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에 명운 걸린 나라 정치권의 망동] ....
[반도체에 명운 걸린 나라 정치권의 망동]
[귀족 노조! 뛰겠다는 사람 뒷다리는 잡지 마라]
[“52시간제로 R&D 성과 줄어”… 그런데도 예외조항 뺀다는 野]
[기술 냉전 시대]
반도체에 명운 걸린 나라 정치권의 망동
반도체특별법이 2월 국회에서 또 무산될 상황이다. 민주당이 ‘주 52시간 근무제 예외’ 조항을 포함하지 않기로 최종 방침을 정했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표가 지난 3일 예외를 인정할 것처럼 언급했으나 민주노총 등이 반발하자 결국 없던 일로 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서로 남 탓을 했다. 이재명 대표는 “주 52시간 예외 조항 없이는 어떤 것도 합의할 수 없다는 국민의힘의 몽니 때문”이라고 했지만, 자신이 주 52시간 예외 허용에서 왜 유턴했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 대표가 외치는 ‘성장’은 거짓말”이라고 했지만, 이견이 없는 부분까지 무산시킨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경직적인 주 52시간 규제가 혁신의 발목을 잡고 산업 경쟁력을 훼손시킨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대한상의 조사에선 주 52시간제 도입 이후 연구·개발(R&D) 성과가 줄었다는 기업이 4곳 중 3곳에 달했다.
삼성의 경쟁자인 TSMC의 연구·개발팀은 24시간, 365일 쉬지 않고 가동되고, 중국의 테크 기업들은 ‘896(8시 출근, 9시 퇴근, 주 6일 근무)’ 시스템이 일반적이다. 전 세계 기업들이 밤새워 연구하며 혁신을 이뤄내는데 한국 기업의 연구소들은 저녁만 되면 불을 꺼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정치권은 국회와 거리에서 멱살잡이를 하고 있지만, 해외에선 탄핵보다 한국 정부의 경제 산업 정책 방향에 더 관심을 보인다고 한다. 최종구 국제금융협력대사는 “해외 투자자들은 대통령 탄핵 심판보다 반도체특별법 통과 여부, 상속세 완화 등에 관심이 더 많았다”고 전했다. 그는 최근 홍콩과 싱가포르에서 글로벌 3대 신용평가사와 블랙록·핌코 등 해외 투자자들을 만났다.
이재명 대표는 연일 성장과 ‘경제 중심 정당’을 강조하고 있다.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안정적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반도체 산업의 연구·개발 분야에 국한해, 근로시간 총량을 늘리지 않는 범위 안에서 주 52시간 예외를 인정하자는 상식적 요구조차 거부하면서 무슨 ‘경제 정당’인가. 무수히 많은 법안을 일방 강행 처리했던 민주당이 국민의힘 때문에 반도체법을 처리하지 못한다는 핑계를 대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지금 세계는 반도체 전쟁 중이다. 여기서 지는 쪽은 패권을 잃는다. 한국은 이 전쟁의 한복판에 있는 나라다. 그런 나라의 정치권이 하는 행태를 보면 망동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25-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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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 ’52시간 근무 예외' 빠진 반도체특별법 처리하자고. 그렇게 되면 ‘팥 없는 찐빵’ 되고 말 텐데.
○ 이재명 대표 ‘대장동 사건’ 재판부 교체, 재판 추가 지연 불가피. 중력이 클수록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더니.
-팔면봉, 조선일보(25-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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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 노조! 뛰겠다는 사람 뒷다리는 잡지 마라
[조형래 칼럼]
중국 AI 부상, 트럼프 관세 부과
세계 반도체 지형 요동치면서
한국이 직격탄 맞는데도
'주 52시간 예외' 3개월 연장도 못 해
평택 반도체 벨트 공사 중단되자
지역 상권과 건설 일용직은 붕괴 직전인데
귀족 노조만 보호하자는 것인가
반도체특별법 저지·노동시간 연장 반대 공동행동이 1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인근에서 방진복을 입고 죽은 듯 드러눕는 '다이인(die-in)'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홍콩 증시가 연일 급등세다. 트럼프 미 대통령의 관세 전쟁 타깃이 중국이 될 것이라는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홍콩 증시는 한 달 새 20%나 급등하면서 주가 상승률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알리바바·텐센트 등 중국 테크 기업 주가는 말 그대로 폭등세다.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가 고작 80억원의 비용으로 고성능 AI 모델을 개발해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데 이어 알리바바의 AI 성능이 미국 빅테크 메타(페이스북 모회사)의 AI보다 낫다는 평가가 나오면서다. 알리바바 주가는 2022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며 미국의 제재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중국 내 판매되는 애플 아이폰에는 알리바바 AI가 탑재된다고 한다. 곧 중국 화웨이폰에도 알리바바 AI가 탑재돼 세계 곳곳에서 삼성 스마트폰을 공격할 것 같다.
대만에서도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대만 TSMC가 미국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미국 대표 기업 인텔을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이야기다. 자국 내에 첨단 반도체 생산 시설을 유지하려는 미국의 안보 욕구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에서 삼성전자의 추격 의지를 완전히 꺾어 놓으려는 TSMC의 이해관계가 일치한 것이다.
지난 20년간 한국이 지배해 온 메모리 반도체도 위기다. 삼성은 내부적으로 낸드플래시는 중국이 대등한 수준까지 쫓아왔으며, D램도 3년이면 기술 격차가 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트럼프가 큰소리친 대로 한국 반도체에 관세를 매기면 미국 메모리 시장마저도 마이크론 등 현지 기업에 넘겨줄 판이다.
미·중 갈등이 촉발한 반도체 전쟁은 세계 반도체 산업의 지형을 바꾸고 있다. 공교롭게도 모든 경쟁자의 칼끝이 한국 반도체를 향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내부에는 위기의식이 없다.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반도체 특별법은 주 52시간 예외 조항에 대한 노동계와 야당의 반발로 발목이 잡혀 있다. 노동계가 반대하는 목소리를 들어보면, 반도체 산업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 없이 여전히 봉제 공장 시절의 노사관(觀)에 머물러 있다.
손톱만 한 크기의 반도체는 자동차·선박 같은 중후장대(重厚長大) 산업과 달리, 물류 비용 부담이 적은 데다 무역 장벽도 없다. 전 세계가 사실상 하나의 시장이다. 기술력이 앞선 기업은 이익을 독점하고 후발 주자는 퇴출당하는 냉정한 승자 독식의 시장이기도 하다. 다른 산업과는 비교가 안 되게 생산 공정도 복잡하다. 예컨대 첨단 반도체는 설계에서 시제품이 나올 때까지 7~8개월에서 길게는 1년까지 무려 1000여 공정을 거친다. 한번 삐끗하면 7~8개월을 통째로 날릴 수 있다. 이 기간에 R&D(연구·개발) 역량을 집중해 개발 기간을 단축하고 실수를 줄이는 데서 승부가 갈린다.
그런데 국내 현행법은 R&D 연장 근로 허용 기간이 3개월에 그친다. 그나마도 일일이 고용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이를 어기면 경영자가 감방에 갈 수도 있다. 규정 위반에 대한 실형 처벌은 해외에서는 유례가 없다. 이에 기업들은 희망자에 한해 한시적으로라도, 주 52시간 예외 규정을 기존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려달라고 애원하고 있지만 노동계는 “근로시간 단축의 역사를 역행하는 것”이라고 반대한다. 내가 자발적으로 일을 더 하고 돈을 더 받겠다는 게 왜 역사의 후퇴인가? 다른 사람들의 워라밸을 위해 내가 일할 권리마저 포기해야 하는가?
노동계와 야당은 문재인 정부 시절 반도체 벨트로 선정한 평택시에 가보길 바란다. 실적 부진을 겪는 삼성이 반도체 공장 건설을 일시 중단하자 승승장구하던 도시의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4만~5만명에 달했던 건설 인력이 1만명대로 급감하면서 지역 상가는 텅텅 비고 10억원을 호가하던 아파트 가격도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고용부에는 임금을 못 받은 근로자들의 민원이 급증하고 있다. 노동계가 연봉 1억원 넘는 귀족 노조의 건강을 염려하며 주 52시간 사수에 목매는 사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일감이 없어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과거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신경영을 주창하면서 “많이 바뀌고 싶은 사람은 많이 바뀌고 적게 바뀌고 싶은 사람은 적게 바뀌어도 된다. 그러나 남의 뒷다리는 잡지 마라”고 했다. 지금 노동계에 해주고 싶은 말이다.
-조형래 부국장, 조선일보(25-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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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시간제로 R&D 성과 줄어”… 그런데도 예외조항 뺀다는 野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된 후 기업들이 운영하는 연구조직 4곳 중 3곳은 연구개발(R&D) 성과가 줄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신제품 개발, 품질 개선 등 혁신의 속도도 떨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더불어민주당은 반도체 분야 R&D 인력만이라도 주 52시간제의 예외로 인정하도록 하는 내용을 제외한 채 반도체특별법을 추진하기로 최종 입장을 정했다고 한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부설 연구소, R&D 전담 부서를 둔 500여 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6%는 주 52시간제 시행 이후 연구개발 성과가 저하됐다. 절반 가까이가 신제품 개발의 혁신성이 떨어졌다고 답했고, 연구 인력의 역량 제고 등에 문제가 생겼다는 기업도 많았다. 전체의 절반이 넘는 54%는 R&D에 드는 시간이 길어졌다고 했다.
인공지능(AI), 정보기술(IT) 등 급격한 혁신이 이뤄지는 분야에선 첨단 신기술을 반영한 제품을 단 몇 주만 먼저 내놔도 시장을 선점하는 효과가 대단히 크다. 주 52시간제 적용 예외 논의가 반도체 분야에서 시작된 이유다. 이와 관련해 이달 초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관련 토론회를 직접 주재하면서 “특정 산업의 연구개발 분야 고소득 전문가들이 동의하면 예외로 몰아서 일하게 해주자는 게 왜 안 되냐고 하니 할 말이 없더라”고 했다. 이런 발언 때문에 산업계의 기대감이 커졌지만, 민주당이 어제 국회의 관련 법안소위에서 예외조항 신설에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하는 바람에 논의는 난항을 겪고 있다.
어제 이 대표는 자신의 상속세 완화 주장과 관련한 ‘우클릭’ 비판에 “세상 바뀌는데 변하지 않는 게 바보”라고 했다. AI 전환, 중국의 추격으로 심각한 위기를 맞은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주 52시간제에 묶여 판을 뒤집을 기회마저 차단당하고 있다. ‘반도체의 거인’으로 불리던 미국 인텔 공장을 대만 TSMC가 인수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지금 글로벌 반도체 산업은 격변 중이다. 경쟁자들이 뛸 때 우리 기업을 기게 만드는 경직적 주 52시간제야말로 세상의 변화에 맞춰 바꿔야 할 제도다.
-동아일보(25-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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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냉전 시대
유년 시절을 서독에서 보낸 나에게 ‘냉전’이라는 단어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국가 경제는 이미 파산하고, 동유럽 곳곳에서 민주화 운동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당시 구소련은 최첨단 중거리 핵미사일 SS-20을 동유럽에 배치하기 시작한다. SS-20에 대한 대응으로 NATO는 핵탄두를 탐재한 퍼싱-2 전술 미사일을 서독에 보내면서, 수십 년 동안 유지되던 ‘냉전’이 진짜 전쟁으로 확장되는 분위기였다. 핵전쟁 억지용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는 달리 중거리 전술 미사일은 실질적 전쟁에서 사용 가능하니 말이다. 우리는 절대 서른 살을 경험할 수 없을 거라는 이야기가 학교에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구소련 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 정책을 택하며 냉전의 시대는 마무리되고 구소련은 빠르게 몰락하기 시작한다. 세계 핵전쟁이라는 존재적 위협에서 인류는 가까스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 정치학자 후쿠야마가 주장하듯 자유민주주의의 영원한 승리로 이데올로기 간의 경쟁은 끝나고, 이제 ‘역사의 종말’이라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듯했다.
하지만 역시 ‘영원히’는 우리 호모 사피엔스에겐 허락되지 않는 단어일까? 러시아의 민주화는 결국 실패하고, 중국의 사회, 경제 개방 정치 역시 빠르게 유턴 중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오랜 민주주의 전통을 가진 서방 국가들 역시 포퓰리즘과 신민족주의, 그리고 신제국주의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이 서로에 대한 견제를 넘어 경쟁과 대립의 관계로 접어들면서 오랜 시간 동안 잊고 살던 ‘냉전’이라는 단어가 다시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인공지능 기술력 위주인 미국과 중국의 신냉전은 핵무기 위주였던 구소련과의 냉전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들 말한다. 정말 그럴까? 에이전트 인공지능과 AGI의 등장과 함께 핵무기를 포함한 대부분 국방 기능 역시 인공지능이 책임지게 될 멀지 않은 미래. 만약 인공지능이 핵무기까지 제어하기 시작한다면, 내가 70세인 미래를 나는 경험할 수 있을까?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 조선일보(25-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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