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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 무슨 유형이세요?”… 성격은 타고나는가, 획득되는가] ....

뚝섬 2025. 2. 18. 09:18

[“MBTI 무슨 유형이세요?”… 성격은 타고나는가, 획득되는가] 

["나는 뭘 잘하는 학생이었지?" 생활기록부 조회 열풍]

 

 

 

“MBTI 무슨 유형이세요?”… 성격은 타고나는가, 획득되는가

 

‘혈액형 논쟁’ 닮은 MBTI 열풍… 개성-성격 16개로 나눌 수 있나
‘사람 고쳐 쓰는 게 아니다’란 말… 긴 시간에선 성격 바뀔 수 있어
쇼펜하우어는 ‘획득된 성격’ 강조… MBTI 맹신 말고 ‘내 가치’ 찾길

 

MBTI는 △외향형(E)과 내향형(I) △감각형(S)과 직관형(N) △사고형(T)과 감정형(F) △판단형(J)과 인식형(P) 등 크게 네 가지 지표를 조합해 인간의 기질 및 성향을 16가지 유형으로 나눠 분석한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MBTI를 믿지 않는 이유

요즘 MZ(밀레니얼+Z)세대를 만나보면 서로 MBTI를 맞히면서 대화를 시작한다.과거에도 비슷한 사례는 있었다. 혈액형으로 성격을 추정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A형은 꼼꼼한 완벽주의자, B형은 자유로운 사고를 하는 창의적 사람으로 여겨졌다. 특히 B형은 ‘나쁜 남자’라는 편견이 따라붙어서 변명하느라 애를 쓰는 일도 있었다. 물론 혈액형과 성격의 관련성은 아무런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 필자는 생각이나 행동 등 모든 것이 A형에 들어맞는다고 확신했던 사람이 나중에 알고 보니 B형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그 후 혈액형을 묻는 일은 한 번도 없다.》

MBTI는 ‘마이어스 브리그스 유형 지표(The Myers-Briggs Type Indicator)’의 줄임말로 정신분석가인 융의 심리 유형론을 근거로 한 심리 검사로 알려져 있다. 성격에는 모두 16가지 유형이 있는데 세부적으로는 외향형(E)과 내향형(I), 감각형(S)과 직관형(N), 사고형(T)과 감정형(F), 판단형(J)과 인식형(P)으로 나누어져 있다. 각각이 조합된 16가지 유형은 교육이나 환경의 영향을 받기 이전에 잠재돼 있는, 개인의 타고난 심리적 경향을 의미한다. 이렇게 MBTI를 활용하면 누구나 자신의 기질과 성향을 쉽게 알 수 있다. 

 

MBTI의 창시자인 캐서린 브리그스(오른쪽)와 그의 딸 이사벨 마이어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필자는 국내의 최고 융 전문가에게 MBTI에 대해 물어봤는데 MBTI는 융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따라서 MBTI는 학문적, 이론적 근거가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유행하는 이유에 대해 물으니, 그 전문가는 우리가 무엇인가에 속해야만 마음이 편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인간은 누구나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는데, 이것에 대한 답변을 얻으려면 자신에 대한 오랜 성찰과 경험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불안감은 늘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쉽게 규정하는 MBTI를 통해서는 나도 어떤 부류에 속한다는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 예를 들면, 나는 ISTP다.

타고난 성격이 인간의 행동에 평생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듯 성격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어릴 적 사소한 탈법 행위가 나중에 흉악범죄로 이어질 수도 있는데,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된다’는 속담이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철학자 가운데 쇼펜하우어는 성격의 불변성과 개별성에 큰 관심을 가졌다. 쇼펜하우어도 타고난 성격은 기본적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지능은 어머니로부터, 성격(의지)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는데, 인간은 자신의 성격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결국 자신의 행동을 반복한다는 점을 알고 크게 절망하게 된다.

성격의 다른 측면은 개별성, 즉 개성이다. 인간은 우주에서 가장 개성이 뚜렷한 존재다. 만약 길을 가다가 자신과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보면 약간 기분이 상하듯 나와 똑같은 사람은 반갑지 않다. 개성이란 각자 자신의 주관대로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자 고유한 관점이다. 사람 사이에 다툼이나 갈등, 의견 대립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마음이 완벽하게 통하는, 나와 똑같은 사람은 세상에 없다.

쇼펜하우어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의 성격은 MBTI가 제시한 16가지가 아니다. 80억 명의 세계 인구수만큼이나 생각이나 신념이 제각기 다르다. 16가지는 인간의 유형을 단순하게 일반화해 인간의 심리를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뿐이다.

니체는 성격의 불변성을 강조한 쇼펜하우어를 비판한다. ‘변하지 않는 성격’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잘못된 믿음은 인간을 너무 짧은 기간 관찰해서 나온 잘못된 판단이다. 가령 100년이라는 짧은 인생에서는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이 긴 시간에서는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몇천 년이 아니라 몇만 년을 두고 본다면 인간의 성격에서 변화를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니체가 볼 때 인간의 삶에 수천 년 동안 영향을 주는 불변의 성격이나 ‘동기’는 있을 수 없다. “만약 8만 살의 인간을 생각해 보면, 그에게서는 아주 가변적인 성격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과거나 현재보다 미래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장기간으로 본다면 타고난 성격은 환경이나 교육, 노력에 의해 얼마든지 바뀔 여지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쇼펜하우어는 ‘타고난 성격’보다 ‘획득된 성격’의 중요성을 더 강조한다. 장차 나 자신에게 맞게 사는 법을 스스로 찾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 자신만이 이 세상에서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욕망과 능력이 일치되는 일을 추구할 수 있고, 이때 진정한 행복을 느끼게 된다. 자신만의 개성을 발현하는 일이 가장 행복한 일이다.

MBTI는 참고만 해야지 맹신은 위험하다. 16가지 범주로 자신을 쉽게 규정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한 그물망으로 잡히지 않는, 일반화되지 않는 자신만의 가치를 찾는 일이 더 중요해 보인다. 이것이 필자가 MBTI를 거의 믿지 않는 이유다.

-강용수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 동아일보(25-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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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뭘 잘하는 학생이었지?" 생활기록부 조회 열풍

 

나는 누구인가?
칭찬 고픈 '어른이'들
 

최근 학창 시절 생활기록부를 조회하고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행위가 젊은 층 사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본지 기자의 생기부. /독자 제공

 

다음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20년 된 직장인 이모씨의 생활기록부에 적혀 있는 내용이다. ‘길을 건널 때에는 신호등을 보고 횡단보도로 건너고 있음’(도덕) ‘공을 강하게 굴릴 수 있음’(체육)....

 

성인 입장에서 칭찬이라기엔 애매한, 그러나 그 목적으로 적었을 문장들. ‘도형과 확률과 통계 영역의 학습 활동이 좋음’(수학) 같은 그럴듯한 내용도 있었지만 이씨는 도덕과 체육 특기 사항에 형광칠을 하고 자기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이런 말과 함께. “신호등을 보고 길을 건너기만 해도 칭찬받던 때가 있었는데.”

 

학창 시절 생활기록부(생기부)를 조회하고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행위가 젊은 층 사이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학교 행정실에 방문해야 볼 수 있던 생기부를 2003년 이후 졸업생에 한 해 온라인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게 되며 벌어진 일. 이들은 “생기부를 보며 잊었던 나의 장점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성인이 되며 단점을 지적받는 일이 많아진 청년들이 ‘나는 뭘 잘하는 사람이었는지’ 궁금해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한다.

 

◇칭찬을 받고 싶습니다

 

생기부 조회는 정부24 홈페이지에서 할 수 있다. 초·중·고 모두 확인이 가능하다. 가장 인기 있는 건 초등학교 생기부. ‘컴퓨터 타자를 칠 수 있음’ ‘실내에서 사뿐사뿐 조용히 걸음’(?) 등이 특기 사항에 많이 적혀 있기 때문이라는데, 의외로 “학습 성과가 우수하다”는 칭찬을 발견할 때보다 기분이 좋단다.

 

청년들은 전체 석차나 지금은 폐지된 ‘수우미양가’ 등의 학습 성취도가 아닌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과 ‘행동 특성 및 종합 의견’에 주목한다. 담임 교사 눈에 비친 학창 시절 모습 말이다. 말을 또박또박 함, 한글을 잘 읽음, 발표를 할 때 목소리가 우렁참….

 

“학교와 돈 받고 다니는 직장의 차이”라며 ‘개근상’도 인증. 성적이 눈에 띄게 오른 것도 아니고 학교를 꼬박꼬박 나가 앉아 있었을 뿐인데도 상을 준다는 것이다. 제시간에 출근해 앉아 있는 건 당연한 일이요, 앉아만 있으면 “일 안 하냐” 타박이 돌아오고 일을 하며 앉아 있어도 “김 대리는 지각도 없는데 성과가 왜 이러냐”며 구박받는 직장인의 애환, 애환, 애환.

 

칭찬이 고픈 ‘어른이’(어른과 어린이의 합성어)들의 서글픈 장점 찾기. 요즘 직장에서 하루 두 번씩 혼나고 있다는 황모(32)씨는 최근 조회한 생기부에서 ‘늘 적극적이며 의사 표현이 명확함’을 발견했다. 황씨는 “싫은 소리는 길게, 칭찬은 짧게 하는 직장 생활에 지쳤는데 초등학교 생기부를 보니 온갖 칭찬이 적혀 있더라”며 “지금은 실수투성이지만 그래도 나는 꽤 괜찮은 학생이었구나 싶어 울컥했다”고 했다.

 

이들은 “저런 것도 적어주나” “담임이 힘들었겠다. 얼마나 쓸 말이 없었으면” 등의 댓글을 주고받으며 깔깔거린다. 그러면서도 “티 없이 밝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 “넌 예전에 책 읽는 걸 참 좋아했다. 문학 소년이었다” 등의 이야기를 나눈다. 한 청년은 이런 소감을 남겼다. “걸음마만 떼도 온 가족이 손뼉 쳐 주던, 마음 따뜻한 어린 시절을 마주한 느낌이다.”

 

◇당신이 누군지 알려드립니다

 

전문가들은 ‘셀프 분석’에 관심 많은 젊은 층의 특징이 반영된 현상이라고 본다. 성격을 16가지로 분류해 준다는 MBTI(성격 유형 검사)의 인기와 비슷한 맥락이라는 것. 과거 소개팅 상대에게 “혈액형이 뭐예요?” 물었다면 요즘 애들은 “MBTI가 뭐예요?”를 묻는다. 새로운 만남의 필수 질문.

 

‘나 찾기’ 열풍은 최근 유행하는 직장인 소모임 모집 글에서도 볼 수 있다. 모임을 찾아 준다는 한 홈페이지에서는 “당신이 누군지 알려준다”는 글이 등장했다. 정원 12명, 총 12회 차의 모임마다 ‘희’ ‘노’ ‘애’ ‘락’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 한 회차당 자신의 매력 한 가지를 발견하는 것이 목표. 예를 들어 가상의 무례한 연락에 서로의 방식으로 답장해 본 뒤 ‘나는 분노를 어떻게 다스리는 사람인지’ 탐구해 보는 식이다. 13일 첫 모임을 갖는데 벌써 마감. 참여 대기자가 줄을 서 있을 정도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젊은 층은 개인의 가치를 중시하고 개성을 드러내려는 욕구가 강하다”고 했다. ‘별다꾸’(별걸 다 꾸민다)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자신의 물건을 취향에 맞게 꾸며(커스텀) 착용하는 현상 역시 이런 욕구의 연장선에 있다.

 

기자도 생기부를 조회해 봤다. 이런 문장이 있었다. ‘구김살 없는 밝은 성격으로 주변에 편안함을 줘 교우 관계가 매우 원만함.’ 잔뜩 구기고 있던 표정이 다림질한 것처럼 잠시 펴졌다.

 

-조유미 기자, 조선일보(25-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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