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과 세계가 지켜본 5시간 반… 부끄럽고 창피하지 않나] ....
[국민과 세계가 지켜본 5시간 반… 부끄럽고 창피하지 않나]
[尹 체포 극한 대치·분열 세계로 생중계, 국가 신인도 또 타격]
[“국무위원들, 경제 고민 좀 하고 말하라”]
국민과 세계가 지켜본 5시간 반… 부끄럽고 창피하지 않나
3차례 출석 거부로 영장 자초한 尹
200명 ‘인간방패’ 뒤에 숨어 ‘관저 농성’
“법적 정치적 책임회피 않겠다” 약속 지켜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에 나선 3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 도로가 차량과 경호처 관계자들로 막혀있다. 양회성 기자
12·3 불법 비상계엄 사태를 수사 중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3일 오전 국내외 언론이 생중계하는 가운데 내란 우두머리(수괴)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에 들어갔다가 5시간 반 만에 철수했다. 이날 아침 이른 시간부터 TV 화면을 통해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벌어진 윤 대통령 체포조와 경비 병력 간 팽팽한 대치 상황을 지켜본 국민들은 한 달 전 중무장한 병력이 여의도 국회에 난입했던 계엄의 밤처럼 불안감과 착잡함을 느꼈을 것이다.
공수처는 이날 경찰 특수단 120명 등 총 150명의 체포조를 투입했고 경찰도 체포영장 집행 과정에서의 충돌에 대비해 관저 주변에 2700명이 넘는 경력과 버스 135대를 배치했다. 이들은 관저 앞 200m까지 뚫고 들어갔으나 경호처가 버스와 승용차로 세워놓은 차벽과 관저 경호부대 및 경호처 직원 200여 명에 가로막혔다. 영장 집행 과정에서 우리 공권력 간에 물리적 충돌 사태라도 벌어졌다면 어쩔 뻔했나.
미국 CNN, 영국 BBC를 비롯한 해외 취재진도 동틀 무렵부터 한남동 관저 앞으로 몰려와 “서울에서 극적인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다”며 윤 대통령에 대한 1차 체포 시도 현장을 실시간 속보로 전했다. 일본 주요 언론도 자사 홈페이지 화면 머리기사로 체포 시도 현장을 소개했고, 영국 가디언은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stop the steal(부정선거를 멈춰라)’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모습을 보도했다. 민주화와 경제 발전을 동시에 이룩한 모범 사례로 꼽히는 나라에서 어쩌다 현직 대통령 체포를 놓고 공권력이 대치하는 장면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 일까지 벌어진 건지, 마치 부정선거가 횡행하는 나라처럼 비치게 된 건지 부끄럽고 참담할 뿐이다.
이제 대통령 관저 앞은 국론 분열의 상징이 됐다. 1차 체포 시도가 불발된 후 관저 앞 대통령 찬반 집회 규모는 불어나고 분위기도 험악해지고 있다. 관저 안팎에서 벌어지는 대치에 국민들은 예기치 않은 불상사라도 벌어질까 조마조마한 마음이지만 윤 대통령은 여전히 ‘관저 농성’ 중이다. 이날 체포 시도에 대해서는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가 안하무인으로 설친다”고 했고, 경찰 기동대가 수사 업무에 가담한 것은 불법이라며 “엄중 경고”까지 했다. 법원이 발부한 체포영장 집행을 물리적으로 저지하는 불법적 행태를 보이고선 오히려 공수처와 경찰을 비난하며 겁박하다니 적반하장 아닌가.
현직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이라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지게 된 건 그동안 공수처의 세 차례 출석 요구를 모두 거부한 윤 대통령의 자업자득이다. 윤 대통령은 내란죄에 대한 수사권이 없는 공수처가 체포영장을 청구한 것이나, 이를 법원이 발부한 것 모두 불법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법원이 공수처의 수사권을 인정해 체포영장을 발부한 이상 이에 응해야 하는 것이 법이 정한 절차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대통령이 경호 인력 뒤에 숨어 법질서를 유린하고, “함께 끝까지 싸우자”고 선동하며 지지자들까지 방패로 내세웠다.
집권 여당은 대통령을 설득해 사태를 수습하기는커녕 수사기관과 법원 탓만 하고 있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 시도는 부당한 행위”라면서 “공수처와 정치 판사의 부당 거래”라는 말도 했다. 아무런 근거 없이 법원을 비난하는 게 여당 대표가 할 말인가.
공수처는 “경호처 공무원들의 경호가 지속되는 한 영장 집행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경호처로 하여금 체포영장 집행에 응하도록 명령할 것을 강력히 요구할 예정”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의 신병 확보가 지연될수록 불확실성만 커질 뿐이다. 이미 외신들은 “한국의 정치 위기는 국회의 탄핵안 가결 후에도 그 기세가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리더십 공백 장기화가 한미 동맹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하기 시작했다. 정치 불안이 장기화하면서 국가신용등급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현재로선 악화 일로의 위기를 평화롭게 수습하는 길은 윤 대통령이 “법적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방법밖에 없다. 소환에 불응하고 체포영장을 거부한다고 언제까지 법의 집행을 피할 수 있겠나. 지난 연말엔 난데없는 비상계엄 선포로 세계적인 망신거리가 되더니 이젠 정당한 체포영장 집행에 경호원들을 앞세워 버티는 ‘막장극’까지 연출하나. 대체 언제까지 이럴 건가.
-동아일보(25-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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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체포 극한 대치·분열 세계로 생중계, 국가 신인도 또 타격
이대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부장검사 등 공수처 수사관들이 3일 오전 8시 30분 경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검문소에 진입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집행하려 하자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55경비단 병력이 수사관들을 둘러싸 저지하고 있다. 2024.1.3/뉴스1
공수처가 3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에 나섰으나 경호처 저지로 5시간 반 동안 대치하다 철수했다. 공수처 30명과 경찰 120명이 체포에 투입됐고 경호처는 직접 지휘하는 군까지 동원한 ‘사람 벽’으로 막아섰다. 현직 대통령 체포 시도도, 이를 둘러싼 국가기관 간 충돌도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다.
이날 영장 집행을 놓고 극단적 분열 양상이 재연됐다. 윤 대통령 지지자 1000여 명은 새벽부터 서울 한남동 관저 앞에서 집행 반대 시위를 벌였다. 오후엔 체포 찬성 시위대도 집결해 대통령 관저 일대는 아수라장이 됐다. 여야 반응도 극과 극으로 갈렸다. 체포영장 집행 기한이 6일까지이고 공수처나 경찰이 영장을 다시 받을 수도 있는 만큼 국론 분열·갈등·혼란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이 사태엔 윤 대통령 책임이 크다. 직무가 정지됐지만 아직 대통령 신분인데 전날 지지자들에게 영장 집행 방해 시위를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위기 속 국민 통합이 아니라 “애국 시민”과 “주권 침탈 세력, 반국가 세력”으로 편가르기를 했다. 검찰총장을 지낸 윤 대통령은 평생 법질서를 강조한 사람이다. 그것으로 대통령도 됐다. 계엄 사태 이후에는 “탄핵이든 수사든 피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이 약속을 전혀 지키지 않고 있다. 법이 아니라 극단적 지지층에 의존하고 있다.
이 와중에 한 국민의힘 의원은 “가는 곳마다 중국인들이 탄핵 소추에 찬성한다고 나서고”라고 했다.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다. 다른 의원은 “윤 대통령이 대한민국 체제 수호의 대명사가 됐다”고도 했다. 느닷없는 계엄 사태를 일으켜 탄핵소추까지 됐고, 국격을 추락시킨 윤 대통령을 체제 수호의 대명사라고 하면 납득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미국 CNN과 영국 BBC 등 세계 주요 매체는 이날 윤 대통령 체포 대치 상황을 실시간 중계했다. 탄핵 국면에서 한국의 정치적 위기가 심화하고 있는데 무안공항 참사까지 겹쳤다고 전했다. 계엄 당일 군의 국회의사당 진입 장면이 실시간 세계로 송출될 때처럼 한국 국가 신인도에 다시 큰 타격을 입혔을 것이다. 이러다 국가 신용 등급마저 강등되면 정말 큰일이다.
-조선일보(25-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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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위원들, 경제 고민 좀 하고 말하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일 신년사를 낭독하다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많은 비판이 있는 걸 안다”고 운을 뗐다. “(한국은행) 간부들이 공보관을 통해 (총재가 신년사를) 그냥 읽고 오시고, 절대 애드립(즉흥 발언)하지 말라고 했는데, 한마디 안 할 수가 없다”면서 시작한 말이다. 이틀 전 최 권한대행은 헌법재판소 재판관 3명 임명을 거부하다가 탄핵당한 한덕수 전 대행과 달리, 그중 2명을 임명했다. 중앙은행 총재가 신년사에서 이런 민감한 정치 문제를 꺼낸 것이다.
▷이 총재는 “최 대행을 비판하려면, 특히 국무위원은 해외 신용평가사에 미칠 영향도 고려해 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신년사 직후 기자간담회 때는 한술 더 떠 “국무위원들은 경제 고민 좀 하고 얘기하라”고 했다. 헌재 재판관 임명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일정이 더는 늦춰지지 않도록 한 조치다. 지금 같은 환율 급등 국면에서 외국 투자자에게 한국의 안정성을 보여주는 데 필요한 일이었다.
▷이 총재의 발언은 지난해 12월 31일 국무회의에서 벌어진 ‘소동’을 겨냥한 것이다. 최 대행은 그날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사전에 예고가 없었던 헌재 재판관 임명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자 몇몇 장관이 “왜 상의도 없이 중대 사안을 발표하느냐”고 강하게 반발했다고 한다. 정치인 출신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윤 대통령과 대학 동기인 유철환 국민권익위원장, 윤 대통령의 개인변호사였던 이완규 법제처장 등이라고 한다. 하지만 최 대행은 장관들과 동료인 경제부총리가 더 이상 아니다. 재판관 임명 여부는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이지, 토론해 정할 성격은 아니다.
▷이 총재가 해외 신용평가사를 거론한 건 국가 신용등급 때문이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 때 무디스, S&P 등 이름도 생소하던 글로벌 신용등급회사가 한국의 국가등급을 낮추는 일이 환율 폭등 및 차입금리 급등과 맞물려 진행되던 기억이 생생하다. 무디스는 12·3 계엄 직후 Aa2라는 우리 신용등급은 유지하면서도 “정치 사정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총재는 자신이 10년 전 IMF 국장을 지내며 40여 아태 국가에 대한 경제리스크 보고서를 작성했던 책임자였기 때문에 더 민감했을 수 있다.
▷한국은행 총재는 발언이 금융시장에 미치는 파급력 때문에 말과 행동의 절제를 요구받는다. 이 총재는 이런 상식을 깨고 한은의 업무 영역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대학입시 문제에까지 의견을 내 왔다. 그의 행보를 놓고 “오지랖이 넓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국무위원들은 경제 고민 좀 하고 얘기하라”는 말의 내용에는 뭐라 토를 달기 어려울 정도로 우리 경제는 ‘리스크의 지뢰밭’을 걷고 있다.
-김승련 논설위원, 동아일보(25-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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