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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당 슬로건 갖다 쓰기] [최고통수권자의 자격] ....

뚝섬 2025. 2. 21. 11:17

[남의 당 슬로건 갖다 쓰기]

[최고통수권자의 자격]

[“한국의 불행한 대통령들, 대권 차지해 다 쓸어버리려는 탓”]

 

 

 

남의 당 슬로건 갖다 쓰기

 

3년 전 겨울쯤,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윤석열 캠프의 한 인사가 전화를 걸어왔다. 새 정부에 어울릴 슬로건을 하나 지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전화를 끊고 잠시 생각하다 마침 좋은 문구가 떠올라 다시 전화를 했다. “‘다시 대한민국’ 어때요? 시민 참여를 이끌고 싶으면 ‘다시 ㅁㅁㅁㅁ 대한민국’ 이렇게 열어놓고, 빈칸을 공모하는 것도 생각해보세요. ‘다시 도약하는 대한민국’ ‘다시 자유로운 대한민국’... 이런 식으로요.” 그 인사는 “좋은데요” 한마디하고 전화를 끊었다.

 

계절이 바뀌어 봄에 열린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장에 ‘다시 대한민국’이 슬로건으로 걸린 걸 보았다. 여러 아이디어 중 내 의견이 채택된 것이 반가웠고, 어쨌든 새 정부의 비전이 튼튼한 국가관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북한을 옹호하던 문재인 정부와는 확실히 차별되는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는 대통령 취임사를 들으며 새 정부의 출범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응원했다. 적어도 그때는 그랬다.

 

자유 대한민국이라면 있어서는 안 될 대통령의 비상계엄 이후 나라가 극심한 분열로 치닫는 와중에 내 눈을 붙든 사건은 따로 있었다. 대통령 취임 슬로건이 더불어민주당 슬로건으로 슬며시 옮아간 사건이다. ‘회복과 성장’이라는 부제에, ‘다시 大한민국’으로, ‘대’ 자만 한자로 바뀐 슬로건이 이재명 대표의 교섭단체 연설 때 ‘잘사니즘’이라는 또 다른 문구와 함께 스크린에 큼직하게 걸려 있었다. 그 연설에서 이 대표는 ‘성장’을 29번이나 말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눈과 귀를 의심했다가, 이해해 보려고도 했으나, 여러 생각을 하다 보니 마음만 복잡해졌다.

 

흑묘백묘론을 들고나온 실용주의 노선이라면 정책 어젠다가 걸맞지 철학과 방향이 담긴 슬로건은 어울리지 않는다. 중도층을 겨냥한 우 클릭 제스처라고 하기에도 뭔가 심하게 창의력 부족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말 만들기와 틀 짓기에 관한 한, 민주당 쪽에는 발군의 달인들이 차고 넘친다. 그들이라면 훨씬 신박한 문구를 창작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상대편 슬로건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 대체 왜?

 

굳이 애써 이해하려 해보자면,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듯 정치 슬로건도 시대에 따라 재사용될 수는 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2016년 선거에 내건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는 80년대 레이건 대통령이 쓴 “Let’s Make America Great Again”을 재현한 것이고, “America First” 역시 1916년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내세우며 만든 말이다. “Stop the Steal”이라는 슬로건으로 2020년 자신이 패배한 선거를 공격한 트럼프는 지난해 자신의 형사재판에서도 똑같은 슬로건을 반복해 사용했다.

 

그러나 정치 메시지의 핵심은 일관성과 반복이고, 메시지 관리 차원에서 슬로건은 바꾸지 않는 게 상식이다. 트럼프는 첫 임기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MAGA를 동일한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레이건이 썼다고 하지만 이미 세상을 떴고, 공화당 출신의 성공한 대통령이니, 결이 다르다고 할 수 없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의 새 슬로건 ‘다시 大한민국’은 임기 내내 척을 지던 상대 당 소속 대통령의 취임 슬로건이고, 의회가 탄핵한 대통령이 쓰다 만 슬로건이다. 게다가 최근 조사에 따르면 “상대 당이 역겹다”고 답한 응답자가 민주당은 69%, 국민의힘은 58.8%에 달할 정도로(동아시아 연구원 조사) 정치 양극화가 심하다. 그렇게 역겹고 싫고, 심지어 헌재에서 탄핵심판 중인 상대의 가치와 철학이 담긴 슬로건을 가져다 쓰고 싶을까.

 

해답의 실마리는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극우’라는 좌표에 앉히고, 그 언저리를 모두 ‘내란 동조’ 세력으로 틀 짓기 하며, 탄핵 반대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호헌 세력이 되어달라”고 호통치는 야당의 레토릭에 있다. 당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주변 인물들의 거친 언사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지만, 그들의 실력은 녹슬지 않았다. 그들이 그리는 그림은 훨씬 크고 비전은 원대하다. 대통령의 탄핵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되면, 계엄이건 계몽이건 대통령이 한 행위는 헌법이 인정한 불법 선동 행위로 역사가 기록한다.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려 했던 윤석열 대통령은 졸지에 스스로 ‘반국가 세력’이 되고, 척결 대상이었던 ‘반국가 세력’이 재빨리 ‘대한민국’의 빈곳을 메꾸는 것이다. 일찍이 박정희 대통령이 내세웠던 ‘잘살아보세’를 ‘잘사니즘’이라는 슬로건으로 바꿔, 우파의 역사와 과실까지 자신들의 영역으로 만들 수 있는, 소위 ‘우파 궤멸’의 기회의 창이 열렸다고 그들은 판단한 것이다.

 

야당이 가져간 건, 슬로건이 아니라, 거기 딸린 대한민국의 명분과 가치, 우파의 척추와 심장이었다. 탄핵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극우라는 바윗돌을 달아 대한민국이라는 절벽에서 떨어뜨리면, 그들은 중원보다 더 넓은 나라 전체를 얻을 수 있다. 야당의 우 클릭이 중도를 얻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분석은 그들을 너무 얕잡아 보는 것이다.

 

물론 대한민국도 그리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2030 청년이 모조리 극우가 될 리 만무하고, 탄핵에 찬성한다고 해서 야당을 지지하는 것도 아닌, 대한민국 주의자들의 숫자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레토릭의 세계에서 지금 대한민국은 야당 쪽으로 넘어가 있고, ‘헌법’을 재판한다는 곳 또한 대통령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자신이 벌인 일이 대한민국에 가져올지도 모를 가공할 결과를, 지금 대통령은 알고 있을까.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한국미래학회 회장, 조선일보(25-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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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의 개혁신당, ‘野 5당 원탁회의’의 참여 제안 거절. 장차 야권보다 여권에서 몸값 치솟을 거라고 판단?

 

-팔면봉, 조선일보(25-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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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통수권자의 자격

 

한국에서는 대통령을 ‘최고통수권자’로 칭할 때가 있다. 일국의 군을 지휘하는 최고사령관이라는 뜻이다. 국가원수의 대권으로 통하는 만큼 대통령을 제외한 여타 군 지휘관에게는 ‘통수’ 또는 ‘통수권’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현행 헌법 조문을 포함해 한국어 언중(言衆)이 통수를 이러한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일제의 유산으로 볼 수 있다. 대일본제국 헌법 제11조는 ‘천황은 육해군을 통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때까지 통수는 특별한 말이 아니었다. 사령(司令) 또는 지휘 정도의 의미로 사용되던 말이 천황과 결부되어 조문화되자, 천황 전속 대권이라는 의미로 격상되고 신성불가침성이 부여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통수권은 그러한 배경하에서 생겨난 말이다.

 

당시 통수권이라는 말이 갖는 힘은 소위 ‘통수권 간범 문제’에서 그 사정을 살펴볼 수 있다. 1930년 하마구치 내각은 해군 군령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런던군축조약 조인을 강행한다. 이때 군부 강경파와 우익 세력이 정부를 공격하면서 만들어낸 말이 ‘통수권 간범(干犯)’이다. 신성한 통수권을 간섭하고 침해한 불경죄라는 것이다. 그해 11월 하마구치 수상이 우익 청년에게 저격당하는 암살 미수 사건이 벌어질 정도로 통수권 프레임의 효과는 강력했다.

 

군인들에게 최고통수권이라는 말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위국헌신의 군인 본분을 구체화하는 것이 최고통수권자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지금 한국 법정에서는 계엄 발령을 둘러싸고 최고통수권자와 휘하 군인들 사이에 진실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최고통수권자의 결단’임을 내세우는 쪽이 제약된 정보와 현장의 혼란 속에서 명령을 수행한 군인들에게 날을 세우며 책임을 추궁하는 모습은 아무리 보아도 비극적이다. 자신의 명령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군의 명예와 사기를 존중하는 것은 최고통수권자의 최소한의 자격일 것이다.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주일대사관1등서기관, 조선일보(25-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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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불행한 대통령들, 대권 차지해 다 쓸어버리려는 탓”

 

‘한국의 불행한 대통령들’ 저자 라종일 동국대 석좌교수
제왕적 대통령제? 제왕이라는 사고가 문제… 3권 분립 체제 5년 단임직이 왜 ‘대권’인가
개헌이 탈출구? 그만한 정치적 역량 있나… 양보와 타협 아는 정치적 소양이 더 중요
새 왕조 세우듯 세상 바꾸려다 불행해져… 적폐청산, 대못 박기 하지 말고 겸손해야
 

 

서울 송파구 자택에서 만난 라종일 동국대 석좌교수는 “역대 대통령들이 불행한 말로를 맞이하는 것이 한국 정치의 특징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며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과거를 지우고 새로 시작하자’거나 ‘대권을 잡아 세상을 확 바꾸겠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변영욱 기자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넣기 좋아하는 나라.” 김대중 대통령 시절 남한의 ‘타락상’을 묘사한 북한 소설 ‘아, 조국’에 나오는 구절이라고 한다. 출간 연도가 노무현 대통령 집권 2년 차인 2004년. 이후로도 역대 대통령들의 끝은 좋지 않았다. 라종일 동국대 석좌교수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영국 대사 임기 끝무렵이다. 새로 선출된 노무현 대통령에게 발탁돼 귀국길에 오르는 그를 위해 마련된 송별회 자리에서 현지 지식인들은 축하보다 우려를 표했다. ‘한국 대통령들은 그 끝이 좋지 않고 거의 예외없이 비극적이기까지 하던데…’라면서. 라 교수는 이 문제를 잘 알고 있으면서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고 했다. ‘한국의 불행한 대통령들’은 라 교수가 오래 고민해 오던 문제에 대해 후배 정치학자들과 내놓은 답이다. 출간 연도가 2020년. 이후로도 우리는 감옥에 갇힌 또 한 명의 대통령을 보고 있다.》

―21세기의 비상계엄 사태,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격세유전(atavism) 같은 현상이라고 본다. 일반인의 눈에 띄지 않게 잠재돼 있던 권위주의 시대의 인자가 갑자기 돌출한 것이다. 자크 데리다의 ‘유령론’을 인용해 유신시대 긴급조치라는 유령의 출현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어떻게 해석하든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 정치 현실에 대해 황당할 정도의 오판을 했고 잘못된 조치로 나라 전체에 큰 혼란과 어려움을 초래했다. 나라가 국내외 경제 외교 안보 등 여러 가지로 어려운 문제에 당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
한국의 불행한…’은 톨스토이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윤 대통령의 불행의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인으로서 경험과 경륜의 축적 없이 정부의 최고위직에 바로 올랐다. 그전의 경험이 검사로서 사람들을 정죄하는 일에 국한됐다는 점도 이미 높은 수준으로 발전한 나라를 이끄는 데 도움이 안 됐을 것이다. 널리 알려진 음주 습관. 이 기호도 전직과 관계가 있을 텐데, 냉철한 판단을 방해하는 요인이다. 국가수반으로서 영부인 문제 처리도 일반인들 기대 수준에 많이 미치지 못했다.”

전직 대통령은 자식들도 감옥에 보냈다. 아내에게 모질기가 더 어려운가.

정치학에서 대통령 주변 인물들의 영향력을 측정하는 여러 기준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육체적인 근접성, 즉 대통령 곁에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가를 따지는 것이다. 이 기준으로 보자면 영부인을 당할 사람이 없다. 어느 정부에서나 영부인의 영향력은 컸다. 문제는 그 영향력을 어떻게 행사하는지, 영부인 문제를 대통령이 어떻게 다루는지인데, 윤 대통령은 이를 소홀히 했다. 특검까진 안 가더라도 검찰 조사를 제대로 했어야 했다.”

역대 대통령이 모두 불행한 구조적 원인으로 제왕적 대통령제가 지목된다.

스스로 제왕이라 여기는 멘털리티가 문제다. 대통령직을 흔히들 대권(大權)이라고 한다. 옛날에 유력한 어느 대선 후보는 측근들로부터 ‘주군’이라 불렸다. 3권분립 체제에서 5년 단임의 대통령직을 대권이라고 부르는 게 온당한가. 정권이 바뀌면 무슨 새로운 왕조를 세우듯 정부 조직을 개편하고 역사도 새로 쓴다. 김대중 대통령이 1992년 대선에서 실패하고 영국 케임브리지에 와 계실 때 자주 저를 찾으셨다. 한번은 ‘만약 차기 대통령이 되신다면 새로운 마음으로 정부를 운영해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이때 ‘제2의 건국’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반공, 권위주의, 국가 기관을 정권 유지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일을 지양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되신 다음 국가 기관을 동원해 제2건국위원회를 전국적 규모로 조직하는 것을 보고 놀라 여러 경로로 반대 의견을 전달했다. 현실적인 안목을 갖춘 분임에도 나라를 다시 세워 보겠다는 생각을 하신 것이다.”

선거 때면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혁명적인 변화를 이뤄내겠다고 마음먹으면 반대 세력을 동반자나 경쟁자가 아닌 적이나 자기가 수행해야 하는 위대한 업적을 방해하는 방해꾼으로, 궤멸해야 하는 상대로 볼 수 있다.”

전 정부 지우기도 되풀이되는 문제다.

“다른 나라도 정권이 바뀌면 전 정권 지우기가 시도되지만 이는 정책의 영역에 머문다. 그런데 우리는 검찰을 동원한 사법적 처리가 주를 이룬다. 그러니 어떻게든 대권을 차지해 상대방을 문화계 스포츠계 망라해 다 쓸어버리려 하지 않겠나.”

대통령 레임덕은 측근 비리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았다.

“어느 정치인이 쓴 책에 ‘하루 일과가 100이라면 그중 일은 20∼30만 하고 나머지 70∼80은 자기 자리를 철벽 수비하는 데 썼다’고 나온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인사나 정책이 국익의 관점이 아닌 측근들 사이의 이해관계나 영향력을 위한 각축의 결과로 결정된다는 증언이다. 결국 책임은 다 대통령에게 돌아오게 된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막기 위해 개헌하자는 요구가 있다.

“개헌이 현재 정치적 난국에서 가장 쉬운 탈출구로 논의되고 있지만 난 회의적이다. 역대 대통령들의 불행이 헌법 때문일까. ‘영국 헌법’의 저자인 월터 배젓은 헌법을 자주 고치는 나라를 환자에 비유했다. 환자는 침대에 누워 좀 더 편하려고 자세를 자주 바꾸지만 어떤 자세를 취해도 역시 불편하기 때문에 계속 자세를 바꾼다는 설명이다. 이해관계와 셈법이 다른 현 정치권에서 다수의 사람들에게 좋은 평을 듣는 개헌을 할 능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개헌을 해도 헌법 조문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해 변칙적으로 활용하려 하지 않을까. 현행 헌법에 따르면 총리는 내각을 조직하고 이를 대통령에게 보고해 승인을 받도록 돼 있다. 하지만 조각은 청와대에서 이뤄지고 총리는 별 영향력이 없다. 좋은 헌법도 안 지키면 무슨 소용인가.”

개헌이 아니라면….

“우리는 민주주의를 독재와 싸우는 것으로만 이해한다. 경쟁자들과 페어 플레이 하려는 노력은 없다. 더 좋은 헌법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보다는 양보하고 타협도 할 수 있는 정치적 소양을 갖추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본다.”

윤 대통령의 탄핵 사유는 박근혜 전 대통령 때보다 엄중해 보인다. 그럼에도 탄핵에 반대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야당의 독주가 지나쳤다는 여론이 있다. 또 하나는 박 전 대통령 때 탄핵되면 그 다음에 타협과 화합의 정치가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잖나. 적폐청산 한다면서 국가정보원 서버까지 들춰 보는 등 국기를 흔드는 일이 있었다.”

국제 정세가 불안정한데 탄핵으로 국론까지 분열된 양상이다. 탄핵 심리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물리적 충돌이 벌어질까 우려된다.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 정치인들이 ‘밥값’을 해야 한다. 최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는데, 이시바의 정적이었던 아베 전 총리 부인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게 참 부러웠다. 6·25전쟁 때 미군이 압록강에서 대패하자 트루먼이 ‘모든 무기 사용을 다 고려하고 있다’고 해 원자폭탄을 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유럽이 발칵 뒤집혔고, 당시 클레멘트 애틀리 영국 총리가 워싱턴으로 날아갔다. 노동당 출신 총리가 가는데 보수당의 윈스턴 처칠이 워싱턴에 있는 친구들에게 편지를 써서 ‘애틀리가 지금 굉장히 어려운 임무로 워싱턴에 가니 좀 도와 달라’고 했다. 우린 왜 이렇게 못하나.”

탄핵 심리 결과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질 수 있다. 차기 대통령이 불행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대통령이 되겠다며 조언을 구하는 분들에게 꼭 묻는다. ‘대통령이 되면 5년 동안 뭘 하겠느냐.’ 그럼 엄청난 얘기들을 한다. 통일도 추진하고 민주화도 더 추진하고 경제도 건설하고 세계에서 지도적인 역할도 하고. 그런데 구체적인 정책은 없고 일반적인 얘기만 한다. 새로운 세상을 열겠다 해놓고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고 우왕좌왕하다 5년이 간다. 그럼 불만들이 쌓인다. 불행한 대통령 안 되기가 힘든 거다. 한시적으로 국정을 맡았을 뿐이라며 겸손하고 과학적이었으면 한다. 적폐청산이나 후임자 일까지 간섭하는 ‘대못 박기’ 이런 것 하지 말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으로 한반도 안보 지형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불안하다.

“큰 변화의 시기다. 그러나 국제 관계에 있어서는 무엇이 변하고 무엇이 상수로 남아 있는 것인가 판단하는 능력도 중요하다. 프랑스 격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변화할수록 그대로이다.’”

 

라종일 동국대 석좌교수(85)

 

△서울대 정치학과
△영국 케임브리지대 트리니티칼리지 정치학 박사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대중 정부 국가정보원 해외·북한담당 차장
△노무현 정부 대통령국가안보보좌관
△주영 대사, 주일 대사
△우석대 총장
△저서: ‘장성택의 길’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 ‘물과 피: 정치의 이해’ 외 다수

 

-이진영 논설위원, 동아일보(5-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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