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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증] [赤軍이 부르는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

뚝섬 2025. 2. 17. 05:44

[전역증] 

[赤軍이 부르는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

 

 

 

전역증

 

1988년 입대했던 필자는 군 복무 중이던 1990년 초 어머니로부터 “입영 영장이 또 나왔다”는 전화를 받았다. 복무 확인서를 병무청에 내고 해결했지만 이듬해 제대하며 ‘전역증을 버렸다간 군대 두 번 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군필’임을 증명하는 용도 말고 전역증의 다른 쓸모는 없었던 것 같다.

 

▶로마 제국은 제대군인 예우가 각별했다. 로마 병사는 최대 25년을 복무하고 군문을 나설 때 13년 치 연봉에 해당하는 고액 상여금을 받았다. 상당수는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그 돈으로 부대 인근 땅을 사서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적이 침입하면 다시 무기를 들었다. 그래서 황제들은 재정 부담을 무릅쓰고 전역병 예우에 정성을 쏟았다. 값비싼 청동판에 소속 부대와 계급을 새긴 전역증도 발급했다.

 

오늘날 미국이 군인 예우의 모범을 보여준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야구장 관중석엔 ‘돌아오지 못한 장병을 위한 좌석’이 있다. 만원 관중일 때도 그 자리는 비워둔다. ‘누구 덕분에 야구를 즐기는지 잊지 않겠다’는 감사의 뜻이 담긴 빈자리다. 아프가니스탄 전장에서 아군 진지에 날아든 수류탄을 밖으로 던지려다 오른손을 잃은 리로이 페트리 상사가 2011년 백악관에서 군인 최고의 영예인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받자 CNN은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이를 생중계했다.

 

▶올 들어 우리 국군 전역증 재발급이 크게 증가했다고 한다. 지난달 발급 건수가 작년 동기 대비 12배나 폭증해 이미 지난해 재발급 총량에 육박할 정도다. 미국 여행에 나선 예비역들이 현지에서 뜻밖의 전역증 혜택을 본 게 무용지물 전역증을 되돌아보게 된 계기라 한다. 미국 제대군인은 전역증을 박물관·미술관·관광지·쇼핑몰·음식점 등에 제시하고 할인을 받는다. 한국인 방문객에게도 “미국의 혈맹”이라며 같은 혜택을 준다. 그래서인지 소셜미디어엔 전역증을 재발급받았다는 인증샷 릴레이도 이어지고 있다.

 

▶카투사로 복무한 필자는 전역식을 두 번 했다. 미군 전역식에선 부대 사령관이 직접 참석해 “그간의 봉사에 감사한다”는 감사장을 주고 가슴에 훈장까지 달아줬다. 반면 한국군 전역식에선 종이 전역증 한 장 받는 게 전부였다. 이런 전역식을 경험하며 미군은 단지 화력만 막강한 군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리도 늦게나마 전역자 예우에 나섰다. 2021년 종이가 아닌 카드 형태의 플라스틱 전역증으로 개량했고 전역증을 지참하면 할인 혜택을 주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 이런 예우가 더 강화되어야 나라 안보도 튼튼해진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5-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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赤軍이 부르는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

 

평화 가치 일깨운 소련의 美공연
세대 넘어 지금까지 공감 얻는데
"우크라 종전" 트럼프·푸틴 밀착
이익만 좇는 강대국 야합 아닌지

 

소련의 붉은 군대 합창단(Red Army Choir)이 미국 워싱턴 DC 케네디 센터 무대에 오른 것은 1989년 12월 3일이었다. 케네디 센터가 매년 미국 문화에 공헌한 예술인들에게 주는 명예상 시상식 갈라쇼였다. 카키색 군복을 입은 무용수들이 댄스와 곡예로 흥을 돋우는 영상이 유튜브에 남아 있다.

 

이어서 지휘자가 등장하고 합창단이 ‘갓 블레스 아메리카(God Bless America)’를 부르기 시작한다. 베를린 장벽 붕괴(11월 9일) 직후의 해빙기였다곤 해도 관객들은 적군 합창단이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라고 노래하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객석의 유명 여배우 모린 스테이플턴이 딱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손으로 가리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노래하는 단원들 표정에도 뿌듯함이 묻어난다. 역사의 현장에 서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로부터 2년 뒤 소련이 해체되고 냉전이 끝났다.

 

핵전쟁 공포 속에 자라 베트남전에 참전했다는 이가 “이 공연을 본 날 마침내 다 끝났다는 생각에 아이처럼 울었다”고 댓글을 달았다. 스스로 스물두 살이라고 소개한 이는 공연 당시 64세였던 스테이플턴을 가리켜 “내 인생의 두 배에 걸쳐 냉전을 겪은 그녀가 보기엔 초현실적인 장면이었을 것”이라면서 “때론 기적이 일어나고, 인간의 품위가 이긴다는 것을 보여준 무대”라고 썼다. 이 영상이 세대를 뛰어넘어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은 화합·평화·희망 같은 보편적 가치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36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또다시 러시아에 손을 내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2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하고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협상을 시작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양국의 우호를 강조하고자 제2차 세계대전에서 함께 싸운 역사까지 언급했다고 한다.

 

전쟁을 끝내는 일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푸틴과) 우리가 협력해서 얻게 될 위대한 이익에 대해 논의했다는 발언은 가치보다 타산을 중시하는 관점을 보여준다. 실제 트럼프는 얻을 것이 많다. ‘전쟁을 막지 못한’ 조 바이든 전 대통령과 ‘외국 퍼주기를 끝내고 국익을 지킨’ 자신을 대비시킬 수 있다. 종전 공로를 내세워 노벨평화상을 노릴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은 실용적이지 않다”고 했고, 우크라이나의 영토 수복에 대해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고 했다. 우크라이나가 요구해온 종전 조건은 묵살하고 러시아 주장을 그대로 수용한 듯한 발언이다. 강대국 아닌 나라의 자주(自主)는 어디서 설 자리를 찾아야 하나.

 

12일은 마침 트럼프가 케네디 센터 이사회 의장직에 오른 날이기도 했다. 트럼프는 데버러 러터 케네디 센터 대표를 해임하고 자신의 측근 리처드 그리넬 대북 특사를 임시 대표에 앉혔다. 백악관 비서실장, 부비서실장, 부통령 배우자를 이사회에 포진시켰다. 워싱턴 DC를 대표하는 이 공연장을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가 장악한 것이다.

 

트럼프는 “더는 드래그 쇼(여장 남자 공연)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바이든 정부 시절 진보 색채 공연이 많이 열린 점을 문제 삼은 것이다. 다양성과 평등만이 중요한 가치는 아니지만, 트럼프가 내세우는 매가는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가치보다는 지지자를 규합하는 구호에 가깝다. 조만간 열혈 트럼프 지지자인 가수 리 그린우드가 케네디 센터 무대에서 단골 선거 유세곡 ‘갓 블레스 디 유에스에이(God Bless the USA)’를 부르는 모습이 유튜브에 올라올지도 모르겠다. 제목은 비슷하지만 1989년의 ‘갓 블레스 아메리카’만큼 감동적이지는 못할 것 같다.

 

-채민기 기자, 조선일보(25-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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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전 협상에서 소외된 우크라이나…. 강대국들의 패권 싸움에 소국은 말 못하는 설움 반복되나.

 

○ 군 전역증, 국내선 혜택 거의 없는데 미국 가면 각종 우대 및 할인. 제대 군인 예우도 미국에 빚져야 하나.

 

-팔면봉, 조선일보(25-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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