 뉴욕타임스 기자는 한국의 언론이 이런 상황에서도 취재 노력을 멈출 것을 거부하는 눈에 띌 만한(stood out to you) 사례가 있는지 재차 질문했다. 그 후속 질문을 나는 그날 밤에서야 이메일을 열어보고 알았다. 종일 이런저런 잡무로 뛰어다니다 늦게 귀가했기 때문이다. 나는 질문이 좀 생소하고 어색해서 한참 생각하다가 이번 사태 중 언론 자유는 위축되지 않았다는 엉성한 답변으로 갈음했다. 그러면서 “이게 왜 궁금하지?”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계엄’이라는 단어의 뜻에 충실하면 국가가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으며 그 안에는 언론 자유도 포함된다. 그걸 생각하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질문이긴 하다. 그러나 한국처럼 인터넷으로 얽히고 신문과 방송이 전국에 포진한 나라의 ‘말길’을 막는 게 가능할지, 얼른 상상이 가지 않았다. 자유는 불가역적 성질이 있어 사람들이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언론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자유는 굳건하고 오래갈 것이라고 믿는 근거다.
물론 뉴욕타임스는 놀랄 만도 하다. 2020년 홍콩 보안법이 통과되자 언론 자유의 위축을 우려해 이듬해 아시아 사무소를 홍콩에서 서울로 옮기는 큰 이사를 한 뉴욕타임스의 입장에서, 당시 아시아 여러 도시를 검토하다 최종적으로 ‘높은 언론 자유 수준(high level of press freedom)’을 이유로 서울을 선택했는데, 일껏 홍콩의 보안법을 피해 온 곳에서 계엄령을 맞다니. 그 황당함과 놀람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이번 사태를 겪으며 내가 특이하다고 느낀 건 건 따로 있다. 그건 대통령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계엄을 선포하고 탄핵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풍파 속에서도 내 주변의 일상이 흐트러지지 않고 사람들도 대단히 차분해 보였다는 점이다. 계엄 사태가 워낙 조속히 종식된 덕분이기도 하지만, 어차피 지속될 분위기도 아니었다. 계엄 다음 날 만난 동료 교수와는 기말 업무를 이야기하거나 “이건 또 뭐래요?”라고 가볍게 지나가고, 가게와 상인들은 세상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바쁘며, 내가 관여하는 여러 단체도 예정된 행사를 진행했다. 주말에 찾은 재래시장에는 제철 상품이 넘쳐 났으며, 시장을 누비는 외국인 관광객도 여전했다.
어디에도 ‘비상사태’는 없었다. 자기의 위기를 국가의 위기로 착각한 대통령과, 자기의 위기를 정당의 위기로 치환시키는 재주가 비상한 야당 대표, 그 사이에서 나라 꼴이 엉망이라 바로잡아야겠다는 쪽과, 나라 꼴이 엉망이기를 바라거나 그래서 그게 자기들에게 유리하도록 이용하려는 정치인들이 있을 뿐이다. 외신들은 한국을 불안하게 바라보지만, 우리는 불안하지 않다. 불안한 사람은 이 사태를 정치적 지렛대로 활용하지 못해 안달 난 사람들뿐, 일반 국민은 비교적 태연하게 관망 중이다.
그건 아마도 우리의 낙천적인 국민성과 그동안의 학습 효과, 거기에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정치적 효능감이 보태진 결과는 아닐까 짐작해본다. 나폴레옹은 자기 사전에 ‘불가능’이라는 단어가 없다고 했지만, 대한민국 정치 사전에는 없는 단어가 없다. 지난 100여 년간 우리는 왕정과 식민지배와 군사독재와 내각제와 민주화를 겪었고, 민주주의의 큰집을 자임하는 미국도 내지 못한 여성 대통령과 고졸 대통령을 비롯해 별의별 지도자를 다 겪어본 우리에게 이번 사태는 별로 새로울 것도 없다. 계엄을 포함해 그보다 더 엄혹한 상황도 겪어봤으며, 대통령 탄핵도 이번이 세 번째다. 물론 얼마간의 혼란이 뒤따를 것이고, 어쩌면 조기 대선도 치러야 할지 모르고, 경제에도 좋지 못한 영향이 있겠지만, 우리의 멘털을 흔들 정도는 아니다. 윈스턴 처칠이 그랬던가. “성공이란 열정을 잃지 않고 실패를 거듭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우리는 많은 실패를 겪었지만, 그건 다시 일어나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한다는 뜻이기에, 그 또한 능력이다.
이번 사태로 우방국 사이에서 한국을 ‘믿을 수 없는 나라’로 본다는 애석한 분석이 있다. 우리에게 믿을 수 없는 몇몇 정치인이 있는 건 인정. 그러나 한국 국민은 그들보다 튼튼하고 상식적이며 신뢰할 만하다고 그들 국가에 전해주고 싶다. 우리의 이런 정치적 역동성을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들에게 계속 부러워하라고 말하고 싶다. 북한은 탄핵 직후 ‘괴뢰 한국땅 아비규환’이라고 논평하고, 중국은 이런 한국의 사태를 빗대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강조했다는 보도를 보았다. 그들에게도 확실하게 해두고 싶다. 이 혼란과 불확실이 아무리 지속되어도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와 맞바꿀 성질의 것이 아니니 꿈 깨라고. 그리고 내가 엉성하게 답해준 뉴욕타임스 쪽에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밖에서 바라보는 것만큼 한국 사회는 혼란스럽지 않으며, 사람도 언론도 너무 자유로워서 오히려 문제라고. 무엇보다 우리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외국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대한민국은 괜찮습니다.”(그러니 놀러오시고 투자하세요.)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한국미래학회 회장, 조선일보(24-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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