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아서 일하면 안 되나' 李 대표, 이 상식 왜 외면했나] ....
['몰아서 일하면 안 되나' 李 대표, 이 상식 왜 외면했나]
[‘반도체 주 52시간 예외’ 입법, 李 실용주의 전환 시금석 될 것]
[트럼프와 이재명의 차이]
[2030 남성은 왜 민주당에 등 돌리나]
'몰아서 일하면 안 되나' 李 대표, 이 상식 왜 외면했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박찬대 원내대표가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정책 디베이트 Ⅲ '행복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반도체특별법 노동시간 적용제외 어떻게?'에 참석해 김태년 의원의 법안 설명을 들으며 대화하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3일 반도체특별법과 관련해 “‘특정 산업의 연구·개발 분야 고소득 전문가들이 동의할 경우 예외로 몰아서 일하게 해주자는 게 왜 안 되냐’ 하니 할 말이 없더라”고 말했다. 연구직은 업무 특성상 주 52시간을 주 단위가 아닌 월이나 분기, 반기 단위로 적용하자는 것은 누구도 손해 보는 것이 없는 합리적 방안이다. 그런데도 이 대표와 민주당은 주 52시간제에 대한 어떤 예외도 거부하는 태도로 일관해 왔다. 노조의 반대 때문이었다.
주 52시간제 예외 적용은 기업이 가장 중시해 온 사안이다. 중국 기업은 노동법 위반 단속 걱정 없이 연구·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미국은 연장 근로에 제한이 없다. 일본도 고소득 연구직은 근로시간 제한이 없다. ‘졸면 죽는’ 세계시장에서 이런 나라 기업과 한국 기업이 경쟁이 되겠나. 중국 연구진이 개발한 인공지능(AI) 딥시크 쇼크는 세계 각국이 총력전 방식으로 벌이는 최첨단 기술 개발 경쟁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중국 연구진은 ‘주 52시간’이 무엇인지도 모를 것이다.
반도체 산업은 경제만이 아니라 세계의 군사·안보 지형까지 바꿔 놓을 수 있는 전선 중의 최전선이다. 반도체를 핵심 전략 산업으로 일궈온 한국이 이렇게 중대한 시기에 ‘탈레반식’ 주 52시간제라는 족쇄에 묶여 있을 수는 없다. 이 대표가 민노총 등 지지 세력이 아니라 나라와 국민을 위해 주 52시간제 개혁의 결단을 내리기 바란다.
-조선일보(25-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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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주 52시간 예외’ 입법, 李 실용주의 전환 시금석 될 것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일 반도체특별법 정책토론회를 주재하고 핵심 쟁점인 ‘주 52시간 근무 예외’ 조항과 관련해 “총노동시간을 늘리는 게 아니라 특정 시기에 유연성을 부여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데 공감한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쟁점 조항 도입에 대해 “아직 결론을 내지 못했다”면서도 “특정 산업의 연구개발 분야 고소득 전문가들이 동의하면 예외로 몰아서 일하게 해주자는 게 왜 안 되냐고 하니 할 말이 없더라”고 했다.
반도체특별법은 해외 경쟁국에 비해 국가 지원이 턱없이 부족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제, 보조금, 인프라 지원을 명문화한 게 핵심이다. 법안의 다른 조항들은 여야가 합의를 이뤘지만, 반도체 연구개발 인력을 주 52시간 근무제의 예외로 인정하는 조항을 두고 민주당이 반대하면서 법안이 표류해 왔다. 민주당 지지층인 노동계는 반도체 업종에 예외를 두면 주 52시간제 근간이 흔들릴 것이라며 특별법 폐기를 요구해 왔다.
하지만 이 대표가 고소득 연구개발자에 한해 필요성을 인정한다고 밝히면서 주 52시간제 예외를 전향적으로 수용할 것이라는 가능성이 제기된다. 최근 이 대표가 실용주의를 표방하며 ‘우클릭’ 행보를 가속화하는 것도 힘을 보탠다. 이 대표는 신년 기자회견에서 기업 중심의 ‘민간 주도 성장’을 강조한 데 이어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와의 인터뷰에서 “민주당의 주된 가치는 실용주의”라고 했다. 추경 편성에 문제가 된다면 전 국민에게 25만 원씩 주는 민생지원금을 포기하겠다 했고, 중국 인공지능(AI) ‘딥시크 쇼크’가 강타하자 AI 개발 지원을 위한 추경을 요구하며 성장 담론을 주도하고 있다.
이 대표의 태도 변화는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장애물을 제거하고 신성장동력의 불씨를 점화할 기회가 될 수 있다. 해묵은 주 52시간제 논쟁을 끝내고 2월 임시국회에서 반도체특별법을 통과시키는 게 그 시금석이 될 것이다. 이 대표의 약속이 표심을 노린 정략적 행보에 그치지 않으려면 반도체법을 비롯해 시급한 경제·민생법안부터 서둘러 처리해야 한다.
-동아일보(25-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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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와 이재명의 차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두 달 전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떤 이는 내가 ‘한국의 트럼프’ 같다고 한다”며 자신은 “현실주의자(realist)”라고 소개했다. 정파에 극단적으로 치우치지 않는 실용주의자라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는 강성 지지층이 있고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경제를 보는 현실 감각은 닮은 점보다 다른 점이 많다.
트럼프 대통령과 이 대표는 모두 인공지능(AI)과 같은 첨단 기술 투자를 중시하지만 접근법이 다르다. 이 대표는 신년 기자회견에서 “인공지능 시대의 기본적 삶이 보장되는 삶은 피할 수 없는 역사적 흐름”이라며 AI의 일자리 대체를 기정사실화하고 기본소득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 도전하는 중국의 현실적 위협을 주목하고 AI 첨단 기술을 산업과 국가 안보가 연계된 패권 경쟁의 틀로 바라본다. 이 같은 관점의 차이는 결과로 나타난다.
AI 기술 관점 차이가 만든 한미 격차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날 180일 이내에 미국의 AI 우위 확보를 위한 행동계획 수립을 지시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중국에 대한 첨단 AI 반도체 수출을 금지하는 채찍을 휘두르고 있다. 오픈AI 오라클 소프트뱅크가 AI 인프라 확보를 위해 5000억 달러를 투자한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발표 자리에도 함께했다.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를 위한 전력 확보 지원도 약속했다.
AI 세계 최강국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한국은 말만 무성하다. 전력 소모가 많은 AI 인프라 투자를 위해 필요한 전력망 확충 특별법,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특별법은 아직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챗GPT에 푹 빠져 있다”는 이 대표가 AI 투자에 진정성이 있다면 이렇게 시간을 끌 일이 아니다.
이 대표는 “기업이 앞장서고 국가가 뒷받침해, 다시 성장의 길을 열어야 한다”고 했지만 ‘민간 주도 정부 지원’ 구호는 10년 넘게 정부 정책, 정치인 공약에 단골로 등장하는 구호에 불과하다. 오히려 이 대표는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들을 호출하거나 “비정상적 지배 경영구조를 혁신해야 한다”며 기업 경영에 대한 개입을 당연시했다. 기업들이 “투기자본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 등을 담은 상법 개정안도 민주당이 밀어붙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가 주목하는 취임식에 미국 빅테크 CEO들을 상석에 앉혀 힘을 실어주었다.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가 10분의 1의 투자와 인력으로 챗GPT에 필적하는 추론 능력을 보유한 ‘R1’을 공개했을 때는 “(딥시크의 AI가) 미국 제품보다 더 빠르고 훨씬 저렴해 보인다”며 오히려 미국 기업을 압박했다. 경쟁자인 중국 기술을 무시하지 않고 자국 기업을 밀고 당기며 경쟁과 혁신을 이끌어내는 게 트럼프 방식이다.
성장론에 저성장 탈출 위한 ‘킥’ 없어
“검든 희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라는 이 대표는 “성장의 기회와 결과를 함께 나누는 공정 성장이야말로 실현 가능한 양극화 완화와 지속 성장의 길”이라고 강조했다. 공정 성장은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10년 전에 들고나왔던 구호다. AI 로봇 스마트폰 로봇청소기와 같은 기술 제품은 물론이고 석유화학 철강 조선 자동차 등 한국 주력 산업조차 중국 기업의 밀어내기 공세에 시달리고 1%대 저성장을 우려하는 현실에서 ‘성장 기회와 결과를 함께 나누자’는 공정 성장은 이상론에 가깝다.
트럼프 대통령이 두 번의 대선에서 승리한 건 민생을 파고든 미국 우선주의 공약이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트럼프 대통령과 가장 다른 점은 그의 성장론에 아직 사람들의 가슴을 펄떡펄떡 뛰게 하는 ‘킥(매운맛)’이 없다는 것이다.
-박용 부국장, 동아일보(25-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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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남성은 왜 민주당에 등 돌리나
극우 이념에서 내 아들 구했다며 화제가 된 대학교수 '진보 엄마'
박탈감 외면하고 '구출' 운운하면 민주당에 대한 환멸만 심해질 것
민주당과 좌파 진영에서 최근 화제가 된 대학교수 ‘진보 엄마’가 있다. 비유하자면 수렁에서 건진 내 아들. 또래 중고교 남학생처럼 극우 유튜버에게 오염되어 소위 여혐·일베 사상에 물든 자기 아들을 어떻게 ‘치료’하고 ‘구출’했는가에 대한 소셜미디어 간증이었다. 진영에서 영웅 대접을 받더니, 김어준 유튜브 방송에도 등장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런 스토리가 부각될수록 2030 남성들은 민주당에 등을 돌릴 것이라 생각한다. 본말이 전도된 치료이자 구출이기 때문이다.
2030 남성의 보수화, 우경화는 지구적 현상이다. 좋아하는 소설가 중에 프랑스의 공쿠르상 작가 미셸 우엘베크(67)가 있다. 유럽에서 그 귀하다는 우파 지식인인데, 남성에 대한 이 마초 소설가의 연민은 강박적인 데가 있다. 오늘의 유럽 현실에 대한 통렬한 예언으로 지금도 인용되는 10년 전 장편 ‘복종’에서, 그는 정교일치와 일부다처제의 이슬람이 프랑스의 정치와 문화를 장악한다는 디스토피아적 반어법으로 이 사안을 경고한 바 있다.
거칠게 압축하면 이런 연유다. 아이들을 장악해야 미래를 지배하는 법. 양성평등과 다양성을 앞세운 서구 문화는 이미 결혼 제도와 출산율에서 필패다. 가부장제 기세등등하고 일부다처제로 출산까지 압도적인 무슬림 이민자를 어떻게 이기겠는가. 무신론적 휴머니즘은 결국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슬람에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성(性)의 자유 경쟁 시장에서 패배한 주인공은 이렇게 탄식한다. “난 여자한테 투표권을 주고, 남자와 똑같은 교육을 받게 하고, 똑같은 직업을 갖게 하는 것 따위가 좋은 생각이라고 여겨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2025년의 대한민국에서 이런 시대착오가 지지를 받을 리 없다. 하지만 문제는 특출하지 못한 젊은 남성의 누적된 박탈감이다. 아버지가 공산당이었다는 이유로 아들에게 죄를 물어선 옳지 않듯, 특권을 누렸던 아버지 세대의 책임을 자식에게 묻는 건 공정하지 않을 것이다. 불만은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생애 주기의 학교와 군대와 결혼 제도에서 반복되는 열패감. 게다가 겉으로는 표현 못 하지만, 커튼 뒤에는 더 근본적인 분노가 있다. 부(富)뿐만 아니라 성(性)도 이제 양극화다. 현대사회가 다량 배출한 능력 있는 알파걸들이 최소한 자신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배우자만 찾는 현실에서, 무력한 베타남들은 연애와 결혼 시장에서 연전연패다. 우엘베크는 이렇게 주장한다. 자본주의 경쟁에서 탈락한 사회적 약자를 복지로 책임지듯, 성의 자유 경쟁 시장에서 탈락한 약자 남성을 국가가 책임지는 시스템은 왜 없냐고.
전술했듯, 이 현상은 이미 세계의 고민거리다. 밖으로는 이민자에게, 안으로는 알파걸에게 밀린 유럽의 ‘외로운 늑대’들은 기회만 생기면 폭발한다. 한국에선 이름도 가물가물하지만, 14년 전 노르웨이에서는 한 외로운 늑대가 자기 또래 청년 77명을 총기 난사로 숨지게 한 최악의 사건이 있었다. 이민자에게 맞서는 유럽 독립 전쟁의 투사이자 십자군 전쟁의 기사로 자신을 내세웠던 당시 서른두 살의 브레이비크. 하지만 여러 해에 걸친 조사에 따르면, 무대 뒤의 그는 연애 시장의 패배자였다. 바다 건너 미국에서 코와 턱을 깎는 성형수술까지 받고 돌아왔지만, 북유럽의 동년배 젊은 여성들은 그에게 한 줌의 관심도 주지 않았다.
한남동 탄핵 반대 집회와 서부지법 난동에 등장한 2030 남성으로 돌아온다. 좌파는 늘 개인보다 구조와 시스템의 책임을 앞세운다. 그 논리대로라면 가부장제의 붕괴와 양성평등의 거대한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개인들도 피해자이자 희생양. 그런데도 남자인 네가 못난 탓이라며 ‘치료’와 ‘구출’ 운운하는 한, 민주당에 대한 2030 남성들의 환멸은 더 커질 것이다.
-어수웅 기자, 조선일보(25-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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